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성장하는 동안에 맞닿드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사항들 중에서 하나부터 열까지를 다 가르쳐야하는 건 아니겠지만 한번 경험해보거나 생각해본 사항은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건 맞을 듯하다. 그러니까 아이가 일부러 안하는 게 아니라 정말 몰라서 아이가 못할 수 도 있다는 말이다. 우리 어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 상황을 처음 겪어 보는 아이에게는 두려움의 순간일 수 있다는 것을 솔직히 가끔은 잊고 지낸다. 그래서 다그치고, 왜 못하냐고 화냐고 하는 것. --;

 

 

 

참 반가운 이 책은 용기를 내어야 하는 상황을 실제로 보여준다. 용기 내야하는 모든 상황이 들어있는 건 아니지만(사실 모든 사항을 실을 수는 없지 않는가...삶에는 너무 다양한 변수들이 있으니까.) 아이들이 흔히 겪는 어려운 문제, 해결해야하는 문제에 대해서 상황별로 제시해 두었다. 가령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깜깜한 밤에, 치과에 갔을 때, 동생에게 샘이 날 때, 나를 괴롭히는 친구가 있을 때 그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지에 대해 차근히 알려준다.

 

먼저 각 상황에 대한 제시를 하고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찰리가 한 최고의 선택-모범답안을 말한다.

 

 

그리고 다시 되 묻는다.

너는 어떤 선택을 했니?” 하고 말이다.

 

 

 

아이와 책을 읽고 나서 두렵거나 겁이 날 만 한 상황들에 대해서 반드시 이야기해보라고 권하고 있고, 아이의 기질에 대해서 인정해주라고도 한다. 부끄러워할 수도 있고, 긴장 할 수도 있고, 질투할 수도 있고, 타인에 괴롭힘에 대해서 표현할 줄 도 알아야한다. 모두 처음하기 때문에, 처음 가보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어느 날 아이가 내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걸 느낀 순간 멈칫했다. 그게 꼭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겁이 많고, 뭔가 처음 하려고 할 때 망설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거마저 아이가 배우게 되었을까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도 아이가 겁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거나, 멈춰버리지는 않는다.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훨씬 더 우리의 시간들이 부드러워졌을 것 같은 책. 아이의 두려움을 인정해주고, 그것을 극복했을 땐 충분한 칭찬으로 보상해주어야겠다. 삶의 모든 것은 시작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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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 박혜란의 세 아들 이야기
박혜란 지음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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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알아서 다 클 거라는 믿음? 제 몫은 타고 나는 것이라는 믿음?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시대에 살고 있는 내게 참 어려운 화두이다.

 

이 책은 내가 아이가 없었을 때 (결혼전인지 후인지 기억이..^^:) 이미 읽어보았던 책인데 제목이 약간...낚시인거 같다. 박혜란이라는 저자는 절로 아이들이 컸고, 자기가 해 준건 거의 없다고 하지만 느긋한 성향을 가진 부모라는 존재가 얼마나 아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지 이제야 겨우 어렴풋이 알겠다. 특히, 예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지금 더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내게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리라.

 

부모의 성향을 아이들이 그대로 학습하였고, 그래서 그 결과 조용한 사내아들 셋이 전혀 존재감 없던 세 아이 모두가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서울대에 들어 간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부모성향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다. 흔히들 말하는 문제아에게는 문제 부모가 있다라는 말이 정말 대부분은 맞고(물론 어디에나 예외는 존재한다) 그 부모의 양육태도를 수정함으로써 아이의 모습이 달라지는 경우를 보는 경우도 많다.

 


 

 

이게 가장 기본적인 육아의 길이겠지만 정말 모든 아이가 바른길로 가는 게 맞을까? 가장 쉬운 예로 아이에게 예의를 가르치는 이유가 뭔가? 바른길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더불어 살라고, 양보하고, 배려하라는 것. 그러나 내 아이 귀하다고, 오냐오냐 괜찮다~하는 동안에 아이는 버릇없고, 제 멋대로, 자신만 생각하는 아이로 큰다. 모든 것을 온전히 아이 뜻에만 맞춘다는 건 좀 비약인 듯 싶다. 그렇지만 엄마는 이렇게 자랐음 좋겠어, 엄마 생각에는 넌 이걸 해야 해. 00이네집 아이는 이걸 배운다더라, 00이집 아이는 몇 시 까지 공부한다더라. 너도 그렇게 해라 그 걸 하지말라는 말으로 보는 게 맞을 듯 하다.

 

 

 

그냥 시류를 따랐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때의 선택이 너무나 비주체적이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두고두고 속상하기 때문이다.

