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는 사막이 필요하다 - 전세계 25개 사막을 홀로 건넌, 아킬 모저가 들려준 인생의 지혜와 감동의 기록
아킬 모저 지음, 배인섭 옮김 / 더숲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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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에서 광야가 주는 의미는 시련, 고통 이런 부분도 있지만 그 안에서 내적 성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내게도 광야라는 의미 자체가 메마른 땅, 불모지 이런 개념이 강하긴 하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 나를 돌아보는 시간, 내가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줄 거란 생각도 있다. 그럼 나는 그 광야를 거쳐 지금 여기에 있는 걸까? 그건 아닌 거 같다. 안타깝게도...아마도 나는 지금 광야 그 속을 걸어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광야의 이미지로 가장 적합 한 게 지금의 사막정도가 되지 않을까싶은데 그 광야, 그 전 세계의 사막을 혼자서 건넜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어떤 생각으로 어떤 마음을 사막을 건너기 시작했을까? 도대체 사막에 무엇이 있길 래 하나도 아니고, 한 번도 아니라 여러 번 사막으로 다시 가게 되었을까? 내가 죽을 때까지 사막에 갈 기회가 한번이나 있을까 싶긴 하지만 생각만 해도 두려운 곳이 사막이다. 나무도 풀도 없이 오로지 모래언덕만 즐비 한 곳, 몇 시간을 걸어도, 며칠을 걸어도 사람 한명 동물 한 마리 못 만날 수도 있는 그 곳. 오로지 나 자신과 대면하면서 지내야할 그 시간을 저자는 어떻게 가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안에서 무엇을 얻었길 래 사막에 또 가고 또 가는 걸까..

 

그때 나는 그 순간의 느낌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머리는 맑았고 모든 것은 밝고 청명했다. 모든 것을 내던진 느낌, 모든 것을 저들 뜻대로 내버려둔 느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느낌,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시작하는 느낌......

 

바로 이 것 때문에 저자는 자꾸만 사막에 가게 되지 않았을까? 세계에 사막이 25개나 있다는 것도 놀랍고(아마 더 있겠지?) 25개의 사막은 몇 십 년동안 다녀왔다는 저자도 너무 놀라운 사람이다. 게다가 결혼도 했다는...아들과 사막을 함께 여행하기도 했다. 나의 직업에 대한 생각은 늘 비슷한 업무, 비슷한 일과 아침에 출근 밤에 퇴근 뭐 이런식이라서 여행가라는 직업이 참 낮설고 이 규칙적이지 않은 삶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기르고 이런 것들이 좀 낯설기는 하다.

 

걷고 걷고 또 걷고. 배낭에는 꼭 필요한 것만 들어 있다. 사막 트래킹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 등에 전해지는 무게의 대부분은 물이다. 12리터를 지니고 있다. 그밖에 나는 식수를 채울 수 있는 장소를 여럿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막에서 내 삶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물을 아끼는 것이다. 사막에서 제한된 양의 물을 가지고 여러 날을 지내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보다 만족과 포기다.

 

우리가 가장 쉽게 잊고 있는 건 우리가 많이 가지고 있다는 거다. 그걸 잊고 자꾸 더 가지려고한다. 꼭 필요한만큼 갖고, 그것을 적절하게 쓰는 것. 배낭은 내가 짊어지고가야할 무게를 의미하기 때문에 무조건 많이로 할 수는 없다. 꼭 필요한 만큼 가지고 꼭 필요할 때 적절하게쓰고, 아껴써야한다. 삶의 대부분의 것들도 이런 원칙이 적용되지 않을까?

 

...아빠, 여기 이 위는 완전히 다른 고요의 세상이예요. 어쩐지 고요한 것보다 더 고요한 느낌

아이의 표현을 듣고 이게 정말 내 아들이 한 말인가 하고 저자는 생각했다고 한다. 아이도 사막을 지나면 이렇게 생각하고 생각하는 시간들을 통해서 자신을 마주하게 되고, 그렇게 내면의 성장을 하게 되었나보다.

