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 근세부터 현대까지 세계사보다 더 재미있는 최진기의 전쟁사 2
최진기 지음 / 이지퍼블리싱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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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전에 1권을 보았던터라 내친김에 2권까지 읽기 시작했는데 잠자기 전에 조금씩 읽어도 금방 이었다. 이번 2권에서 다루는 전쟁은 임진왜란, 30년전쟁, 아편전쟁, 청일전쟁, 1~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까지 7개 사건. 1권은 나름 재밌게 봤던것 같은데 2권은 약간 심심하게 느껴졌다. 상대적으로 아는 내용이 많아서였을까, 다루는 깊이가 아무래도 주마간산식일 수 밖에 없어서 그랬는지도. 


기억하기로 1권을 재밌게 본 이유가 주요 전쟁의 승패를 가리게 된 요인을 부대 특성을 고려한 병력배치도 같은 자료들을 통해 단순한 결과만이 아닌 분석을 보여주어서였는데 그런 부분이 2권에서는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것 같다. 있긴있는데 어디서 가져온 이미지인지 시각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보이는 부분도 좀 있었던것 같고. 또 간간히 오타나 문맥상 이상하게 느껴진 부분이 있었는데 이런 부분도 좀 거슬렸다. 


서너군데 있었는데 오타중에 하나는 공중전을 궁중전으로 쓴거, 그리고 특히 일본식 선전포고를 다루는 문단에서는 그래서 진주만 공습전에 선전포고를 했다는건지 안했다는건지 알수가 없어서 따로 찾아보기도 했다는.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선전포고 관련해서 꽤 흥미로운 내용이 있던데 이런 부분을 넣어줬으면 더 재밌었을텐데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각 전쟁의 개요나 의미같은건 대충 알고 있었고 폴란드 카틴 학살 사건 같은 경우는 다시봐도 끔찍하더라는. 심지어 나중에 있었던 대통령내외 비행기 사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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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상상력 -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힘
오종우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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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느끼거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을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술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어떤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할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즉 의도치 않은 느낌을 불러일으킬수도 있다. 개개인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간섭할수도 없고 간섭해서도 안되는거고. 누가 그런것 같던데,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난 이상 자기것이 아니게 된다고.


물론 어떤 불순한 의도를, 프로파간다라고 하던가. 가지고 만든 작품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 는 없을 것이다. 괴벨스가 히틀러를, 나치정권을 띄우기 위해 만든 영상같은 것들. 누군가는 그걸 보고 자부심이나 충성심이 충만해졌을 수도 있겠지만 누구도 그걸 예술작품이라고(스스로를 제외하고는) 인정하진 않을테니. 그러고보면 그 경계를 나누기는 힘들수도 있겠다. 중세나 근대 유럽에서 궁중이나 귀족의 의뢰를 받고 만든 음악이나 미술작품들은 자신의 품위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 있지 않았던가? 생각할수록 어렵다. 행여나 근미래에 네오나치인지 뭔지, 그 시대를 동경하는 집단들이 헤게모니를 잡게 된다면 괴벨스의 작품들이 재조명 받으며 새로운 클래식이 될지도.


책에서도 예술과 기술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 말한다. 예술이라는 단어 자체가 고대 희랍어 테크네에서 나왔고 테크네가 라틴어 아르스ars로 번역되어 지금의 아트가 되었다고. 그리고 하다못해 우리나라에서는 에리히 프롬의 the art of loving을 '사랑의 예술'이 아니라 '사랑의 기술'로 번역하고 있다고. 책의 주제랑은 약간 거리가 있는 말만 했는데 어쨌건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작품을 보여주고 단순한 해석을 넘어선 의견을 덧붙여 전작으로 재밌게 보았던 '예술수업'만큼의 재미를 안겨주었다. 그책보다 약간은 더 딱딱한 느낌이라 읽는 속도는 살짝 더디긴 했지만.


기억하는 만큼 생각이 덧붙여져 감상이 풍부해질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부분 하나. 책 중간쯤 인상주의라는 명칭의 기원이 등장하는데 원래 인상주의라는 단어는 평론가 루이 르로이가 파리에서 간행되는 풍자신문 '르 샤리바리'(왁자지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에 그림들이 진지하지 못하고 사람의 눈을 속인다며 조롱의 뜻으로 쓴 '인상주의자들의 전시회'라는 글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런데 화가들이 이 단어를 3회 전시회부터 자기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사용했다는 것. 거꾸로보면 그만큼 혁신성이 있다며 새로운 사조로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례로 볼 수 있는데 난 이 부분에서 예전에 다양성 관련 책에서 본 '퀴어축제'가 떠올랐다. 원래 이 단어 자체만 보아도 알수 있듯이 '기묘한'이라는 뜻인데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사용하면서 프레임이 바뀌었기 때문. (이걸 전문용어로 뭐라고 했는데...)


