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The Fault in Our Stars (Paperback, Reprint) - 『잘못은 우리별에 있어』원서, 영화 '안녕, 헤이즐' 원작소설
John Green / speak / 2014년 4월
평점 :
인류세 새로운 지질 시대 개념으로 인류가 자연환경을 파괴해 지구환경과 맞서게 된 시대.
지극히 인간 중심의 시간들이 결국 지구 환경을 오염시키고, 기후 변화를 만들고 어쩌면 우리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제목을 보고 나는 뭐 이런 내용들이 나오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음....
책의 진행 방향은 내가 책의 제목으로 유추했던 것과는 달랐다. 내 생각에 이 책은 현인류에게 봉착 된 기후환경 문제라던가, 인간이 알게 모르게 지구에게 저지르고 있는 잘못에 대한 반성과 촉구에 관한 것이리라 생각했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아무튼 이 방향은 전혀 아니올시다다. 그런 내용이 아예 안 나온다는 건 아니지만.. 제목에서 보자면 '인류세'가 포인트라기 보다 '리뷰'가 포인트 같다. 인류세는 지금을 살아가는 정도로 보면 되고 말이다. [인류의 시간 범위]와 [에어컨], [전염병] 챕터는 위의 내용과 관계가 있다.
- 지금까지 고작해야 25만 년밖에 되지 않은 인류의 시간 범위에 별점 한 개를 주는 것조차 아깝다. 그러나 최근 나는 처음 들었을 때는 괴로웠던 형의 말을 곱씹는 가운데 그 말들을 믿게 되었다. 형이 옳았다. 이 종은 이번에도 살아남을 것이고, 앞으로 더 잘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희망과 기대를 품고 나는 우리의 시간 범위에 별점 네 개를 준다.
이렇게 각 챕터별 주제에 대한 리뷰로 구성 되어 있고, 마지막에 평점을 별 갯수로 준다. 말그대로 리뷰인 것이다. 나처럼 서평만 책을 읽고 별점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작가가 처해있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과 상황에 대해 리뷰를 하고 별점을 매긴다.
- 우리는 조금 더 덥다고 느끼는 데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미래다. 에어컨은 인류세의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에 대해 생각지 않고도 내 삶을 변화시켰던 일종의 배경음악이었다.
일전에 신부님께서 강론시간에 여름은 원래 덥습니다. 더운 걸 덥다고 인정하면 되는데 다들 그걸 하지 않으려고 해요. 하셨다. 나는 에어컨을 트는데 유난히 죄책감을 크게 갖고 있는 편이다. 몸 속 깊이 벤 절약정신때문일 수도 있고 지구환경오염에 에어컨이 주는 부정적 영향력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던 내가 에어컨 켜는 횟수를 줄이는데 영향을 준다. 지구도 생각하고 전기세도 생각해서 에어컨을 덜 틀고 싶지만 유난히 후텁지근했던 올여름 초입 마냥 참기가 쉽지 않았다.
- 토드와 함께 개울둑에 앉아 있던 때가 생각난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여전히 나를 끌어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시간 때문에, 거리 때문에 그리고 우리 사이에 놓인 다른 무엇 때문에 그들이 멀리 존재 할지라도 그대의 삶에서 그와 같은 사람을 가졌는지, 그 사람의 사랑이 그대를 계속해서 나아가게 하는지 궁금하다.
내가 친구라는 존재를 기억하는 시점부터 친구는 내게 늘 중요한 존재였다. 내게 혈서까지 써 우정을 맹세한 친구가 있는데 어느 날 불현듯 돌아섰다. 뚜렷한 이유도 모른다. 그때도 아직도...나 보다 더 좋은 친구가 생겼기 때문으로 짐작할 뿐. (이성문제 아닙니다. 오해마시길..) 이 때의 감정은 어렴풋하지만 꽤 아픈기억으로 존재한다. 그 친구를 교생실습을 나가서 다시 만났는데 그렇게 절절한 우정을 말했던 이였지만, 불현듯 돌아선 그녀, 멀어진 이유도 모르고 멀어진 그친구, 그 친구는 다시 만난 나를 생각보다 대면대면하게 대했다. 그때 부터였을까? 나는 필요 이상으로 모든 잘못의 화살을 내게로 돌리는 경향이 생겼다. 차라리 내가 못생겨서 너랑 더 친구 안 할거야라고 말 해 줬다면 나는 지금까지 그 기억이 아프게 남지 않았을 것 같다. 이유를 모른 상처는 오래 머물렀고, 크기도 컷으며, 무의식 저 편에 남아서 툭툭 관계 속의 나를 움츠러 들게 한다. 좋은 의미로 나를 끌고가줄 기억이면 좋으련만....