 

저자가 우리에게 사막여행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은 앞서 말한 광야 속에서의 시간이 자신의 인생에 어떤 약이 되었는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황망하기만 하는 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성장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기회가 된다는 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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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정유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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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3
유선, 장애가 없는 사람들을 ‘normal people’(보통사람들)이라고 표현하지 말아야지. 이런 식으로 한다면 너처럼 장애가 있는 사람은 뭐라고 불러? ‘보통의 반대말은 이상한(abnormal)'사람인데 너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잖아?“
 
그렇다. 장애인들이 이상한 사람은 아니다. 특히 그들이 원해서 장애인이 된 것도 아닌데 우리의 시선은 편안하지 못하다. 받아들이는 사람들 보는 사람도 서로 불편한 장애인에 대한 시선. 그걸 평생 받아내고 있는 장유선. 장유선님은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멋지다’, ‘잘했다하고 칭찬받을만한 일을 하고 있는데 뇌성마비라는 장애까지 안고 있기 때문에 더 유명하고 주목을 받는 거다. 그것에 대해 본인은 오히려 더 이상하다고 한다. 자기는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생활하고 있을뿐인데 왜 주목을 받아야하는가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이런 주목들에 대해 불편하지만 자신이 발표를 하고, 책을 쓰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 자신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변화할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p.22
하지만 나는 이러한 유혹들을 매번 안간힘을 쓰며 물리친다. 한 번쯤은 괜찮다고 나태해지기 시작하면 모르는 사이 습관이 되어 얼마 안 가서는 그래, 이런 사소한 실수 따위는 신경 안 써도 돼이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 번쯤의 괜찮다가 나중에는 당연한 게 되는 경우는 우리에게(나에게??) 종종 있는 일이다. 이쯤이야 괜찮겠지, 이번 한번 뿐인데 뭘, 이번만...이런 생각들이 우리의 잘못된 습관의 시작이고, 우리가 어떤 계획에서 실패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라고 볼 수 있다. 그걸 사전에 막아버리는 그것도 매번 안간힘을 쓰며 물리치는그녀의 강인한 정신력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p.47
우리 주변에는 수만은 편
 
나는 타인의 시선에 자주 흔들리는 스타일이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지만 참 잘 안 된다. 하다못해 물건을 살 때도 내가 편한 것을 찾는 게 아니라 남들 보기에 괜찮은 것을 고르기도 한다. --; 이것에 대해 남편은 답답해하고 자주 조언해준다. 근데 문제는 그때뿐이라는 거...내가 무엇을 원하고, 그걸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정말 중요한데 왜 나는 남만 생각하는 걸까? 남이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남이 대신 내 것을 해주는 것도 아닌데 물건을 쓸 내가, 그 일을 할 내가 중요한데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두고 어리석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 정말 부끄럽단 생각이 든다.
 
p.54
가까이에 나를
내 주변을 둘러보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걸 잊어버리면 혼자 고군부투하다 보면 쉽게 우울해진다. 더 힘이 빠지는 것. 게다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내 우월함을 확인하거나 반대로 더 낙심하는 것은 그 때문에 더 힘들어진다. 비교를 하지말고 내 안에서 내가 가진 것으로 행복을 찾아야한다는 걸 잘 안면서도 참 잘 안 되는 일 중의 하나. 나보다 잘난 사람을 보면 잘난 모습 때문에 내가 초라하고 나보다 못난 사람 보면 어찌 해주지는 못하는데 마음이 쓰여서 불편하고 그런 거 같다. 나도 결혼을 하고 아주 든든한 지원군이 한명 생겼다는 것에 너무 좋다. 나랑 삶을 마주 대하는 스타일이 다른 남편의 응원은 참 힘이 되기 때문.
 
p. 114
내게 강의를 듣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정말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유머감각이 아닐까 싶다. 난 곧잘 썰렁해지는 스타일이고, 웃긴 얘기를 할 때도 듣는 사람보다 내가 더 많이 웃는 스타일이지만 그래도 삶 안에서 유머를 찾으려고 좀 더 유쾌하게 상황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아직 내가 웃음을 전염 시켜 줄 정도의 수준은 안 되지만 부단히 노력하려는 부분 중의 하나. 장유선님은 그런 재능을 나처럼 노력(?)하지 않아도 될 만큼 타고났다니 참 부럽다.
 
p.123
지금 생각하면 어린 쥐방울
 
도망쳐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맞서기보다는 움츠러드는게 사람인데...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시작이 다른다보다. >.<
 
p. 177
어떤 분들은 종종
 
욕심 아닐까? 물론 하나 넘으면 또 하나의 넘어야할 고지가 있는게 세상사는 이치이지만....적어도 장유선님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 또다른 고지를 향해 가는 것이니까
 
p.233
일반 주차장이 꽉
 
장애인 주차장에 대한 이야기는 한편으로 그 생각에 대단하다 하는 공감이 가면서도 또 한편으로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글에서도 말했지만 비어있는 경우가 많으니까..불편하지 않은 게 아닌데 그럴 필요가 있는가하는 것이다. 가령 겨울에 특히 미끄러지기 쉽다하였으니 장애인 주차증을 받아두어도 아무 때나 쓰지 말고 정말 필요 할 때만 쓰면 되지 않나 싶었다. 평소는 원래 하던데로 다른 곳에 대고 겨울같이 미끄럽고 눈올때는 말이다.
 
