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인간 - 팬데믹에 대한 인문적 사유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 효형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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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를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열차 밖 위협을 과장해서 지배층이 억압을 행사한다는 식의 내용으로 알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이 코시국을 보는 관점이 이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케이 방역에 자부심을 가지고, 광화문에서 "코로나는 사기"라고 외치는 1인시위자를 경멸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영 마뜩하지 않을 것이다. 출판사도 이런 점을 고려해서인지 초반에 관련한 해제를 여러편 실었는데 "약간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좋게 봐주자" 정도의 느낌이다. 코로나 시국에서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지키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한국에서 받아들여진 반면 아감벤은 이를 "보건독재"라는 용어로 요약한다. 아감벤에게 코시국의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은 생존만이 유일한 가치로 인정받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다른 가치들-정치적 자유 등-을 희생한 사회이다. 아감벤이 마스크에 그토록 기겁하는 이유는 "인간의 얼굴은 정치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인간의 삶이 하나의 무색무취한 통계치로환원되는 것을 아감벤은 우려한다. 이탈리아에서 특히나 정치적 공작이 많았다는데- 한국도 "궁정동 총소리"같은 예는 더 많지 않은가?-인간이 삶이 생존이라는 가치하나로 축소되어  독재자가 출현하는 게 아감벤이 우려하는 사회상이다. 차라리 아감벤이 코로나나 방역대책을 인정하면서 이런 얘기들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아감벤은 코로나는 과장된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코로나를 대응하려는 정부정책을 독재라고 비판하며 -이런 주장이 적어도 나의 세계관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차라리 "접촉"이 가지는 의미(화면으로 상대방을 보는 것은 접촉일까 아닐까?), 언택트상황에서의 정치적 자유가 가지는 의미를 좀 더 고찰했더라면  생산적이지 않았을까. 아감벤이니 지젝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 나에게는 떠오르는 특유의 난해한 이미지가 있는데 이 책도 예외가 아니다. 몇몇 문장은 소화가 되지 않아 부유물처럼 떠도는데, 이런 문장에 익숙하지 않다면 노이즈를 감수해야 한다. 한국에서 민주당은 케이방역의 성공을 업고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그것은 케이방역의 가치평가에 대한 어떤 합의가 있었다는 얘기인데 그런가치평가와 다른 시선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삶은 어떤 모습일까.뜬금없는 얘기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에는 한센병환자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좋은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지...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살고 싶어"  그 한센병 환자에게 코시국의 불편함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아마도 "죽음보다 못한 삶이 있다"라는 관점과 "그냥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라는 관점이 있을 것이다. ( 마루야마 겐지의 "산자의 길"에 나오는 비유다. 겐지는 나이가 들면서 후자의 관점으로 기운다고 한다.) . 코시국의 불편함을 "그래도.."라는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이걸 양보한다면 그건 삶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사람마다 삶과 죽음을 저울질하는 기준은 각자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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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세상 따위
찰스 포스먼 지음, 성기승 옮김 / 프시케의숲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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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TEOTFW 가 무슨 뜻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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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h 2021-11-03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he End Of The Fucking World
 
 전출처 : 가명 > 당신 인생의 결정적 순간은 언제입니까?

5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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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는 왜 우리를 살찌게 하는가 - 뇌과학이 풀어낸 체중 감량에 숨겨진 비밀
샌드라 아모트 지음, 장혜인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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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는 오히려 체중을 늘린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희망을, 누군가에게는 절망을 줄 것 같다. 다이어트에 매번 실패하며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던 사람에게는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위로가 될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씬한 몸매를 오매불망 원하던 사람에게는 마지막 결정타가 될 것이다. 신경과학자인 저자는 다이어트 산업이 말하는 성공사례는 대부분 단기간의 성과일 뿐이고,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요요현상으로 체중이 오히려 늘거나 원상복구가 된다고 여러 가지 데이터를 들면서 주장한다. (관련한 주석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신경과학적인 관점에서 저자가 드는 이유는 뇌에는 일정한 체중유지범위가 있기 때문에 다이어트 시 이 범위를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본능적으로 뇌가 유지하려한다는 것과 우리가 식이제한을 할수록 보상시스템이 작용하면서 체중이 원상복구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저자가 묘사하는 인체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마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것처럼 식이제한으로 체중을 감량하려고 하면 다른 시스템이 작동해서 다이어터들의 노력을 무위로 돌린다. 