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의 나라 - 문화의 경계에 놓인 한 아이에 관한 기록
앤 패디먼 지음, 이한중 옮김 / 반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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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읽어야겠다 맘먹었던 책이다. 문화의 충돌, 난민과 국민 사이의 문제가 어떻게 존재했고, 해결되었는지 궁금해서이다.

미국인들 입장에서 보면 몽족은 고구마 백개쯤 먹은 기분의 답답함을 보일 것이다. 나의 사고도 완전히 서구화되어 있는지 읽는 동안 몽족이 답답했다.

처음 이슬람난민들이 우리 동네에 왔을 때 마찰을 기억한다. 정부에서는 뭐가 두려웠는지 주민공청회나 알림 과정없이 도둑 이주를 시켰다. 금요일 저녁 일간신문 일면에 잠깐 기재된 보도, 월요일 아침 이사. 그런 수순으로... 옆에 버젓히 있는 국제학교를 두고 공립학교로 모든 학생을 강제 전학을 시켰다. 과정과 절차는 반감을 사기 충분했고, 자국민이 더 차별받는 상대적 박탈감에 힘들었다. 그러지만 나라, 공권력이 요구하는 것을 막을 힘이 국민에게는 없다는 것을 실감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이슬람난민들과 지내고 있다. 이후 부정적 내 경험은 한창 마스크를 쓰도록 되어 있던 시점에 마스크없이 아이들 놀이터에 자주 등장하고, 마스크를 안 쓴 이슬람난민 남성이 놀이터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았다거나, 지인이 본 성당에 주차된 차에서 돈을 훔치려고 문을 열고 다니고, 성당 마당 쉼터에 둔 가방을 뒤지는 이슬람 아이를 만난 걸 들었다. 지인이 신고했을때 경찰에서는 훔침을 당한 당사자가 아니고, 신고시점이 늦어 뭔가를 해 줄 수 없다고 했다. 헤코지를 당하거나, 일이 생겨야만 뭔가를 해줄수 있다는 사후뒷방망이 식의 절차를 들으면서 힘이 빠졌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아직까지도 한국말이 서툴고, 나이로 바로 해당 학년으로 투입되었지만 아이들이 학습을 따라가기에는 버거움이 크다는 걸 전해 듣고만 있다. 한 아이가 교실을 뛰쳐나가고, 수업이 따라오기 힘든 상황이라 그 반의 다른 아이들이 찾으러 나가고 수업을 못듣기도(그 아이를 찾으러 담임선생님이 부재하셔서) 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여자아이들은 여전히 히잡을 쓰고 다니고, 길에서 지나치다 마주친는 남학생들의 나를 훑는 듯한 시선의 불편함도 생각난다. 이런 불편함을 막는 방법으로 나는 그냥 마주침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달리 방법이 없어서...

이런 생각들이 책을 읽는 동안 끊임없이 떠올라서 불편했다. 특히나 이런 생각이 자꾸 들게 된 가장 큰 이유, 내가 느꼈던 답답함을 '리아의 나라'를 읽으면서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몽족은 왜 다른 나라에 살러 왔으면서 자신의 삶의 방법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가?하는 의문이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멤돈다. 다른 나라에서 자신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만 하려고는 것도 오만인게 아닌가? 문화적 충돌이 생기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의 관습을 무조건적으로 고수하려고 해서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아이에게 약을 먹이는 문제이다. 아이의 발달을 정상으로 하도록 할지 말지의 문제였는데, 약을 제대로 먹이지 않았기때문에 결국 리아는 정상발달에서 지연되고 말았다는 의사의 의견을 보면서 정말 답답했다. 리아의 부모는 진심으로 리아를 사랑했지만, 이런 부모의 태도로 결국 처음 발달검사를 했을 시점은 정상이었지만 점점 더 발달지연되게 만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 이건 자기네 신념과 원칙에 산모와 태아의 생활양식을 맞추려는 사람들과의 문제에요. 우리가 보기에 꼭 필요한 게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인 경우 말입니다.

  • 로저 파이프는 신념이나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쩌다 몽족이 중시하는 철학을 거스르지 않은 것뿐이었다.

  •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이말만은 하는 게 좋겠어요. 저는 몽족이 서양 의학의 어떤 부분은 자기네 것보다 낫고 또 아이 목숨이 걸린 이상 따라야 할 규칙이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어요.

  • 프레즈노 촌사람들이 아르메니아 사람들에 대한 인종적인 우스개를 만들어내지요. 스타니슬라오에선 그 대상이 포르투갈 사람들이고 여기선 몽족이에요.... 중략....이들 민족은 제각가 맞춤식 외국인 혐오증을 한바탕 불러일으켰다. '멍청한 몽족 이야기'는 가장 최근의 유행일 뿐이었다.