p. 250
내 이야기가 장애와 싸워온
 
그렇다 장유선님의 글은 장애와 싸워온 치열한 삶의 기록보다는 견딜만했다는 느낌이 좀 강했다. 정유선님이 시종일관 얘기하는 나도 하니까 너도 할 수 있어이란 말이 약간 반감되는 이유가 그땐문이 아닐까 싶다. 그녀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충분히 멋지다, 잘했다 칭찬받을만한 일을 하고 있는데 장애가 특별한게 아니야..라고 하니까 말이다. .
 
내가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정유선이라는 사람이 겪어온 힘든 시간들에 대한 탐구였을 수도 있다. 근데 내가 여기서 발견한 것은 그런 순간들은 힘들었었다였고 그 외의 이야기들 그러니까 어느 정도의 안전성상에서 뒤를 되돌아보니 이런저런 순간들이 있었다 정도의 강도로 느껴졌다. (좀 다르게 표현하자면 견딜 만 했다의 강도랄까?) 물론 되돌아보면 다 추억이고, 힘들었다는 느낌만 남을 수도 있지만 무튼 전반적인 강도가 약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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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성장하는 동안에 맞닿드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사항들 중에서 하나부터 열까지를 다 가르쳐야하는 건 아니겠지만 한번 경험해보거나 생각해본 사항은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건 맞을 듯하다. 그러니까 아이가 일부러 안하는 게 아니라 정말 몰라서 아이가 못할 수 도 있다는 말이다. 우리 어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 상황을 처음 겪어 보는 아이에게는 두려움의 순간일 수 있다는 것을 솔직히 가끔은 잊고 지낸다. 그래서 다그치고, 왜 못하냐고 화냐고 하는 것. --;

 

 

 

참 반가운 이 책은 용기를 내어야 하는 상황을 실제로 보여준다. 용기 내야하는 모든 상황이 들어있는 건 아니지만(사실 모든 사항을 실을 수는 없지 않는가...삶에는 너무 다양한 변수들이 있으니까.) 아이들이 흔히 겪는 어려운 문제, 해결해야하는 문제에 대해서 상황별로 제시해 두었다. 가령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 깜깜한 밤에, 치과에 갔을 때, 동생에게 샘이 날 때, 나를 괴롭히는 친구가 있을 때 그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지에 대해 차근히 알려준다.

 

먼저 각 상황에 대한 제시를 하고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찰리가 한 최고의 선택-모범답안을 말한다.

 

 

그리고 다시 되 묻는다.

너는 어떤 선택을 했니?” 하고 말이다.

 

 

 

아이와 책을 읽고 나서 두렵거나 겁이 날 만 한 상황들에 대해서 반드시 이야기해보라고 권하고 있고, 아이의 기질에 대해서 인정해주라고도 한다. 부끄러워할 수도 있고, 긴장 할 수도 있고, 질투할 수도 있고, 타인에 괴롭힘에 대해서 표현할 줄 도 알아야한다. 모두 처음하기 때문에, 처음 가보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어느 날 아이가 내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걸 느낀 순간 멈칫했다. 그게 꼭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겁이 많고, 뭔가 처음 하려고 할 때 망설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거마저 아이가 배우게 되었을까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도 아이가 겁이 많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거나, 멈춰버리지는 않는다.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훨씬 더 우리의 시간들이 부드러워졌을 것 같은 책. 아이의 두려움을 인정해주고, 그것을 극복했을 땐 충분한 칭찬으로 보상해주어야겠다. 삶의 모든 것은 시작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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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 박혜란의 세 아들 이야기
박혜란 지음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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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서 다 클 거라는 믿음? 제 몫은 타고 나는 것이라는 믿음? 이제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는 시대에 살고 있는 내게 참 어려운 화두이다.

 

이 책은 내가 아이가 없었을 때 (결혼전인지 후인지 기억이..^^:) 이미 읽어보았던 책인데 제목이 약간...낚시인거 같다. 박혜란이라는 저자는 절로 아이들이 컸고, 자기가 해 준건 거의 없다고 하지만 느긋한 성향을 가진 부모라는 존재가 얼마나 아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지 이제야 겨우 어렴풋이 알겠다. 특히, 예전에 이 책을 읽었을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지금 더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내게 아이가 생겼기 때문이리라.

