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청년 연암’에게 배우는 잉여 시대를 사는 법
고미숙 지음 / 프런티어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가장 현실적인 의미에서 “삶이란 주변과의 관계를 통해 물질적, 정신적 자원을 획득해서 자신이라는 존재를 유지시켜나가는 과정”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직업이 없는 사람들, “백수”는 물질적 차원에서는 의식주 등의 자원과 정신적 차원에서는 관계, 삶의 현장, 주변의 인정 등의 자원을 결핍한 사람정도가 될 것이다. 저자의 “백수론”은 이미 오랜 연혁을 가지고 있다. 저자부터가 수유너머부터 감이당까지 “게릴라 지식인”으로서 대학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떠나서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산 표본으로서 지금도 확고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청년들의 취업난이 심각하다. 그래서, 청춘들은 혼밥, 혼공, 스펙에 올인하여 “승리자”가 되는 경쟁에 몰입한다. 저자는 이런 현실에서 “백수가 더 낫다”는 주장을 펼친다. 백수도 괜찮다 수준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백수를 추구해라는 수준이다. 저자도 본문에 표현했듯 이 이야기는 백수들을 위한 “합리화”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가치와 상식은 합리화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진단하는 자본주의 하의 노동은 소외된 노동이다. 이에 대비해서 “내발성”에 기초한 “활동”이라는 개념을 내세운다. 이전의 저작에서도 저자는 핵가족으로 대표되는 현재의 가족주의를 못마땅한 기색으로 바라보는데 청년들이 화폐에 올인하는 이유는 “스위트홈”의 망상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화폐는 스위트홈과 안정의 꿈을 실현시켜주지 못한다고 한다. 저자는 연애와 가족대신 우정과 의리로 관계를 확장하라고 말한다. 4차혁명시대에 어차피 일자리는 줄어들 테고, 노동과 가족이라는 가치 대신에 자신의 삶과 운명의 의미를 탐구하는, 노동하지 않는 그리스 귀족과 노마디즘 같은 이미지로 삶을 살라는 것이다. 이 책이 2018년에 나온 책인데 코로나 시대에 이 백수론은 어떤 의미를 지닐지 모르겠다. 사유재산으로 상징되는 가족, 집, 시장, 화폐를 떠나 우정, 의리,증여, 공동체 등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삶을 유지하라는 게 지금까지의 저자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접속”이 위험을 동반하는 코로나 시대에 이 담론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궁금하다. 일단 화폐라는 가치보다 더 우월한 가치(예를 들면 공부, 여행)가 있다고 설득하려면 화폐라는 가치를 디밸루에이션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약간 힘이 달린다. 화폐는 삶과 안정을 보장해주지 못한다고 설득하지만,-저자의 입답이 워낙 유쾌하고, 청산유수라 대충 넘어가는 면이 있지만- 시실 시장이 모든 삶의 영역을 차지한 지금 화폐는 공기와 같다. 정규직을 원하는 이유는 스위트홈보다 일단 생존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화폐대신 관계를 통해서 자원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저자가 가장 주의하는 백수의 상태는 “고립”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모든 가치는 합리화일지 모른다. 저자가 제시하는 삶의 이미지는 모델이나 비전에 가깝다. 이게 실제로 구현되려면 여러 가지 디테일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갈등도 있을 것이다. 차라리 백수가 운명이라면 그 운명을 생산적으로 이용하는 모델이라고 하는게 이책의 현실적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비현실적일 수도 있지만 모두가 한 쪽만 바라보고 있을 때 다른 쪽을 가리켰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저자의 청산유수 같은 글솜씨는 여전한데 이제는 약간 선동적(?) 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자신이 운영하는 공동체에 들어오라는 말 그런 느낌? 저자의 주장에는 많은 전제들이 깔려 있다. 그리고, 그 전제하에 저자는 자신의 논지를 전개시킨다. 저자의 입담이 워낙 유쾌해서 놓치기 십상이다. 그래도 다른 삶의 이미지를 한번 엿보기라도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하얀 토끼"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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