  • 과수 농장을 사려던 방 파오의 계획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난민들이 몰려들지도 모른다는 군민들의 불안을 군 감사위원회가 발아들인 것도 있고...중략...난민이 제한된 복지 서비스를 바닥내다, 난민 학생들로 학교 과밀, 주정부 빈약한 난민 예산 지원에 감사위원회 분개, 난민 지원에 더 많은 예산 필요....중략...몽족이 오기 전까지는 그나만 견딜만했다. 몽족이 몰려든 것은 마침 전국적인 경기 후퇴와 더불어 연방정부 및 주정부의 복지 예산 삭감과 시기적으로 겹쳤다. 현재 머세드군의 몽족 가운데 79퍼센트가 생활보호대상자로, 군 내 다른 주민들의 경우 18퍼센트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 의사 로버트 스몰과 나누었던 대활르 떠올렸다. " 저와 제 친구들은 몽족이 여기로 몰려들기 시작할 때 몹시 화가 났어요. 얼마나 화가 나던지요. 우리 정부는 아무 조언도 동의 도 구하지 않고 우리 사회에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을 떠맡겨 버렸어요. 왜 우리가 그들을 특별 대우해줘야 합니까? 제가 아는 젊은 아일랜드인 친구는 미국에 와서 교육받고 일하고 싶어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몽족은 메뚜기 떼처럼 몰려들어 그냥 정착해버렸단 말입니다. 그들은 생활보호대상자라는 게 부끄러운 일인 줄도 몰라요. 여기 와서 그냥 행복한 거지요."

  • 제가 보기에 몽족에 대한 머세드 주민들의 반응은 인종주의적인 문제가 아니라 배를 집어삼킬지도 모를 파도에 대한 불안감 문제인 것 같아요.

  • 이곳의 몽족은 자신들이 미국에 맞서 싸운 게 아니라 미국을 '위해'싸웠다고 설명하느라 거듭거듭 애를 먹는다.

  • 1994년 프레즈노에서는 몽족 생활보호대상자들이 시위를 벌였다.그들 중 다수는 전직 군인으로, 매주 공공 근로를 열여섯 시간씩 해야 한다는 새로운 규정에 대해 '노예 노종'이라면 반발한 것이었다. 아직도 '약속(CIA가 해주기로 한 보상)'을 믿는 나이 많은 몽족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조건 없는 원조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군복무에 대해 미국인들이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미국인들은 돈을 받는 그들이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서로 상대가 고마워할 줄 모르는 것에 대해 분개했다.

  • 두 사람 다 미국인들이 일하지 않는 그들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현재 이슬람난민들은 첫번째 처와 아이들만 데리고 왔다고 하며 다른 처들을 데려와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얘기가 있다. 현재 와 있는 가족들 중 아이들 수가 상당하다. 보통 한집에 아이들이 4명은 되는 듯한데 더 데려오다니....이들에게는 집이 주어졌고 매달 정착비가 몇 백씩 나온다고 한다. 그 돈은 어디서 오는걸까? 내가 낸 세금이다. 나는 내가 일해서 번 돈으로 생활비를 하고 세금도 낸다. 그러나 정부에서 더 받는게 있는가? 글쎄다. 나는 이 모든 머세드 군민들의 우려나 생각을 대부분 공감한다. 난민들이 정착하는 지역에 문제들은 비슷비슷하고, 그것을 그 지역 이기주의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 그런 심정일 때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아니에요. 문화장벽이 견고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되, 제가 원하는 바와 반대되는 일이 일어날 경우엔 완전한 성공보다는 작은 성공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제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는 없다는 걸 리아에게 배웠죠. 그게 아주 힘든 일인데 그래도 노력해야죠.리아는 저를 덜 고지식한 사람으로 만들어줬어요.

  •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무너지지요. 우리가 미국이 아니라 라오스에 계속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랬다면 리아가 절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여기 의사들은, 그 대단하신 분들은 정말이지 아는 게 많긴 하지만 리아한테 무슨 실수를 했을 거에요. 약을 잘 못 줘서 애를 이 지경으로만든 거죠. 우리가 라오스에 살고 있었다면, 리아를 이렇게 만든 게 '다'라면 우리는 숲에서 약초를 구해 먹였을 거예요. 그러면 리아는 나았을 것이고 하다못해 말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건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고 미국 사람들이 이렇게 만들었으니 이제 우리 약으로 애를 낫게 할 수가 없어요. 리 부부가 라오스를 떠나지 안았더라면 리아는 계속되는 대발작으로 영아기나 유아기를 넘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미국 의학은 리아의 목숨을 지키기도 하고 위태롭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어느 쪽이 리아의 가족에게 더 상처가 되는지 알 수 없었다.

  • 나는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항경련제 처방에 대한 리 부부의 불이행, 위탁 가정, 치명적인 신경 장애)설명한 다음, 지난 일이지만 리아의 소아과 의사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첫째, '이행'이란 말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아주 형편없는 표현이에요. 도덕적인 위계를 암시하는 말이지요.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장군의 명령이 아니라 대화거든요. 둘째, 강제의 모델을 찾기보다는 중재의 모델을 찾아야 합니다. 몽족 사회의 일원을 찾거나 의료인류학자를 찾아 중재를 구할 수 있거든요. 단 중재란 이혼 과정 같아서 양측이 다양보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인지 정한 다음에 나머지는 전부 기꺼이 타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이 케이스에선 몽족 환자와 그 가족의 문화가 대단히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그에 못지 않게 의학이라는 문화도 큰 자리를 차지한다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문화가 나름의 취미나 정서나 편향이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의 문화를 제대로 다룰 수 있겠습니까?

