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팅숏이라는 게 있습니다. 영화에서 쓰이는 용어인데 아마도 갑자기 화면이 끝나는 숏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단어를 처음 접한 건 미카엘 하케네의 <아무르>였습니다. 씨네21에 올드독이 영화평을 쓰면서 마지막 커팅숏이 너무 날카롭다는 뜻의 글을 썼었지요.저는 이 것 덕분에 이 용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르>에서 출연배우가 빈 방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cutting) 영화가 끝납니다. 제 느낌을 말하자면 굉장히 하드보일드 하다는 느낌입니다. 회한이나 여운,변명, 설명, 용납도 없이 그냥 끝나버리니까요. 어쩌면 그것은 완벽한 허무일지도 모릅니다. 허무가 제게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패자부활전도 없이 존재함이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 존재하는 것이 사라진다는 것은 저를 낙담시킵니다. 어쩌면 마룽마 켄지가 어릴 적 농사짓는 아버지를 보며 느꼈던 감정인지도 모릅니다. 바람구멍이 뚫린듯한, 허무. 커팅숏, 그것은 제게 최종적으로 허무라는 감정을 유발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매일매일이 커팅숏이 아닐까요 저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간다는 것 그것을 실제로 체험하게 되면서 저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을 좀 더 쉽게 상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 마치 커팅 숏처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이런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결국 매일매일이 커팅숏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칼 위를 걷는 기분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커팅숏을 매일매일 받아들여야 하겠지요 그리고, 그런 커팅숏이 최종적으로 불러오는 허무라는 감정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힘들지만, 무의미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죠,. 하루키 소설의 문장이 떠오르는 군요, 이것도 <아무르> 못지 않는 커팅숏입니다.

 

낯의 빛이 밤의 어둠의 깊이를 알게 뭐냐”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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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7년, 근대의 탄생 - 르네상스와 한 책 사냥꾼 이야기
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이혜원 옮김 / 까치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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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요 데이빗 핀처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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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부아르와 사르트르 천국에서 지옥까지 삶과 전설 10
헤이젤 로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해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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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신야는 <황천의 개>에서 대학교수의 권유로 사르트르를 처음 읽고 철부지같다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라나 뭐라나요.

글쎄요, 저는 이들의 연애 행각을 읽고 약간 거부감을 느꼈는데요. 이들이 좀 오만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나는 똑똑해, 그리고 아직 젊어. 그러니 한번 맘껏 즐겨볼까하는 뉘앙스랄까요. 마치 오렌지족이 나는 젊어, 생긴것도 그럴 듯해, 돈도 많아, 그러니 한번 즐겨볼까하는 거요 .(그래서,비버는 노화를 그토록 절망적으로 받아들인 것 아니었을까요) 자의식 과잉이라는 느낌도 드는군요. 자아라는 것이 거대하게 부풀어서 뒤뚱거린다고 할까요. 마루야마 켄지가 <소설가의 각오>에서 미시마 유키오가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라고 썼는데 같은 말을 사르트르에게 해보고 싶네요.

 

옛날에 사랑이란 늘씬한 미남미녀들이 우아한 카페에서 찻잔을 기울이거나 가로수가 늘어선 로맨틱한 거리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짓을 하려면 어떤 자격이 필요하고(키는 180이상? 생긴건 원빈 이상?) 저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냉소했었지요. 돌이켜보면 이것도 오만이었지만 이들이 과연 그 많은 연인들을 진심으로 대했는지 정말로 그들을 똑바로 응시하며 존중했는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읽다 보면 사르트르가 얼마나 여자들을 깜쪽같이 속여 넘겼는가가 나옵니다. “맙소사, 나한텐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모르겠습니다. 아직 이들의 감정의 결을.올그렌이 한 말이 오히려 제 가슴에 닿았습니다.“부분적인 사랑이란게 있나요?” 아마도 관계라는 것에도 여러 가지 프리즘이 있고, 여러 가지 음색을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요. 오히려 사랑이란 무엇이다라고 정의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보통 사랑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정의해 놓고 내가 이 여자(남자)를 사랑하고 있다(있나?)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자신의 감정의 흐름을 그냥 따라가는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연애관계를 보면 말입니다. (후반에 가면 등장인물이 헷갈릴 정도입니다.사르트르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 기억했을까요?) 그들은 과연 그 많은 사람들의 본질을 본 걸까요? 그냥 쇼핑하듯 신상을 보듯 상대방을 만난 건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사르트르가 패밀리를 끝까지 부양한 건 기억에 남네요.

그냥 고상하게 볼 것 없이 성욕을 주체하지 못한 남자,여자 둘이서 맘껏 즐긴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조차 사르트르의 권력이 있으니까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말이죠. 그러고 보니 이런 생활도 프랑스니까 가능했겠지요(저는 지금 처음 부자동네에 가본 시골청년 같은 기분입니다.)

 

하지만, 사르트르가 국내에서 망명했다는 점은 인정하고 싶습니다. 모두다 오른쪽이라고 말할 때 혼자서만 왼쪽이라고 말하는 것,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니죠. 처음에는 나치에게 살해당한 붉은 머리 철학자의 말처럼 부르주아였겠지만 나중에 전투적 지식인으로 선회한 듯 합니다. 아마도 그 계기는 문학은 개똥이야란 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근데 그 많은 관계를 가운데 왜 비버와 사르트르의 관계가 가장 초점일까요? . 아마 글을 써서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을 전달할 수 있었던 사람이 비버이기 때문일 수도 있구요. 실제로 후기에 보니 다른 여자들에 대한 험담이 사르트르의 편지에서 드러난다고 하니 실제로도 가장 깊은 맘을 터 놓을 수 있는 관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관계란 무엇인가를 공유하는 거같아요

아마 내 안에 여러 가지의 나가 있고 그 각각의 나가 결핍하고 있는 것이 다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런 결핍을 메우기 위해 각각의 다른 상대를 원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지배적인 나가 비버와 사르트르를 이어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신: 프랑스에서는 철학교사가 가장 존경받는 직업이었다고 하네요. 이런 흐뭇한 시대가 있었다니 이것도 프랑스니까 가능했겠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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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동 더하기 25 -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
조은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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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읽어보면 좋을 듯한 책 ˝우리는 다른 집에 산다˝ 같이 읽어보면 기분이 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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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42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음, 이상원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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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포트킨 자서전에 이 책에 언급이 있길래 읽게 되었습니다.물론 러시아 혁명이라는 사건을 깔고 있지만 저한텐 연애애기 같은데요..... 바자로프의 죽음도 느닷없구요..문학에 정통하진 않지만 왠지 낯서네요...중심플롯이 없고 이야기가 흩어져 있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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