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보급판 문고본) -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
틱낫한 지음, 최수민 옮김 / 명진출판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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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일에 찌들어 성격조차 변해간다고 느낄 때 틱낫한의 <화>라는 책을 추천한다. 나는 불교의 수행법은 종교적범위를 뛰어넘어 심신의 안정에 가장 큰 효과를 불러온다고 생각한다. 한때 잠깐 배웠던 위빠사나 수행법은 그당시 너무 힘들었던 나를 다시 생생하게 만들어주었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무엇보다 인생을 성찰하고 더 행복하게 사는 방법의 첫번째 과제다. 틱낫한은 화를 마치 우는 아기와 같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화라는 아기의 어머니이다.

이런 화를 달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호흡을 실천하며 돌보아주어야 아기는 편안해진다. 화도 내 몸의 일부분인 것을 명심하자.
음식 먹는 법도 달라져야 좋다. 천천히 음미하며 오래 씹어먹어야 몸 안에 화가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왕이면 화로 가득찬 음식인 고기를 피하고 밥 한 술을 먹더라도 오래오래 씹어야 온전히 내 몸에서 에너지로 모두 승화되어 독소를 줄인다. 

틱낫한은 바쁜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천천히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준다. 이를 통해 바깥으로부터 들어오는 독이 되는 자극을 줄이고 돌보는 방법을 하나하나 자상한 스승처럼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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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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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은 간소하고 세련된 디자인과 섹시한 작가들로 나의 지갑을 쉽게 열게 만드는 완소전집 중의 하나다.

전집소개가 들어있는 소책자를 보다가 책제목과 디자인에 순간 사로잡혀 급구매하여 급독서하게 만든 책 중 하나. <모래의 여자>

 

이 책은 그야말로 하나의 머릿속에 갇혀있는 상징체계의 형상화라고 평할 수 있겠다.

 

한 남자가 곤충채집을 떠났다가 여자 혼자 사는 모래 구덩이에 갇히게 된다. 그때부터 흘러내리는 모래에 집이 파묻혀 버리지 않도록, 그는 매일매일 삽질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은근히 섬득한 여자에게 성적으로 끌릴만도 하지만 모래를 퍼올려야 하는 그 중노동과 갇혀있다는 압박감, 모래에 대한 역겨움 때문에 처음에는 여자를 증오하면서도 빠져들게 된다.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있는 여자와 그 곳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노동에 대한 지겨움은 남자를 하루하루 억누른다.

 

내용에 대한 생경함은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나에게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지고 있었다. 아, 이 작가 대단하구나. 이름도 멋지군. 아베 코보.

 

이 책은 인간(특히 남성)의 노동에 대한 시각이 자주 드러나는데 이런 것이다. 구덩이에 사는 여자와는 전혀 다르다.

 



"그렇지만, 어디 이래서야 오로지 모래를 치우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꼴이잖소!"



"야반도주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60년대에 쓰여지 이 소설은 여성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감을 갖고 있는 그 당시 남자들의 시각을 투영한 듯하다.

 

"아니 뭐, 부인한테만 화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고.... 이렇게 해서 한 사람의 인간에게 족쇄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 그 배짱이 마음에 안 들어. 이해할 수 있겠지? 아니 못해도 상관없고. 내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해주지.... 이전에 내가 하숙을 하던 집에서 별 볼일 없는 잡종 개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는데.... 얼마나 털이 많은지, 여름이 되어도 털갈이를 안 하는 거야....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고 답답해서 털을 싹 깎아주기로 하나 거야......그런데 털을 다 깎아내고 막 버리려고 하자, 그 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털 뭉텅이를 물고 자기 집으로 뛰어들어가는 거야... 털 뭉텅이가 자기 몸의 일부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되어, 헤어지기가 섭섭했던 거겠지."