책 후반부에 언급된 '예술의 가치는 죽음 속의 삶에 있다.'라는 말도 인상깊다.(p.226) 살아생전에는 모차르트보다 살리에리의 음악이 더 많이 연주되었으나 지금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러고보니 책에 언급되진 않았지만 고흐도 마찬가지였을텐데 모딜리아니도 비슷했던 것으로 나와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었다. 사람도 좋아서 술집에서 계산을 그림을 그려주고 나오곤 했다는데 결국 평생 어렵게 살다 죽긴 해다지만 그 당시만큼은 행복했을 듯. 언급된 음악들에 대해서는 QR코드가 삽입되어 있는데 그걸로 들어가보진 않았지만 검색해서 몇가지는 음악도 들어보고(클래식이나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밥딜런의 노래까지) 몬드리안이 디자인했다는 가구는 어떻게 생겼는지 검색도 해보면서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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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미래 - 10년 후 통하는 새로운 공부법
구본권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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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로봇시대, 인간의 일을 재미나게 보았던 관계로 다른 책이 또 있나 살펴보다가 발견, 내친김에 마저 읽어보았다. 서문에 전작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부분이 있던데 심지어 고등학교 국어교과서 3종에까지 실렸다고 하는 부분이 있어 조금 놀라면서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


결론적으로는 다양한 참고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지루하진 않지만 또 확 끌리는 부분은 없어 무난무난하게 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내가 자녀가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으나 전작만큼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 아니라 대충 알고 있거나 동의하는 내용을 확인하는 수준이어서 그런것 같다. 


1부에서는 공부의 의미가 바뀌고 있다고, 2부에서는 미래의 능력은 창의성, 비판적 사고력, 자기통제력, 협업능력이라고, 3부에서는 스스로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동기를 발견하고 메타인지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약간 아쉬운점은 3부의 중요성에 비해 다루고 있는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것이다. 


1부중 직업의 미래는 전작과 오버랩 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구성상 필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으니 넘어가더라도 2부는 각각의 능력이 필요한 이유를 조금더 미래와 연결짓던가 공부와 연결지어 서술해주면서 3부에 좀 더 힘을 실어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위에 언급한 4가지 미래 능력은 지금 현재 필요한 능력이기도 하고 과거에도 필요한 능력이었으므로. 


전자책으로 목차를 대충 넘기고 봐서 그런가 읽다가 갑자기 끝나버려 아쉬운점 중심으로 적긴 했으나 중고등 자녀를 둔 학부모 또는 학생이라면 한번쯤 일독해볼만한 책이었다. 통섭, 고정/성장 마인드셋, 인지적 구두쇠, 디지털 디톡스, 1만시간 법칙, 학습된 무력감, 메타인지 같은 키워드 들이 생소하다면 더욱.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개념이나 사례소개, 생각거리를 던져준 책이 아니어서 더 그랬을 수도. 그나저나 요즘 고등학교에는 문이과 구분이 없어졌다는데(2018년 부터?) 수십년 먼저 없어졌더라면 내 인생도 전혀 다르게 바뀌었을거라 잠깐 상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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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흐르다
최진석 지음 / 소나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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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쓰신 산문을 모아놓은 책인데 게으른덕분에 너무 늦게 보았다는게 후회스러웠을 정도로 울림이 있던 책이었다. 몇년전까지 책을 추천할일이 있을때마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언급했었는데 책의 내용을 백퍼센트 이해한것도 아니었지만(이 책도 마찬가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자 함이 목적이 아니라 생각의 변화, 행동의 변화가 저자가 이야기하는 핵심임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자의 철학의 전문가로서 장자 책을 제자에게 추천하고 이를 읽고 저자에게 장자처럼 살아야겠다는 감상에 대한 저자의 일침이 인상깊다.


'이 사람아, 장자를 감명 깊게 읽고 나서 기껏 한다는 말이 장자처럼 살아 보겠다는 것인가? 그럼 자네는 어디 있을 요량인가?'