 

나는 워킹맘으로 살면서 일하지 않는 나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거 같다. 나도 어쩌면 시류를 따르고 있는 것일지도,(시류가 맞나? ^^:) 혼자 벌어 온 가족이 먹고 살기 힘든 그런 현대사회에서 그냥 시류를 따라 나의 자아실현이나 정체성을 찾아서라는 거창한 화두를 올리지 않아도 그냥 일하는 나였던거 같다. 그런데 육아를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기는데 아이가 아픈 날 참 대책이 없다. 혼자였을 땐 그래도 친정이나 시댁에 부탁하였는데 둘이 되면 그마저도 어려울때가 있다. 눈치보는 워킹맘이 될 수 밖에 없고, 경력단절이 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육아 때문에 나의 경력을 단절하고 싶지 않은건 분명한데 그게 강력한 자아실현에 기인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의 이론은 간단했다. 어머니가 너무 깔끔한 집안의 아이는 상상력이 빈곤하기 때문에 창의적이지 못하고 결국 공부도 잘할 수 없다고. 인간의 상상력은 어질러진 공간에서 마음껏 피어날 수 있다고. 한국에 와서 보니 친구들이 죄다 아이들 공부 잘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아이들의 발전을 봉쇄하고 있어서 아주 답답하던 차였다고 했다.

 

내게도 크나큰 위안이 되는 말. 우리 집 상태가 딱 이건데 난 좀 무던하게 견디지만 남편은 못 견디고 자기가 청소한다. 뭐 둘 중 하나가 하면 되지 싶은데 하는 쪽에서는 불만인가보다. 깔끔한 여자인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나도 한때는 엄청 깔끔했으나 삶이 거기까지 신경 쓸 틈을 주지 않을 뿐이다.

 

 

p. 64

나는 금방 제정신을 차렸다. 아이는 자기가 흥미를 가지면 저절로 배우게 되어 있다. 그걸 엄마의 흥미나 욕심에 맞추어 억지로 가르치려 든다면 역효과만 나게 마련이다. 교과서에 그렇게 씌여 있잖은가. 조기 교육을 시키지 않은 게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갑자기 남의 말에 휘둘려서 중심을 잃고는 내 뜻대로 안된다며 아이를 괴롭힌 게 어리석은 것이다. 문제는 지나친 욕심 때문에 중심을 잃는 것이다.

61.

남보다 빨리 배우면 뭘 해요. 끝까지 배워야죠...중략...그런데 사람의 심리하는 건 아주 묘해서 별로 걱정하지 않고 있다가도 남들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주면 그 순간부터 걱정이 되는 법이다.

p.74

적성과 창의성이 중시되는 시대를 맞아 젊은 부모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아이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낼 때까지 아이의 작은 몸짓,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아닐까.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이 뜻대로사는 모습을 보려면 무엇보다 부모들의 참을성이 필요하다.

 

나도 참 무던히 사교육과 담쌓은 스타일이나 아이가 한글을 좀 빨리 알아줬으면 한다. 내가 읽어주기 귀찮으니까 라고 말하면 좀 그렇지만 그게 사실이긴 하다. 근데 나는 팔랑귀라서 누가 영어를 하네, 누가 한글을 하네, 누가 어떤 학습지가 좋다더라, 누가 어떤 방문교재가 좋더라하면 나도???하고 생각을 한다는 것. 그리고 왜 다른집 아이들은 절로 한글을 깨치기도 하던데 넌 안 그런지에 대해 실망도하면서 저 어미처럼 아이를 들들들 볶는 날도 있고, 아니다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정신 차리는 날도 있다. 아직은 아이의 적성에 대해서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적어도 아이가 한글이라는 영역을 어떻게 감내해낼지에 대한 고민은 있다. 그렇지만 남의 말에 휘둘려 중심을 잃지 않아야겠단 생각과 기다릴 줄 아는 부모가 되어야겠단 생각이 교차한다.

  

 

 

맞는 말씀. 바야흐로 우리꼬맹이는 왜요?물음시대에 도래했는데(도래한지 1년이 되어가는 듯하긴 하다..^^:) 이거 대답해주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조차 왜요?라고 묻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무슨 개미지옥같이 빠져나올 수가 없다. 그때 내가 모든 걸 다 안다고 대답을 해주자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래서 나는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다시 물어보기도 하고, 같이 찾아보자고 하기도한다. 지금도 이런데 앞으로는 어떨까? 요즘 교과서가 바뀌어서 스토리텔링식의 상당히 고난이도의 문제들이 제시된다고 하던데 쿨럭. 어서 아이가 묻기보다는 스스로 사전을 찾는 법을 길러주어야겠다.

 

 

 

 

 