나는 종종 언어평가때 외국인(그나마 말이 통하는 조선족이면 다행, 전혀 한국말을 못해 통역이 와야하는 경우도 있음)에게 질문을 하다가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가령 이런 문항이 있는데 '잼잼이나 곤지곤지 같은 손놀이를 할 수 있나요?'(정확하지 않지만 이런 내용임) 이건 우리 문화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거치는 의사소통 양식 중 하나인데 이게 외국인에게도 항상 적용된다고 볼 수 없으니 말이다. 분명 비슷한 것도 있지만 전혀 다른 기저를 가질때도 있고, 자신이 속한 문화만의 고유한 특징은 의사소통에 반드시 포함될 수 밖에 없다. 그나마 생과사를 오가는 긴급한 의료행위가 아니니 이런 생각에서 머무는 것이겠지만, 살아있음, 생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의료행위와 혼을 우선으로 여기는 두 문화의 충돌에서 간극이 줄어들 수 있는게 과연 있을까 싶다.

  • 이제 하늘로 통하는 문은 치 넹 말고는 열 수가 없다...중략...리아의 치유 의식을 거행하기로 한 치 넹은 자신의 무구인 칼과 징과 딸랑이와 방울을 가져왔다. 날 수 있는 말도 가져왔다.

리아의 부모가 누구보다 리아를 사랑하고 잘 보살폈다는 것을 알겠다. 하지만 폐혈증때문에 결국 더 큰 신경발작이 일어났고, 결국엔 더 지연된 발달을 경험했다는 것을 의학적 문제로만 치부할 수 있는가는 모르겠다. 식물인간 상태로 통상적인 삶의 시간 (6개월가량 이나 사망하거나 대게 5년 안에 사망하지만... 리아는 그들보다 5배 이상 더 긴 시간만큼 리아를 집에서 보살펴왔고, 15주년 기념판이 나오는 시점까지도 살아 있다고 한다. 치 넹의 굿을 하는 건 리아의 회복이 아니라 리아가 조금이라도 더 편하기를 바래서며,

  • 거기 사람들에게 이런 얘길 했어요. 이 분야에서 일하기 전에는 부모님이 리아 때문에 겪는 모든 좌절이 의사들 잘못인 줄 알았다고요. 집에서 날마다 본 게 부모님이 리아를 낫게 하려고 뭐든 하려는 모습이었거든요. 그러다가 여기서 일하면서부터는 그 누구 탓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됐죠.

리아의 형제자매들은 잘 교육 받고 성실함으로 7남매들이 모두 어엿한 미국의 시민으로 살고 있다. [리아의 나라]는 1990년대에 쓰인 1980년대에 관한 책이다. 여전히 몽족 미국인들은 여러 본질적인 측면에서 몽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가장 중요한 때인 탄생, 결혼, 사망의 시기에는 보편적이지 않더라도 전통의식을 행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국계미국인, 제일교포, 조선족, 그 밖의 다른 나라에서 삶을 살고 있는 한국인은 우리의 정체성을 어떻게 가지고, 유지하고 또는 적응하며 살고 있을까? 저자가 몽족들에게 가장 흔히 듣는 불만은 미국을 떠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사람들이 덜 무지하기를 바라며, 미국인의 생명을 구하다 부상 당했다는 걸 알아주기 바란다고 한다. 나는 늘 이 부분에서 밸이 꼬인다. 나한테 해준 거였냐고 되묻고 싶기도하고, 그걸 왜 내가 갚아야 하는거냐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 당신들은 왜 방식을 안 바꾸는지,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지 하는 말도 이어서 떠오른다. 그들이 100% 잘못했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내 삶에 불편한 조각으로 남아있지 않아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결국 리아의 형제자매들도 미국사회에 적응했기 때문에 그들 본성(성실함과 따뜻함)이 더 빛나게 되었고, 우리가 말하는 사회일꾼으로 살아갈 수도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내 주변에 살고 있는 난민들이 어떻게 이 사회에 적응할지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우리가 문화적 충돌없이 잘 적응할 수 있게 될지는 정말 미지수며, 양쪽 모두 희생이 필요할거라고 어림짐작할 뿐이다. 나의 방어적인 태도가 일방적인 편견에 기인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나는 분명 몇가지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불편함들이 경험했으므로) 문화간의 만남은 그만큰 쉬운일이 아니고, 그런 간극을 줄이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며, 님비네 하는 말로 해당 지역에 대해서만 비난할 것이 아니라 거기다 데려다 준 국가도 역할을 분명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몽족도 미국에서 그런 문화적 충돌이 아닌 걸어서 세계속으로 같은 오지체험이나 여행지에서 만난 어떤 사람으로 비춰질때는 그 어떤 문화보다 따뜻하고 순수하게 보여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미국인들이 경험했던 당황스러움, 고통, 또는 그 다른 형태의 불편함이 시간이 흘러 그나마 희석된 것이지 모두 완전하게 봉합된건 아니니라. 그걸 지금 경험하고 있는 나는 조금 더 현명하게 서로가 덜 상처입을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지만...참 어려운일이란 걸 다시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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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워크 - 242억 켤레의 욕망과 그 뒤에 숨겨진 것들
탠시 E. 호스킨스 지음, 김지선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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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위해 발을 보호해주는 것, 멋내기의 마무리 단계 정도로 생각했던 신발에게 숨겨져(?) 있는 어마어마한 세계화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문득 무서워졌다. 그간 나는 얼마나 많은 진실은 모르고 살아왔던걸까? 모르고가 맞을까? 모른채, 모른척이 맞을까?


우리는 이 수십억 켤레의 신발이 어디서 오며 우리엑 무엇을 말해주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 이야기가 펼쳐지는 과정에서 지구화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그 속내를 드러내고, 거기에 따라붙는 모든 복잡성과 논란을 보여줄 것이다.