 

부모의 성향을 아이들이 그대로 학습하였고, 그래서 그 결과 조용한 사내아들 셋이 전혀 존재감 없던 세 아이 모두가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서울대에 들어 간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부모성향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다. 흔히들 말하는 문제아에게는 문제 부모가 있다라는 말이 정말 대부분은 맞고(물론 어디에나 예외는 존재한다) 그 부모의 양육태도를 수정함으로써 아이의 모습이 달라지는 경우를 보는 경우도 많다.

 


 

 

이게 가장 기본적인 육아의 길이겠지만 정말 모든 아이가 바른길로 가는 게 맞을까? 가장 쉬운 예로 아이에게 예의를 가르치는 이유가 뭔가? 바른길이라는 기준에 부합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더불어 살라고, 양보하고, 배려하라는 것. 그러나 내 아이 귀하다고, 오냐오냐 괜찮다~하는 동안에 아이는 버릇없고, 제 멋대로, 자신만 생각하는 아이로 큰다. 모든 것을 온전히 아이 뜻에만 맞춘다는 건 좀 비약인 듯 싶다. 그렇지만 엄마는 이렇게 자랐음 좋겠어, 엄마 생각에는 넌 이걸 해야 해. 00이네집 아이는 이걸 배운다더라, 00이집 아이는 몇 시 까지 공부한다더라. 너도 그렇게 해라 그 걸 하지말라는 말으로 보는 게 맞을 듯 하다.

 

 

 

그냥 시류를 따랐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때의 선택이 너무나 비주체적이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두고두고 속상하기 때문이다.

 

나는 워킹맘으로 살면서 일하지 않는 나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거 같다. 나도 어쩌면 시류를 따르고 있는 것일지도,(시류가 맞나? ^^:) 혼자 벌어 온 가족이 먹고 살기 힘든 그런 현대사회에서 그냥 시류를 따라 나의 자아실현이나 정체성을 찾아서라는 거창한 화두를 올리지 않아도 그냥 일하는 나였던거 같다. 그런데 육아를 시작하면서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기는데 아이가 아픈 날 참 대책이 없다. 혼자였을 땐 그래도 친정이나 시댁에 부탁하였는데 둘이 되면 그마저도 어려울때가 있다. 눈치보는 워킹맘이 될 수 밖에 없고, 경력단절이 될 수 밖에 없기도 하다. 육아 때문에 나의 경력을 단절하고 싶지 않은건 분명한데 그게 강력한 자아실현에 기인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의 이론은 간단했다. 어머니가 너무 깔끔한 집안의 아이는 상상력이 빈곤하기 때문에 창의적이지 못하고 결국 공부도 잘할 수 없다고. 인간의 상상력은 어질러진 공간에서 마음껏 피어날 수 있다고. 한국에 와서 보니 친구들이 죄다 아이들 공부 잘하는 게 소원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아이들의 발전을 봉쇄하고 있어서 아주 답답하던 차였다고 했다.

 

내게도 크나큰 위안이 되는 말. 우리 집 상태가 딱 이건데 난 좀 무던하게 견디지만 남편은 못 견디고 자기가 청소한다. 뭐 둘 중 하나가 하면 되지 싶은데 하는 쪽에서는 불만인가보다. 깔끔한 여자인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나도 한때는 엄청 깔끔했으나 삶이 거기까지 신경 쓸 틈을 주지 않을 뿐이다.

 

 

p. 64

나는 금방 제정신을 차렸다. 아이는 자기가 흥미를 가지면 저절로 배우게 되어 있다. 그걸 엄마의 흥미나 욕심에 맞추어 억지로 가르치려 든다면 역효과만 나게 마련이다. 교과서에 그렇게 씌여 있잖은가. 조기 교육을 시키지 않은 게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갑자기 남의 말에 휘둘려서 중심을 잃고는 내 뜻대로 안된다며 아이를 괴롭힌 게 어리석은 것이다. 문제는 지나친 욕심 때문에 중심을 잃는 것이다.

61.

남보다 빨리 배우면 뭘 해요. 끝까지 배워야죠...중략...그런데 사람의 심리하는 건 아주 묘해서 별로 걱정하지 않고 있다가도 남들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주면 그 순간부터 걱정이 되는 법이다.

p.74

적성과 창의성이 중시되는 시대를 맞아 젊은 부모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아이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낼 때까지 아이의 작은 몸짓, 작은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아닐까.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이 뜻대로사는 모습을 보려면 무엇보다 부모들의 참을성이 필요하다.

