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명왕성을 죽였나 - 명왕성 킬러 마이크 브라운의 태양계 초유의 행성 퇴출기
마이크 브라운 지음, 지웅배 옮김 / 롤러코스터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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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통해 얻은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다른 삶의 추체험이 아닐까 한다. 천문학자의 삶은 어떤 것일까? 명왕성이 태양계의 행성이든 아니든 적어도 나에게는 이야깃거리 정도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럴 것일라고 나는 예상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먹고사니즘"을 벗어나 하늘에 매료되어 태양계의 기원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아마 필요하겠지. 그리고, 리버풀 팬과 맨유팬이 진심으로 서로 싸우는 것처럼, 명왕성이 행성이냐 아니냐를 두고 진심으로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칼텍의 교수로써 자신이 명왕성 너머의 새로운 천체를 찾는 바람에  졸지에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축출되는 결과는 낳은 사람이다. 천문학자가 하는 일은 "먹고사니즘"과 떨어져 있지만 그들의 삶조차 그런 것은 아니다. 저자는 칼텍의 교수직 때문에 어쨌든 성과를 내야 했고(그 반대가 아니다) , 새로운 행성을 찾는데 전념한다. 그리고, "산타"의 발견을 두고 이제 과학의 문외한인 나에게도 어느정도 익숙한 "선점경쟁"을 벌여야 했다. 나에게는 누가 "산타"를 먼저 발견했는지는 역시 이야깃거리지만 과학자들에게는 테슬라와 에디슨이 그랬던 것처럼 인생을 건 싸움인 것이다. 노가다로 천체 사진을 찍는 과정부터 컴퓨터 붙박이로 사진을 분석하는 과정까지 천문학 연구과정을 엿볼 수 있다. (실제 연구는 천문학의 낭만적 이미지하고는 땅끝까지의 거리가 있다.) 저자는 자신이 발견한 "산타"가 10번째 행성이 되기보다 발견된 과학적 사실에 기초해 명왕성을 행성에서 탈락시키는 쪽을 택한다. 행성을 발견한 사람이 되기보다( 과학자로서의 명예) 보다 행성을 죽인 쪽(비난과 논란의 중심)을 택한 것이다. 음 과학자가 아닌 나로서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본인으로서는 학자적 양심을 택한 것이리라. 책이 먹기 좋은 밥상처럼 매끄럽게 흘러간다. 요새는 교양,재미, 가독성을 겸비한 책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와서 소외감(?)이 느껴질 정도다.두께는 약간 있지만 유튜브 다큐 보는 것처럼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이제 별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직업적으로 별을 보는 사람의 인생이야기는 분명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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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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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들리는 얘기는 전부 주식 얘기다. 아니면 부동산 얘기. 좀 나쁘게 생각하면 대공황 이전시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 그당시에는 호텔 도어맨도 주식 투자를 했다고 한다.) 문송합니다의 풍경이 등장하는 봉준호의 "플란다스의 개"가 2000년도 작품인데 이공계나 문과가 마이너로 대접받는게 지금껏 이어졌다고 생각하면 좌절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별을 다루는 천문학자의 삶은 어떤 것일까. 태양과 별의 스펙트럼에 열광하는 그 감성은  축구팀에 열광하는 서포터즈들의 감성이 아닐까. 즉 "아는 사람들만 아는" 감성인 것이다. 연구자들이 부딪치게 되는 희노애락과 그들의  일상생활이 묘사되어 있다.  천문학자라고 하면 사실 나에게는 약간 현실에서 붕 뜬 이미지인게 사실이다 . 하지만 문송의 시대에 그런 연구자의 삶은 오히려 더 치열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치열한 삶을 감내하게 만드는 열정, 그들만의 대화가 부럽게도 느껴지기도 한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다. 바람이 있다면 굳이 천문학자가 아니더라도 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삶이 모두에게 왔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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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도시의 역사로 보는 인류문명사