 

"뭐, 좋아..... 인간은 각자 타인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신조라는 것을 갖고 있으니까... 모래를 쓸어내리든 뭘 하든, 멋대로 해보시라고. 하지만 나는 절대로 참을 수 없어. 이제 신물이 난다고! 아무튼 나는 여기를 떠나겠어. 허술히 보면 안 되지..... 마음만 먹으면, 여기서 도망치는 것쯤 문제 없으니까 말이야...."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모래를 퍼내는 노동에 대한 이야기와 여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 등은 매우 구체적으로 진행되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한편 남자가 모래에 대해 처음부분에 백과사전에서 과학적인 부분을 찾아 읽는 부분에서 신기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건 매우 기묘한 이야기인데, 즉 에노시마 해변에 있는 모래든 고비 사막에 있는 모래든, 그 알갱이의 크기는 거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1/8mm 크기를 중심으로거의 가우스의 오차곡선에 가까운 커브를 그리며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상에 바람과 흐름이 있는 이상 모래의 이동은 끝이 없다. 모래는 절대로 쉬지 않는다.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지표를 덮고 멸망시킨다.

 

모래구덩이와 여자는 남자에게서 속박과 멸망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여자와의 성관계는 마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남자는 이 여자에게 느끼는 성애를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물론 그 역시 순수한 성관계를 꿈꿀 만큼 낭만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아마도 죽음을 향해 어금니를 드러낼 때나 필요한 것이다.... 시들어가는 조릿대는 서둘러 열매를 맺는다.... 굶주린 쥐는 이동하면서 피투성이의 성교를 반복한다..... 결핵 환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섹스에 몰두한다.... 그 다음에는 계단에서 내려오는 수밖에 없다...... 탑의 꼭대기에 사는 왕이나 지배자는 오로지 할렘의 건설에 정열을 기울있다..... 적의 공격을 기다리는 군인들은 한시를 아까워하며 자위에 심취한다.....

 

어느부분에 있어 이 책도 영화화가 되었다지만 이런 장면들은 왠지 '감각의 제국'이 떠오른다. 흑백으로 만든 감각의 제국의 한 장면 같다고 해야할까. 일본의 강렬한 세 가지 색에 나는 열광한다. 피같은 일본전통의상의 붉은색, 하얗게 쌓인 눈의 흰색, 그리고 일본여자의 검은 머리색. 이런 세 가지 색깔의 이미지가 이 책에서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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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9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0 09: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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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훔친 남자
후안 호세 미야스 지음, 고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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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함께 살다보면 닮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어떤 과학실험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서로의 유전자가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노인이 될 때까지 함께 산 부부의 유전자를 조사해보면 거의 99% 이상이 일치한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다른 성격끼리 잘 맞는다라는 말은 어째 틀린 말 같다.

 

멋진 소설 속 어느 커플이 있다. 라우라와 훌리오라는 부부다.

이들은 옆집에 사는 마누엘이라는 남자와 셋이 친해지게 된다. 마누엘은 이 커플에게 한 가지 명제를 던진다.

"두 사람 꼭 남매 같아요."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이지만 사실 훌리오(남편)는 자신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남성인 마누엘을 싫어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날 마누엘이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게 되고, 훌리오는 아내에게 버림 받고 우연히 바로 옆집인 마누엘의 집에 들어가 그의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겉으로 화려하고 예술가를 가장한 무직인 그의 모습에 못마땅해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 모습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

그의 컴퓨터를 쓰면서 사실 자신의 부인인 라우라와 마누엘이 연인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의 부인은 이메일로 남편이 아닌 마누엘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고백을 한다. 

옆집에서 유령처럼, 그림자처럼 그의 옷을 입고 옆에서 널어놓은 자신의 부인의 속옷을 훔치기도 하며 그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시작하며 자신의 자아에 대해 확실히 깨닫게 된다.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부인의 매력도, 그녀가 왜 공허감을 느끼게 되었는지도 마누엘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알게 된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간다. 그는 자신에게 없던 부분을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없었던 현실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감도 갖는다.

 

여러가지 일이 있은 후, 그는 자신의 부인에게 다시 돌아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한다.

아이를 키우려면 대단한 이상도 필요하지만 또한 명확하고 분명하며 현실적인 일들도 필요한 법이라며.

 

이 소설은 스토리 구성이나 사건들이 상징적인 요소들로 정확하게 구조를 이루는 흥미로운 스페인소설이다.

