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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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너희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이게 좋은 가정인지 모르겠는 거야.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더라. 혹시, 아무 생각도 없는 거, 그게 좋은 가정이라는 게 아닐까. 그냥 밥 먹고, 자고 가끔 외식하고 같이 텔레비전 보고, 싸우고 더러 지긋지긋 해다가 또 화해하고, 그런 거…. 누가 그러더라고. 집은 산악인으로 말하자면 베이스캠프라고 말이야. 튼튼하게 잘 있어야 하지만, 그게 목적일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그게 흔들거리면 산 정상에 올라갈 수도 없고. 날씨가 나쁘면 도로 내려와서 잠시 피해 있다가 다시 떠나는 곳, 그게 집이라고. 하지만 목적 그 자체는 아니라고. 그러나 그 목적을 위해서 결코 튼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라고. 삶은 충분히 비바람 치니까, 그럴 때 돌아와 쉴 만큼은 튼튼해야 한다고 …-p271』




이 책을 펼치고 한순간도 내 마음을 쉽게 놓을 수 없었다. 그저 남의 이야기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타인의 눈에 비친 우리 가족의 모습은 그저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누구나가 그렇듯 함께 울고 웃으며 일상을 나누는 남들보다 조금 더 특별한 의미의 관계로 보여 지게 마련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는 이토록 한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큰 힘을 실어주는 소중한 지렛대의 역할을 하게 되며 그런 사실을 우리는‘위녕’이라는 한 소녀의 눈으로 새롭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가끔은 모두에게 허락된 것이 내게는 특별한 바람이 되는 경우가 있다. 오순도순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 그것이 사춘기 소녀 위녕이에겐 누구보다 간절한 소망이지 않았을까. 어린 나이에 부모의 헤어짐으로 인해 겪어야 했을 마음의 짐과 상처를 누가 보듬어줄 수 있을까. 그 이별에 대한 타당한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을 어린 소녀 위녕. 그녀의 아픔은 사실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성이 다른 세 동생들 그리고 이혼의 아픔을 세 번씩이나 겪어야 했던 엄마를 위녕은 어떤 마음과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까. 만약 내가 그녀의 입장이라면?!




자신을 낳아준 엄마와 함께 보내며 위녕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족이라는 이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아빠와 새엄마에게서 받았던 상처뿐인 마음을 조금씩 치유해나간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이들을 만나가면서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나누게 되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지난 시간, 자신에게 있어 텅 빈 허울뿐이었던 가족의 빈자리를 조금씩 채워나가게 된다. 가족이란 이토록 함께 살을 맞대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관계이고 우리는 이 작지만 큰 관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를 다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엄마는 그걸 운명이라고 불러. 그걸 극복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걸 받아들이는 거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거야. 큰 파도가 일 때 배가 그 파도를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듯이, 마주 서서 가는 거야. 슬퍼해야지. 더 이상 슬퍼할 수 없을 때까지 슬퍼해야지. 원망해야지, 하늘에다 대고.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가 있어요! 하고 소리 질러야지. 목이 쉬어터질 때까지 소리 질러야지. 하지만 그러고 나서, 더 할 수 없을 때까지 실컷 그러고 나서...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말해야 해. 자, 이제 네 차례야. 하고..”-p178』




누구보다 그녀에겐 간절히 원하고 바래왔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벽,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더욱 가까워질 수 없었던 새엄마의 존재가 이 어린 소녀에겐 얼마나 버거웠을까. 그렇지만 누군가의 부재가 항상 악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아니리라. 이 모든 상황에 맞서 잘 이겨온 위녕이 얼마나 어른스럽던지. 성이 다른 동생들마저 잘 보살피고 이러한 사실을 언제 어디서든 더 당당히 밟히며 살아왔지 않은가.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이들 가족의 모습을 공지영 작가는 너무나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엄마는 가끔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처음에는 나는 그것이 남편이나 혹은 가장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엄마에게 돈도 많고 엄마의 책임을 나누어 져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아침 힘겨운 얼굴로 자고 있는 엄마를 보자 온몸으로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온몸으로, 온몸으로, 그리고 그것은 실은 나누어 질 수는 없는 종류의 것들이라는 것도 깨달아졌다. 엄마는 그렇게 엄마 몫의 삶을 지고, 나는 내 몫의 삶을 지고 가는 것, 아무리 사랑해도 각자가 지고 갈 짐을 다 들어줄 수는 없는 것, 그것이 인생일까. -p231』




우리는 눈앞에 보여 지는 현실만은 믿으려한다. 내가 겪은 일에 대해서만 인정하려하고 타인의 아픔에는 관심조차 두려하지 않는다. 그저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기 일쑤이며 사회의 잣대에 맞추어 그들을 평가하고 제2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이것이 정작 그들의 가슴에 뼈아픈 화살촉이 되어 더 큰 상처를 입힌다는 사실을 모른다. 가족이란 서로의 이해와 관심 그리고 사랑으로 하나 되는 관계이다. 고단하고 아픈 십대를 보내야했지만 그녀에겐 누구보다 그녀를 아끼고 친구처럼 때로는 언니처럼 함께 해준 엄마가 있었기에 행복했으리라.