나도 치료를 하면서 보면 어른들의 문제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어른들의 변화로 아이에게 상당히 큰 변화를 가져올 때도 있고 말이다. 나 스스로도 누군가가 나를 비교한다면 불쾌할 것이면서 곧 잘 비교하고 있는 내 모습에 반성한다. 우리집엔 둘째 꼬맹이가 첫째꼬맹이보다 먹성도 좋고 잘 먹는다. 입짧은것에 대해 늘 스트레스를 받는 나는 가끔 너가 동생을 해야겠다는 식으로 비교를 할 때가 있다. 반성반성 작은 물줄기들이 들이 모여서 큰 강을 이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진짜 빵! 터졌는데...기특한 아이들의 모습도 떠올라 다시 한번 미소짓 게 된다. 우리 꼬맹이는 따라 높임말을 가르치지는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높임말을 하여(어린이집에서 배웠나보다.)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지내던 어느 날 엄마, 그게 뭔데~” “0000~ 그거 아니냐라고 아이가 내게 말했을 때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사투리와 반말이 교묘하게 섞여서 나오고 있는 이 말투는..........내 말투다. “너 왜 밥 안먹냐?” “이거 니 장난감 아니냐?” 등의 내 말투. 움찔....한다. 아이는 거울 같다. 어느새 내 습관 내 말투도 다 배우는...이뿐 아이 말이 이렇게 바뀐 건 내 책임이 크다. 스스로 깨달아 높임말을 쓰기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좋은 습관을 유지해주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도 엄마로써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둘째를 봐주시던 베이비시터분이 바뀌면서 적응이 안 되어서 엄청 고생했다. 매 주말마다 몇 번씩이고 이모할머니랑 잘 놀고 있으면 엄마가 금요일 날 올게.“하고 말했다. 울딸램 하고 대답은 잘 해놓고 엉엉 울고, 안 떨어지고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는데 지난 주말 동안엔 내가 이렇게 한 5번쯤 말 한 거 같다. 말 할 때 동조하지 않겠단 뜻으로 쳐다보지 않고 라고 하던 꼬맹이가 마지막엔 나를 보면서 하더라. 근데 진짜 신기하게 이번 월욜엔 이모할머니와 손도 잡고 조금 덜 울고 그랬다는 것. 정말 타이르면 다 알아듣는 걸까? 가수 션이 정혜영이 드라마촬영때문이던가 여하튼 장기 출장을 가게 되어 밤에 수유를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아이를 안고서 이렇게 조근조근 울음을 그 칠 때까지 몇일 밤을 말했다고 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건 밤중수유 끈는 법이랑 비슷해라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이글을 보면서 다시 드는 생각이 조근조근 타이르면 다 알아듣는다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거다. 큰아이에 비해 둘째아이는 성향이 훨씬 더 와일드하여 좀 걱정인데 욱! 하지 말고 조근조근 타이를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착각으로 인해 책을 다시 읽는 사태가 벌어졌지만...참 좋은 기회였단 생각이 들고 역시 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과 생각을 전달해준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래서 좋은 책은 소장해야하는가? 이번에 후편(?)으로 나온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을 꼭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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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로 돌아갈까? - 두 여성작가가 나눈 7년의 우정
게일 캘드웰 지음, 이승민 옮김 / 정은문고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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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잠시라도 내 기쁨을 안아주시기를

아니라면 당신의 눈물로 내가 울게 하시기를

 

-에드나 밀레이-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학창시절 피정 때 참여한 유서써보기 프로그램 정도가 거의 다.. 그때 나름 주어진 시간동안 꽤나 심각하게 생각했던 거 같은데 지금은 너무 가물가물한 기억이다.

 

두 여성작가가 나눈 7년의 우정이라고 해서 그들의 밝고 즐거운 우정에 대한 탐색에 초점이 맞추어진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보니 이건 죽음에 맞닿은 누군가를 보내는 일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맞을 듯하다. 내가 본디 어둡고, 무섭고 이런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영화도 그러하고 책도 그러하고 어두운 면을 다루는 이야기를 챙겨서 보지는 않는 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더 중점이리라 생각해서 본 것이었는데 중반을 넘어서서 죽음을 맞이하는 그들의 모습에 대한 묘사가 너무 가슴 절절 남아서 마음이 묵직해졌다. 물론 한명이 암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알았다. 그렇지만 암에 대한 진단과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 그리고 죽음 이후에 미치는 영향 등이 뒷부분에 훨씬 크게 조명된다.

 

p.33

기질과 능력으로 보아 내가 느리게 걷는 사람이라면, 캐롤라인은 단거리 달리기 선수라 할 만큼 빠르고 동작이 민첩했고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급하게 서두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일단 내 평소 걸음을 확인하자 그녀는 속도를 늦추어 줄곧 내게 맞춰 걸었다.

p. 59 우리는 이런 역학관계를 차츰 존중하게 되었다. 캐롤라인은 모범생으로 나는 반항아로,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배워 각자의 지평을 넓혔다.

p.97 "몰랐어요? 우리는 그런 결함을 사랑하는 거예요.“

 

걸음을 확인하고, 속도를 늦추어 맞춰 걷는 것, 그것이 우정의 시작이 아닐까? 우정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같이 나아가는게 우정의 완성, 인간관계의 완성이라고 본다. 나와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비슷한 성향, 비슷한 관심을 가지고 때로는 소울메이트라고 생각될 정도의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모두 같아서 완벽하다기보다는 서로 존중할 부분을 존중하고, 다른 부분에 대해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 만남이 더 빛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우정에 비해 더 집착에게되는 사랑의 관계에서 결함을 인정하는 것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답다.

 

p.41

나는 그날의 대화로 마음이 후련해진 한편으로 상처입기 쉬운 내 모습에 불안해졌다. 마치 캐롤라인과 내가 서로에게 무심할 수 없는 관계로 새로이 진입한 느낌이었고, 둘 다 발을 빼기엔 늦은 것 같았다. 울 둘이 함께인 그곳에서는 무엇 하나도 사소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반쯤 웃고 있었지만, 내 눈시울은 뜨거웠다. “왜 그래?”걱정스럽게 묻는 그녀에게 내가 대답했다. “나는 자기가 필요해.”