 

나도 참 무던히 사교육과 담쌓은 스타일이나 아이가 한글을 좀 빨리 알아줬으면 한다. 내가 읽어주기 귀찮으니까 라고 말하면 좀 그렇지만 그게 사실이긴 하다. 근데 나는 팔랑귀라서 누가 영어를 하네, 누가 한글을 하네, 누가 어떤 학습지가 좋다더라, 누가 어떤 방문교재가 좋더라하면 나도???하고 생각을 한다는 것. 그리고 왜 다른집 아이들은 절로 한글을 깨치기도 하던데 넌 안 그런지에 대해 실망도하면서 저 어미처럼 아이를 들들들 볶는 날도 있고, 아니다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정신 차리는 날도 있다. 아직은 아이의 적성에 대해서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적어도 아이가 한글이라는 영역을 어떻게 감내해낼지에 대한 고민은 있다. 그렇지만 남의 말에 휘둘려 중심을 잃지 않아야겠단 생각과 기다릴 줄 아는 부모가 되어야겠단 생각이 교차한다.

  

 

 

맞는 말씀. 바야흐로 우리꼬맹이는 왜요?물음시대에 도래했는데(도래한지 1년이 되어가는 듯하긴 하다..^^:) 이거 대답해주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조차 왜요?라고 묻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은 무슨 개미지옥같이 빠져나올 수가 없다. 그때 내가 모든 걸 다 안다고 대답을 해주자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래서 나는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다시 물어보기도 하고, 같이 찾아보자고 하기도한다. 지금도 이런데 앞으로는 어떨까? 요즘 교과서가 바뀌어서 스토리텔링식의 상당히 고난이도의 문제들이 제시된다고 하던데 쿨럭. 어서 아이가 묻기보다는 스스로 사전을 찾는 법을 길러주어야겠다.

 

 

 

 

 

나도 치료를 하면서 보면 어른들의 문제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어른들의 변화로 아이에게 상당히 큰 변화를 가져올 때도 있고 말이다. 나 스스로도 누군가가 나를 비교한다면 불쾌할 것이면서 곧 잘 비교하고 있는 내 모습에 반성한다. 우리집엔 둘째 꼬맹이가 첫째꼬맹이보다 먹성도 좋고 잘 먹는다. 입짧은것에 대해 늘 스트레스를 받는 나는 가끔 너가 동생을 해야겠다는 식으로 비교를 할 때가 있다. 반성반성 작은 물줄기들이 들이 모여서 큰 강을 이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진짜 빵! 터졌는데...기특한 아이들의 모습도 떠올라 다시 한번 미소짓 게 된다. 우리 꼬맹이는 따라 높임말을 가르치지는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높임말을 하여(어린이집에서 배웠나보다.)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지내던 어느 날 엄마, 그게 뭔데~” “0000~ 그거 아니냐라고 아이가 내게 말했을 때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사투리와 반말이 교묘하게 섞여서 나오고 있는 이 말투는..........내 말투다. “너 왜 밥 안먹냐?” “이거 니 장난감 아니냐?” 등의 내 말투. 움찔....한다. 아이는 거울 같다. 어느새 내 습관 내 말투도 다 배우는...이뿐 아이 말이 이렇게 바뀐 건 내 책임이 크다. 스스로 깨달아 높임말을 쓰기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좋은 습관을 유지해주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도 엄마로써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둘째를 봐주시던 베이비시터분이 바뀌면서 적응이 안 되어서 엄청 고생했다. 매 주말마다 몇 번씩이고 이모할머니랑 잘 놀고 있으면 엄마가 금요일 날 올게.“하고 말했다. 울딸램 하고 대답은 잘 해놓고 엉엉 울고, 안 떨어지고 그런 날들의 연속이었는데 지난 주말 동안엔 내가 이렇게 한 5번쯤 말 한 거 같다. 말 할 때 동조하지 않겠단 뜻으로 쳐다보지 않고 라고 하던 꼬맹이가 마지막엔 나를 보면서 하더라. 근데 진짜 신기하게 이번 월욜엔 이모할머니와 손도 잡고 조금 덜 울고 그랬다는 것. 정말 타이르면 다 알아듣는 걸까? 가수 션이 정혜영이 드라마촬영때문이던가 여하튼 장기 출장을 가게 되어 밤에 수유를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아이를 안고서 이렇게 조근조근 울음을 그 칠 때까지 몇일 밤을 말했다고 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건 밤중수유 끈는 법이랑 비슷해라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이글을 보면서 다시 드는 생각이 조근조근 타이르면 다 알아듣는다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거다. 큰아이에 비해 둘째아이는 성향이 훨씬 더 와일드하여 좀 걱정인데 욱! 하지 말고 조근조근 타이를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착각으로 인해 책을 다시 읽는 사태가 벌어졌지만...참 좋은 기회였단 생각이 들고 역시 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과 생각을 전달해준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래서 좋은 책은 소장해야하는가? 이번에 후편(?)으로 나온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을 꼭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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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로 돌아갈까? - 두 여성작가가 나눈 7년의 우정
게일 캘드웰 지음, 이승민 옮김 / 정은문고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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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잠시라도 내 기쁨을 안아주시기를

