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건너야 서른이 온다 - 청춘의 오해와 착각을 깨는 질문과 답
윤성식 지음 / 예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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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서에 약간의 실증이 나 있는 요즈음 이 책을 읽게 된건 정말 좋은 기회였단 생각이 든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들..
내게도 이렇게 좋은 스승이 곁에 있어 내가 살아가는 길에 대해 한번이라도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움도 든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만난게 어디야~

줄 안 긋고 보기 힘들었던 책.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그어야할지 고민되게 만든 책.
서른은 훌쩍 지났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본 게 참 다행이다 싶은 책.

 
 

자기계발서가 작심삼일로 끝나버리는 것은 너무 긍정적인 다소 허황된 미래상만을 심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직시해야하는데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들은 할 수 있다. 괜찮다. 가능하다. 노력을 덜 해서다이런 식으로 지금의 자신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가령,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그래서 더 노력하면 된다고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는 그 반대로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이러 이러한 이유들로 안 되고,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안 된다는 등의 더 작아보이게끔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은 다르다. 현실을 직시하라고 한다. 특히 자기 자신에 대해 제대로 바라보라고 말한다. 통찰이나 성철로 표현되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것을 권한다. 물론 바쁜 현대인의 일상 중에서 게다가 이런 시간을 갖는 것에 대한 훈련이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쉽지 않다고 말하면서 우리가하는 생각의 대부분의 쓸데없는 걱정이란 것에 대해 말하면서 그 시간을 자신에 대한 통찰의 시간으로 바꾸어보면 어떠냐고 한다. 사실 나는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거의 가져본 게 없는 거 같다. 저자가 말하는 비전, 전략 이런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마주한 게 거의 없는 거 같다. 다른 자기계발서에서도 이런 글이 많이 있지만 그때도 그때 잠깐이지 오랫동안 두고두고 곱씹어야하는 내용임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던 거 같으니 말이다.

 

꽤 많은 비중에서 비전, 전략, 성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걸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시대의 젊은이들이 더 많이 우왕좌왕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 말도 맞는 게 저자의 말처럼 더 이상 대학은 학문의 상아탑도 아니고, 그저 더 나은 취업자리를 알아보기 위한 간이역이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보면서 아~ 그렇다 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나 역시도 딱 내가 하고싶었던 말이니까. 지금의 대학은 우리때에 비해서도 훨씬 그 역할적인 면에서 더 심각해지고 있는거 같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꽤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스펙쌓기가 중요한게 아니란 걸 말한다. 가령 면접시험에서도 스펙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도 자주 한다. 심지어 스펙은 1차 서류통과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이상의 면접에서 영향은 거의 없고, 면접에서 떨어지는건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스펙에 너무 신경을 아니 너무 스펙만 신경써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런데....내 생각엔 적어도 1차 서류통과라도 하려면 스펙은 있어야한다는게 현실이고 특히 지방대생이라면 그게 없으면 아예 1차도 바라볼 수 없으니 꼭 필요한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대학이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까지의 활동을 또는 학문에 관한 공부를 하는 곳이 아님에는 틀림이 없고, 그 안에서 수 많은 젊은이들이 갈팡질팡하는 상황에서 스펙만이 최고가 아니다라고하는 것은 스펙에 목매달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좀 더 다른 방향의 시선을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약간 신선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적절한 대안을 제시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좀 아쉽다.

 
 

이 사람의 이야기를 보면서 참 안타까웠다. 그런데 그게 내 모습, 우리의 모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뜨끔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귀하게 크고, 최고로(?)커오던 사람이 회사에 들어가니 일게 신입직원이 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박차고 나와서 고는 대학원을 지원하였지만 지방대학원에 갈 수 밖에 없고, 또 그래서 MBA에 지원하지만 미국의 명문대학에서는 연락이 없다. 그러는 사이에 세월이 흘러 취업하기엔 늦은 나이가 되었고, 주변 지인들이 일자리를 소개해줘도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또 거절. 그렇게 부모 밑에서 하루하루 시간을 계쏙 허비하면서도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변형된 니트족이야기. 이건 정말 흔한 이야기일까? 어쩜...그럴지도...부모 등골만 빨아 먹고사는 자식. 몇 살 때까지 자식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건지....지 밥그릇 지가 찾아야하는데도 불구하고, 남들이 자기를 알아줄 테니 아무데서는 안 된단다. 이게 정말 안타까운 사실이다. 집에서야 귀한 자식이지 밖에서는 일정 수준을 통과하면 동등한 수준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더 좋아지기도 더 나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노력은 거의 않고 자기가 최고라는 생각 때문에 정작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시선이 벗는 것이다. 사회는 더 냉혹하다.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는 내가 최고라는 자기애가 아니라 나를 구성하고 있는 능력이나 성향들이 더 맞을 것 같다. 같은 신입이라고 해도 그 성향에 따라서 주어진 일에 대한 모습이 많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신입 입장에서는 모르겠지만(나도 그랬던 듯...^^:) 막상 조금만 경력을 쌓고 그 위의 선배가 되어보면 다르다는 게 느껴지는 신입이 분명 있더라는 것.

   

 

난 참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정리하고 딱딱 그 자리에 갖다 두는 걸 좋아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바뀌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의도적 변화를 통해서 변화하려는 마음을 만들고, 또 점점 그 변화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 필요한 게 맞다. 익숙한 것이란 건 편한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더욱 익숙한 것만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것은 습관이란 이름으로 달리 표현해볼 수 있는데 내가 셋째 서랍 칸에 물품을 넣어두고 늘 거기서 꺼내어 썼는데 어느 날 어떤 바람이 불어 그것을 둘째 칸으로 옮겼다. 사실 둘째 칸으로 옮긴 것이 더 효율적이고 덜 숙여도 되는 등 내 몸에게도 더 이득이었지만 그동안 귀찮다 또는 익숙하다는 이유로 안 바꾸고 있었던 것. 그런데 바꾼 게 더 편한 게 맞는데도 난 처음 한동안은 세 번째 칸을 열고 있더라. 그게 익숙한 것이고, 그 익숙한 것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제 둘째 칸이 훨씬 더 편하다. 의도적인 변화로 바꾸어보자. 더 효율적인 위치, 더 능률적인 활동으로 말이다.