플라네타 상, 나달 상, 프리마벨라 상 등 스페인어권의 주요문학상을 수상한 후한 호세 미야스의 소설이기도 하다.

내가 남미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소설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설정은 비현실적이지만, 동시에 정확한 현실의 상징을 그대로 작품 속으로 가져온다.

 

가령 우리가 거울을 보는 이유는 자신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 보는 방법이 있다. 바로 주변의 타인에게서 자신과의 다른 점과 같은 점을 찾는 것이다. 그럼 좀더 객관적인 시점으로 자신의 요소들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 이 소설은 대칭적 공간에서의 대칭적 자아의 정체성문제를 불륜이라는 에로틱한 관계로 풀어나간다.

 

간만에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지닌 작품을 하나 건졌다.

자신있게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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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만찬 - 공선옥 음식 산문집
공선옥 지음 / 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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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작가의 글은 무엇보다 쫄깃하게 끌어당기는 맛이 있다. 이 책 어떤 부분을 펼쳐읽어도 소박한 음식들에서 어릴적 보릿고개 얘기부터 현대의 어머니 모습들까지 술술 맛있게도 풀어낸다. 

 

어쩜 이리도 글솜씨가 좋을까.

아니 어쩌면 말솜씨가 좋아서 이렇게 글을 잘 쓸까?

 

하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원래 말은 잘 못하거나 아예 조용한 사람들이 많은데... 말투에서부터 정말 쫄깃하게 무슨 말을 하든 재밌게 풀어내는 작가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분명 무기력한 공무원같은 꼰대선생님들과는 다르게 어려운 내용을 가르칠 때도 진정 몇 십 명의 아이들의 이목을 끄는 선생님의 말투가 생각나는 글이었다.

 

수업시간 오십분이 언제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듣는 선생님의 옛날 이야기 느낌이랄까.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음식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배에서 나는 꼬르륵소리 때문에 살짝 괴롭긴 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 안에 있는 음식사진들. 음....ㅡㅠㅡ

그 테러샷들....!! 으읔. 간만에 나는 오늘 고구마를 쩌먹고 말 것 같다.

 

이렇게 좋은 글을 읽게 해주는 한국의 작가들이 있어 촌스럽지만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안타까운 것은 이 사투리 섞인 쫄깃한 문장들을 영어로 옮기면 그냥 단순해진다는 것. 흠. 읽다가 자꾸 소리내서 따라하게되는 이 귀여운 사투리들을 영어로 옮기는 방법은 없을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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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의(靑衣)
비페이위 지음, 김은신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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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페이위라는 중국의 작가. 이 분 위화의 느낌이 난다. 그보다 중후하다. 이런 멋진 굵은 선을 가진 이야기가 재밌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는 이를 해냈다. 중국에서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는 청의는 내가 좋아하는 멋진 중국영화를 많이 닮았다. 장이모 감독의 <인생>이나 장국영이 나왔던 <패왕별희>를 섞어놓은 느낌이라고 설명하면 분위기가 좀 설명이 될까.

 

한 여배우가 있다. 그녀는 젊을 때부터 한 경극의 주인공 '청의' (청의란 경극에서 보통 주인공인 귀부인들이 입는 옷을 말하지만 보통 그  높고 중후한 음역의 배우 역할을 가리킨다)에 대한 야망이 커서 오히려 문제를 일으킬 정도였다. 자신과 경쟁상대였던 선배의 얼굴에 뜨거운 물을 부어 화상을 입힌 것이다. 그리고 몇 년 후 그 경극은 돈많은 투자자에 의해 다시 공연할 수 있게 되고 그녀는 너무 기쁜 나머지 남편과의 잠자리를 그날밤 갖는다. 그런데 덜컥, 임신이 되어버린 것. 여자의 인생이 그런 것일까. 스스로 낙태를 선택한 그녀는 점점 그 역할에 광적으로 집착하며 파멸로 나아간다.

 

대사 한마다 한마디, 공간과 인물의 성격 묘사 구절구절이 나에게 파고 들었다. 야망과 질투 때문에 괴로운 사람이 읽으면 마음에 안정이 될 것 같다. 역시 자신이 짐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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