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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 박혜란의 세 아들 이야기
박혜란 지음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알아서 다 클 거라는 믿음? 제 몫은 타고 나는 것이라는 믿음?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시대에 살고 있는 내게 참 어려운 화두이다.
이 책은 내가 아이가 없었을 때 (결혼전인지 후인지 기억이..^^:) 이미 읽어보았던 책인데 제목이 약간...낚시인거 같다. 박혜란이라는 저자는 절로 아이들이 컸고, 자기가 해 준건 거의 없다고 하지만 느긋한 성향을 가진 부모라는 존재가 얼마나 아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지 이제야 겨우 어렴풋이 알겠다. 특히, 예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지금 더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내게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리라.
부모의 성향을 아이들이 그대로 학습하였고, 그래서 그 결과 조용한 사내아들 셋이 전혀 존재감 없던 세 아이 모두가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서울대에 들어 간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부모성향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다. 흔히들 말하는 ‘문제아에게는 문제 부모가 있다’라는 말이 정말 대부분은 맞고(물론 어디에나 예외는 존재한다) 그 부모의 양육태도를 수정함으로써 아이의 모습이 달라지는 경우를 보는 경우도 많다.

이게 가장 기본적인 육아의 길이겠지만 정말 모든 아이가 바른길로 가는 게 맞을까? 가장 쉬운 예로 아이에게 예의를 가르치는 이유가 뭔가? 바른길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더불어 살라고, 양보하고, 배려하라는 것. 그러나 내 아이 귀하다고, 오냐오냐 괜찮다~하는 동안에 아이는 버릇없고, 제 멋대로, 자신만 생각하는 아이로 큰다. 모든 것을 온전히 아이 뜻에만 맞춘다는 건 좀 비약인 듯 싶다. 그렇지만 엄마는 이렇게 자랐음 좋겠어, 엄마 생각에는 넌 이걸 해야 해. 00이네집 아이는 이걸 배운다더라, 00이집 아이는 몇 시 까지 공부한다더라. 너도 그렇게 해라 그 걸 하지말라는 말으로 보는 게 맞을 듯 하다.
그냥 시류를 따랐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때의 선택이 너무나 비주체적이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두고두고 속상하기 때문이다.
나는 워킹맘으로 살면서 일하지 않는 나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거 같다. 나도 어쩌면 시류를 따르고 있는 것일지도,(시류가 맞나? ^^:) 혼자 벌어 온 가족이 먹고 살기 힘든 그런 현대사회에서 그냥 시류를 따라 나의 자아실현이나 정체성을 찾아서라는 거창한 화두를 올리지 않아도 그냥 일하는 나였던거 같다. 그런데 육아를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기는데 아이가 아픈 날 참 대책이 없다. 혼자였을 땐 그래도 친정이나 시댁에 부탁하였는데 둘이 되면 그마저도 어려울때가 있다. 눈치보는 워킹맘이 될 수 밖에 없고, 경력단절이 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육아 때문에 나의 경력을 단절하고 싶지 않은건 분명한데 그게 강력한 자아실현에 기인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의 이론은 간단했다. 어머니가 너무 깔끔한 집안의 아이는 상상력이 빈곤하기 때문에 창의적이지 못하고 결국 공부도 잘할 수 없다고. 인간의 상상력은 어질러진 공간에서 마음껏 피어날 수 있다고. 한국에 와서 보니 친구들이 죄다 아이들 공부 잘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아이들의 발전을 봉쇄하고 있어서 아주 답답하던 차였다고 했다.
내게도 크나큰 위안이 되는 말. 우리 집 상태가 딱 이건데 난 좀 무던하게 견디지만 남편은 못 견디고 자기가 청소한다. 뭐 둘 중 하나가 하면 되지 싶은데 하는 쪽에서는 불만인가보다. 깔끔한 여자인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나도 한때는 엄청 깔끔했으나 삶이 거기까지 신경 쓸 틈을 주지 않을 뿐이다.
p. 64
나는 금방 제정신을 차렸다. 아이는 자기가 흥미를 가지면 저절로 배우게 되어 있다. 그걸 엄마의 흥미나 욕심에 맞추어 억지로 가르치려 든다면 역효과만 나게 마련이다. 교과서에 그렇게 씌여 있잖은가. 조기 교육을 시키지 않은 게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갑자기 남의 말에 휘둘려서 중심을 잃고는 내 뜻대로 안된다며 아이를 괴롭힌 게 어리석은 것이다. 문제는 지나친 욕심 때문에 중심을 잃는 것이다.
61.
남보다 빨리 배우면 뭘 해요. 끝까지 배워야죠...중략...그런데 사람의 심리하는 건 아주 묘해서 별로 걱정하지 않고 있다가도 남들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주면 그 순간부터 걱정이 되는 법이다.
p.74
적성과 창의성이 중시되는 시대를 맞아 젊은 부모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아이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낼 때까지 아이의 작은 몸짓,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아닐까.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이 뜻대로’사는 모습을 보려면 무엇보다 부모들의 ‘참을성’이 필요하다.