저자가 비만을 바라보는 관점은 체중이라는 요인이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예를 들어 비만의 원인으로 유전자, 태아 때의 부모의 식이습관, 장내 세균을 들고 있는 식이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력을 신뢰하고 다이어트가 실패할 때 자신을 탓하지만, 저자는 우리의 의지력은 사실 그리 강하지 않다고 하며, 다이어트로 고갈된 의지력 때문에 다른 중요한 인생사를 망칠 것이라고 예상한다. 저자가 풀어놓는 이런 과정을 이해하는 과정이 그렇게 용이하지는 않다. 책장을 넘기는데 어느정도의 노력은 감수해야 한다. 렙틴이니 시상하부니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을 접해야 하고, 글의 흐름이 다른 유명과학저술가들의 경우처럼 매끄럽지도 않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일종의 마음챙김 식사인데, 식이제한 같은 외부의 신호에 신경쓰기보다 자신의 신체가 보내는 신호를 주시하라는 것이다. 명상과 식사의 콜라보라고 할까.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자신의 신체가 원하는 만큼만 먹는 것이다. 그럼 결국 체중이 그대로 아닌가, 라고 날씬한 몸매를 동경하는 다이어터들에게 저자는 체중을 줄이려고 하는 것보다 체중을 유지하면서 건강한 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어떤 다이어터는 저자가 다이어트를 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저자도 체중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인종차별을 없애자고 말하는 것 하고 비슷한 것 아닐까. 어쨌든 저자는 체중이란 요인에 너무 민감해지지 말 것을 제안한다. 우리가 삶을 건강하게 영위해 가는 과정에서 체중보다 중요한 것은 운동이나 가공식품을 덜먹는 것 같은 바람직한 생활습관이다. 다이어트를 한 번이라도 시도해 봤거나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필독서다. 다이어트 산업에게는 묵시록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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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 폴로어 25만 명의 신종 대여 서비스!
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지음, 김수현 옮김 / 미메시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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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미야 카린이나 마쓰모토 하지메, 사카구치 교헤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일본이 부러웠던 적이 있다.그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렇게 시스템 바깥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던 사람들이 한국에도 있을까? 예전엔 김어준이 비슷한 느낌이 나던 시절이 있긴 했는데.  저자는 3년간의 회사생활 동안 상사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한 후 프리랜서 활동을 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존재하기만 하는 역할만 하는 무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읽다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같은 수필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이 책에 그런 유머나 위트가 있다는 건 아니고 목적없이 한가한 느낌이 난다는 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사람들은 전부 지쳐있는 것 아닐까. 의미와 목적, 상대방에 대한 기대와 배려, 책임같은 것이 넘쳐나서 그걸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레나 모제의 <인간증발> 처럼 증발해버린다. 아마 주식투자를 한 것 같은데 저자는 그렇게 벌어놓은 돈으로 이 무료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 묘사된 관계의 색깔은 "엷고 투명한 블루"같은 느낌이다. 트위터 디엠으로 연락하다가 클릭하나만으로 헤어질 수 있는 관계들. 고미숙같이 연대와 찰진 인간관계를 말하는 사람들은 혀를 찰지도 모른다. 그런 건 관계가 아니라고. 어쨌든 이제 모두가 단자화된 관계속에서 제일 첫 덕목은 "예의" 아닐까? 아니면 저자의 서비스가 유명세를 탄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래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낸다는 반증일까. "어쨌든 집으로 돌아갑니다" 같은 뉘앙스의.  만약 이 책에서 저자가 어떤 철학 같은 것을 말한다면(마지막에 약간 그런 낌새를 보이긴 하는데) 그것 역시 이 책의 원래 분위기와는 배치되는 것일 게다. 돈으로 모든 것이 교환되는 세상에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 중에는 관계의 가성비를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일면 부지의 사람에게 중대사의 고백을 털어놓는 사람도 있다. 이 서비스는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마추지게 될 생산성, 효율성 부가가치 같은 것에 저항인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그런 원칙을 가지고 이 서비스를 시작한 건 아니다. 저자가 이 일을 시작한건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다. 아니면 사람들의 자의식이 너무 강해진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이상 타인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 줄 수 없는 것인지도. 하지만, 타인을 완전히 저버릴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저자에게도 약간 그런 느낌이 들긴 하다. 오징어 게임의 원조 아이디어 격인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고층 빌딩 사이를 줄타기로 건너는 내기에 도전한 카이지가 어쩌면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는 다른 참가자가의 등을 보며(이 참가자는 앞서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위안을 받는 장면이다. 카이지도, 상대방도 서로를 도울 수 없지만 카이지는 만약 저 사람이 지금 없다면 지금 이 줄타기는 지옥일 거라고 생각한다. 읽고 나면 많은 생각의 단편이 떠오른다. 결이 약간 다르지만 비슷한 책으로는 구리하라 야스시의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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