 

여기까지 보면...이게 레즈비언의 이야기인가 막 헷갈렸다. 중요하지 않는 건데도 자꾸 거기에 신경이 쓰이는 나는 뭐지? ^^::

 

p. 48

나는 상담치료사를 찾아갔다. 부드러운 말시에 마음이 넓고 특유의 빈정거림이 있는 그 사람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고 곧 신뢰하게 되었다. 이 브루클린 출신의 유태인 치료사는 보들레르와 토니 모리슨을 곧잘 읊어주고, 내 농담에 껄껄대며 웃었다. 하지만 내가 잘난 척 고통을 감추려들 때는 웃지 않았다. 흐느끼며 나는 감정이 너무 격하고 도가 지나친 사람인 것 같다고 털어놓으니, 그는 이런 대답으로 내 울음을 그치게 했다. “만약 누군가 나더러 게일 당신에게서 지키고 싶은 오직 한 가지를 묻는다면, 나는 당신의 그 지나침을 꼽을 겁니다. ”

 

아직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문화 상담. 그런데 문득 비용을 들인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게 현대인들의 삶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서글퍼졌다. 현대인에는 나도 포함되는데 난 상담치료사 대신 울 엄마가 여동생을 낳아주셨다. 감사할일...이래서 내 전화요금이 만날 오바된다.^^::

 

p.53-55

나는 이 애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했다. 제 목숨을 내게 의지하는 존재에 대한 본능적이고 깊은, 필시 모성을 닮은 감정이었다... 중략... 독립심이 강한 설매개를 훈련시키려면 확실한 의사소통이 필요했다. 위협하는 방식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고, 뒤섞인 신호를 주거나 빈정거리거나 우유부단한 태도도 통하지 않았다. 개들이 갈망하고 부응하는 것은 직접적인 지시와 인정과 칭찬, 다시 말해 곧은 화살 같은 마음의 언어였다.

p.113

반항하는 딸에게 윽박지르는 것 말고 아버지가 달리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겠니?“ 나는 대답했다. ”그냥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아버지가 그냥 너는 내 소중한 딸이다. 그래서 네가 스스로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일은 내가 용납할 수 없다, 라고 말씀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개에 대한 게일의 감정이었지만 꼭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과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처음 내게 왔을 때 이 의지하는 감정 때문에 때로는 아주 무거운 무게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걸 게일은 개에 대해서 느꼈지만 아마 모성의 대리체험으로는 충분할 것 같다. 끝에 클레멘타인이 다른 개들에게 공격당해서 상처입고 집으로 돌아온 것을 캐롤라인이 돌봐 주어서 라고까지 생각한걸 보면 말이다. , 아이와의 관계 속에서 의사소통방법은 매우 중요한데 위협, 뒤섞인 신호, 빈정거리기, 우유부단한 태도는 아이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때로는 아이가 바르지 않는 길로 가는데 일조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부모의 태도는 중요하지만 현명하게 행동하기가 쉽지않다. 게일이 아버지에게 바란 것처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면 되는데 우리들은 안돼! 틀렸어! 옳지 않아! 그 길이 아니야!라고하여 생채기를 낸다.

 

p. 171

투병초기의 가슴을 후비는 그 다정한 기억은 이후 몇 주를 견디는 힘이 되었다.

p. 176

의학적 현실과 감정적 현실이 충돌할 때 허조그는 대화상대가 돼주었다. 이틀이 멀다 하고 꼬박꼬박 전화해 내가 잘 견디고 있는지 살펴준 사람도 그였다.

p. 178-180

핵심은 시간을 얼마나 버느냐지. 캐롤라인이 말했다. 우리는 둘 다 울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나는 그녀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고 그녀를 어떻게 돌봐야하는지도 자신이 없었다. 그저 화학치료에 맞춰 병원에 태워가고, 별 도움 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그녀의 신호에 하나하나에 신경 쓰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탈모가 진행되면서 그녀의 평정이 무너졌다. “바보 같이 보인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내가 집중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야. 나머지는 너무 엄청난 문제들이라.” 수년간 그녀의 긴 머리를 손질해준 남자 미용사가 주말에 집으로 찾아와 그녀의 머리를 짧게 깎았다. 그는 장미 한 다발을 들고 왔고 머리를 잘라준 값을 극구 사양했다...중략...나로서는 이런 상황이 안도가 되고 가르침이 되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누구도 낯선 이들의 감정에 불편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도 죽음에 직면한 자들의 은밀한 문화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들,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선 벌거숭이가 된 심장처럼 더 이상 숨길 게 없었다.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은 아닌데 왜 나는 이라는 주제는 무척이나 더 힘들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인 듯하다. 내가 딱히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나쁘게 살지 않았는데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 말이다. 그래서 부정하과 화를 내고 인정하지만 몹시 우울해지는 그런 시간들을 겪게 되는 것 같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죽음의 문턱만 넘어설 수 있다면 이라고 생각했었음에 불구하고 이후 어딘가 불편하게 살아야하는 시간들이 오면 왜 나에게...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 그 환자뿐만아니라 그 환자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이 시간은 참 힘들다. 어떤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계속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환자도 지인도 그런 상황을 극복한다는 게 답이 아니라 인정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을 것 같다.