벤 윌슨 지음, 박수철 옮김, 박진빈 감수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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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흥망성쇠를 빌 브라이슨 류의 방식으로 쓴 책.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나 히스토리 채널 보는 기분이다. 읽을 거리가 풍부해서 "쾌락독서"를 즐기시는 분께는 킬링타임용으로 딱이다. 물론 성찰도 있다. 내가 이 책에 호기심을 가진 이유를 생각해보니 결국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성찰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고대 우루크부터 근대의 파리, 현대의 로스앤젤레스까지 저자는 도시의 키워드를 하나씩 잡아내서 분방한 지식과 "썰"을 풀어놓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도시는 욕망과 관능,삶의 의지와 역동성으로 고동치는 곳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라고 했던가. 저자가 지적한 대로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도시에 대한 반감은 사람들의 선입견으로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도시에 대해 지극히 호의적이다. 도시는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인간의 삶을 표현하고, 모여사는 호모사피엔스들은 머리를 모으고 자신들의 창의력과 잠재력을 폭발시킨다. 저자에게는 도시화를 감당하지 못하는 지구에 관해서는 우리가 다시 도시의 양식을 적응시킬 것이라는 낙관이 있다. (그 예로 청계천과 서울의 녹지가 거론된다.) 우루크나 알렉산드리아는 너무 먼 이야기이고 살갗에 와 닿는 것은  엘에이나 라고스의 이야기다. 미국영화의 배경으로 종종 등장하는 교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파리의 도시관찰자를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서울에서도 충분히 적용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든다. 그럼 더 이상 나는 서울의 아웃사이더가 아니겠지. 하지만, 나는 아직도 도시에 위화감이 든다.  도시는 "인공의 생태계"이고 인간이 쌓아올린 거대한 직접물이다. 자동차에 비유해도 좋다. 그 자동차를 움직이는 연료는 "날것의 자연"이다. 인공의 생태계는 끊임없이 인간이 강제로 원료를 들여오고 그 배설물을 배출시켜야 유지되는, 인간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그 가상을 현실화한 것이다. (그래서  "자연"이 아니고."자동화"는 없다.) 그리고, 그 자연이 다 떨어지면 자동차는 멈추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교외와 도시의 확대가 이번 판데믹에도 분명히 한 몫 했을 것이다. <돈 한푼 안 쓰고 일년살기> 의 마크보일은 수세식 화장실에조차 엄청난 적대감을 드러낸다. <노 임팩트맨>의 콜린 베번은 화장지 안쓰기를 실천했다.  근본적인 인간의 삶의 방식, 도시의 방식이 변화하지 않고 저자의 낙관대로 다가오는 기후변화와 재앙을 막을 수 있을까? 그런 "절충주의"는 그냥 눈가림이나 자기만족이 아닐까? 이제 나는 깨끗한 공기와 물놀이 할 수 있는 하천이 귀하게 느껴진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귀하기는 커녕 그런게 있는지도 몰랐다. 고려가, 신라가 망했을 때 어느날 갑자기 "오늘부터 멸망"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도 사람들은 삶을 즐기기도 했을 테고, 여러가지 삶의 순간들이 있었겠지. 지금은 바로 그런 순간들인지도 모른다. 안목이 짧은 나로서 감히 이 책의 깊이를 논할 수는 없으나 아주 새로운 통찰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각 장의 도시들이 하나의 주제로 꿰이지 않아서 "잡학"이라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그래서 재밌게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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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란 무엇인가
테리 이글턴 지음, 이강선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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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쉽게 써주심 더 좋았을 텐데.. 비평이란게 원래 이케 비비 꼬인 것인가요?... 기억나는 대목: 결국 문화도 일정한 물질적 조건이 충족된 다음에 성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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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카인드 -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조현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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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아요. 그냥 상황에 따라서 선해지기도 하고 악해지기도 하는 것 뿐이죠"  북콘서트에서 어떤 교수님한테서 이 말을 듣고 가장 현실적인 판단 이라고 생각했었다.(이분의 성함을 까먹었다. 죄송)