아니라면 당신의 눈물로 내가 울게 하시기를

 

-에드나 밀레이-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학창시절 피정 때 참여한 유서써보기 프로그램 정도가 거의 다.. 그때 나름 주어진 시간동안 꽤나 심각하게 생각했던 거 같은데 지금은 너무 가물가물한 기억이다.

 

두 여성작가가 나눈 7년의 우정이라고 해서 그들의 밝고 즐거운 우정에 대한 탐색에 초점이 맞추어진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보니 이건 죽음에 맞닿은 누군가를 보내는 일에 관한 이야기가 더 맞을 듯하다. 내가 본디 어둡고, 무섭고 이런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 영화도 그러하고 책도 그러하고 어두운 면을 다루는 이야기를 챙겨서 보지는 않는 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더 중점이리라 생각해서 본 것이었는데 중반을 넘어서서 죽음을 맞이하는 그들의 모습에 대한 묘사가 너무 가슴 절절 남아서 마음이 묵직해졌다. 물론 한명이 암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알았다. 그렇지만 암에 대한 진단과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 그리고 죽음 이후에 미치는 영향 등이 뒷부분에 훨씬 크게 조명된다.

 

p.33

기질과 능력으로 보아 내가 느리게 걷는 사람이라면, 캐롤라인은 단거리 달리기 선수라 할 만큼 빠르고 동작이 민첩했고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급하게 서두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일단 내 평소 걸음을 확인하자 그녀는 속도를 늦추어 줄곧 내게 맞춰 걸었다.

p. 59 우리는 이런 역학관계를 차츰 존중하게 되었다. 캐롤라인은 모범생으로 나는 반항아로,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것을 배워 각자의 지평을 넓혔다.

p.97 "몰랐어요? 우리는 그런 결함을 사랑하는 거예요.“

 

걸음을 확인하고, 속도를 늦추어 맞춰 걷는 것, 그것이 우정의 시작이 아닐까? 우정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같이 나아가는게 우정의 완성, 인간관계의 완성이라고 본다. 나와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비슷한 성향, 비슷한 관심을 가지고 때로는 소울메이트라고 생각될 정도의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모두 같아서 완벽하다기보다는 서로 존중할 부분을 존중하고, 다른 부분에 대해 인정하고 넘어갈 수 있기 때문에 그 만남이 더 빛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우정에 비해 더 집착에게되는 사랑의 관계에서 결함을 인정하는 것은 더할 수 없이 아름답다.

 

p.41

나는 그날의 대화로 마음이 후련해진 한편으로 상처입기 쉬운 내 모습에 불안해졌다. 마치 캐롤라인과 내가 서로에게 무심할 수 없는 관계로 새로이 진입한 느낌이었고, 둘 다 발을 빼기엔 늦은 것 같았다. 울 둘이 함께인 그곳에서는 무엇 하나도 사소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 반쯤 웃고 있었지만, 내 눈시울은 뜨거웠다. “왜 그래?”걱정스럽게 묻는 그녀에게 내가 대답했다. “나는 자기가 필요해.”