 
 

저자가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가 서두에도 말했지만 자기 통찰을 통한 미래설정이다. 미래를 설정할 때 흔히들 자기 능력에 대해 경시하고, ‘내가 좀 더 노력하면 될 거야. 내가 노력하면 온 우주가 나를 도와 줄 거야, 괜찮아 다시 하면 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야와 같은 달콤한 말에 빠져서 정작 봐야하는 자신에 대해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기존의 자기 계발서에 질리게 된 부분과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데 자기계발서들이 하는 말들에 비해 정작 사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암만 노력해도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마주해야하는 현실은 불편하다. 그리고 그 현실을 외면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안타깝게도 내게는 한계가 있더라는 것이다. 내가 노력을 덜해서라기보다는 타고난 머리가 딸리는...--;; 그래서 일정량의 노력이 상황을 바뀌게 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부분에 대한 정확한 직시가 필요하고, 이를 직시하게 됨으로써 좀 더 전략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저자처럼 말이다. 저자는 고대를 졸업하고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딴 사람인데 박사학위 이후 한국의 우수 대학으로 교수직을 갈 것인지, 그곳에 남아서 교수직을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당시만 해도 서울대출신이 아닌 교수가 드물었고, 그것 때문에 고대출신인 자신의 한계(?)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 외국에서 교수생활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아래 한국 우수 대학에서의 교수직은 좀 아깝지만 미뤄두고 그곳에서 교수생활을 했단다. 그런데 그건 정말 현명한 선택이 되었고 그래서 다음 진로 설정에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보면서 맞다맞다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이 자신에 대한 깊은 곳까지의 통찰과 현재를 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이 저자는 군대생활을 하면서 그 시간을 가졌는데 그게 이후의 삶에서도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속에서 자신에 대한 장점과 약점을 파악하게 되었고 미래에 대한 설계도 하였다고 한다. 미래에 대한 설계에서도 마치 꿈을 꾸듯 내가 이렇게 하기만하면 될거야로 보지 않고 전공을 변경하는 등의 다른 접근을 시도하였던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 비전, 전략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요소이다.  근데 비전이나 전략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나를 돌아본다는 훈련이나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지라 좀 어렵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해서 더 늦기전에 반드시 꼭 해봐야할 거란 생각이 든다. 좀 더 냉정하게 현실을 짚어보고, 다음번에는 더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더욱이 지금 나는 20대가 아니라 30대, 삶의 맛에 대해 조금 알아가는 시점이다. 하지만....그만큼 새로운 도전은 더욱 위험하기는 하다. 내가 당장 도전하기 위해서 나를 성찰하거나 비전과 전략을 세우는게 아니라 지금보다 좀 더 괜찮게 살기 위해 이런 시간들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저자는 하고 싶고 즐거운 것을 직업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듣는 말 중에 하고 싶은 것을 직업으로 선택하면 훨씬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즐기면서 일하라고 그러면 성취할 수 있는 것도 더 많아질거란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저자가 든 예시처럼 A라는 의대생과 J라는 공대생이 같은 록밴드 취미가 있었는데 의대생은 그 취미를 취미로 두었으나 공대생은 자기 적성에 정말 잘 맞는거 같다고 자신의 전공을 버리고 음악을 선택했다고 한다. 20년 뒤에 다시 만난 그들은 의사이고 취미로 음악밴드생활을 하는 A와 음악카페를 열어서 거기서 음악연주를 하고 있는 J가 되었다는 것. 누가 자신의 삶에 더 만족할까?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현실을 무시하거나 현실을 못본 척해서는 안 된다. 그게 의대생과 공대생의 삶의 접근법의 차이를 낳았고, 그게 몇 십 년 뒤에 삶의 모습까지도 다르게 만들었다. 물론 공대생이 그 길로 나아가 회사생활을 하고 조기 퇴직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냥 음악만하는 삶과는 좀 다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내 경우에도 난 가르치는 일에 대한 미련이 좀 남아있는데 좀 진즉에 깨달았다면 내가 대학교 원서를 쓸 때부터 달라졌겠지. 내가 고3때 지금 수시와 같은 개념의 특차가 있었는데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나보고 교원대에 특차를 넣어보자 하셨는데 난 결국 쓰지 않았다.(왜그랬을까?) 근데 대학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썼어야한다 싶었고 결국 그게 교직자격증을 이수하게 했고, 나중엔 교대편입시험까지 치게 되었다. 그렇지만 결국 난 편입시험에는 합격하지 못했고 지금은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기도 하다. 전공을 바꾸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당시 내가 그것을 결정할때는 아마 내가 살면서 가장 신중에 신중 그리고 많은 생각을 했었던 때 같다. 지금도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은 있지만 지금 이 일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저자는 하고싶은 것을 직업으로 하지말라하고 하였지만 내가 봤을 땐 지금 나 같은 선택이라고하면 하고싶은 직업을 했으면 더 즐겁게 생활하게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하다. 다만...이건 가지않은 길에 대한 미련일 수는 있다.

 

아무튼 지금 시기적절하게 책을 잘 읽게 된 것 같고 나에대해서 좀 더 생각해봐야겠단 생각도 든다.

그냥 넌 할 수 있어, 잘될거야하는 자기계발서들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하니 뭔가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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