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에게 피어싱
가네하라 히토미 지음, 정유리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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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게 피어싱 - - 바닥까지소비하기

 

도서관에서 부평까지 오는 데 읽을 책을 후딱 5초만에 골랐다.

 

일본 소설들은 대체적으로 실패하는 법이 없으므로 나는 일본 문학 서재쪽으로 갔다. 야마다 에이미의 말랑말랑한 연애소설이나 읽으면서 더위를 식혀보려고 했지만 내가 찾으려는 그 책은 없었다. 대신 나의 눈에 들어온 건 작년부터 읽으려 했던 가네하라 히토미의 <뱀에게 피어싱>.

 

2004년 아쿠타가와 상을 받아서 작년 그무렵 신문에 그녀의 인터뷰가 아주 크게 나왔었다. 83년생으로 나보다 딱 한 살 어리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학교에 가지않았고 그때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단다. 신문에 크게 실렸던 컬러사진에 그녀는 내가 보기에도 약간 얌전한 갸르-시커멓게 태닝하고 노랗게 염색한 약간 가벼워보이는 섹시녀-였다. 게다가 가와이~ ^0^하기까지 했다. 사실 난 무엇보다 비주얼이 멋진 사람들이 좋다.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이쁘거나 개성 강하면 그 소설이 읽고 싶어진다. 암튼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되긴 했었다. 게다가 난 일본 소설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편인데다가 이렇게 가와이하고 어린 여자애가 아쿠타가와라니... 놀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건 히라노게이치로가 상받았을 때보다 더 놀라웠다. 그래도 그는 똑같이 어렸지만 동경대 법학부의 수재라는 공인받은 천재였지 않은가.

 

아쿠타가와 심사위원들은 대단하다. 무라카미 류가 가네하라 히토미를 팍팍 밀어서 수상하게 됐다는 뒷이야기는 둘째치고 이렇게 가벼워보이는 소설에 수상을 해준 그들이 대단했다. 어쩌면 갸르종족이 소설을 쓰면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던게다. 외모나 자신이 속한 부류의 개성여부가 성공에 미치는 요인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문제는 이 책을 집으로 오는 한 시간 반만에 꿀~꺽 아주 맛있게 다 보았다는 점인데...역시나 어린 감성과 엽기적인 사건들, 아주 세세한 SM섹스신이 있어서 그랬다는 것은 인정한다. 버스에서는 내 위에 있는 사람이 이 책을 볼까봐 아주 조금 펼치고 봤다는...ㅋㅋ 이 개방적인 다다가 부끄러워할 정도로 아주 끈적한 간만에 보는 묘사였다. SM이라서 그런가...아...간만에 지대루였다. ㅋ 

 

아무튼 그것을 빼고도 심리묘사의 흐름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구나...아...아...하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던 것이다. 

 

혀를 뱀처럼 갈라지게 만드는 피어싱을 하고 두 남자와 번갈아가면서 다른 섹스를 하고 자신이 알콜중독인지도 모르고 밥대신 술만 마시며 직장도 없고 돈도 벌지 않고 살인자인 애인과 동거를 하며 자기도 모르는 사랑을 느껴가는 그 여자. 아주 작은 그 여자.

 

나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었지만 그 여자가 갖고 있는 심정은 십분 이해가 갔다. 그리고 문제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의 내부에 숨겨놓은 타락 혹은 퇴폐본능(?)이 꾸물꾸물 올라와 미쳐버릴 것 같다는 점이었다. 난 보다시피 생긴 것 자체가 퇴폐적이거나 타락적인 행동을 할 수가 없다. 뭐 뉘집 맏며느리하면 딱 좋을만한 새댁인상인걸 나도 인정한다. (버럭!! 난 왜 이렇게 생긴거지?!) 