나도 참 무던히 사교육과 담쌓은 스타일이나 아이가 한글을 좀 빨리 알아줬으면 한다. 내가 읽어주기 귀찮으니까 라고 말하면 좀 그렇지만 그게 사실이긴 하다. 근데 나는 팔랑귀라서 누가 영어를 하네, 누가 한글을 하네, 누가 어떤 학습지가 좋다더라, 누가 어떤 방문교재가 좋더라하면 나도???하고 생각을 한다는 것. 그리고 왜 다른집 아이들은 절로 한글을 깨치기도 하던데 넌 안 그런지에 대해 실망도하면서 저 어미처럼 아이를 들들들 볶는 날도 있고, 아니다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정신 차리는 날도 있다. 아직은 아이의 적성에 대해서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적어도 아이가 한글이라는 영역을 어떻게 감내해낼지에 대한 고민은 있다. 그렇지만 남의 말에 휘둘려 중심을 잃지 않아야겠단 생각과 기다릴 줄 아는 부모가 되어야겠단 생각이 교차한다.
맞는 말씀. 바야흐로 우리꼬맹이는 왜요?물음시대에 도래했는데(도래한지 1년이 되어가는 듯하긴 하다..^^:) 이거 대답해주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조차 왜요?라고 묻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무슨 개미지옥같이 빠져나올 수가 없다. 그때 내가 모든 걸 다 안다고 대답을 해주자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래서 나는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다시 물어보기도 하고, 같이 찾아보자고 하기도한다. 지금도 이런데 앞으로는 어떨까? 요즘 교과서가 바뀌어서 스토리텔링식의 상당히 고난이도의 문제들이 제시된다고 하던데 쿨럭. 어서 아이가 묻기보다는 스스로 사전을 찾는 법을 길러주어야겠다.

나도 치료를 하면서 보면 어른들의 문제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어른들의 변화로 아이에게 상당히 큰 변화를 가져올 때도 있고 말이다. 나 스스로도 누군가가 나를 비교한다면 불쾌할 것이면서 곧 잘 비교하고 있는 내 모습에 반성한다. 우리집엔 둘째 꼬맹이가 첫째꼬맹이보다 먹성도 좋고 잘 먹는다. 입짧은것에 대해 늘 스트레스를 받는 나는 가끔 ‘너가 동생을 해야겠다’는 식으로 비교를 할 때가 있다. 반성반성 작은 물줄기들이 들이 모여서 큰 강을 이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진짜 빵! 터졌는데...기특한 아이들의 모습도 떠올라 다시 한번 미소짓 게 된다. 우리 꼬맹이는 따라 높임말을 가르치지는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높임말을 하여(어린이집에서 배웠나보다.)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지내던 어느 날 “엄마, 그게 뭔데~” “0000~ 그거 아니냐”라고 아이가 내게 말했을 때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사투리와 반말이 교묘하게 섞여서 나오고 있는 이 말투는..........내 말투다. “너 왜 밥 안먹냐?” “이거 니 장난감 아니냐?” 등의 내 말투. 움찔....한다. 아이는 거울 같다. 어느새 내 습관 내 말투도 다 배우는...이뿐 아이 말이 이렇게 바뀐 건 내 책임이 크다. 스스로 깨달아 높임말을 쓰기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좋은 습관을 유지해주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도 엄마로써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둘째를 봐주시던 베이비시터분이 바뀌면서 적응이 안 되어서 엄청 고생했다. 매 주말마다 몇 번씩이고 “이모할머니랑 잘 놀고 있으면 엄마가 금요일 날 올게.“하고 말했다. 울딸램 ‘네’하고 대답은 잘 해놓고 엉엉 울고, 안 떨어지고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는데 지난 주말 동안엔 내가 이렇게 한 5번쯤 말 한 거 같다. 말 할 때 동조하지 않겠단 뜻으로 쳐다보지 않고 ‘네’라고 하던 꼬맹이가 마지막엔 나를 보면서 ‘네’하더라. 근데 진짜 신기하게 이번 월욜엔 이모할머니와 손도 잡고 조금 덜 울고 그랬다는 것. 정말 타이르면 다 알아듣는 걸까? 가수 션이 정혜영이 드라마촬영때문이던가 여하튼 장기 출장을 가게 되어 밤에 수유를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아이를 안고서 이렇게 조근조근 울음을 그 칠 때까지 몇일 밤을 말했다고 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건 밤중수유 끈는 법이랑 비슷해라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이글을 보면서 다시 드는 생각이 조근조근 타이르면 다 알아듣는다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거다. 큰아이에 비해 둘째아이는 성향이 훨씬 더 와일드하여 좀 걱정인데 욱! 하지 말고 조근조근 타이를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착각으로 인해 책을 다시 읽는 사태가 벌어졌지만...참 좋은 기회였단 생각이 들고 역시 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과 생각을 전달해준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래서 좋은 책은 소장해야하는가? 이번에 후편(?)으로 나온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을 꼭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