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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 폴로어 25만 명의 신종 대여 서비스!
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지음, 김수현 옮김 / 미메시스 / 2021년 8월
평점 :
아마미야 카린이나 마쓰모토 하지메, 사카구치 교헤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일본이 부러웠던 적이 있다.그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그렇게 시스템 바깥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던 사람들이 한국에도 있을까? 예전엔 김어준이 비슷한 느낌이 나던 시절이 있긴 했는데. 저자는 3년간의 회사생활 동안 상사 갑질을 견디지 못하고 퇴사한 후 프리랜서 활동을 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존재하기만 하는 역할만 하는 무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읽다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 같은 수필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론 이 책에 그런 유머나 위트가 있다는 건 아니고 목적없이 한가한 느낌이 난다는 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사람들은 전부 지쳐있는 것 아닐까. 의미와 목적, 상대방에 대한 기대와 배려, 책임같은 것이 넘쳐나서 그걸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레나 모제의 <인간증발> 처럼 증발해버린다. 아마 주식투자를 한 것 같은데 저자는 그렇게 벌어놓은 돈으로 이 무료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 묘사된 관계의 색깔은 "엷고 투명한 블루"같은 느낌이다. 트위터 디엠으로 연락하다가 클릭하나만으로 헤어질 수 있는 관계들. 고미숙같이 연대와 찰진 인간관계를 말하는 사람들은 혀를 찰지도 모른다. 그런 건 관계가 아니라고. 어쨌든 이제 모두가 단자화된 관계속에서 제일 첫 덕목은 "예의" 아닐까? 아니면 저자의 서비스가 유명세를 탄다는 것은 사람들이 그래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낸다는 반증일까. "어쨌든 집으로 돌아갑니다" 같은 뉘앙스의. 만약 이 책에서 저자가 어떤 철학 같은 것을 말한다면(마지막에 약간 그런 낌새를 보이긴 하는데) 그것 역시 이 책의 원래 분위기와는 배치되는 것일 게다. 돈으로 모든 것이 교환되는 세상에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 중에는 관계의 가성비를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일면 부지의 사람에게 중대사의 고백을 털어놓는 사람도 있다. 이 서비스는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마추지게 될 생산성, 효율성 부가가치 같은 것에 저항인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그런 원칙을 가지고 이 서비스를 시작한 건 아니다. 저자가 이 일을 시작한건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다. 아니면 사람들의 자의식이 너무 강해진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이상 타인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 줄 수 없는 것인지도. 하지만, 타인을 완전히 저버릴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서비스에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저자에게도 약간 그런 느낌이 들긴 하다. 오징어 게임의 원조 아이디어 격인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 고층 빌딩 사이를 줄타기로 건너는 내기에 도전한 카이지가 어쩌면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는 다른 참가자가의 등을 보며(이 참가자는 앞서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위안을 받는 장면이다. 카이지도, 상대방도 서로를 도울 수 없지만 카이지는 만약 저 사람이 지금 없다면 지금 이 줄타기는 지옥일 거라고 생각한다. 읽고 나면 많은 생각의 단편이 떠오른다. 결이 약간 다르지만 비슷한 책으로는 구리하라 야스시의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