- 아카데크 AcaDec, 10종 학력경시대회란 걸 처음 알았는데 상위A그룹3명 중위B그룹3명 하위C그룹3명이 한팀으로 구성 해 경제,미술,언어와문학,수학,과학,사회과학의 객관식시험과 독립선언문,헌법과 권리장전,노예해방령에서 나오는 슈퍼퀴즈, 에세이,대면인터뷰,말하기 시연 세 가지 주관식 시험으로 구성되는 경시대회다. 여기서 가장 매력적인 조건이 학점별 그레이드를 나누고 그들간의 겨루기를 하도록 하면서 진짜 공부하는 법을 학생들이 터득하고 익히게 한다는점이다. 자연스럽게 A그룹이 C그룹의 멘토가 될 수 있고 성적격차가 너무 나는 애시당초 싸움이 될 수 없는 겨루기가 아닌, 비슷한 학력수준끼리 겨루므로 이 경시대회 준비 자체로 학생들의 변화를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을 거란 점이다. 작가도 여기에 별점 네 개 반을 주었는데 우리나라처럼 친구들 간에도 이기고 지는 오롯히 경쟁만 존재하는 구조가 아니라 함께 상생할수 있는 제도적인 부분이 될 것 같다.
- 삶에는 그런 순간이 있다. 연습하고 준비한 그대로 정확하게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삶에는 제이미 캐러거의 말을 들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프로로서 예지 두덱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그는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기로 결심했다. ...중략... 리버풀은 한 골을 제외햐그 모두 성공시켰다. 그러나 건들거리는 두덱과 맞선 밀란에게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밀란의 첫 번째 페널티킥이 골문을 완전히 빗나가버렸고, 그리고 두덱이 다음 4골 중에서 2골을 막아냈다. 리버풀은 '이스탄불의 기적'을 완성시켰다.
나는 순발력이 거의 전무한 사람이다. 본디 그런건 아니고 사회생활 중 많이 작아져서 안전한 거 괜찮다 확인한게 아니면 안하게 되서이기도 하다. 나이들었단 증거 중 하나이기도...
요즘 없어진 순발력대신 정교함과 정확함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걸 보고 앗! 뜨거 했다. 아~ 인생 왜이리 복잡하니? 정답이 없으니 더 어렵구나. 어찌 살면 잘 산다고 소문이 나려나?
- 우리는 생각 없이 따라가는 사람들을 "레밍"이라고 부르고는 한다.. 중략.... 나는 생각이 많다. 생각으로 넘쳐날 듯하며, 항상, 어쩐 수 없이 지쳐 나가떨어질 정도로 생각이 많다. 그러나 생각이 없기도 하다. 나는 이해하려고도 검증하려고도 하지 않은 채 주어진 기본 설정에 맞추어 행동한다.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레밍들은 이러이러하다고 우리가 주장해온 그 레밍이다. 내가 알 수 없는 힘들이 나와 내 동료 레밍들을 벼랑으로 몰고 가, 밀어버리는 것이 두렵다. 레밍의 신화는 우리로 하여금 레밍을 이해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그 신화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지속된다.
내가 레밍같겠구나 싶다가 아니지 이래서는 안되지 한다. 내가 레밍같단걸 직시 했으면 변해야지. 그냥 가만 있음 안되고..
- 바람직한 언론은 이 모든 편견을 교정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 우주와 그 속에 존재하는 우리의 위치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바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터너가 약속한 평회와 우정이 아니라 무지와 편견을 퍼뜨리고 있는 것이다.
별점 두 개를 받은 CNN이야기 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나치게 언론의 공정성을 믿고 있는지 모른다. 통제되어서든 잘보이기 위해서이든 어느 쪽이던 간에 전달하는 소식의 신뢰성이 깨지면 그것은 언론의 죽음과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된다. 언론은 그 무엇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 우리가 겪는 현재의 공포가 선례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보살핌의 능력도 선례가 있는것이다.
- 그것은 인간의 이야기다. 소외된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심지어 그들을 죽이기까지 하는 것이 위기에 처한 인간이다.
- 위기는 마찬가지로 우리를, 우리의 고통과 희망 그리고 기도를 나아가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와 같은 식으로 대응할 때 아마도 고통은 가벼워질 것이다.
-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Frost의 말처럼 "유일한 탈출구는 통과하는 것이다." 그리고 통과하는 유일한 좋은 방법은 함께 하는 것이다. 심지어 상황이 우리를 갈라놓을지라도 - 사실 특히 그런 상황이 그렇게 할 때야말로- 통과하는 방법은 함께 하는 것이다.
전염병이 주는 두려움은 너무나도 크다. 그 두려움은 너무 커서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고, 결국 금새 주변을 삼켜버린다.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키고 극도로 이기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정답이 없는 세상일 중 하나인 이 전염병에 관해서도 우리가 취해야할 바른 태도는 있다. 함께 통과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세상과 동떨어져 혼자있는 외로움은 생각 이상으로 힘들었고 무엇으로든 간에 이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없을때 더 슬프고 쉬이 지치게 되었다. 전염성이란 부분은 연결고리를 끊어내고 마는 그런 것이라서 아비가 자식을 찾지 않고 자식도 부모를 모른척하게 하고 형제자매간에도 가족들간 단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긴 거리두기 기간동안 고립은 마음을 조금씩 황폐하게 만들었다. 이제 겨우 숨통이 좀 틔이나했더니 다시 재확산이란다. 그럼 이제는 방법의 변화를 찾아야 할 시간이 아닐까? 다르게 서로를 대하는 방법을 말이다. 그 위험성이 없어진다거나 하는 뜻이 아니지만 관계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가지는 인간들이 더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관계를 잘 맺어갈 수 있도록. 이 역병도 언젠가는 지나가고 인류는 이번역시 살아남을 것이다. 모두가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가는 삶이 되기를 희망하며, 그 희망에 나는 별 넷을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