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상상력 -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힘
오종우 지음 / 어크로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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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느끼거나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어떤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을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술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어떤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할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즉 의도치 않은 느낌을 불러일으킬수도 있다. 개개인이 어떻게 느끼는지는 간섭할수도 없고 간섭해서도 안되는거고. 누가 그런것 같던데,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난 이상 자기것이 아니게 된다고.


물론 어떤 불순한 의도를, 프로파간다라고 하던가. 가지고 만든 작품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 는 없을 것이다. 괴벨스가 히틀러를, 나치정권을 띄우기 위해 만든 영상같은 것들. 누군가는 그걸 보고 자부심이나 충성심이 충만해졌을 수도 있겠지만 누구도 그걸 예술작품이라고(스스로를 제외하고는) 인정하진 않을테니. 그러고보면 그 경계를 나누기는 힘들수도 있겠다. 중세나 근대 유럽에서 궁중이나 귀족의 의뢰를 받고 만든 음악이나 미술작품들은 자신의 품위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 있지 않았던가? 생각할수록 어렵다. 행여나 근미래에 네오나치인지 뭔지, 그 시대를 동경하는 집단들이 헤게모니를 잡게 된다면 괴벨스의 작품들이 재조명 받으며 새로운 클래식이 될지도.


책에서도 예술과 기술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 말한다. 예술이라는 단어 자체가 고대 희랍어 테크네에서 나왔고 테크네가 라틴어 아르스ars로 번역되어 지금의 아트가 되었다고. 그리고 하다못해 우리나라에서는 에리히 프롬의 the art of loving을 '사랑의 예술'이 아니라 '사랑의 기술'로 번역하고 있다고. 책의 주제랑은 약간 거리가 있는 말만 했는데 어쨌건 이 책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작품을 보여주고 단순한 해석을 넘어선 의견을 덧붙여 전작으로 재밌게 보았던 '예술수업'만큼의 재미를 안겨주었다. 그책보다 약간은 더 딱딱한 느낌이라 읽는 속도는 살짝 더디긴 했지만.


기억하는 만큼 생각이 덧붙여져 감상이 풍부해질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부분 하나. 책 중간쯤 인상주의라는 명칭의 기원이 등장하는데 원래 인상주의라는 단어는 평론가 루이 르로이가 파리에서 간행되는 풍자신문 '르 샤리바리'(왁자지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에 그림들이 진지하지 못하고 사람의 눈을 속인다며 조롱의 뜻으로 쓴 '인상주의자들의 전시회'라는 글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런데 화가들이 이 단어를 3회 전시회부터 자기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사용했다는 것. 거꾸로보면 그만큼 혁신성이 있다며 새로운 사조로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례로 볼 수 있는데 난 이 부분에서 예전에 다양성 관련 책에서 본 '퀴어축제'가 떠올랐다. 원래 이 단어 자체만 보아도 알수 있듯이 '기묘한'이라는 뜻인데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사용하면서 프레임이 바뀌었기 때문. (이걸 전문용어로 뭐라고 했는데...)


책 후반부에 언급된 '예술의 가치는 죽음 속의 삶에 있다.'라는 말도 인상깊다.(p.226) 살아생전에는 모차르트보다 살리에리의 음악이 더 많이 연주되었으나 지금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러고보니 책에 언급되진 않았지만 고흐도 마찬가지였을텐데 모딜리아니도 비슷했던 것으로 나와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었다. 사람도 좋아서 술집에서 계산을 그림을 그려주고 나오곤 했다는데 결국 평생 어렵게 살다 죽긴 해다지만 그 당시만큼은 행복했을 듯. 언급된 음악들에 대해서는 QR코드가 삽입되어 있는데 그걸로 들어가보진 않았지만 검색해서 몇가지는 음악도 들어보고(클래식이나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밥딜런의 노래까지) 몬드리안이 디자인했다는 가구는 어떻게 생겼는지 검색도 해보면서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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