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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시대, 인간의 일 -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이들을 위한 안내서
구본권 지음 / 어크로스 / 201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말이 생각났다. 세상의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디지털 문법을 배우지 못하면 정상적인 사회생활, 이를 넘어선 일상생활이 불편해지거나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아 각종 페이서비스를 통해 지갑없이 다니는 건 지갑을 가지고 다니면 그만이지만 무인주문을 위한 키오스크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면 뒤에 서있는 다른 손님들의 눈총을 받기 십상이기 때문. 요즘 아이들은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펴서 뺨에 붙여 전화를 하겠다는, 혹은 전화를 하라는 비언어적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이것도 아마 디지털 리터러시 갭으로 인한, 즉 디지털 디바이드 사례일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디지털, 로봇 시대의 발달로 인해 우리네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에서 다룬 과학철학 교양서이다. 주제 특성상 출간된지 4년반이 넘은 지금 그 이후에도 수많은 사례들이 생겼긴 하지만 주제 자체가 희석될 만큼 문제될만한건 크게 없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몇년전에 스치고 지나간 사례들에 대한 일부 추가 정보나 현재는 어찌되었는지 궁금증이 더해졌던 기회가 되기도 했다. 1장은 알고리즘 윤리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여기서 다룬 트롤리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에 몇번 접한바 있어 흥미는 덜했으나(책에는 트롤리 딜레마가 전차문제로 쓰여있어서 순간 뭔가 했다.) 자율자동기술이 발달하면 현재의 드라이버driver라는 단어가 운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가려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주는 기계를 지칭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은 신선했다는.
운전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면 오래전 운전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조금 과장해서 파워핸들 없이도 유턴할때 쓱쓱 핸들을 돌릴 수 있는 힘이 있고, 클러치를 다룰 수 있으며, 갑자기 펑크가 나더라도 리페어 타이어로 교체할 수 있는 기본 정비능력까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마 앞으로 10년? 아니 5년쯤 지나면 차선이탈방지 또는 거리측정을 통한 충돌방지 기능을 통해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는 기능(이런게 생기겠지?), 자동 파킹 기능 등이 없다면 운전을 할 수 있다라고 말하기 힘들어지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더라는.
이거 말고도 인공지능 번역에 대한 이야기(저자의 생각을 담은 대표적인 인용문이 '번역가가 충실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원문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홈볼트), 칸아카데미나 코세라 같은 온라인 교육서비스에 대한 이야기(이 부분을 보면서는 전에 읽었던 이지성씨의 에이트가 생각났다. 그러고보니 책의 주제 자체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인듯), 여가에 대한 이야기 들도 흥미로웠는데 특히 여가에 관한 칙센트미하이의 언급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자유시간을 즐기는 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별다른 기술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자유시간은 일보다도 즐기기가 어렵다. 여가를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여가가 아무리 생겨도 삶의 질은 높아지지 않는다. 여가를 효과적으로 쓰는 것은 자동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칙센트미하이는 체스, 암벽등반, 요트타기, 작곡, 춤처럼 규칙과 기술을 습득해야 하고 목표가 분명하며 명확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활동들이 '최적경험'을 제공하는, 일상과 확연히 구분되는 활동이라고 하는데 동의가 될듯도 하고 아닌듯도 하고 헷깔리더라는. 이 기준에서는 멍때리기는 여가가 아니려나. 비디오게임은 들어갈것도 같고.
책을 펼치며 이 책의 결론부분에서는 어떤 내용을 다룰까 순간 생각하다가 떠오른 단어는 요새 몇차례 접했던 메타인지, 호기심 같은 키워드였는데 역시나 호기심과 질문이었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지점을 시인 메리 올리버의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라는 문장을 인용하며 갈음하고 있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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