세계화(핵심은 무엇보다도 인간과 원료의 공급이었다)는 우리 시대의 최우선적인 현실이라고...이 변화는 생산, 소비, 생물권, 그리고 심지어 인간의 장기적 생존 가능성까지 급격히 바꿔놓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 세계화'를 산업의 급속한 정복과정에 이정표를 세우는 데 유용한 용어로 사용한다.

세계화는 정치적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적 행위자들이 어떤 행위를 의도적으로 하거나, 혹은 하지 않은 결과다, 우리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는데, 그것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과정이 아니라 이념이 초래한 과정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금전적 이익을 앞세우는 정치적 결정이 불러온 세계에 살고 있다.

세계화는 변화의 이야기이지만 그 과정은 평등하지도 유익하지도 못했다. 기업의 영향력이 확산되고 생산수준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과 수준이 추락했다.

세계화, 그러니까 자본주의의 세계화가 불러온 결과로 우리는 기업이 자연을 약탈하고, 노동자의 권리가 악랄하게 침해당하고, 기후가 파괴되고, 겨우 소형 버스 한 대분의 인원이 전 인류의 절반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재산을 소유할 정도로 불평등한 세상에 살고 있다. 세계화는 약속했던 경제적 이득을 가져오지 않았고, 그렇다고 안전을 확보하지도 못했다. 그것은 그저 다국적기업의 필요를 따를 뿐이다.

우리가 신고 있는 신발은 세계화의 추동력인 동시에 그 결과물이다. 신발은 생산의 세계화를 최초로 경험한 물품 중 하나이며 우리 세계를 조형하는 상호 의존과 불평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신발 생산의 현실이 흐릿하게 가려지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이 세상의 모든 신발은 인간 노동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항상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현실을 잊는다면 뭔가 멋진 것 또한 함꼐 잊히고 말기 때문인다....중략...모든 부와 마법의 근원이 결국 지구와 인간의 노동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우리는 이 상황을 바로잡고 공정하고 지속 가능하며 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이미 우리 수중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말 것이다.

하지만 세계화의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억압과 파괴가 있는 곳에 저항 또한 있다는 것이다.

찾을 수 있다면 공정하고 지속 가능하며 모두가 필요를 공급받는 사회를 만들 수단이 우리 손에 들어오는 것이다. 기후 붕괴의 경우처럼, 해법은 우리 손에 있다. 그러려면 에너지 시스템, 식량 지스템, 주고 시스템, 토지권과 천연자원 소유권을 재검토해야 한다. 지구를 살리려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그것은 동시에 공정한 세계의 기반이기도 하다.

여러분의 옷장이 중심인 수준을 넘어서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앞으로 신발을 사야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그 결정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여러분의 통장 잔고이겠지만 가죽, 환경 파괴, 스웨트숍 노동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작은 신발 브랜드를 스스로 찾아보고 사실 여부를 확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런 작은 브랜드 중 다수는 신발이 죽음과 파괴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만들어지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공한다. 그들에게 여러분의 신발을 맡기고 싶다면 그렇게 하자.

이미 가지고 있는 모든 신발을 수선해서 신거나, 1년간 쇼핑을 끊겠다고 서약하거나, 아니면 업사이클링 세계로 뛰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중고품을 사겠다고 서약할 수도 있다.

단순히 신발은 닳고 헤지면 새로 사야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수선해서 신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 해 보았다. 이전에 내가 살고 있는 지역 브랜드 구두업체 중 기성품을 주로 생산하지만, 개인 맞춤까지도 해주는 업체가 있었다. 당시로 내게 거금을 들여서 부츠를 맞춰 신고 이 맞춤부츠를 권해준 언니의 조언에 따라 매년 신발장에 넣기 전에 구두업체에 잔수선을 맡기면 새것처럼 되어 몇 년간을 줄기차게 신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후 몸도 변했고(살찌니 발사이즈도 커진다) 유행에 밀려 더는 신지 않게 되었던 내 부츠가 떠 올랐다. 수선해서 신으면 되는 것을, 잘 관리하면 몇 년 이상 신을 수 있는데 요즘 나는 너무 헐값의 것을 사고 딱 그 값어치 만큼 밖에(아니 그만큼도) 못 쓰고 버리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내 소비패턴이 그렇다. 그러면서 나는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쳤고, 노동착취 당하는 여성노동자들을 더 힘들게 했으며, 부자들이 더 부자가되게 했다. 자본주의는 원래 그런거라고 당연한듯 여기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경제시스템과 착취, 불평등은 생각하지 못했다. 정당한 댓가, 정당한 값어치 지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고, 좋은 소비재를 저렴하게 사고 싶은 것이 소비자라고 생각했다. 소비자이자 노동자인 나는 한편으로 내 노동의 가치가 헐값에 매겨질 때의 억울함, 속상함을 안다. 기업은 어떻게든 더 많은 이윤을 가지고자 하기 때문에, 나의 노동가치를 헐값으로 측정한만큼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갈 수 있으니 그렇게 하려는거다. 내가 하는 일도 노동집약적인 일로 맨파워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회사는 경영성과로 더 많은 이윤을 얻었다고 하면서 그것을 직원에게 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할게 많단다. 건물도 지어야하고, 장비도 사야하고.. 노동집약적이기 때문에 임금을 올리는 비율도 높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기득권, 윗분들(?) 성과금은 더 준다는 소문이 나서 반발이 거세졌다. 신발만드는 공장이 아니고, 노조가 있는 우리회사도 이럴진데 시스템적으로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는 곳이 보다 평등하고 공정하고 지속가능하게 일할 수 있으려면 우리모두의 눈뜸과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사회자체가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를 줄여 모두에게 존엄성 있는 삶을 제공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지금 나의 불편한 감정을 모른척하거나 잊지말고 내가 관계 속에, 사회 속에 머무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시스템변화를 주시해야 겠다. 아울러 나의 잘못된 소비습관도 점검하고 변화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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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 쓰기 - 인생이 바뀌는
양병무 지음 / 행복에너지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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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많지만 도통 늘지않는 글쓰기 실력을 갖고 있어서 이 책이 무척 궁금했었다.

