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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평점 :
[선방일기] 1970년대 스님들 안거 엿보기
모든 스님이 선방을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선방만 다니는 스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그 살림살이가 자못 궁금했던 참에 마침 적당한 책을 발견했다.
금산사에서 템플스테이하며 긴 밤 읽어 내려갔다.
구도의 비장함과 의연함보다 식욕을 둘러싼 투쟁과 뒷방 권력 등의 선방생태 야사에 혹했고 이편저편 들 수 없는 선객의 끝장 논쟁에 끼여 머리도 좀 아팠고 조실스님의 서슬 퍼런 말들에 정신이 오롯해지기도 했다. 펄떡이는 진리에는 군말이 필요 없는 법이지만, 인간사에는 사는 맛이란 게 있고 일어나는 일이 있고 그건 선방도 마찬가지였다.
선객들은 나이, 학력, 출신 극과 극의 사람들이 모였다. 홍안에서 노안까지 팔도출신에다가 학력은 전무하거나 고학력이거나. 거기에도 유유상종이 있고 모순의 극한에서 ‘조화’를 엿보는 맛이랄까.
흔적 없는 필자가 남긴 40년 전 선방풍경의 부활
<선방일기>는 1973년 <신동아>에 연재된 글로 지허스님이 1970년대 상원사에서 동안거하며 적은 선방생활기록이다. 23개 에피소드를 고증한 삽화가 선방풍경을 더욱 정겹게 한다. 73년 이후 두 번이나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후학들과 일반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으나, 정작 필자인 지허스님의 흔적과 행적은 묘연하다고.
동안거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옛 선방 사료로도 가치 있다는데, 김장울력으로 시작해 산사의 겨울채비, 결제, 소임, 선방 생태, 포살, 선방 풍속, 유물과 유심의 논쟁, 본능과 선객, 올깨끼와 늦깨끼. 병든 스님. 마음의 병이 깊은 스님, 별식의 막간, 스님의 위선, 해제 그리고 회자정리로 이어진다.
김장과 메주 쑤는 울력(단체노동)은 필히 선객이 해야 할 일.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는 회의 ‘공사(公事)’ 를 통해 울력(단체노동)과 초하루에 먹는 별식(간식), 산문출송(쫒아냄)에 이르기까지 결정된다고 한다.
36명의 선객들은 결제기간동안 각각의 소임도 맡는다. 차담당, 타종담당, 채소밭담당, 식수담당, 불담당, 땔감 담당.
일상생활을 떠난, 수행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선방생태, 선승들 욕망과의 사투
선방생활은 3가지가 부족하다. 먹을 것, 입을 것, 잠. 한마디로 ‘욕망’과의 싸움이다. 1970년대니 그 고초는 더했을 것.
그중에서도 식탐. 자물쇠는 끊어서라도 감자하나 먹겠다고 의기투합한 선승들과 막겠다는 원주스님(살림소임)과의 줄다리기에 웃음이 터진다. 결과는 매끼니 감자메뉴를 내어준 원주스님 “승”.
채우면 별개 아닌, 막으면 더 하고 싶은 게 ‘욕망’이라는 한 생각 인다.
“다사(多事)는 정신을 죽이고 포식은 육체를 죽인다.”
선객의 하루일과는 2시30분 기침, 3~6시 참선, 6~8시 청소, 아침, 8~11시 참선, 11~1시 점심 1~4시 참선, 4~6시 저녁, 6~9시 참선, 9시 취침. 2~3시간 단위로 참선, 하루에 11시간 참선한다. 좌복(방석)으로 발만 덮고 자면서도 수마와 사투를 벌인다.
선객의 싸움
‘걸레’처리에서 비롯된 일찍 출가한 올깨끼와 늦게 출가한 늦깨끼 어린 스님들 사이의 싸움이 정겹다. 서로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어울린다. 어려도 선객은 선객인가. ‘속없네’라는 생각보다는 마음에 쌓고 걸리는 것이 없어 가능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한가닥들 하시는 선객들의 말싸움은 어떤가. 몸이 먼저인가 정신이 먼저인가. 답을 내릴 수 없지만, 분리할 수 없기에 함께 가야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어차피 죽을 때까지 끌고 가야할 몸뚱이 아닌가.
혜안을 지닌 조실스님 한마디, 평정의 힘
도가 지나치거나 진리에서 벗어날 때마다 혜안을 지닌 조실스님 한마디가 모든 걸 평정한다.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식물은 아껴야만 하겠지요. 식물로 되기까지 인간이 주어야 했던 시간과 노동을 무시해 버릴 순 없잖아요. 하물며 남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식물이야 더욱 아껴야 하겠지요.”
진리에는 군말이 필요 없다.
바라보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할 선객, 그 자체만으로도 벅찬 일. 함께하는 도반의 모습에서 싸워야 할 자신의 모습을 본다.
삭목일날 저자가 남긴 한마디가 가슴에 남는다
“삭도가 두개골을 종횡으로 누비는 것을 바라볼 때는 섬뜩하기도 하지만 내 머리카락이 쓸쓸 밀려 내릴 때는 시원하고 상쾌하다. 바라보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 때문”
바라보는 것과 느끼는 것의 차이. 저자의 시각으로 본 선방의 풍경이 직접 체험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선방일기를 읽기 전에 가졌던 선방에 환상과 무게는 조금 내려놓은 것 같다.
얇은 한 권의 책에 대한 이야기가 군더더기가 많아졌다.
가난해서 아름다웠던 시절, 가난은 그것이 물질이든 정신(지식)이든 우리를 진리에 가깝게 데려놓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