 

p. 185

급히 택시를 타러 가다가 받은 상태를 길에 떨어뜨렸다. 상패 귀퉁이가 깨졌다. 나는 상패를 그냥 바닥에 내버려 두고 갈 뻔했다. 무서운 찰나의 순간이었다. 마치 자잘한 삶의 징표들이 무언가 어두운 진실의 역류에 휩쓸려 사라지는 느낌이었다...중략...그녀가 괴로운 울부짖음을 토해냈다. 내 귀에 그 소리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었다. 하나는 나를 알아보는 단순한 소리고, 다른 하나는 내가 나타난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 먼 거리를 내가 다시 되돌아왔다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깨닫고 내는 소리였다.

p.187

앉아-기다려가 무엇을 뜻하는지, 얼마나 정직하고 중요한지 나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한일도 그것이었다. 앉기 그리고 기다리기

p.188-191

고통이란 막막하고 무력한 세계임을 나도 안다. 의식이 또렷한 멀쩡한 이들은 정말로 이해하지도, 어찌 손을 쓰지도 못한 채 그저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다. 고통은 삶의 마지막 판도를 바꿔놓고 검은 죽음의 외피를 희게 탈색시킨다. 시간 밖의 침침한 통로처럼 온몸의 기운을 짜내고 윽박질러 결국 죽음의 문을 열게 할 만큼 고통은 위력적이다...중략...그 꼼꼼한 자상함에 가슴이 먹먹했다...중략... 다 끝났다는 모렐리의 전화를 받고 나는 부엌에서 통곡하는 짐승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임종의 세세한 순간들은 가슴이 미어지도록 슬프다. 숨을 쉬고 기다리고 다시 숨을 쉬고 기다림의 연속이다.

 

...이보다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에 대한 표현이 잘 되어 있는 게 있을까?

 

p.197

비탄을 가르치는 수업은 언제나 단기 집중 강좌로 진행된다. 캐롤라인이 죽기 전까지 나는 딴 세상 사람이었다. 직선으로 다다를 것이라는 순진한 일차원적 기대가 지배하는 세상에 속해, 비탄이란 단순히 가슴 아픈 슬픔과 그리움의 영역이고 서서히 희미해질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정의에는 여러 가지가 누락되어 있었다. 상실이 신체에 가하는 타격, 일시적인 착란, 직설적이진 않지만 지독히도 강렬한 일련의 감정들까지

p. 208

아이디어 초안과 내러티브 맵은 작가의 블록쌓기라 할 수 있다. 하루는 그 자료 뭉치에서 내가 혼자 끼적인 메모를 하나 발견했다. “그녀를 죽게 두라.” 그 이야기를 할 차례임을 스스로 상기하려고 황색 괘선지 맨 위에 이 한 줄을 적어두었다. 다음 날 그걸 보는데 턱 하니 숨이 막혔다. 순간적으로 다른 누군가가 내게 내리는 명령처럼 생각되었다. 그녀를 죽게 두라. 애도의 이동경로를 정의할 수 있다면 이 세 단어가 아닐까. 여기에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

p. 226

이런 일이 생기면 너도 당장 총을 들고 싶지, 안 그러냐?” 유난히 마음이 동요하던 어느 날, 어머니가 전화로 물었다.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떨렸다. “맞아요. 정말 그래요.” “잘 들어라, 애야.” 어머니는 마치 결심이 굳은 어린아이를 달래는 말투였다. “그건 안 될 일이다.”

 

케롤라인을 보내고 클레멘타인을 보내는 과정 속에서 게일은 삶의 성숙의 단계를 거쳐 올라간다. 태어남과 죽음이 삶과 공존하는데 그걸 자주 잊어버리고 생의 출발에만 다들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하지만...죽음의 과정을 통해서(내가 아니라 내 주변의)그 과정을 겪음으로 떠나보낸다는 것, 마음을 준다는 것, 그것을 통해서 인간은 삶의 성숙이라는 열매를 얻게 되는 거 같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어본 것 같다. 실제 겪은 일은 쓴 것이니 에세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어느 영역에 속해 있 던 간에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소울메이트와의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과 삶의 이야기..그리고 죽음이야기가 너무 지나치지도 너무 단조롭지도 않게 감정을 잘 전달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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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3-07-10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스러운 서평 잘 읽고 갑니다.
 
사막을 건너야 서른이 온다 - 청춘의 오해와 착각을 깨는 질문과 답
윤성식 지음 / 예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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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서에 약간의 실증이 나 있는 요즈음 이 책을 읽게 된건 정말 좋은 기회였단 생각이 든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들..
내게도 이렇게 좋은 스승이 곁에 있어 내가 살아가는 길에 대해 한번이라도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움도 든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만난게 어디야~

줄 안 긋고 보기 힘들었던 책.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그어야할지 고민되게 만든 책.
서른은 훌쩍 지났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본 게 참 다행이다 싶은 책.

