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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훔친 남자
후안 호세 미야스 지음, 고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부부는 함께 살다보면 닮는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어떤 과학실험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서로의 유전자가 비슷한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노인이 될 때까지 함께 산 부부의 유전자를 조사해보면 거의 99% 이상이 일치한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말이다.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다른 성격끼리 잘 맞는다라는 말은 어째 틀린 말 같다.
멋진 소설 속 어느 커플이 있다. 라우라와 훌리오라는 부부다.
이들은 옆집에 사는 마누엘이라는 남자와 셋이 친해지게 된다. 마누엘은 이 커플에게 한 가지 명제를 던진다.
"두 사람 꼭 남매 같아요."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이지만 사실 훌리오(남편)는 자신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남성인 마누엘을 싫어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날 마누엘이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게 되고, 훌리오는 아내에게 버림 받고 우연히 바로 옆집인 마누엘의 집에 들어가 그의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겉으로 화려하고 예술가를 가장한 무직인 그의 모습에 못마땅해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 모습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
그의 컴퓨터를 쓰면서 사실 자신의 부인인 라우라와 마누엘이 연인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의 부인은 이메일로 남편이 아닌 마누엘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고백을 한다.
옆집에서 유령처럼, 그림자처럼 그의 옷을 입고 옆에서 널어놓은 자신의 부인의 속옷을 훔치기도 하며 그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시작하며 자신의 자아에 대해 확실히 깨닫게 된다.
일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부인의 매력도, 그녀가 왜 공허감을 느끼게 되었는지도 마누엘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알게 된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간다. 그는 자신에게 없던 부분을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그에게 없었던 현실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감도 갖는다.
여러가지 일이 있은 후, 그는 자신의 부인에게 다시 돌아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한다.
아이를 키우려면 대단한 이상도 필요하지만 또한 명확하고 분명하며 현실적인 일들도 필요한 법이라며.
이 소설은 스토리 구성이나 사건들이 상징적인 요소들로 정확하게 구조를 이루는 흥미로운 스페인소설이다.
플라네타 상, 나달 상, 프리마벨라 상 등 스페인어권의 주요문학상을 수상한 후한 호세 미야스의 소설이기도 하다.
내가 남미영화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소설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설정은 비현실적이지만, 동시에 정확한 현실의 상징을 그대로 작품 속으로 가져온다.
가령 우리가 거울을 보는 이유는 자신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 보는 방법이 있다. 바로 주변의 타인에게서 자신과의 다른 점과 같은 점을 찾는 것이다. 그럼 좀더 객관적인 시점으로 자신의 요소들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 이 소설은 대칭적 공간에서의 대칭적 자아의 정체성문제를 불륜이라는 에로틱한 관계로 풀어나간다.
간만에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지닌 작품을 하나 건졌다.
자신있게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