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관한 책을 몇권 읽었습니다. 하나같이 어두운 갈색, 한번 발디디면 다시 발을 뺄 수 없는 바닥이 없는 늪을 연상시키더군요. 절망이라는 것은 사람을 위축시킵니다. 저는 그런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을 상상할 때 제 자신이 작아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저는 아직 그런 가난을 겪어보지 못했고 그것은 저에게 낯설게 느껴집니다.혹여 그보다 못한 상황을 한 때 겪어보았다 하더라도 자발적 가난이란 것과 저의 의지와 관계없이 닥쳐오는 가난은 다른 것일 것입니다. 그건 마치 손을 들면 언제든지 빠질 수 있는 서바이벌 게임 같다고 할까요. 그들은 이를 앙다물고 두다리로 버티고 서서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조금씩 마모되어가며 무엇인가를 조금씩 잃어갑니다. 그들의 공통점이 한가지 있다면 그들이 저소득 노동에 종사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과연 가치있는 노동인지, 그런 가치는 누가 부여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단 묻지 맙시다. 현재의 교육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어떤 가치를 생산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고, 그들의 생산하는 노동이 왜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없지만 그들은 낮은 소득을 받고 반대로 자신이 가진 것 중 많은 것을 내어 놓고 힘들어 합니다. 그리고, 그런 순환은 반복됩니다. 누군가가 계속 생산라인의 바코드를 찍듯 한번 가난의 바코드가 찍히면 같은 일이 반복되며 대구를 이룹니다. 그런 순환속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조금 더 풍족한 생활입니다.

조주은씨가 쓴 <현대가족이야기>를 보면 자동차공장 노동자 가족의 꿈은 자식에게 기름밥을 먹이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 중산층 화이트 칼라 가족을 다룬 <기획된 가족>의 사람들은 자식들이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게다고 말합니다. 억대연봉을 받는 어머니는 자신은 공부하느라 많은 경험을 하지 못했다고 말하지요. <사당동 더하기 25>에서 사람들은 단칸방에서 칼잠을 잡니다. 반면 <우리는 다은 집에 산다>의 사람들은 대출을 받아 자신들이 원하는 집을 직접 짓습니다. 사당동의 주민들이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대포폰과 대포차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기획된 가족>의 화이트칼라들과 성미산 마을의 중산층들에게 비난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들 역시 주어진 환경 속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사당동 사람들처럼 몸부림치며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씁쓸하게 여기는 것은 계층에 따라 계층에 따라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 원하는 집을 지으면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어떤 사람에게는 애초에 금지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다른 환경에 태어났더라면 그들 역시 다른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좀 더 나은 삶이 자신의 것인지 모르고, 그런 욕망을 상상하지도 않습니다. 아니 스스로 하지 않는 게 아니라 하지 못하도록 외부의 강제를 받는 것일 것입니다. 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금지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둘 사이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기 떄문입니다. 좀 지루하게 말하자면 저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같다고 느껴집니다. 물론 잘났냐”, “못났냐하는 표현은 알고 있습니다. 어째서 잘난인간은 그런 꿈을 꾸고, “못난인간은 그런 꿈을 꿀 수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 잘남이라는 것을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일브로너는 <자본주의,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책에서 자본주의 경제사를 간략하게 요약했습니다. 제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본주의가 최초로 스타트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축적이 일어나서 어떤 임계치를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떤 임계치를 넘어섰을 때 자본주의는 무한질주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 때 자본주의는 인간과 자연을 연료로 삼아 끝없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만약 그 질주를 멈춘다면 그것은 이제 자본주의가 아닐 것입니다. 누군가와 자연의 희생으로 자본주이는 점점 여분의 것을 만들어내고, 그 여분 중 대부분을 소수의 누군가에게 주어버리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예전보다 많은 것을 가지게 됩니다.

, 그전까지 임계치에 달하는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대개 사회적인 약자입니다)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자본의 축적을 위해 희생됩니다. 이 과정이 서구의 경우에는 장시간에 걸쳐 이루어졌지만, 새로이 자본주의가 유입된 곳에서 이러한 시스템의 재구축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독재입니다. 독재와 독재자. 그들에 의해 기존의 시스템은 변형되고 그 와중에서 많은 고통이 생기며 그 고통은 그 사회의 약자들에게 전가됩니다. 어저면 그 때 사당동 사람들은 그 당시의 약자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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