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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구를 망치는가 - 1%가 기획한 환상에 대하여, 2022 우수환경도서
반다나 시바.카르티케이 시바 지음, 추선영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1월
평점 :
"전세계 인구의 하위절반이 소유한 부와 맞먹는 부를 소유한 억만장자는 2010년 388명이었다. 그리고, 그 수는 매년 줄어들어 2011년 177명,2012년 159명, 2013년 92명, 2014년 80명, 2016년 62명, 2017년에는 고작 8명이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20년에는 단 한명이 전 세계 인구의 하위 절반이 소유한 부와 맞먹는 부를 소유하게 될 것 같다."
저자의 성토는 아마 가장 따끈한 지금 현재의 세계상일 것이다.저자가 바라보는 지구는 지금 기로에 서 있는 위기상황이다.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이조스는 이런 지구를 버리고 우주로 나가자고 하지만 지구를 이지경으로 만든 (그들을 부자로 만들어준) 세계관과 가치관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 곳 또한 지구와 같은 운명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저자는 반박한다. 자연과 타자를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보고 식민화하는, 제국주의와 결합한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생명의 기반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그들의 쓰는 전략은 기본적으로 초기자본주의의 '엔클로져 전략'이다. 과거엔 그 대상이 토지였다면 지금은 지적재산권으로 보호받는 첨단과학기술로 채굴한 종자와 유전자로 바뀌었다는게 차이점이다.세계를 지배하는 1%의 세계관은 기계론적인 환원주의다.그들은 생태계가 복잡계이며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외면하고, 기계론적인 과학기술만을 우월한 지식으로 포장한다.
저자가 파헤치는 것은 매력적인 시장인 인도에서 벌어지는 (책에서는 1%로 상징된) 세계적인 자본주의 세력-몬산토,빌게이츠,각종 투자기구 등-이 벌이는 식민화 과정이다. 그들의 무기는 금융과 첨단기술이다.오늘날의 세계적인 부호들은 금융부문에서 돈을 벌고 금융은 이미 실물경제를 추월했다. 그들은 정치권을 업고 디지털금융을 인도에 도입하고, 수수료를 징구하고 지역내에서 순환하던 돈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시작한다.(이런거 보면 일상적인 신용카드 사용이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이들은 금융과 생명공학, 정보기술을 농업과 결합시켜 새로운 종자,소프트웨어,알고리즘 등의 '엔클로징'을 통해 기존의 농민을 자신들에게 의존시켜 특허를 내고 "임대료"를 징수하기 시작한다.저자는 워렌버핏과 빌게이츠재단과의 관계,뱅가드 그룹 등 이들의 얼라이언스를 묘사하며 대표적인 예로 빌게이츠를 드는데-내가 정하는 이 책의 부제는 "빌게이츠와 빌앤멀린다게이츠재단의 진실"이다- 빌 게이츠는 "자연과 사회의 자조역량을 파괴한 뒤 지배,정복,침략,독재를 통해 독점 구조를 창출한다. 이 때 게이츠는 자신이 소유하고 통제하는 임대료 징수 도구를 활용한다. 게이츠는 이러한 도구를 "혁신"이라는 이중화법으로 표현한다"(p.124)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인도의 농민들이 교배로 만들어낸 종자의 유전자를 추출해낸 후 발명품이라고 주장하며 특허를 취득한다.(저자는 이걸 "생명해적질"이라고 부른다.) 이 모든과정이 게이츠앤멀린다재단의 자선과 원조로 포장되어 진행된다.그들의 원조는 '권리'나 '인권' 대신 '혁신','기술','투자'같은 단어로 이루어져있으며 "빌 게이츠는 자금을 지원하여 문제를 정의한뒤 자기가 지닌 돈과 영향력을 발휘해 해결책을 강요한다"(p246) 저자는 빌게이츠가 성립시킨 자선자본주의모델은 자선,기부가 아닌 이윤,통제,갈취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신자유주의는 1970년대에 생긴 것이 아니라 콜롬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할 때 부터 시작되었다.빌게이츠는 현대판 콜롬버스이며 이 상황에 대처하려면 우리는 글자그대로 근본적인 가치관을 바꿔야 한다.
저자는 인도출신답게 이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간디를 소환한다.간디의 <힌드 스와라지>를 자유에 관한 지침서로 소개하며 "현대 국가가사회로부터 추상화되고, 중앙집권화되며,관료화되고,동질성에 집착하며,폭력적인 사고방식에 휩싸여 있다"는 간디의 말을 인용해 세계화시대에 대의민주주의는 민중의 이익을 보호하기에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이미 기업과 세계의 1%는 서로 유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중앙집중식 통제를 벗어난, 참여를 핵심으로 한 지역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스스로에 의한 정치다.("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를 바탕으로 삼는 낡은 민주주의는 민중으로부터 권력을 직선적으로 채굴한다... 낡은 민주주의는 힘없는 민중을 외면한다."(p212)- 이번 대선결과에 아연해진 분들에게 솔깃한 말이 아닌가? 아예 이 기회에 "진짜 민주주의"(?)를 시도해본다면?) 그리고, 그 행동대안으로 사티아그라(비협조,수동적인저항)을 주장한다.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저항을 위한 "또다른 상상력"이다.
책의 부제가 "전체와 1%와의 대결"인만큼 저자의 어조는 다분히 선동적이고 격정적이다. 좀 비약하는 거 아닌가 하는 대목도 있고 약간 음모론 비슷하게 히로세 다카시의 <제1권력>이 떠오르기도 한다.서문에 언급하는 "성하 카르마파 오겐 친레 도르제"는 오히려 미심쩍다.(인터넷에 스캔들부터 검색된다.) 하지만, 욕조의 물을 버리다 아이까지 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반다나 시바는 목이 쉬도록 우리는 자연과 분리되고 원자화된 입자가 아니라, 비단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라는 생명체와 연결된 존재라고 외친다.지금 우리는 멸종의 끝에 몰려 있다는 저자의 위기의식은 메아리를 길게 남긴다.지금 책으로 접할 수 있는 세계의 또다른 스케치다.
ps 이 문장은 저자의 요지를 상당히 현실적으로 전달한다. "먹는 일은 의사소통한다는 일과 같다.인간은 먹는 행위를 통해 지구,농민, 요리사와 소통한다."(p.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