 
 

자기계발서가 작심삼일로 끝나버리는 것은 너무 긍정적인 다소 허황된 미래상만을 심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직시해야하는데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들은 할 수 있다. 괜찮다. 가능하다. 노력을 덜 해서다이런 식으로 지금의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가령,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그래서 더 노력하면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는 그 반대로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이러 이러한 이유들로 안 되고,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안 된다는 등의 더 작아보이게끔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현실을 직시하라고 한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해 제대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통찰이나 성철로 표현되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한다. 물론 바쁜 현대인의 일상 중에서 게다가 이런 시간을 갖는 것에 대한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쉽지 않다고 말하면서 우리가하는 생각의 대부분의 쓸데없는 걱정이란 것에 대해 말하면서 그 시간을 자신에 대한 통찰의 시간으로 바꾸어보면 어떠냐고 한다. 사실 나는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거의 가져본 게 없는 거 같다. 저자가 말하는 비전, 전략 이런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마주한 게 거의 없는 거 같다. 다른 자기계발서에서도 이런 글이 많이 있지만 그때도 그때 잠깐이지 오랫동안 두고두고 곱씹어야하는 내용임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거 같으니 말이다.

 

꽤 많은 비중에서 비전, 전략, 성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걸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시대의 젊은이들이 더 많이 우왕좌왕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 말도 맞는 게 저자의 말처럼 더 이상 대학은 학문의 상아탑도 아니고, 그저 더 나은 취업자리를 알아보기 위한 간이역이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보면서 아~ 그렇다 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나 역시도 딱 내가 하고싶었던 말이니까. 지금의 대학은 우리때에 비해서도 훨씬 그 역할적인 면에서 더 심각해지고 있는거 같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꽤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스펙쌓기가 중요한게 아니란 걸 말한다. 가령 면접시험에서도 스펙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자주 한다. 심지어 스펙은 1차 서류통과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이상의 면접에서 영향은 거의 없고, 면접에서 떨어지는건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스펙에 너무 신경을 아니 너무 스펙만 신경써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런데....내 생각엔 적어도 1차 서류통과라도 하려면 스펙은 있어야한다는게 현실이고 특히 지방대생이라면 그게 없으면 아예 1차도 바라볼 수 없으니 꼭 필요한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대학이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까지의 활동을 또는 학문에 관한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님에는 틀림이 없고, 그 안에서 수 많은 젊은이들이 갈팡질팡하는 상황에서 스펙만이 최고가 아니다라고하는 것은 스펙에 목매달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좀 더 다른 방향의 시선을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약간 신선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적절한 대안을 제시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좀 아쉽다.

 
 

이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그런데 그게 내 모습, 우리의 모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뜨끔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귀하게 크고, 최고로(?)커오던 사람이 회사에 들어가니 일게 신입직원이 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박차고 나와서 고는 대학원을 지원하였지만 지방대학원에 갈 수 밖에 없고, 또 그래서 MBA에 지원하지만 미국의 명문대학에서는 연락이 없다. 그러는 사이에 세월이 흘러 취업하기엔 늦은 나이가 되었고, 주변 지인들이 일자리를 소개해줘도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또 거절. 그렇게 부모 밑에서 하루하루 시간을 계쏙 허비하면서도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변형된 니트족이야기. 이건 정말 흔한 이야기일까? 어쩜...그럴지도...부모 등골만 빨아 먹고사는 자식. 몇 살 때까지 자식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건지....지 밥그릇 지가 찾아야하는데도 불구하고, 남들이 자기를 알아줄 테니 아무데서는 안 된단다. 이게 정말 안타까운 사실이다. 집에서야 귀한 자식이지 밖에서는 일정 수준을 통과하면 동등한 수준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더 좋아지기도 더 나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노력은 거의 않고 자기가 최고라는 생각 때문에 정작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시선이 벗는 것이다. 사회는 더 냉혹하다.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는 내가 최고라는 자기애가 아니라 나를 구성하고 있는 능력이나 성향들이 더 맞을 것 같다. 같은 신입이라고 해도 그 성향에 따라서 주어진 일에 대한 모습이 많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신입 입장에서는 모르겠지만(나도 그랬던 듯...^^:) 막상 조금만 경력을 쌓고 그 위의 선배가 되어보면 다르다는 게 느껴지는 신입이 분명 있더라는 것.

   

 

난 참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정리하고 딱딱 그 자리에 갖다 두는 걸 좋아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바뀌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의도적 변화를 통해서 변화하려는 마음을 만들고, 또 점점 그 변화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 필요한 게 맞다. 익숙한 것이란 건 편한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더욱 익숙한 것만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것은 습관이란 이름으로 달리 표현해볼 수 있는데 내가 셋째 서랍 칸에 물품을 넣어두고 늘 거기서 꺼내어 썼는데 어느 날 어떤 바람이 불어 그것을 둘째 칸으로 옮겼다. 사실 둘째 칸으로 옮긴 것이 더 효율적이고 덜 숙여도 되는 등 내 몸에게도 더 이득이었지만 그동안 귀찮다 또는 익숙하다는 이유로 안 바꾸고 있었던 것. 그런데 바꾼 게 더 편한 게 맞는데도 난 처음 한동안은 세 번째 칸을 열고 있더라. 그게 익숙한 것이고, 그 익숙한 것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제 둘째 칸이 훨씬 더 편하다. 의도적인 변화로 바꾸어보자. 더 효율적인 위치, 더 능률적인 활동으로 말이다.

