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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워크 - 242억 켤레의 욕망과 그 뒤에 숨겨진 것들
탠시 E. 호스킨스 지음, 김지선 옮김 / 소소의책 / 2022년 8월
평점 :
걷기 위해 발을 보호해주는 것, 멋내기의 마무리 단계 정도로 생각했던 신발에게 숨겨져(?) 있는 어마어마한 세계화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문득 무서워졌다. 그간 나는 얼마나 많은 진실은 모르고 살아왔던걸까? 모르고가 맞을까? 모른채, 모른척이 맞을까?
우리는 이 수십억 켤레의 신발이 어디서 오며 우리엑 무엇을 말해주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 이야기가 펼쳐지는 과정에서 지구화라는 개념은 우리에게 그 속내를 드러내고, 거기에 따라붙는 모든 복잡성과 논란을 보여줄 것이다.
세계화(핵심은 무엇보다도 인간과 원료의 공급이었다)는 우리 시대의 최우선적인 현실이라고...이 변화는 생산, 소비, 생물권, 그리고 심지어 인간의 장기적 생존 가능성까지 급격히 바꿔놓았다. 그러므로 이 책은 ' 세계화'를 산업의 급속한 정복과정에 이정표를 세우는 데 유용한 용어로 사용한다.
세계화는 정치적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적 행위자들이 어떤 행위를 의도적으로 하거나, 혹은 하지 않은 결과다, 우리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는데, 그것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과정이 아니라 이념이 초래한 과정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금전적 이익을 앞세우는 정치적 결정이 불러온 세계에 살고 있다.
세계화는 변화의 이야기이지만 그 과정은 평등하지도 유익하지도 못했다. 기업의 영향력이 확산되고 생산수준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과 수준이 추락했다.
세계화, 그러니까 자본주의의 세계화가 불러온 결과로 우리는 기업이 자연을 약탈하고, 노동자의 권리가 악랄하게 침해당하고, 기후가 파괴되고, 겨우 소형 버스 한 대분의 인원이 전 인류의 절반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재산을 소유할 정도로 불평등한 세상에 살고 있다. 세계화는 약속했던 경제적 이득을 가져오지 않았고, 그렇다고 안전을 확보하지도 못했다. 그것은 그저 다국적기업의 필요를 따를 뿐이다.
우리가 신고 있는 신발은 세계화의 추동력인 동시에 그 결과물이다. 신발은 생산의 세계화를 최초로 경험한 물품 중 하나이며 우리 세계를 조형하는 상호 의존과 불평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신발 생산의 현실이 흐릿하게 가려지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이 세상의 모든 신발은 인간 노동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항상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현실을 잊는다면 뭔가 멋진 것 또한 함꼐 잊히고 말기 때문인다....중략...모든 부와 마법의 근원이 결국 지구와 인간의 노동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우리는 이 상황을 바로잡고 공정하고 지속 가능하며 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이미 우리 수중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말 것이다.
하지만 세계화의 특징이 하나 더 있다. 억압과 파괴가 있는 곳에 저항 또한 있다는 것이다.
찾을 수 있다면 공정하고 지속 가능하며 모두가 필요를 공급받는 사회를 만들 수단이 우리 손에 들어오는 것이다. 기후 붕괴의 경우처럼, 해법은 우리 손에 있다. 그러려면 에너지 시스템, 식량 지스템, 주고 시스템, 토지권과 천연자원 소유권을 재검토해야 한다. 지구를 살리려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그것은 동시에 공정한 세계의 기반이기도 하다.
여러분의 옷장이 중심인 수준을 넘어서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앞으로 신발을 사야 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그 결정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여러분의 통장 잔고이겠지만 가죽, 환경 파괴, 스웨트숍 노동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작은 신발 브랜드를 스스로 찾아보고 사실 여부를 확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런 작은 브랜드 중 다수는 신발이 죽음과 파괴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만들어지는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공한다. 그들에게 여러분의 신발을 맡기고 싶다면 그렇게 하자.
이미 가지고 있는 모든 신발을 수선해서 신거나, 1년간 쇼핑을 끊겠다고 서약하거나, 아니면 업사이클링 세계로 뛰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중고품을 사겠다고 서약할 수도 있다.
단순히 신발은 닳고 헤지면 새로 사야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수선해서 신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 해 보았다. 이전에 내가 살고 있는 지역 브랜드 구두업체 중 기성품을 주로 생산하지만, 개인 맞춤까지도 해주는 업체가 있었다. 당시로 내게 거금을 들여서 부츠를 맞춰 신고 이 맞춤부츠를 권해준 언니의 조언에 따라 매년 신발장에 넣기 전에 구두업체에 잔수선을 맡기면 새것처럼 되어 몇 년간을 줄기차게 신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후 몸도 변했고(살찌니 발사이즈도 커진다) 유행에 밀려 더는 신지 않게 되었던 내 부츠가 떠 올랐다. 수선해서 신으면 되는 것을, 잘 관리하면 몇 년 이상 신을 수 있는데 요즘 나는 너무 헐값의 것을 사고 딱 그 값어치 만큼 밖에(아니 그만큼도) 못 쓰고 버리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내 소비패턴이 그렇다. 그러면서 나는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쳤고, 노동착취 당하는 여성노동자들을 더 힘들게 했으며, 부자들이 더 부자가되게 했다. 자본주의는 원래 그런거라고 당연한듯 여기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경제시스템과 착취, 불평등은 생각하지 못했다. 정당한 댓가, 정당한 값어치 지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고, 좋은 소비재를 저렴하게 사고 싶은 것이 소비자라고 생각했다. 소비자이자 노동자인 나는 한편으로 내 노동의 가치가 헐값에 매겨질 때의 억울함, 속상함을 안다. 기업은 어떻게든 더 많은 이윤을 가지고자 하기 때문에, 나의 노동가치를 헐값으로 측정한만큼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갈 수 있으니 그렇게 하려는거다. 내가 하는 일도 노동집약적인 일로 맨파워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회사는 경영성과로 더 많은 이윤을 얻었다고 하면서 그것을 직원에게 돌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할게 많단다. 건물도 지어야하고, 장비도 사야하고.. 노동집약적이기 때문에 임금을 올리는 비율도 높일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기득권, 윗분들(?) 성과금은 더 준다는 소문이 나서 반발이 거세졌다. 신발만드는 공장이 아니고, 노조가 있는 우리회사도 이럴진데 시스템적으로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는 곳이 보다 평등하고 공정하고 지속가능하게 일할 수 있으려면 우리모두의 눈뜸과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사회자체가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를 줄여 모두에게 존엄성 있는 삶을 제공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지금 나의 불편한 감정을 모른척하거나 잊지말고 내가 관계 속에, 사회 속에 머무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시스템변화를 주시해야 겠다. 아울러 나의 잘못된 소비습관도 점검하고 변화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