『엄마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그 사람을, 엄마를 그토록 아프게 했던 그 사람을, 그 사람이 그렇게 하기 전에, 혹은 그렇게 하고 나서도, 엄마가 마음으로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헤어진다고 해서, 곁에 두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함께 있을 수 없지만, 멀리서라도 잘 되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그제야 엄마를 따라 내 마음도 아파졌다. - p186』




무엇보다 이 책은 작가 본인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작가의 말을 읽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사실이지만 그녀에게도 성이 다른 세 아이가 있다고 한다. 조금은 놀라운 이 사실을 스스럼없이 밝히며 이야기하는 작가의 담대함과 당당함이 오히려 더 책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정말 그녀가 위녕이라는 소녀의 눈을 통해 그리고 이 사회에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보니 더더욱 그렇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장기에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잘못이 누구에게 있든지 간에 위녕은 많은 감정 선을 잘 지키며 스무 살의 그 날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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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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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그대는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야.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게 되겠지. 우리는 또다시 고독하게 될 거야. 그렇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어. 거기엔 또다시 흘러버린 1년이라는 세월이 있을 뿐이야." 』




우연찮게 보게 된 영화, 그렇지만 내 기억 한편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다. 지체부자유인 한 장애인 소녀 조제와 보통의 평범한 대학생인 츠네오의 사랑을 담은 영화로 어떻게 보면 진부한 소재의 사랑이야기라 단정하기 쉽지만 이 영화를 만나본 이들이라면 이와는 정반대의 감흥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장애를 가진 조제는 자기 의지대로 어디 한군데도 맘 편히 움직여 다닐 수도 없어 할머니가 주워온 많은 헌책들을 품에 안은 채 그저 대부분의 일상을 자신의 방에서 보내게 된다.




이 영화 속 주인공 조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바로 프랑수아즈 사강이라고 한다. 작가의 이름이 왜 그토록 낯설게 느껴졌던 것일까. 뒤늦게 그녀의 글을 만나게 된 것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에서 절대적으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닐까한다. 여기에는 남녀 간의 사랑을 비롯해 가족, 친구, 동료 그 외 많은 관계에서의 사랑을 다 내포하고 있을 터, 무엇보다 사랑의 절대적 고독감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은 그 휴유증을  쉽게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떠나서는 살 수 없고 너와 나 사이에 감긴 따스한 체온을 벗어나서는 한순간조차도 제대로 숨을 쉴 수 없는 존재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자유가 좋다고 아무리 외친다한들, 그것은 어차피 한순간의 쾌락일 뿐이다. 뒤돌아서면 횡횡한 벽만이 내 앞에 있고 불현듯 고독이란 서글픈 현실이 눈앞에 서 있을 뿐이다. 각자의 주어진 삶을 온 열정과 의지를 다해 살아간다하더라도 가장 행복한 순간의 정점은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모든 것을 나눌 그 순간이리라.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많은 이들 또한 이처럼 다양한 관계 안에서 한때는 누군가를 정열적으로 사랑했고 또 분에 넘칠 만큼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다. 온전한 사랑의 지표가 무엇이라고 선뜻 이야기할 순 없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자신의 마음을 스스럼없이 드러냈고 사랑을 함으로써 치러야 할 대가로 아픔을 겪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사랑의 빛깔은 어느 순간 바래지고 말고 이런 변화에 목 놓아 울게 될지언정, 뒤돌아서면 또 사랑을 갈구하게 되는 것이 우리들이다. 사랑을 선택하는 순간 그 허망함마저도 끌어안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함께 인정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식의 사랑, 이것이 이 시대의 가장 현실적인 사랑법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사랑을 기다리고 사랑에 빠지는 순간만큼은 내가 혹은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고 만다는 이 보편적 진리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사랑은 이렇듯 우리에게 값진 경험을 가져다준다. 가슴이 아프고 쓰리고 그저 상대의 마음을 얻지 못해 애달플지라도 또한 이 순간의 사랑이 내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소유의 것이 될지라도 사랑은 모두에게 한순간의 충만함으로 자리할 것이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이렇듯 부정할 수 없는 사랑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이들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었고 매서운 겨울  바람이 느껴지는 이 때, 사랑이 가진 다양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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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여행을 멈추다 - 멈추는 순간 시작된 메이의 진짜 여행기
메이 지음 / 삼성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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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보석 같은 하루 24시간을 우리는 큰 변화 없이 똑같은 일과를 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이 시기에 가끔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현듯 찾아오는 일상의 단조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 자신의 메아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내 귓가에서 혹은 내 가슴 안에서 그토록 열망하는 무언의 메아리를. 이 울림에 귀 기울이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만나게 되는 것이리라.