시작부터 강조하는 것은 이제는 글쓰기 시대, 작가의 대중화 시대라고 계속해서 말해준다. 그런면에서 본다면 나는 시대흐름에 아주 빠르게 따라간 (난 거의 블로그 글쓰기 1세대라고 할 수 있음) 사람인데 왜 아직, 여즉, 이렇게 글쓰기에 연연해 하고 있는 걸까? 글쓰는게 좋고, 재미있고, 나의 일기장 역할을 해주고, 내 감정정리의 시간을 해 주는 등 많은 좋은 점들이 있으니 놓지 못하고 계속 글을 쓰고는 있지만 스스로 되돌아볼 때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다. 또한 그간에 긴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짧은 글쓰기 호흡에 대해 생각하고, 알고는 있지만 딱히 글 길이를 늘려 쓸 생각을 못하는 점은 내가 글을 쓰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점 때문이다. 쓰다만 블로그 글이 아마 거짓말 조큼 보태서 100개는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글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긴 글로 완성하지 못하고 쓰다 마는 것. 그러다보면 시의성이 지나버려서 더 쓰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쓰다가 저장했다 쓰다가 저장했다 하면서 기어코 꾸역꾸역 완성했지만 용두사미, 끝마무리가 흐지부지 되는 글을 많이 썼다. 또, 나는 재치있는편이 못되어 제목짓는 것도 참.....제목을 보고 읽고 싶은 글쓰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냥 빤히 보이는 제목짓기를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 다닐때 일기장에 '제목: 영화 보러 간 날'이라고 쓴 것 처럼 아주 단순하고, 이 글이 뭘 말할지 그냥 안봐도 다 알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제목을 쓴다. 더욱이 글을 오래 쓰니 퇴고를 잘 못한다. 고치고 또 고치고 해서 글을 올리면 더 나을텐데 한번 쓰는데 오래 걸리니 다시 고칠 엄두를 못 내는 것. 그래서 지금 내글은 그냥저냥 이렇다는 것이다. 써보니 알겠네. 내 글이 왜 이런지....

저자는 글쓰기 시대에 글쓰기로 세상과 소통하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기본적인 글쓰기 방법(중학교 국어 수준이면 된다고...) 1단계 계획하고, 2단계 내용을 생성하고, 3단계 내용을 조직하고, 4단계 표현하고 5단계 고쳐 쓰기를 하라고 알려준다. 그렇구나. 나는 내가 글쓰기를 배운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학교 다니면서 배운거구나....그러나 정말 이런 글쓰기를 직접적으로 할 수 있도록 배웠던가는 의문이다. 최근에 내 글쓰기의 대부분은 보고서 작성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간결하고, 결과만을 요구하는 상사때문에 긴 글쓰기가 안된다. 요즘 쓰고 있는 긴글은 QI보고서인데...어제 마무리하고 팀원들한테 퇴고(?)를 부탁했더니 한 직원이 마지막의 내용은 뭐를 말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컥.했더랬다. 같은 내용을 지난번 중간보고서 쓸 때 보고서는 너무너무 쉬워서 이해가 잘 된다고 했던 직원이었는데....그래서 첨엔 기분이 좀 그랬다. 무척 당황스럽기도 했고, 어째야하나도 싶고, 왜 같이 시행한 활동을 내가 글로 쓴건데 모르겠다는거야? 등등의 복잡한 생각들이 오고 갔지만 일단, 같이 프로젝트를 한 직원도 이해못 할 정도라면 내 글이 문제니 내용을 좀 더 수정해 보충 설명을 넣었다. - 글을 쓰면 수정을 부탁하는 게 좋다. 나 역시 글쓰기에 자신이 없을 떄도 주변의 글 쓰는 사람들에게 원고를 수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내 글을 고쳐주던 휴배가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툭 던졌다. "선배님은 참 용이가 있으신 것 같아요. 교정을 부탁하시고, 수정해주면 고맙다고 생각하시는 게 특이해요. 그런 분이 많지 않거든요." - 아....나도 내일 그 팀원에게 고맙다고 말해야겠다.

글을 잘 쓰려면 무엇보다도 '다독'이 중요하다. 많이 읽어야 풍부한 자료가 생긴다. 읽지 않고 좋은 글을 쓰기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이지성 씨는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자신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중략..이지성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문 고전이 좋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너무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건 우리가 너무 쉬운 책만 읽어서 그래요. 미국에서는 초등학생들도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고 독후감을 쓰죠. 우리는 TV 드라마만 보기 때문에 인문 고전이 어렵다고 느끼죠. 교육이 잘못된 겁니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생각해야 한다. 쓰기 전에 많이 생각하고 쓰고 나서도 퇴고의 과정을 거치며 많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글은 생각의 표현이다. 복잡한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글이기 떄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면서 살아간다. 인간 삶의 방향은 바로 생각의 방향이다. 생각의 방향이 바록 종합적이어야 하는 이유이다.