 
 

저자가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가 서두에도 말했지만 자기 통찰을 통한 미래설정이다. 미래를 설정할 때 흔히들 자기 능력에 대해 경시하고, ‘내가 좀 더 노력하면 될 거야. 내가 노력하면 온 우주가 나를 도와 줄 거야, 괜찮아 다시 하면 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야와 같은 달콤한 말에 빠져서 정작 봐야하는 자신에 대해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기존의 자기 계발서에 질리게 된 부분과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데 자기계발서들이 하는 말들에 비해 정작 사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암만 노력해도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마주해야하는 현실은 불편하다. 그리고 그 현실을 외면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안타깝게도 내게는 한계가 있더라는 것이다. 내가 노력을 덜해서라기보다는 타고난 머리가 딸리는...--;; 그래서 일정량의 노력이 상황을 바뀌게 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부분에 대한 정확한 직시가 필요하고, 이를 직시하게 됨으로써 좀 더 전략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저자처럼 말이다. 저자는 고대를 졸업하고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인데 박사학위 이후 한국의 우수 대학으로 교수직을 갈 것인지, 그곳에 남아서 교수직을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만 해도 서울대출신이 아닌 교수가 드물었고, 그것 때문에 고대출신인 자신의 한계(?)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 외국에서 교수생활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아래 한국 우수 대학에서의 교수직은 좀 아깝지만 미뤄두고 그곳에서 교수생활을 했단다. 그런데 그건 정말 현명한 선택이 되었고 그래서 다음 진로 설정에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보면서 맞다맞다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이 자신에 대한 깊은 곳까지의 통찰과 현재를 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이 저자는 군대생활을 하면서 그 시간을 가졌는데 그게 이후의 삶에서도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속에서 자신에 대한 장점과 약점을 파악하게 되었고 미래에 대한 설계도 하였다고 한다. 미래에 대한 설계에서도 마치 꿈을 꾸듯 내가 이렇게 하기만하면 될거야로 보지 않고 전공을 변경하는 등의 다른 접근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 비전, 전략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근데 비전이나 전략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나를 돌아본다는 훈련이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지라 좀 어렵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해서 더 늦기전에 반드시 꼭 해봐야할 거란 생각이 든다. 좀 더 냉정하게 현실을 짚어보고, 다음번에는 더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더욱이 지금 나는 20대가 아니라 30대, 삶의 맛에 대해 조금 알아가는 시점이다. 하지만....그만큼 새로운 도전은 더욱 위험하기는 하다. 내가 당장 도전하기 위해서 나를 성찰하거나 비전과 전략을 세우는게 아니라 지금보다 좀 더 괜찮게 살기 위해 이런 시간들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저자는 하고 싶고 즐거운 것을 직업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듣는 말 중에 하고 싶은 것을 직업으로 선택하면 훨씬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즐기면서 일하라고 그러면 성취할 수 있는 것도 더 많아질거란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저자가 든 예시처럼 A라는 의대생과 J라는 공대생이 같은 록밴드 취미가 있었는데 의대생은 그 취미를 취미로 두었으나 공대생은 자기 적성에 정말 잘 맞는거 같다고 자신의 전공을 버리고 음악을 선택했다고 한다. 20년 뒤에 다시 만난 그들은 의사이고 취미로 음악밴드생활을 하는 A와 음악카페를 열어서 거기서 음악연주를 하고 있는 J가 되었다는 것. 누가 자신의 삶에 더 만족할까?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현실을 무시하거나 현실을 못본 척해서는 안 된다. 그게 의대생과 공대생의 삶의 접근법의 차이를 낳았고, 그게 몇 십 년 뒤에 삶의 모습까지도 다르게 만들었다. 물론 공대생이 그 길로 나아가 회사생활을 하고 조기 퇴직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냥 음악만하는 삶과는 좀 다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에도 난 가르치는 일에 대한 미련이 좀 남아있는데 좀 진즉에 깨달았다면 내가 대학교 원서를 쓸 때부터 달라졌겠지. 내가 고3때 지금 수시와 같은 개념의 특차가 있었는데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나보고 교원대에 특차를 넣어보자 하셨는데 난 결국 쓰지 않았다.(왜그랬을까?) 근데 대학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썼어야한다 싶었고 결국 그게 교직자격증을 이수하게 했고, 나중엔 교대편입시험까지 치게 되었다. 그렇지만 결국 난 편입시험에는 합격하지 못했고 지금은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기도 하다. 전공을 바꾸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당시 내가 그것을 결정할때는 아마 내가 살면서 가장 신중에 신중 그리고 많은 생각을 했었던 때 같다. 지금도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은 있지만 지금 이 일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저자는 하고싶은 것을 직업으로 하지말라하고 하였지만 내가 봤을 땐 지금 나 같은 선택이라고하면 하고싶은 직업을 했으면 더 즐겁게 생활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하다. 다만...이건 가지않은 길에 대한 미련일 수는 있다.

 

아무튼 지금 시기적절하게 책을 잘 읽게 된 것 같고 나에대해서 좀 더 생각해봐야겠단 생각도 든다.

그냥 넌 할 수 있어, 잘될거야하는 자기계발서들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하니 뭔가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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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아이에게 해야 할 80가지 질문 - 2세부터 13세까지!
손석한 지음 / 수작걸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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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된다.

' 부모는 왜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결저아지 못하고 심지어 잘못된 길로 갈까요?

