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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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은 간소하고 세련된 디자인과 섹시한 작가들로 나의 지갑을 쉽게 열게 만드는 완소전집 중의 하나다.

전집소개가 들어있는 소책자를 보다가 책제목과 디자인에 순간 사로잡혀 급구매하여 급독서하게 만든 책 중 하나. <모래의 여자>

 

이 책은 그야말로 하나의 머릿속에 갇혀있는 상징체계의 형상화라고 평할 수 있겠다.

 

한 남자가 곤충채집을 떠났다가 여자 혼자 사는 모래 구덩이에 갇히게 된다. 그때부터 흘러내리는 모래에 집이 파묻혀 버리지 않도록, 그는 매일매일 삽질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은근히 섬득한 여자에게 성적으로 끌릴만도 하지만 모래를 퍼올려야 하는 그 중노동과 갇혀있다는 압박감, 모래에 대한 역겨움 때문에 처음에는 여자를 증오하면서도 빠져들게 된다.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있는 여자와 그 곳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노동에 대한 지겨움은 남자를 하루하루 억누른다.

 

내용에 대한 생경함은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나에게 더 큰 매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려지고 있었다. 아, 이 작가 대단하구나. 이름도 멋지군. 아베 코보.

 

이 책은 인간(특히 남성)의 노동에 대한 시각이 자주 드러나는데 이런 것이다. 구덩이에 사는 여자와는 전혀 다르다.

 



"그렇지만, 어디 이래서야 오로지 모래를 치우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꼴이잖소!"



"야반도주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60년대에 쓰여지 이 소설은 여성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감을 갖고 있는 그 당시 남자들의 시각을 투영한 듯하다.

 

"아니 뭐, 부인한테만 화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니고.... 이렇게 해서 한 사람의 인간에게 족쇄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 그 배짱이 마음에 안 들어. 이해할 수 있겠지? 아니 못해도 상관없고. 내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해주지.... 이전에 내가 하숙을 하던 집에서 별 볼일 없는 잡종 개를 한 마리 키우고 있었는데.... 얼마나 털이 많은지, 여름이 되어도 털갈이를 안 하는 거야....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고 답답해서 털을 싹 깎아주기로 하나 거야......그런데 털을 다 깎아내고 막 버리려고 하자, 그 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털 뭉텅이를 물고 자기 집으로 뛰어들어가는 거야... 털 뭉텅이가 자기 몸의 일부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되어, 헤어지기가 섭섭했던 거겠지."

 

"뭐, 좋아..... 인간은 각자 타인에게는 통용되지 않는 신조라는 것을 갖고 있으니까... 모래를 쓸어내리든 뭘 하든, 멋대로 해보시라고. 하지만 나는 절대로 참을 수 없어. 이제 신물이 난다고! 아무튼 나는 여기를 떠나겠어. 허술히 보면 안 되지..... 마음만 먹으면, 여기서 도망치는 것쯤 문제 없으니까 말이야...."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모래를 퍼내는 노동에 대한 이야기와 여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 등은 매우 구체적으로 진행되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한편 남자가 모래에 대해 처음부분에 백과사전에서 과학적인 부분을 찾아 읽는 부분에서 신기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건 매우 기묘한 이야기인데, 즉 에노시마 해변에 있는 모래든 고비 사막에 있는 모래든, 그 알갱이의 크기는 거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1/8mm 크기를 중심으로거의 가우스의 오차곡선에 가까운 커브를 그리며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상에 바람과 흐름이 있는 이상 모래의 이동은 끝이 없다. 모래는 절대로 쉬지 않는다.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지표를 덮고 멸망시킨다.

 

모래구덩이와 여자는 남자에게서 속박과 멸망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여자와의 성관계는 마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남자는 이 여자에게 느끼는 성애를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물론 그 역시 순수한 성관계를 꿈꿀 만큼 낭만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아마도 죽음을 향해 어금니를 드러낼 때나 필요한 것이다.... 시들어가는 조릿대는 서둘러 열매를 맺는다.... 굶주린 쥐는 이동하면서 피투성이의 성교를 반복한다..... 결핵 환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섹스에 몰두한다.... 그 다음에는 계단에서 내려오는 수밖에 없다...... 탑의 꼭대기에 사는 왕이나 지배자는 오로지 할렘의 건설에 정열을 기울있다..... 적의 공격을 기다리는 군인들은 한시를 아까워하며 자위에 심취한다.....

 

어느부분에 있어 이 책도 영화화가 되었다지만 이런 장면들은 왠지 '감각의 제국'이 떠오른다. 흑백으로 만든 감각의 제국의 한 장면 같다고 해야할까. 일본의 강렬한 세 가지 색에 나는 열광한다. 피같은 일본전통의상의 붉은색, 하얗게 쌓인 눈의 흰색, 그리고 일본여자의 검은 머리색. 이런 세 가지 색깔의 이미지가 이 책에서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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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9 17: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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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0 09: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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