글쓰기 과정에 합평 시간이 있다. 서로가 쓴 글을 평가하는 시간이다. 여러 사람이 글을 다각도로 평가해 주니까 많은 도움이 된다. 교정은 대개 빨간색으로 하는 까닭에 교정을 본 부분이 많아지면 '딸기밭'이라고 한다. 글을 쓰는 횟수가 늘어날 수록 딸기밭의 면적도 줄어든다. 이 딸기밭 관리도 글을 잘 쓰는 비결이다.

글쓰기는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한 준비도 필요하고, 글을 쓰면서 단련하는 과정도 필요하고, 다 쓰고 고치고 또 고치는 퇴고의 과정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뭔가 빨리 되기를 바라면서 그걸 간과했던거 같다.(라고 하기엔 너무 오래 글 쓴듯....^^::) 나도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글을 쓰다보면 언젠가는 좀 읽어줄 만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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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왕자 - 내 안의 찬란한 빛, 내면아이를 만나다
정여울 지음 / CRETA(크레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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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왕자

내 안의 찬란한 빛, 내면아이를 만나다.

조이와 루나의 대화를 통해 '나의 내면의 어린아이'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그간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를 돌봐주어서 건강해지도록(? - 자라도록) 해야 한다 또는 자라게 해야 한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너무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고 있었던 거다. 프롤로그에서부터 나오는 일곱 가지 유형의 내면의 아이를 보면서 뭐지? 난 다 해당되는거 같은데.....하면서 당황스럽기 시작했다. 내 안에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를 인정하고 마주해야한다는게 뭐랄까, 당황스러웠던거다. 게다가 상처받은 아이가 있으려니 정도였지만 일곱 유형에 다 해당될 정도로 상처의 깊이가 깊다?거나 넓다?는 것을 인정해야하는 것도 나의 당황스러움의 한 몫을 차지했다. 아....그럼 이제는 어떻게 하지?

조이와 루나의 대화를 보면서 나도 내 내면의 어린아이를 돌아볼 수 있는 질문들을 만날 때 찬찬히 생각 해 보게 되었다. 조이와 루이 대화 말미, 그러니까 각 챕터 말미에는 작가가 이야기와 어울리는 어린왕자의 일부분이 나온다. 예전에 분명히, 심지어 어린왕자는 두세번을 읽었었는데, 이 구절을 읽었었지...하는 기억은 나는데도 이상하게도 작가가 각 챕터마다 다시 데려온 '어린 왕자의 말'를 보면 예전에 읽었을 때와는 사뭇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 왔다. 이게 그런 의미였던가? 그때 나는 미쳐 몰랐었네, 그때는 이해하거나 잘 받아들이지 못할만큼 내가 어렸던가도 싶다.

내가 당장 나의 내면의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는건 아니다. 그리고 내가 맘을 바꿔먹었다고 해서 당장에 드러나는 어떤 큰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나의 내면의 아이의 상처에 대해 생각을 하고, 내 감정들에 대헤 표현을 하면서 또는 방법을 바꾸어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서 앞으로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시나브로 점점 내면의 아이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내 안의 상처받은 아이가 '놀라운 아이(wonder child)로 변화할 수 있도록 그래서 내 안의 잠재된 긍정의 힘, 에너지가 되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넌 상처받을 자격이 있어.

행복한 적, 친한 척, 괜찮은 척하면서 넌 어른이 된 거구나. 난 그런 거 못 하난데, 난 지금 너무 속상해서 울고 싶어. 좀 울어도 돼?

그런데 뭘 하고 놀아야 하지? ...중략.... 노는 데 무슨 '법'이 필요해. 방법도 도구도 필요 없어. 장난감도 필요없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놓아버려. 지금 네가 이 순간 제일 하고 싶은 걸 해봐.

너는 소중한 존재야. 너는 이해받고, 사랑받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어.

부모는 자신이 가장 상냥했을 때를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은 부모가 가장 화났을 때의 모습을 기억해.

어른들은 것핏하면 흑화하더라고, 결과만 중시하느라 과정은 무시해 버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 줄 알잖아.

내 몸이 문제였구나. 쉴 줄 모르고, 놀 줄 모르고, 내 영혼을 끊임없이 가두려고만 하는 내 몸이

이런 가정법 좀 그만둬. 안 되는 걸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나아진 거야. 넌 뭐든지 능력으로 환산해서 생각해. 아닌 척 하면서 말이야.

똑같은 내용으로 야단을 치더라도, 어떤 사람은 날 정말 사랑해서 그러고, 어떤 사람은 그냥 아이를 무시하거나 싫어해서 야단을 치거든.

하지만 완벽한 사람은 없어도, 완벽한 존중은 가능하지.

가끔은 원망해도 괜찮아. 직접 표현만 안 하면 괜찮아. 그냥 혼자가 원망하는 것은 괜찮아. 너 자신을 할퀴는 것보다는, 널 상처 준 사람들을 속으로나마 원망하는 것이 나아.