이 지점이 앞서 언급한 인간이 그리는 무늬와 맞닿아있는 지점으로 보인다. 자기 자신처럼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또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고 나 자신과 세상에 부딪쳐가며 누구와도 같지 않은 나만의 무늬를 새겨나가야 한다는 것. 이의 절박함을 의식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아침마다 조용히 앉아 '나는 금방 죽는다'고 서너번 중얼거릴 필요도 있고, 타인의 흔적을 따라가는 것에서 벗어나(읽기) 자신의 흔적(쓰기)을 남길 필요도, 아니 남겨야만 하며 이를 통해 주체가 성장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지만 세상에서 나의 역할인 직(職)과 더불어 성숙해지기 위한 수행으로서의 업(業)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는게, 더나아가 노동의 목표인 여가안에 행복을 담을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가(행복에는 즐거움이 섞여있어야 하며 즐거움은 지적인 활동에서 생산된다고 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동의하므로) 내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 겨우 한문장으로 뽑아낸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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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시대, 인간의 일 -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야 할 이들을 위한 안내서
구본권 지음 / 어크로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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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리터러시라는 말이 생각났다. 세상의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디지털 문법을 배우지 못하면 정상적인 사회생활, 이를 넘어선 일상생활이 불편해지거나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아 각종 페이서비스를 통해 지갑없이 다니는 건 지갑을 가지고 다니면 그만이지만 무인주문을 위한 키오스크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면 뒤에 서있는 다른 손님들의 눈총을 받기 십상이기 때문. 요즘 아이들은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을 펴서 뺨에 붙여 전화를 하겠다는, 혹은 전화를 하라는 비언어적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이것도 아마 디지털 리터러시 갭으로 인한, 즉 디지털 디바이드 사례일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디지털, 로봇 시대의 발달로 인해 우리네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에서 다룬 과학철학 교양서이다. 주제 특성상 출간된지 4년반이 넘은 지금 그 이후에도 수많은 사례들이 생겼긴 하지만 주제 자체가 희석될 만큼 문제될만한건 크게 없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몇년전에 스치고 지나간 사례들에 대한 일부 추가 정보나 현재는 어찌되었는지 궁금증이 더해졌던 기회가 되기도 했다. 1장은 알고리즘 윤리학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여기서 다룬 트롤리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에 몇번 접한바 있어 흥미는 덜했으나(책에는 트롤리 딜레마가 전차문제로 쓰여있어서 순간 뭔가 했다.) 자율자동기술이 발달하면 현재의 드라이버driver라는 단어가 운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가려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 주는 기계를 지칭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은 신선했다는.


운전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면 오래전 운전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조금 과장해서 파워핸들 없이도 유턴할때 쓱쓱 핸들을 돌릴 수 있는 힘이 있고, 클러치를 다룰 수 있으며, 갑자기 펑크가 나더라도 리페어 타이어로 교체할 수 있는 기본 정비능력까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마 앞으로 10년? 아니 5년쯤 지나면 차선이탈방지 또는 거리측정을 통한 충돌방지 기능을 통해 좁은 골목을 빠져나오는 기능(이런게 생기겠지?), 자동 파킹 기능 등이 없다면 운전을 할 수 있다라고 말하기 힘들어지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더라는.


이거 말고도 인공지능 번역에 대한 이야기(저자의 생각을 담은 대표적인 인용문이 '번역가가 충실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원문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홈볼트), 칸아카데미나 코세라 같은 온라인 교육서비스에 대한 이야기(이 부분을 보면서는 전에 읽었던 이지성씨의 에이트가 생각났다. 그러고보니 책의 주제 자체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인듯), 여가에 대한 이야기 들도 흥미로웠는데 특히 여가에 관한 칙센트미하이의 언급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자유시간을 즐기는 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별다른 기술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자유시간은 일보다도 즐기기가 어렵다. 여가를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여가가 아무리 생겨도 삶의 질은 높아지지 않는다. 여가를 효과적으로 쓰는 것은 자동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칙센트미하이는 체스, 암벽등반, 요트타기, 작곡, 춤처럼 규칙과 기술을 습득해야 하고 목표가 분명하며 명확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활동들이 '최적경험'을 제공하는, 일상과 확연히 구분되는 활동이라고 하는데 동의가 될듯도 하고 아닌듯도 하고 헷깔리더라는. 이 기준에서는 멍때리기는 여가가 아니려나. 비디오게임은 들어갈것도 같고.


책을 펼치며 이 책의 결론부분에서는 어떤 내용을 다룰까 순간 생각하다가 떠오른 단어는 요새 몇차례 접했던 메타인지, 호기심 같은 키워드였는데 역시나 호기심과 질문이었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지점을 시인 메리 올리버의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이라는 문장을 인용하며 갈음하고 있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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