인도라는 나라를 여행해 보지 않은 나로서는 저자의 여행담이 그저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고 수많은 나라들 중 왜 하필이면 인도를 택하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결코 이른 나이라고는 할 수없는 서른 두 살의 저자는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이 직업이 무색하지 않게 그녀는 자신이 직접 그린 그림을 통해 그가 만난 인도 사람들과 그 곳에서 경험했던 이야기를 짧은 형식을 들어 보여주고 이로써 독자들은 조금 더 친근하고 유쾌하게 인도를 느낄 수 있게 된다.




생각해보면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 그 동기를 부여해주는 것은 찰나의 시간인 것 같다. 아무리 수십 번 마음으로 생각하고 준비한다한들, 발걸음을 떼지 않으면 시간만 허송세월하는 일일 뿐. 진정한 도전의 출발은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이고, 그 과정 안에서 이전에는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삶의 다양성을 바라보게 되고 두렵기만 했던 외벽을 걷어낼 수 있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내 삶의 가장자리 안에 주어진 기회들을 혹여 보지 못하고 지나칠까봐 내 스스로 전전긍긍하고 또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간이 지날수록 이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이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저자가 안락함을 뒤로하고 피붙이 하나 없는 낯선 타지에서 마음을 열지 않으면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타지 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인도의 실상을 눈으로 보고 오히려 그들을 돕고자 발로 뛰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놀라웠고 그녀가 그 곳에 오래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나 역시 공감하게 되었다.




그 나라에서만 통용되는 예절과 삶의 방식을 그 곳에 머무르며 배우고 그들의 안타까운 현실에 가슴아파하고 또한 이를 변화시키고자 노력하는 그녀, 인도는 그녀에게 어떤 의미를 남기게 되었을까. 인도에 대해서 내가 아는 바는 협소한 지식뿐이었다. 억압적인 신분제도가 당연시 되듯 통용되고 있는 나라, 카스트 제도의 굴레로 인해 많은 이들은 아직까지도 고통 받고 있다는 것. 그녀가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제도는 족쇄나 다름없었다.




가끔 책을 통해 내가 쉽게 행할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많은 일들을 그저 묵묵히 해내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낯선 타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어줄 만큼 봉사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손발 벗고 척척 해내는 이들을 만날 때면 그저 놀랍고 또 같은 한국인으로써 자랑스럽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내겐 그런 존재로 다가왔다. 처음의 목적과 달리 그녀를 그 곳에 붙들어 놓은 것은 황소 눈만큼이나 순하고 착한 인도인들의 마음이었으리라. 인도에서 머문 시간은 그녀의 삶에 또 다른 시작을 부여하리라 믿는다. 언젠가는 나 또한 그러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은 없지만 그 날을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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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 지음, 말 워쇼 사진, 이진 옮김 / 이레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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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준비 없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경우에는 못 다한 일들이 남아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야말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겪어야 할 가장 큰 고통이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작별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를 내기도 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나면 우리는 엄청난 분노와 회환, 슬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그런 감정들을 잘 다스리지 않으면 남아 있는 사람들은 결코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고 나눔으로써 죄책감이나 두려움, 수치심을 버리고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p86』




우리는 저마다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린 그야말로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나의 자의로 인해 이 생애에 빛을 보게 된 것은 아니지만 수천 만분의 1확률을 뛰어넘는 경이로움을 가진 일이기에 항상 부여받은 삶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기나긴 삶의 매 순간을 살아가다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생의 막바지에 다다르게 되고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야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긴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한치 앞도 모르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지만, 그저 막연히 그 날을 맞닥뜨리는 것보다야 미리 그 날을 준비하며 더 없이 소중한 매일의 일상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은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까지 어떻게 살아갔는지 그 여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치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이들의 삶의 마지막 순간이 그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먼 훗날 내게도 찾아올 순간이기 때문이리라.




