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인 ‘나의 어여쁜 자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남녀 간에 나누는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 구약성경 아가서에 나오는 말*
제가 종교에 대해 공부를 할수록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동안 희미해져가는 중요한 가치들의 안타까움에 대해서요. 종교를 떠나서, 이 가치는 인류에게 정말 옳은 것인데 어째서 사회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답답할 때가 많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 분위기를 보면 큰 상심이 밀려옵니다. 포괄적 차별 금지법, 텔레그램 n번방, 모 연예인의 단톡방, 미투 운동 등...... ‘성’과 관련된 화두가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성교육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막기 위해 조심하면 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받은 성교육은 학교에서 낙태 비디오를 보고 충격 받은 기억이 전부였고요.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성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느꼈습니다.
엄마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들의 성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노래방이나 계단에서 임신한 초등학생, 친구나 후배를 성폭행한 학생, 청소년 동성애......
대화의 마지막에는 우리 자녀들이라도 성교육을 잘 시키자고 다짐 하는데요. 막상 성교육을 하려고 하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혼란스럽습니다.
얼마 전 서점에 가서 성교육 관련 도서를 찾다가 적나라한 그림과 내용에 경악 했습니다. 엄마와 아빠의 성기를 모두 노출한 성관계 그림이 아이들의 동화책에 실려 있었습니다.
어제 나온 기사에는 여성가족부가 초등학교에 동성애를 미화, 조장하고 남녀의 성관계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책을 배포했더군요.
학교에서 이런 성교육을 받는 아이들에게 엄마인 저는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요?
이대로 공교육만 믿고 따라도 괜찮을까요?
이 시기에 마침 두란노에서 나온 ‘디지털 세대를 위한 성경적 성교육’ 시리즈를 만났습니다. 저자 김지연씨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성경적 성가치관을 교육하는 분입니다.
제가 읽은 것은 ‘나의 어여쁜 자야 - 아름다운 남녀 창조편’인데요. 처음에는 책장을 넘기면서 ‘도대체 성교육은 언제 나오지?’라는 물음을 가졌습니다. 제 머릿속에 성교육은 ‘남녀의 육체 결합에 대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기 때문이죠.
성교육은 그런 단편적인 지식을 전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책을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이 책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왜 다른지에 대해 나옵니다. 진정한 성교육의 초석은 하나님이 남녀를 다르게 만드신 이유로부터 나옵니다.
피임과 콘돔, 자기 성적 결정권을 이야기 하는 성교육, 남녀의 생식기의 명칭과 차이만 설명하고 끝나는 성교육이 이 책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성 차이에 대한 고귀한 인식이 생기고, 어떻게 성교육을 해야 할 것인가 정답을 찾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남녀 창조’의 편에는 남녀의 성별이 나뉜 이유와 자신에게 주어진 성을 존중해야 할 이유가 담겨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장기의 크기나 기능도 다르고 6000개가 넘는 유전자에도 서로 다른 표식이 있다고 합니다.
남녀의 차이점을 고려하지 않고 병을 치료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생깁니다.(작가가 약사 출신이라서 의학 지식이 풍부함) 그러니 성전환 수술을 해서 외형을 바꿔도 완전히 다른 성별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남녀를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그 차이는 상호 보완적입니다. 남자가 유리한 것이 있고 여자가 유리한 것이 있는데, 둘이 합쳐지면 시너지 효과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삼위일체로 계시듯,
남성과 여성은 ‘둘’이 ‘한’ 몸을 이루는 일체적 자아가 되었다.
이렇게 일체화된 남녀, 즉 부부는 혼자서는 뿜어낼 수 없는
강력한 지혜와 추진력을 탑재하게 되며 생명력으로 중무장 하게 된다. -125p-“
그러나 자기의 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TV에도 성전환 수술을 한 연예인이나 동성애자들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아이들이 이들의 선택을 멋지게 본다는 것, 자신들도 그래도 된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공교육에서도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가르칩니다. 이 말은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결정한다는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이런 교육 때문에 반대 성별로 교체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미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는 결여된 채, 스스로 결정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좋은 교육법이 아닌 것 같아요.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거울을 보고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바라보아요. 세상에 딱 하나뿐인 위대한 가치가 비춰집니다. 모두가 멸시해도 오직 나만은 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고 거부하는데, 그 어떤 이가 진정 나를 사랑해 줄까요?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이니까, 그래서 내 몸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어째서 있는 그대로의 ‘나’는 바꾸고 싶어 하나요?
인간의 타락은 성적 무질서와 맞닿아 있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가는 곧 동성애나 성전환이 유행처럼 번지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동성애를 금지하는 선이 사라지고, 성전환의 선이 사라지고, 그 다음은 어떤 선이 사라질까요? 아동, 근친, 짐승과의 성적 행동도 성적 자기 결정권과 취향이라는 이유로 묵인되지 않을까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사회 아닌가요?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은 과연 자신에게만 영향을 끼칠까요? 그 선택으로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혼란스러워 지기도 합니다. 올림픽에서 성전환 수술을 한 남자가 여자들과 경기를 하면 과연 이 상황이 공정할까요?
이러한 문제가 올림픽에서만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경찰, 소방관 등 체력이 중요한 직업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트랜스젠더 차별 금지법 때문에 머지않아 이런 문제가 화두가 될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들어서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상황에 처한 이들을 백번 이해한다고 해도, 사회적 인식에서는! 공교육에서는! 이것을 당연한 분위기로 몰아가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당연시 되는 사회라면, 오늘은 여자 목욕탕을 가고 내일은 남자 목욕탕을 가도 되나요?
책에 등장하는 사례를 보면, 네델란드의 한 남자는 자신의 나이를 20년 낮춰 달라고 소송을 냈다고 해요. 성 정체성에 따른 성 전환을 인정하는 시대이니 나이도 정체성에 근거해서 바꿔 달라고 한 거죠. 어떤 이는 자신이 사람이 아닌 개의 정체성을 가졌다고 하고, 어떤 흑인은 자신이 백인의 정체성을 가졌다고 주장했어요.
정말 중요한 가치가 희미해지면 이런 황당한 일들이 생겨난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알았습니다.
‘나의 어여쁜 자야’에서는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자신의 몸을 훼손한 사람들의 후회에 대해서도 다양한 사례를 보여 주는데요. 진짜 용기는 동성을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일이나, 위험한 성전환 수술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주위에 성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이들이 있다면 “절대 안 돼! 그건 옳지 않아!”라고 말해서 상처를 주는 것보다 이 책을 선물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성을 원망하는 분들께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육아 때문에 출근도 포기하고 잃은 것이 많다고 여기며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원망 했습니다. 남자로 태어난 남편이 부러웠죠.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여자인 저의 장점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저에게 이 성별을 주셔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사명을 맡겨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지금의 사회는 남녀평등을 중요하게 생각 하는데, 어떤 이들은 이것을 남녀의 차이는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 남녀평등’을 내세웁니다. 무조건적인 남녀평등보다 남녀관계의 회복이 더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남녀의 신체적 차이를 호르몬과 뇌구조까지 분석하고 다양한 실제 사례들로 설명합니다.
성경에 아내의 역할에 대해서 ‘돕는 베필’이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저도 이 말이 남성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서운했습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도 저자가 자세히 설명을 해줍니다.
남녀의 차이를 인식하고, 자신의 몸을 소중히 생각할 때 성정체성의 혼란도 막고, 조화로운 남녀 관계를 이룰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