 

그래서인지 완전 퇴폐적으로 옷을 입거나 피어싱을 하고 매일 술을 마시고 자기중심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혹은 알고 싶지도 않아하는 까만 그녀들이 부러웠다. 내가 가지지 못한 그 두가지 극단점. 아주 고귀하거나 아니면 아주 퇴폐적이고 펑크적이어서 예술적인 그런 극단 인간들. 절대 나는 그렇게 될 수가 없다. 그렇게 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내가 그렇게 되기가 싫어서다. ㅎㅎ

 

모순이라고? 아니다. 부러워하는 것과 따라하고 싶은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내가 정한 길은 따로 있다. 나에게 맞는 길은 그 사이사이에 분명히 존재해있고 그녀들은 그저 다른 길의 성공적인 캐릭터일 뿐이라는 것. 살면서 가끔씩 타인들의 삶이 너무나 다양하고 특이해서 눈요기가 될 수는 있다는 것이다.

 

펑크족과 갸르, 히피, 예술가 등등 뭐 이런 것들은 구경하기에 딱 좋은 것들이다. 난 사실 그런 삶을 증오하기까지 한다. 한 때의 타락하고 싶어하거나 일탈하고 싶은 그런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런 생활은 쾌적하지가 않다. 한마디로 혼란스럽다. 잠깐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그런 조짐만 보이면 나는 겁이 더럭 났다. 나는 그런 삶을 가장 두려워한다. 지방 여인숙의 아주 오래된 쑥색 목욕탕 타일같은 느낌이라 그렇다. 딱딱하고 역겨운 사람들이 나에게 시비를 걸어서 그렇다.  

 

나는 여피가 좋다. 안이 썩었든 골았든 겉만 깨끗하고 하얀 명품 정장과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여피. 자기 일에서 성공한 여피. 안정된 수입과 깨끗한 가정이 존재하고 섹시하고 세련된 친구들이 많은 여피. ㅋㅋㅋ 내가 그것들을 만들 수 있을진 몰라도 짜가 반쪽짜리 여피 흉내는 그럭저럭 낼 수 있을 것 같다. 흉내만 내도 세상의 바보들은 내 앞에서 설설긴다. 그게 편한 것이다.  

 

다 숨기고 살아가는 건 그럭저럭 쉽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이나 그 주변 인물들은 너무 많은 것을 내보이고 산다. 온 몸의 문신과 자해흉터, 피어싱으로 인한 뱀 혀와 같은 스플릿 텅, 빨갛고 노란 머리, 가까이 가기 어려울만큼의 많은 얼굴의 피어스들. 

 

그들은 일부러 삶을 힘들게 살려고 바둥거리는 인생들 같다. 차라리 나처럼 더러운 것들 안으로 숨기고 겉만 반지르르하게 싸서 편하게 살려는 인간들보다 훨씬 인생을 제대로 소비하는 종족이다.

 

그렇게 연애를 하든 피어스를 하든 술을 마시든 그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방식으로 제.대.로 이행한다. 바닥까지 한가닥의 자신도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소비한다. 그렇게 완전히 삶을 사용한다. 그게 건강에 좋지 않든 더럽든 사람들이 멀리하든 그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그게 부러웠던 게다. 겁없는 그들. 완전한 자유. 가장 위험한 것은 자유인데 그것을 알고도 자신을 던질 수 있는 대범함. 난 그게 없다. 난 완전한 보수주의자다. 그저 편하게 살길 원하는 거다. 그러니까 이렇게 지루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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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27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주문하고 집에 도착하는 순간 동생이 들고 자기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저도 우연히 이 책에 대한 소문을 듣고 주문한 것이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면서 가슴이 아려 오는군요. ㅜ.ㅜ 저도 보고싶어요~~!!

dada 2007-09-30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또 사서 보세요. 진짜 재밌답니다. 근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난 좋은데. 이런 막가는 쎈 소설. ^^ 그냥 막가는 게 아니라 완성도도 있으니까 꼭 보세요!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