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당하신 예수
수잔 가렛 지음, 박노식 옮김 / 대장간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대게 비신자들에게 전도가 아니더라도 그냥 일상적인 대화에서 보면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우릴 위해 신앙의 길을 보여준 예수를 본받기는커녕 더 속물근성이 심해 교회가 인간의 이기심으로 변질됐다고 얘기한다.

반쯤은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 이야기에 나는 얼마나 떳떳할 수 있을까?

<시험 당하신 예수>를 읽고 한 발짝 물러서 나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니 당당함은 둘째 치고 부끄럽고 창피한 생활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최근 사회적인 낙오로 인해 의기소침해 자괴감이 심한 나에게 시험에 들게 하지 말아달라고 기도하던 목소리가 닿지 않은 것 같아 신심이 흔들리면서도 절박해지는 마음에 더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면서 많이 반성하게 됐다.

힘들 때만이 아니라 즐거울 때도 늘 하느님의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 행복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올려도 좋으련만 나 같은 신심이 얄팍한 사람은 넘어지면 아프니까 약 달라고 생떼 쓰듯이 급하게 마구잡이로 기도하며 왜 시험에 들게 하는 거냐고 원망을 하다니 돌보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괘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심신이 깊어질수록 외부로부터의 유혹과 심적, 물리적으로 원망의 마음이 생기게 하는 일들이 생기면서 순간 방황하고 곧 기도하면서 극복하던 시간들...

사회초년생일 때 욥기를 읽기 전 까지는 얼마나 많이 방황하며 힘들어했는지 모른다.

한번 욥기를 읽은 후 종종 간간히 읽으며 좁은길을 걷는 것이 곧 예수님께서 보여주는 주님에게로 가는 방법임을 되새기면서 현재의 상태를 극복하고 희망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순간 일이 해결이 되었던 신기한 순간들.

지금의 힘든 시기는 내가 심신이 깊어서라기보다 냉담이 길어져 다시 내 시선을 제대로 잡아주기 위한 하느님의 ‘관심 끌기’인 것 같다.

마구 발버둥 치며 울고불고 왜 이러냐고 하기 전에 내가 행 했던 죄목들이 무거워 슬그머니 반성해본다.

 

시험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힘겨워하기 보다 성숙한 단계로 이끌기 위한 기회를 제공받는다고 생각하자.

음...말은 이렇게 해도 역시 나는 편한 게 좋아...

이런 속물!ㅋㅋ

 

하지만 확실히 나의 심신이 흔들리는 순간이 종종 찾아오는 방황의 때 마다 잊지 말고 명심해야 하겠다. 방황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곧게 서있지 못하고 자꾸 다른 것을 보려하기 때문이겠지.

반성보다 외부의 탓으로 돌리려는 습관에도 문제가 있고 기도를 하면서 일기를 쓰면서 반성의 습관을 들이지 못했음을 부끄럽게 여긴다.

지금도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실제로 내가 얼마나 실천을 할지 예상하자면 한숨이 나오지만 조금이나마 실천할 수 있게 말이라도 거창히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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