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우리는 모두, 각자 세대의 공기를 숨쉬며 그 고유한 중력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틀의 경향 안에서성장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좋고 나쁘고를떠나 그것이 자연의 섭리다.  - P62

만약 아버지가 병역에서 해제되지 않아 필리핀이나 버마 전선으로 보내졌다면...음악 교사였다는 어머니의 약혼자가 전사하지 않았다면...그렇게 생각해가다 보면 정말 기분이 묘해진다. 만약 그랬다면, 나라는 인간은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 결과, 당연히 나라는 의식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내가 쓴 책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소설가로서 이렇게 살아있는 나의 삶 자체가, 실체가 없는 덧없는 환상처럼 여겨진다. 나라는 개체가 지닌 의미가, 점차 모호해진다. 손바닥이 비쳐 보인다 한들 이상할게 없다. - P88

나는 한 평범한 인간의 한 평범한 아들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차분하게 그 사실을 파헤쳐 가면 갈수록 실은 그것이 하나의 우연한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점차 명확해진다. 우리는 결국, 어쩌다 우연으로 생겨난 하나의 사실을 유일무이한 사실로 간주하며 살아있을 뿐이 아닐까.
바꿔 말하면 우리는 광활한 대지를 향해 내리는 방대한 빗방울의 이름 없는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유하기는 하지만, 교환 가능한한 방울이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빗물에는 한 방울의 빗물 나름의 생각이 있다. 빗물 한 방울의 역사가 있고, 그걸 계승해간다는 한 방울로서의 책무가 있다. 우리는 그걸 잊어서는 안 되리라. 가령 그 한 방울이 어딘가에 흔적도 없이빨려 들어가, 개체로서의 윤곽을 잃고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 사라져간다해도. 아니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집합적인 무언가로 환치되어가기 때문에 더욱이.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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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 각본상이라는데  한 10여년 전?... 정도라면 이 이야기의 복선이 아주 큰 충격일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복선의 파격을 호들갑스럽게 말하던 기사를 읽고 혹시?.. 라고 떠올릴 수도 있는 정도의 반전이다. 오히려 보다보면 저 이야기는 앞뒤가 안 맞는데.. 하는 부분도 군데군데 보이고, 깔려있던 복선이 뒤에 나오는 결말로 이어질 때 반전으로 드러나는 펀치는 오히려 약간 편이다. 포인트도 약간 흐릿한데, 이야기를 비트는 어떤 시스템과 구조를 탓하고 싶은 건지,-그럴려면 그런 부분에 대한 묘사가 더 뚜렷했어야 했다.- 사회적 가치관과 문화를 이슈로 삼고 싶은건지- 그럴려면 등장인물이 내뱉는 대사의 파워가 약하다. 나쁘게 보면 그냥 깊이있게 보이고 싶어하는 잰체하는 대사같다.그나마 기억에 남는 것은 등장인물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뒷담화를 하는 장면이다. 각본을 쓴 사람이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뒷담화보다 진실이 더 복잡하다는 것일까.. (스포일 안하고 쓰려니 참 힘드네 쩝,,왜 이선균 생각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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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가와우치 아리오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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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시혜의 대상이나 동정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존재 그 자체로 긍정할 수 있을까? 


"그는 우연히 주어진 몸을 받아들이고, 이 세계에서 지금을 즐기고 있다"  


전장연 시위를 반대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 만약 그 때 전화를 받은 미술관 직원이 "살다살다 별일 다보겠네. 장님이 무슨 미술 감상이야 참 나." 정도의 반응으로 끝냈다면 이 책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까놓고 말해서 나도 이랬을 지도 모른다.)

  미술을 좋아하는 건지 미술관에서 남과 소통하는 거 자체를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떠랴... 나라면 전맹이 사진가가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는데 결국 상상력이 부족한 것은 나였다.,, 그림을 보든 삶을 살든 해상도를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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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 2 - 전이하는 메타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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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 대해 1도 모르지만, 하루키의 작품은 이제 문학이 아니라 문화상품 같다. 꼭 스즈키 고지의 <링> 시리즈 읽는 기분이다. 한번 책을 집어들면 밤을 새워 읽게 되지만, 두 번 읽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1Q84> 때부터 약간 오버 인테리어 아닌가 싶었는데, 우라사와 나오키나 신세기 에반게리온 처럼 초반에 설정 떡밥을 마구 뿌려났다가 후반에 그냥 말을 먹어버리는 전략. <태엽감는 새>까지는 그런대로 괜찬지만 응?하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기보(?)가 보인다고 할까.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효과적인 전략이지만,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읽고 나서 짜증을 낼 것이다.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손빨래를 할까? 커피를 내리고 파스타를 삶는 것은 그래도 '차밍'(<댄스댄스댄스>의 고혼다처럼)하게 묘사될 수 있다. 하지만,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빨간 '다라이'에 세탁비누의 거품을 묘사하는 것은 어떨까? 하루키는 아마 건조하고 단순하게 묘사하겠지.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모텔에서 손빨래하는 장면처럼. 내가 지금 하루키가 '언리얼'하다고 말하고 있나? 하지만, 그의 에세이를 읽어보면 그는 아마 평생을 나보다 수십배는 더 현실에 육박하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아침부터 밤까지 육체노동을 하고 빚을 갚는 일로 이십 대를 지세웠습니다.그 당시를 떠올리면 어지간히 일도 많이 했다,라는 기억밖에 없습니다. 필시 보통 사람의 이십대는 좀 더 즐거웠을 거라고 상상이 되는데, 나에게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청춘의 나날을 즐길'여유 같은 건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문득 깨닫고 보니 나는 곧 서른이었습니다. 나에게 있어 청년 시대라고 해야 할 시기는 이미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좀 신기한 기분이 들었던 게 기억납니다. ‘그렇구나, 인생이란 이런 식으로 술술 지나가는 것이구나‘ 하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어쩌면 너무 현실에 육박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소설에서는 환상을 추구하는 것인지도. 


 어쨌든 청춘 3부작은 나에게 프루스트의 마들렌 같은 것이다. 책을 펼칠 때마다 지금은 깊이 어딘가에 묻혀있는 감정들의 잔재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제는 하루키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섞인 너스레가 쿨하게 느껴지는게 아니라 말이 많네, 정도의 시큰둥한 반응이 먼저이긴 하지만.  





PS. <1Q84>는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무라카미 하루키 단편걸작선,유유정 옮김)  확장판임. 그냥 내 뇌피셜.


기사단장은 실눈을 뜨고 마리에를 보았다. "귀를 잘 기울이고,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날카롭게 버려두는 걸세. 그것밖에 길이 없어. 그리고 때가 오면 제군도 알 것이야. 오, 지금이 바로 그때구나 라고. 제군은 용감하고 총명한 아이야, 주의를 게을리하지만 않으면 충분히 알 수 있어." - P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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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피닷 2024-01-01 0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가명 2024-01-01 17:39   좋아요 1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지만 문득 깨닫고 보니 나는 곧 서른이었습니다. 나에게 있어 청년 시대라고 해야 할 시기는 이미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뭔가 좀 신기한 기분이 들었던 게 기억납니다. ‘그렇구나, 인생이란 이런 식으로 술술 지나가는 것이구나‘ 하고.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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