 

여기까지 보면...이게 레즈비언의 이야기인가 막 헷갈렸다. 중요하지 않는 건데도 자꾸 거기에 신경이 쓰이는 나는 뭐지? ^^::

 

p. 48

나는 상담치료사를 찾아갔다. 부드러운 말시에 마음이 넓고 특유의 빈정거림이 있는 그 사람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고 곧 신뢰하게 되었다. 이 브루클린 출신의 유태인 치료사는 보들레르와 토니 모리슨을 곧잘 읊어주고, 내 농담에 껄껄대며 웃었다. 하지만 내가 잘난 척 고통을 감추려들 때는 웃지 않았다. 흐느끼며 나는 감정이 너무 격하고 도가 지나친 사람인 것 같다고 털어놓으니, 그는 이런 대답으로 내 울음을 그치게 했다. “만약 누군가 나더러 게일 당신에게서 지키고 싶은 오직 한 가지를 묻는다면, 나는 당신의 그 지나침을 꼽을 겁니다. ”

 

아직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문화 상담. 그런데 문득 비용을 들인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게 현대인들의 삶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서글퍼졌다. 현대인에는 나도 포함되는데 난 상담치료사 대신 울 엄마가 여동생을 낳아주셨다. 감사할일...이래서 내 전화요금이 만날 오바된다.^^::

 

p.53-55

나는 이 애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했다. 제 목숨을 내게 의지하는 존재에 대한 본능적이고 깊은, 필시 모성을 닮은 감정이었다... 중략... 독립심이 강한 설매개를 훈련시키려면 확실한 의사소통이 필요했다. 위협하는 방식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고, 뒤섞인 신호를 주거나 빈정거리거나 우유부단한 태도도 통하지 않았다. 개들이 갈망하고 부응하는 것은 직접적인 지시와 인정과 칭찬, 다시 말해 곧은 화살 같은 마음의 언어였다.

p.113

반항하는 딸에게 윽박지르는 것 말고 아버지가 달리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었겠니?“ 나는 대답했다. ”그냥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아버지가 그냥 너는 내 소중한 딸이다. 그래서 네가 스스로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일은 내가 용납할 수 없다, 라고 말씀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개에 대한 게일의 감정이었지만 꼭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과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처음 내게 왔을 때 이 의지하는 감정 때문에 때로는 아주 무거운 무게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걸 게일은 개에 대해서 느꼈지만 아마 모성의 대리체험으로는 충분할 것 같다. 끝에 클레멘타인이 다른 개들에게 공격당해서 상처입고 집으로 돌아온 것을 캐롤라인이 돌봐 주어서 라고까지 생각한걸 보면 말이다. , 아이와의 관계 속에서 의사소통방법은 매우 중요한데 위협, 뒤섞인 신호, 빈정거리기, 우유부단한 태도는 아이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때로는 아이가 바르지 않는 길로 가는데 일조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부모의 태도는 중요하지만 현명하게 행동하기가 쉽지않다. 게일이 아버지에게 바란 것처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주면 되는데 우리들은 안돼! 틀렸어! 옳지 않아! 그 길이 아니야!라고하여 생채기를 낸다.

 

p. 171

투병초기의 가슴을 후비는 그 다정한 기억은 이후 몇 주를 견디는 힘이 되었다.

p. 176

의학적 현실과 감정적 현실이 충돌할 때 허조그는 대화상대가 돼주었다. 이틀이 멀다 하고 꼬박꼬박 전화해 내가 잘 견디고 있는지 살펴준 사람도 그였다.

p. 178-180

핵심은 시간을 얼마나 버느냐지. 캐롤라인이 말했다. 우리는 둘 다 울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나는 그녀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고 그녀를 어떻게 돌봐야하는지도 자신이 없었다. 그저 화학치료에 맞춰 병원에 태워가고, 별 도움 되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주고, 그녀의 신호에 하나하나에 신경 쓰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탈모가 진행되면서 그녀의 평정이 무너졌다. “바보 같이 보인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내가 집중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야. 나머지는 너무 엄청난 문제들이라.” 수년간 그녀의 긴 머리를 손질해준 남자 미용사가 주말에 집으로 찾아와 그녀의 머리를 짧게 깎았다. 그는 장미 한 다발을 들고 왔고 머리를 잘라준 값을 극구 사양했다...중략...나로서는 이런 상황이 안도가 되고 가르침이 되었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누구도 낯선 이들의 감정에 불편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도 죽음에 직면한 자들의 은밀한 문화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들,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선 벌거숭이가 된 심장처럼 더 이상 숨길 게 없었다.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은 아닌데 왜 나는 이라는 주제는 무척이나 더 힘들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인 듯하다. 내가 딱히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나쁘게 살지 않았는데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와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 말이다. 그래서 부정하과 화를 내고 인정하지만 몹시 우울해지는 그런 시간들을 겪게 되는 것 같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죽음의 문턱만 넘어설 수 있다면 이라고 생각했었음에 불구하고 이후 어딘가 불편하게 살아야하는 시간들이 오면 왜 나에게...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그런데 그 환자뿐만아니라 그 환자 곁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이 시간은 참 힘들다. 어떤 도움이 되지 못하면서 계속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환자도 지인도 그런 상황을 극복한다는 게 답이 아니라 인정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을 것 같다.