 저자의 논지는 우리가 인간본성을 부정적으로 보려는 경향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고, 이게 "자기충족적 예언"( "노시보"라고 표현한다.) 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분위기를 조장하는 사례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으로 책을 전개한다. "스탠포드 감옥실험"과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은 평범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악에 물드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의 대표격으로 인용되곤하는데, "스탠포드 감옥실험"의 필립 짐바르도가 쓴  "루시퍼 이펙트"는 나도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다. (스탠포드 감옥실험은 "엑스페리먼트" 라는 제목으로 두번 영화화됐다.) 그 책의 논지가 "인간은 이렇게 쉽게 악에 물드니 악인(예를 들어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의 미군들)이라고 무조건 쉽게 타자화해서는 안된다" 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결국 자기성찰을 요구하는 결론이라서 그래 맞아 하고 적극 동의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묘사하는 필립 짐바르도는 연구자로서는 자못 야비한 모습이다. 저자가 파헤친 감옥실험의 진실은 "인간의 악"을 부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된 것으로, 필립 짐바르도는 처음부터 피실험자를 도발시키는데 적극적이었고, 피실험자는 피실험자대로 연구진 의도를 맞추기 위해 연기를 했다. 나는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실험이 실은 연출된 것이었다는 저자의 주장에 적잖이 당황했다. 스탠리 밀그램의 실험도 같은 맥락인데 실험은 특정 결론을 위해 미리 설계된 것이었다. (관련해서 "권위에 대한 복종"을 읽은 적 이 있는데 이 책 역시 날카로운 통찰로 자못 감동을 안겨줬었다.) 저자의 사례는 전쟁터에서 사격을 거부하는 병사들, 무인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협력한 소년들의 실제사례(월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의 반대다.) ,제노비스 살해사건의 진실 등으로 이어지며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불신과 냉소에 싸여 있으니 사람을 더 신뢰하라고, 한 두번 속은 적이 없다면 사람을 신뢰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학교와 회사에서 학생과 교사, 괸리자와 실무자간의 신뢰가 증가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저자가 조사한 사례는 개판오분전이 아니라 서로 자율성과 주체성을 발휘하며 각자의 포텐셜을 발휘하는 현장이다. 어쩌면 인간은 천성적으로 권력구조를 싫어하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이고, "악"은 이런 독립성이 침해당할 때 발생하는 것인지 모른다. 저자는 문명(권력구조, 흡스)과 자연(루소)를 대비시키며 루소의 손을 들어준다. "노시보 효과"를 만드는 주범으로 특히 언론과 미디어를 비판하는데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듯 선정적인 보도로 부정적인 사례만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도 이 책에서 같은 기법을 사용한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저자는 여기에 문화인류학적인 통찰-농업이 출현해서 사유재산이 출현하고 권력구조이 생기면서 "악"이 시작되었다. 인간은 진화과정에 얻은 사교성 때문에 다른 호미닌을 이길 수 있었다 등는-도 곁들이는데 그런 통찰까지 곁들이기에는 이 책의 품이 약간 좁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저런 백데이터를 끼워 맞춘 약간 패스티쉬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마도 너무 다양한 사례를 싣다보니 논증이 약간 부족한게 아닌가 싶은데, 덕분에 다양한 메뉴가 나오는 패밀리 레스토랑 간 느낌이라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저자가 드는 인간의 약점은 자신의 공감을 동류에게만 발휘한다는 것, 선함을 가장한 악함에 취약하다는 것 등이다. 마지막에 저자는 삶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10가지 원칙을 제시하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타인을 더 신뢰하고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사람은 타인이 자신을 선하고 정의롭게 보기를 원한다. (전두환조차 그렇다.) 현실에서는 항상 어긋날 뿐이지만. 나로서는 앞선 교수님의 말씀이 더 땡긴다. 


p.s. 비슷한 책으로는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 가 있다. 재난이 닥치면 역설적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 책이다. "초협력자"는 과학책인데 결론은 "인간은 초협력자이며 그렇게 진화한 이유는 그것이 생존확률을 높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 모두 착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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