미처 준비도 하지 않았을 때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잠깐이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어지럽고 귀가 탁 막히고 심장이 멈추는 듯하다. 아무렇지 않게 묵묵히 받아들일 수는 없으리라. 그저 왜 하필 내가 이 슬픈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울 것이며 아무리 아니라고 발버둥을 치고 애써 부인하려해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그저 허망할 뿐일 것이다. 정신 의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은 이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남은 생애를 살아가려고 하는지 이 점에 초점을 맞춰 보여준다. 무엇보다 감추려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생생하게 전한다.




삶이란 이렇듯 누구에게는 매순간 깨어있고 싶은 순간이며 또 누구에게는 그저 지루한 공상의 나날일 뿐이다. 진정한 의미를 찾기까지 우리는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또 그 안에서 내가 진정 꿈꾸는 삶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삶에서는 무엇이 정답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 뒤로 물러서거나 침체되어 있지 않고 그들은 오히려 더 당당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랑하는 이들을 찾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꼈다.




죽음이 그저 허망하고 안타까운 순간이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이야기하려 하는 듯하다. 물론 그러한 긍정의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 만큼 더 살아있는 순간 나를 표현하고 더욱 나를 발전시키며 멋지게 살아가야 하리라. 탄생과 죽음은 어쩌면 대등한 관계에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순간 불현듯 일어나는 기적 같은 일, 그 놀라운 삶의 순간을 우리는 더욱 후회 없이 살아야 하리라. 마치 내일의 삶이 내게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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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 세상 모든 사랑의 시작과 끝
존 스펜스 지음, 송정은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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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영화 중 하나가 바로 오만과 편견이다. 우연히 본 이 영국 영화가 이토록 나의 마음을 녹일 줄이야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무척이나 흥미롭게 본데다가 주인공들의 연기 또한 출중하여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는 듯하다. 제인 오스틴, 그녀의 작품을 많이 접해온 것은 아니지만 단 한 작품을 통해서라도 누군가의 마음과 귀를 열었다면 이 또한 놀라운 능력이 아니겠는가. 더할 나위 없이 이 책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모두가 그러하듯 기회가 닿지 않는 한 쉽게 발설되지 않는 한 작가의 주관적인 삶의 모습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으리라.




그녀가 그려낸 수많은 인물과 계급 그리고 사회상을 넘어 이 책은 오로지‘제인 오스틴’ 이라는 이름을 가진 평범한 한 여자의 삶을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타인이 아닌 내가 주인공이 되는 일. 그녀의 가족사에서부터 함께 했던 친구들과 주변 지인들까지 그녀 또한 평범한 우리의 삶과 다를 바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너무나 평범한 그녀의 일상이 한편으론 놀랍고 또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녀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누구에게는 더없이 소중하지만 또 누구에게는 숨기고 싶은 존재일지도 모를, 가깝고도 먼 관계일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녀의 고조할아버지가 남긴 유산 상속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런 주관적인 삶의 원형은 그녀가 남긴 이야기의 모티브가 되어 우리에게 전해진 듯하다. 그저 하나로 단편화되어 있지 않은 인물상과 가족상 그리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모습까지 우리가 접해온 그간의 이야기들은 그녀의 삶의 한 부분일 수도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여기에는 그녀의 사랑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타인의 사랑을 그리는 것이 아닌, 제인 오스틴이 직접 경험한 사랑의 모습은 어떠할까. 이 부분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작가기에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도 보통의 이들 이상으로 풍부하고 감상적이지 않을까 상상했었지만 의외로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잠재우고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면면을 가진 듯하다. 오히려 더 담담하고 흔적 없이 한 사랑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타인을 온전히 내 품에 담고 있었다면 이 역시 사랑인 것이니까.




사랑이라는 소재는 어쩌면 우리가 이 생애에 태어나 죽는 그 순간까지도 그 영원성을 빛내고 있는 하나의 별이 아닐까 싶다. 비록 그녀의 삶은 40여년의 짧은 생애로 마감하였지만 그녀가 남기고 간 다양한 시대와 계급 안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인물들은 그녀가 살아있을 때 함께 했던 누군가였고 또 그녀 자신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이라는 한 인물에 대한 특별하다면 특별하고 평범하다면 평범한 하나의 전기라고 보면 좋을 듯하다.




그녀의 삶을 소설화한다면 어떨까. ‘비커밍 제인’이라는 영화 또한 그녀의 사랑을 매개체로 그려진 것이라고 하는데 조만간 한번 찾아봐야겠다. 허구와 상상의 조합으로 탄생된 예술도 좋지만 진실을 바탕으로 조금 더 내밀화된 이야기 또한 우리의 흥미를 이끌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본다. 제인 오스틴을 만나려면 이제는 그녀의 작품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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