나에게 가혹하게 대했던 어른들의 무서운 얼굴이 실은 권위주의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두려움 때문에 일그러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내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나를 완전히 알아주는 친구가 생긴 느낌이 참 좋구나.

내 잘 못이 아니었어! 네가 아무에게도 기댈 곳이 없었다는 것이 너무 가여워.

넌 상처를 딛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구나.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집이건 별이건 사막이건, 그것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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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ault in Our Stars (Paperback, Reprint) - 『잘못은 우리별에 있어』원서, 영화 '안녕, 헤이즐' 원작소설
John Green / speak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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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 새로운 지질 시대 개념으로 인류가 자연환경을 파괴해 지구환경과 맞서게 된 시대. 
지극히 인간 중심의 시간들이 결국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고, 기후 변화를 만들고 어쩌면 우리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제목을 보고 나는 뭐 이런 내용들이 나오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음....
책의 진행 방향은 내가 책의 제목으로 유추했던 것과는 달랐다. 내 생각에 이 책은 현인류에게 봉착 된 기후환경 문제라던가, 인간이 알게 모르게 지구에게 저지르고 있는 잘못에 대한 반성과 촉구에 관한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아무튼 이 방향은 전혀 아니올시다다. 그런 내용이 아예 안 나온다는 건 아니지만..  제목에서 보자면 '인류세'가 포인트라기 보다 '리뷰'가 포인트 같다. 인류세는 지금을 살아가는 정도로 보면 되고 말이다.  [인류의 시간 범위]와 [에어컨], [전염병] 챕터는 위의 내용과 관계가 있다. 

- 지금까지 고작해야 25만 년밖에 되지 않은 인류의 시간 범위에 별점 한 개를 주는 것조차 아깝다. 그러나 최근 나는 처음 들었을 때는 괴로웠던 형의 말을 곱씹는  가운데 그 말들을 믿게 되었다. 형이 옳았다. 이 종은 이번에도 살아남을 것이고, 앞으로 더 잘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희망과 기대를 품고 나는 우리의 시간 범위에 별점 네 개를 준다.

이렇게 각 챕터별 주제에 대한 리뷰로 구성 되어 있고, 마지막에 평점을 별 갯수로 준다. 말그대로 리뷰인 것이다. 나처럼 서평만 책을 읽고 별점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작가가 처해있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과 상황에 대해 리뷰를 하고 별점을 매긴다.

- 우리는 조금 더 덥다고 느끼는 데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미래다. 에어컨은 인류세의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에 대해 생각지 않고도 내 삶을 변화시켰던 일종의 배경음악이었다.

일전에 신부님께서 강론시간에 여름은 원래 덥습니다. 더운 걸 덥다고 인정하면 되는데 다들 그걸 하지 않으려고 해요. 하셨다. 나는 에어컨을 트는데 유난히 죄책감을 크게 갖고 있는 편이다. 몸 속 깊이 벤 절약정신때문일 수도 있고 지구환경오염에 에어컨이 주는 부정적 영향력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던 내가 에어컨 켜는 횟수를 줄이는데 영향을 준다. 지구도 생각하고 전기세도 생각해서 에어컨을 덜 틀고 싶지만 유난히 후텁지근했던 올여름 초입 마냥 참기가   쉽지 않았다.

-  토드와 함께 개울둑에 앉아 있던 때가 생각난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여전히 나를 끌어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시간  때문에, 거리 때문에 그리고 우리 사이에 놓인 다른 무엇 때문에 그들이 멀리 존재 할지라도 그대의 삶에서 그와 같은 사람을 가졌는지, 그 사람의 사랑이 그대를 계속해서 나아가게 하는지 궁금하다.

내가 친구라는 존재를 기억하는 시점부터 친구는 내게 늘 중요한 존재였다. 내게 혈서까지 써 우정을 맹세한 친구가 있는데 어느 날 불현듯 돌아섰다. 뚜렷한 이유도 모른다. 그때도 아직도...나 보다 더 좋은 친구가 생겼기 때문으로 짐작할 뿐. (이성문제 아닙니다. 오해마시길..) 이 때의 감정은 어렴풋하지만 꽤 아픈기억으로 존재한다.  그 친구를 교생실습을 나가서 다시 만났는데 그렇게 절절한 우정을 말했던 이였지만, 불현듯 돌아선 그녀, 멀어진 이유도 모르고 멀어진 그친구, 그 친구는 다시 만난 나를 생각보다 대면대면하게 대했다.  그때 부터였을까? 나는 필요 이상으로 모든 잘못의 화살을 내게로 돌리는 경향이 생겼다. 차라리 내가 못생겨서 너랑 더 친구 안 할거야라고 말 해 줬다면 나는 지금까지 그 기억이 아프게 남지 않았을 것 같다. 이유를 모른 상처는 오래 머물렀고, 크기도 컷으며, 무의식 저 편에 남아서 툭툭 관계 속의 나를 움츠러 들게 한다. 좋은 의미로 나를 끌고가줄 기억이면 좋으련만.... 

