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를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열차 밖 위협을 과장해서 지배층이 억압을 행사한다는 식의 내용으로 알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이 코시국을 보는 관점이 이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케이 방역에 자부심을 가지고, 광화문에서 "코로나는 사기"라고 외치는 1인시위자를 경멸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영 마뜩하지 않을 것이다. 출판사도 이런 점을 고려해서인지 초반에 관련한 해제를 여러편 실었는데 "약간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좋게 봐주자" 정도의 느낌이다. 코로나 시국에서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지키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한국에서 받아들여진 반면 아감벤은 이를 "보건독재"라는 용어로 요약한다. 아감벤에게 코시국의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은 생존만이 유일한 가치로 인정받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다른 가치들-정치적 자유 등-을 희생한 사회이다. 아감벤이 마스크에 그토록 기겁하는 이유는 "인간의 얼굴은 정치적인 장소"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인간의 삶이 하나의 무색무취한 통계치로환원되는 것을 아감벤은 우려한다. 이탈리아에서 특히나 정치적 공작이 많았다는데- 한국도 "궁정동 총소리"같은 예는 더 많지 않은가?-인간이 삶이 생존이라는 가치하나로 축소되어 독재자가 출현하는 게 아감벤이 우려하는 사회상이다. 차라리 아감벤이 코로나나 방역대책을 인정하면서 이런 얘기들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아감벤은 코로나는 과장된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코로나를 대응하려는 정부정책을 독재라고 비판하며 -이런 주장이 적어도 나의 세계관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신뢰성을 떨어뜨린다. 차라리 "접촉"이 가지는 의미(화면으로 상대방을 보는 것은 접촉일까 아닐까?), 언택트상황에서의 정치적 자유가 가지는 의미를 좀 더 고찰했더라면 생산적이지 않았을까. 아감벤이니 지젝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 나에게는 떠오르는 특유의 난해한 이미지가 있는데 이 책도 예외가 아니다. 몇몇 문장은 소화가 되지 않아 부유물처럼 떠도는데, 이런 문장에 익숙하지 않다면 노이즈를 감수해야 한다. 한국에서 민주당은 케이방역의 성공을 업고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그것은 케이방역의 가치평가에 대한 어떤 합의가 있었다는 얘기인데 그런가치평가와 다른 시선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삶은 어떤 모습일까.뜬금없는 얘기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에는 한센병환자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좋은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지...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살고 싶어" 그 한센병 환자에게 코시국의 불편함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아마도 "죽음보다 못한 삶이 있다"라는 관점과 "그냥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라는 관점이 있을 것이다. ( 마루야마 겐지의 "산자의 길"에 나오는 비유다. 겐지는 나이가 들면서 후자의 관점으로 기운다고 한다.) . 코시국의 불편함을 "그래도.."라는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이걸 양보한다면 그건 삶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사람마다 삶과 죽음을 저울질하는 기준은 각자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