 

p. 185

급히 택시를 타러 가다가 받은 상태를 길에 떨어뜨렸다. 상패 귀퉁이가 깨졌다. 나는 상패를 그냥 바닥에 내버려 두고 갈 뻔했다. 무서운 찰나의 순간이었다. 마치 자잘한 삶의 징표들이 무언가 어두운 진실의 역류에 휩쓸려 사라지는 느낌이었다...중략...그녀가 괴로운 울부짖음을 토해냈다. 내 귀에 그 소리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었다. 하나는 나를 알아보는 단순한 소리고, 다른 하나는 내가 나타난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 먼 거리를 내가 다시 되돌아왔다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깨닫고 내는 소리였다.

p.187

앉아-기다려가 무엇을 뜻하는지, 얼마나 정직하고 중요한지 나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한일도 그것이었다. 앉기 그리고 기다리기

p.188-191

고통이란 막막하고 무력한 세계임을 나도 안다. 의식이 또렷한 멀쩡한 이들은 정말로 이해하지도, 어찌 손을 쓰지도 못한 채 그저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다. 고통은 삶의 마지막 판도를 바꿔놓고 검은 죽음의 외피를 희게 탈색시킨다. 시간 밖의 침침한 통로처럼 온몸의 기운을 짜내고 윽박질러 결국 죽음의 문을 열게 할 만큼 고통은 위력적이다...중략...그 꼼꼼한 자상함에 가슴이 먹먹했다...중략... 다 끝났다는 모렐리의 전화를 받고 나는 부엌에서 통곡하는 짐승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임종의 세세한 순간들은 가슴이 미어지도록 슬프다. 숨을 쉬고 기다리고 다시 숨을 쉬고 기다림의 연속이다.

 

...이보다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에 대한 표현이 잘 되어 있는 게 있을까?

 

p.197

비탄을 가르치는 수업은 언제나 단기 집중 강좌로 진행된다. 캐롤라인이 죽기 전까지 나는 딴 세상 사람이었다. 직선으로 다다를 것이라는 순진한 일차원적 기대가 지배하는 세상에 속해, 비탄이란 단순히 가슴 아픈 슬픔과 그리움의 영역이고 서서히 희미해질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정의에는 여러 가지가 누락되어 있었다. 상실이 신체에 가하는 타격, 일시적인 착란, 직설적이진 않지만 지독히도 강렬한 일련의 감정들까지

p. 208

아이디어 초안과 내러티브 맵은 작가의 블록쌓기라 할 수 있다. 하루는 그 자료 뭉치에서 내가 혼자 끼적인 메모를 하나 발견했다. “그녀를 죽게 두라.” 그 이야기를 할 차례임을 스스로 상기하려고 황색 괘선지 맨 위에 이 한 줄을 적어두었다. 다음 날 그걸 보는데 턱 하니 숨이 막혔다. 순간적으로 다른 누군가가 내게 내리는 명령처럼 생각되었다. 그녀를 죽게 두라. 애도의 이동경로를 정의할 수 있다면 이 세 단어가 아닐까. 여기에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

p. 226

이런 일이 생기면 너도 당장 총을 들고 싶지, 안 그러냐?” 유난히 마음이 동요하던 어느 날, 어머니가 전화로 물었다.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떨렸다. “맞아요. 정말 그래요.” “잘 들어라, 애야.” 어머니는 마치 결심이 굳은 어린아이를 달래는 말투였다. “그건 안 될 일이다.”

 

케롤라인을 보내고 클레멘타인을 보내는 과정 속에서 게일은 삶의 성숙의 단계를 거쳐 올라간다. 태어남과 죽음이 삶과 공존하는데 그걸 자주 잊어버리고 생의 출발에만 다들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 영원히 살아갈 것처럼. 하지만...죽음의 과정을 통해서(내가 아니라 내 주변의)그 과정을 겪음으로 떠나보낸다는 것, 마음을 준다는 것, 그것을 통해서 인간은 삶의 성숙이라는 열매를 얻게 되는 거 같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어본 것 같다. 실제 겪은 일은 쓴 것이니 에세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어느 영역에 속해 있 던 간에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소울메이트와의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과 삶의 이야기..그리고 죽음이야기가 너무 지나치지도 너무 단조롭지도 않게 감정을 잘 전달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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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람다 2013-07-10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성스러운 서평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