- 아카데크 AcaDec, 10종 학력경시대회란 걸 처음 알았는데 상위A그룹3명 중위B그룹3명 하위C그룹3명이 한팀으로 구성 해 경제,미술,언어와문학,수학,과학,사회과학의 객관식시험과 독립선언문,헌법과 권리장전,노예해방령에서 나오는 슈퍼퀴즈, 에세이,대면인터뷰,말하기 시연 세 가지 주관식 시험으로 구성되는 경시대회다. 여기서 가장 매력적인 조건이 학점별 그레이드를 나누고 그들간의 겨루기를 하도록 하면서 진짜 공부하는 법을 학생들이 터득하고 익히게 한다는점이다.  자연스럽게 A그룹이 C그룹의 멘토가 될 수 있고 성적격차가 너무 나는 애시당초 싸움이 될 수 없는 겨루기가 아닌, 비슷한 학력수준끼리 겨루므로 이 경시대회 준비 자체로 학생들의 변화를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을 거란 점이다. 작가도 여기에 별점 네 개 반을 주었는데 우리나라처럼 친구들 간에도 이기고 지는 오롯히 경쟁만 존재하는 구조가 아니라 함께 상생할수 있는 제도적인 부분이 될 것 같다.

- 삶에는 그런 순간이 있다. 연습하고 준비한 그대로 정확하게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삶에는 제이미 캐러거의 말을 들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프로로서 예지 두덱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그는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기로 결심했다. ...중략...  리버풀은 한 골을 제외햐그 모두 성공시켰다. 그러나 건들거리는 두덱과 맞선 밀란에게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밀란의 첫 번째 페널티킥이 골문을 완전히 빗나가버렸고, 그리고 두덱이 다음 4골 중에서 2골을 막아냈다. 리버풀은 '이스탄불의 기적'을 완성시켰다.

나는 순발력이 거의 전무한 사람이다. 본디 그런건 아니고 사회생활 중 많이 작아져서 안전한 거 괜찮다 확인한게 아니면 안하게 되서이기도 하다.  나이들었단 증거 중 하나이기도...
요즘 없어진 순발력대신 정교함과 정확함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걸 보고 앗! 뜨거 했다. 아~  인생 왜이리 복잡하니? 정답이 없으니 더 어렵구나. 어찌 살면 잘 산다고 소문이 나려나?

- 우리는 생각 없이 따라가는 사람들을 "레밍"이라고 부르고는 한다.. 중략....  나는 생각이 많다. 생각으로 넘쳐날 듯하며, 항상, 어쩐 수 없이 지쳐 나가떨어질 정도로 생각이 많다. 그러나 생각이 없기도 하다. 나는 이해하려고도 검증하려고도 하지 않은 채 주어진 기본 설정에 맞추어 행동한다.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레밍들은 이러이러하다고 우리가 주장해온 그 레밍이다. 내가 알 수 없는 힘들이 나와 내 동료 레밍들을 벼랑으로 몰고 가, 밀어버리는 것이 두렵다. 레밍의 신화는 우리로 하여금 레밍을 이해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그 신화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지속된다. 

내가 레밍같겠구나 싶다가 아니지 이래서는 안되지 한다. 내가 레밍같단걸 직시 했으면 변해야지. 그냥 가만 있음 안되고..

-  바람직한 언론은 이 모든 편견을 교정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 우주와 그 속에 존재하는 우리의 위치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바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터너가 약속한 평회와 우정이 아니라 무지와 편견을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별점 두 개를 받은 CNN이야기 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나치게 언론의 공정성을 믿고 있는지 모른다. 통제되어서든 잘보이기 위해서이든 어느 쪽이던 간에  전달하는 소식의 신뢰성이 깨지면 그것은 언론의 죽음과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된다. 언론은 그 무엇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 우리가 겪는 현재의 공포가 선례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보살핌의 능력도 선례가 있는것이다. 
- 그것은 인간의 이야기다. 소외된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그들을 죽이기까지 하는 것이 위기에 처한 인간이다.
- 위기는 마찬가지로 우리를, 우리의 고통과 희망 그리고 기도를 나아가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와 같은 식으로 대응할 때 아마도 고통은 가벼워질 것이다. 
-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Frost의 말처럼 "유일한 탈출구는 통과하는 것이다." 그리고 통과하는 유일한 좋은 방법은 함께 하는 것이다. 심지어 상황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 사실 특히 그런 상황이 그렇게 할 때야말로- 통과하는 방법은 함께 하는 것이다.

전염병이 주는 두려움은 너무나도 크다. 그 두려움은 너무 커서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고, 결국 금새 주변을 삼켜버린다.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고 극도로 이기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정답이 없는 세상일 중 하나인 이 전염병에 관해서도 우리가 취해야할 바른 태도는 있다. 함께 통과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세상과 동떨어져 혼자있는 외로움은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고 무엇으로든 간에 이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없을때 더 슬프고 쉬이 지치게 되었다. 전염성이란 부분은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마는 그런 것이라서 아비가 자식을 찾지 않고 자식도 부모를 모른척하게 하고 형제자매간에도 가족들간 단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긴 거리두기 기간동안 고립은 마음을 조금씩 황폐하게 만들었다. 이제 겨우 숨통이 좀 틔이나했더니 다시 재확산이란다. 그럼 이제는 방법의 변화를 찾아야 할 시간이 아닐까? 다르게 서로를 대하는 방법을 말이다. 그 위험성이 없어진다거나 하는 뜻이 아니지만 관계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가지는 인간들이 더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관계를 잘 맺어갈 수 있도록. 이 역병도 언젠가는 지나가고 인류는 이번역시 살아남을 것이다. 모두가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는 삶이 되기를 희망하며, 그 희망에 나는 별 넷을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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