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솔직히 너희에게 어떻게 해주어야 이게 좋은 가정인지 모르겠는 거야.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들더라. 혹시, 아무 생각도 없는 거, 그게 좋은 가정이라는 게 아닐까. 그냥 밥 먹고, 자고 가끔 외식하고 같이 텔레비전 보고, 싸우고 더러 지긋지긋 해다가 또 화해하고, 그런 거…. 누가 그러더라고. 집은 산악인으로 말하자면 베이스캠프라고 말이야. 튼튼하게 잘 있어야 하지만, 그게 목적일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그게 흔들거리면 산 정상에 올라갈 수도 없고. 날씨가 나쁘면 도로 내려와서 잠시 피해 있다가 다시 떠나는 곳, 그게 집이라고. 하지만 목적 그 자체는 아니라고. 그러나 그 목적을 위해서 결코 튼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라고. 삶은 충분히 비바람 치니까, 그럴 때 돌아와 쉴 만큼은 튼튼해야 한다고 …-p271』




이 책을 펼치고 한순간도 내 마음을 쉽게 놓을 수 없었다. 그저 남의 이야기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타인의 눈에 비친 우리 가족의 모습은 그저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누구나가 그렇듯 함께 울고 웃으며 일상을 나누는 남들보다 조금 더 특별한 의미의 관계로 보여 지게 마련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울타리는 이토록 한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큰 힘을 실어주는 소중한 지렛대의 역할을 하게 되며 그런 사실을 우리는‘위녕’이라는 한 소녀의 눈으로 새롭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가끔은 모두에게 허락된 것이 내게는 특별한 바람이 되는 경우가 있다. 오순도순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 모여 사는 것, 그것이 사춘기 소녀 위녕이에겐 누구보다 간절한 소망이지 않았을까. 어린 나이에 부모의 헤어짐으로 인해 겪어야 했을 마음의 짐과 상처를 누가 보듬어줄 수 있을까. 그 이별에 대한 타당한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을 어린 소녀 위녕. 그녀의 아픔은 사실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가슴이 아팠다. 성이 다른 세 동생들 그리고 이혼의 아픔을 세 번씩이나 겪어야 했던 엄마를 위녕은 어떤 마음과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을까. 만약 내가 그녀의 입장이라면?!




자신을 낳아준 엄마와 함께 보내며 위녕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족이라는 이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그리고 아빠와 새엄마에게서 받았던 상처뿐인 마음을 조금씩 치유해나간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이들을 만나가면서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나누게 되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지난 시간, 자신에게 있어 텅 빈 허울뿐이었던 가족의 빈자리를 조금씩 채워나가게 된다. 가족이란 이토록 함께 살을 맞대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관계이고 우리는 이 작지만 큰 관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아를 다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엄마는 그걸 운명이라고 불러. 그걸 극복하는 단 하나의 방법은 그걸 받아들이는 거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거야. 큰 파도가 일 때 배가 그 파도를 넘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듯이, 마주 서서 가는 거야. 슬퍼해야지. 더 이상 슬퍼할 수 없을 때까지 슬퍼해야지. 원망해야지, 하늘에다 대고. 어떻게 나한테 이러실 수가 있어요! 하고 소리 질러야지. 목이 쉬어터질 때까지 소리 질러야지. 하지만 그러고 나서, 더 할 수 없을 때까지 실컷 그러고 나서...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말해야 해. 자, 이제 네 차례야. 하고..”-p178』




누구보다 그녀에겐 간절히 원하고 바래왔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벽,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더욱 가까워질 수 없었던 새엄마의 존재가 이 어린 소녀에겐 얼마나 버거웠을까. 그렇지만 누군가의 부재가 항상 악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아니리라. 이 모든 상황에 맞서 잘 이겨온 위녕이 얼마나 어른스럽던지. 성이 다른 동생들마저 잘 보살피고 이러한 사실을 언제 어디서든 더 당당히 밟히며 살아왔지 않은가.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이들 가족의 모습을 공지영 작가는 너무나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엄마는 가끔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처음에는 나는 그것이 남편이나 혹은 가장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엄마에게 돈도 많고 엄마의 책임을 나누어 져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아침 힘겨운 얼굴로 자고 있는 엄마를 보자 온몸으로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온몸으로, 온몸으로, 그리고 그것은 실은 나누어 질 수는 없는 종류의 것들이라는 것도 깨달아졌다. 엄마는 그렇게 엄마 몫의 삶을 지고, 나는 내 몫의 삶을 지고 가는 것, 아무리 사랑해도 각자가 지고 갈 짐을 다 들어줄 수는 없는 것, 그것이 인생일까. -p231』




우리는 눈앞에 보여 지는 현실만은 믿으려한다. 내가 겪은 일에 대해서만 인정하려하고 타인의 아픔에는 관심조차 두려하지 않는다. 그저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기 일쑤이며 사회의 잣대에 맞추어 그들을 평가하고 제2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이것이 정작 그들의 가슴에 뼈아픈 화살촉이 되어 더 큰 상처를 입힌다는 사실을 모른다. 가족이란 서로의 이해와 관심 그리고 사랑으로 하나 되는 관계이다. 고단하고 아픈 십대를 보내야했지만 그녀에겐 누구보다 그녀를 아끼고 친구처럼 때로는 언니처럼 함께 해준 엄마가 있었기에 행복했으리라.




『엄마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그 사람을, 엄마를 그토록 아프게 했던 그 사람을, 그 사람이 그렇게 하기 전에, 혹은 그렇게 하고 나서도, 엄마가 마음으로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헤어진다고 해서, 곁에 두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함께 있을 수 없지만, 멀리서라도 잘 되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그제야 엄마를 따라 내 마음도 아파졌다. - p186』




무엇보다 이 책은 작가 본인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작가의 말을 읽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사실이지만 그녀에게도 성이 다른 세 아이가 있다고 한다. 조금은 놀라운 이 사실을 스스럼없이 밝히며 이야기하는 작가의 담대함과 당당함이 오히려 더 책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정말 그녀가 위녕이라는 소녀의 눈을 통해 그리고 이 사회에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보니 더더욱 그렇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장기에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잘못이 누구에게 있든지 간에 위녕은 많은 감정 선을 잘 지키며 스무 살의 그 날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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