그동안 수 많은 부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필자는 몇 가지 결론을 얻었습니다. 첫째는 의존적 경향때문입니다. 둘째, 독단적 경향 때문입니다.....중략...이 두 가지 문제점을 한꺼번에 해결해 주는 방법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아이에게 물어보세요!'입니다. 매우 간단하고도 쉬운 이 방법을 필자는 질문육아라고 부릅니다. 질문육가의 핵심은 아이의 마음을 알고 이해하는 것입니다...중략....아이가 속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않더라도 낙담하지 마세요. 표정, 몸짓, 말투, 태도 등을 살펴봐도 아이의 감정상태를 알 수 있으니까요'

 

 

난 의존적 육아를 하는게 맞다.

아직도 내가 종종 무슨 무용담처럼 하는 첫아이때 밤낮이 바뀐 사건이 있는데 이 것이 잘 먹고, 잘자는 아이를 굳히 패턴을 만들어보겠다고 자는 아이 깨워 젖물리고, 자려는 아이 못자게하고 뭐 그러다가 밤낮이 바뀐것이다. 내가 아이를 습관을 들이겠다 맘먹었던 것은 그 당시 유행하고 있던 베이비위스퍼를 보고 따라하려다 발생한 것인데 2주간 밤낮 바뀌는 바람에 어찌나 고생을 했던지 낮엔 헤롱헤롱 밤엔 말똥말똥 그렇게 2주를 보내고 나니 아이는 다시 제 패턴으로 돌아갔는데 난 아마 그 후에 한동안 밤낮이 바뀌는 후유증을 겪었었다. 지나치게 육아서에 의존한 문제다. 뭐...그뿐이겠는가? 인터넷을 교과서 삼아 뭔일만 생기면 찾아보고, 또 다른 육아서 보고...그런데 정작 중요한 애 키워본 엄마말씀을 덜 따랐다는거. 밤낮바뀐 사건때도 친정엄마는 이 때 아이는 먹고자고먹고자고 하는건데 왜 굳이 그러냐고 잘 자는 아이 두라고 그러셨는데 그 말을 안 듣고....첫째라 내가 너무 예민하고 의욕이 넘쳤던게지. (둘째만되어도 전혀 안그러는데..ㅋㅋ)

 

독단적 경향의 육아도 가능성이 좀 있다.

내 속으로 낳아도 우리 아이를 다 알 수 없다.  난 그건 인정하는데 내 맘대로, 내 말을 잘 따라주는 아이가 되기를 은근 바라고 있는거 같다. 그래서 거기에서, 그 기준에서 벗어날때 순간 욱! 하는 경우가 많은것. 그것이 반복되면 자칫 아이의 반항심만 기를 수 있다는 것. 아~~~조심하자.

 

이렇게 난 의존적이고, 독단적인 육아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을 펼쳐들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해야한다고 제시되어 있는 질문에대해 약간의 거부감??? 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아무튼 이해가 잘 안되었다. 너무 인위적인 대화가 아닌가해서 말이다(대화 시도가 아닌가하는...). 대화라기 보다 일방적인 내 질문으로 이야기를 끌어가게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들고 말이다.  뜬금없이 내가 아이에게 "넌 좋아하는게 뭐야?" 라던가 " 친구들한테 무슨말을 해줄까?"라고 물으면  나라도 이 밑도끝도 없는 질문에 몰라요...내지는 글쎄요...등의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저자는 이런 대답이 나오면 아주 조심해야하며 엄마가 여기에 대해 대처를 잘해라 주로 "다음에 생각이 나면 말해줄래?"로 마무리 짓게한다. 

 

 

개방형 질문으로 상대의 대답을 끌어내라 원칙을 지나치게 중시한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생긴다.

'질문'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상황에 대한 배려없는 뜬금없는 질문은 아이와의 대화를 더 단절시키게 되는게 아닐까 살짝 걱정이 되지만...한가지 배운것은 이런 질문들을 적절히 해서 아이의 내면에 담겨있는 생각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난 엄마니까, 난 어른이니까 하는 그런 아집과 편견에 쌓여서 아이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될 경우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가 하는 말이 아이가 몰라요/ 싫어요 등의 반응을 했을땐 "넌 왜 그것도 모르니?" 내지는 "넌 왜 안해"등의 반응을 보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건 이런 대답을 한 상태가 어떤 신호일 수 있는데 엄마의 그런 반응이 아이를 오히려 안으로 갖히게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불평을 마치 듣기나 한듯 아이가 대화에 응하지 않을때라는 항목을 각 연령별로 제시해두었다.

우리 꼬맹이가 속해있는 4-7세 아이의 경우에는

좋아하는 놀이를 하면서 대화를 유도하거나, 아이 기분이 좋아 보일 때 질문을 하거나, 과장된 몸짓과 익살맞은 말투로 하고, 엄마 그러니까 내가 기분이 좋을때 대화를 하라고 한다.  기회가 될때 몇가지 질문들은 꼭 해봐야겠다. 아이의 생각을 들어주는 엄마가 되기 위해 말이다. 아! 참고로 저자는 해당 질문에 몇 가지씩 예상답변과 그에 대처하는 Good, Bad 답변도 제시해두었으니 참조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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