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일러) 

아마도 2003년 전후였던 것 같은데 단편영화제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장소는 정독도서관 앞에 있는 아트선재센터 였던거 같습니다.(영화관 이름이 맞나 모르겠네요, 좋은 영화관이었는데 폐관했습니다. 지금 재개관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영화제목은 <맥도날드 보이>(감독이 눈이 예쁜 여성이셨습니다.) 나무들이 봤어(제목이 이거일겁니다. 아마 노동석 감독이 마이 제너레이션을 감독했죠),<여기가 끝이다>(제목이 이거일 겁니다. 혹시 이곳이 끝이다?) 등등 이었습니다. <무산일기>를 보면서 <여기가 끝이다>가 생각났습니다.둘다 탈북자가 모델입니다. 영화제목이 <무산일기>인 이유.주인공에게는 살기 위해 탈출한 무산이나 현재의 남한이나 똑같이 <무산>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살기 위해 돌을 들고 친구를 배신합니다.(배반의 모티프는 트레인스포팅? 그 영화도 결국 렌튼이 새출발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배신으로 인한 한탕입니다) 주인공은 여전히 무산에서 살고 있는 것이죠. <여기가 끝이다>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여기나 북한이나 똑같아요.하긴 여기는 먹을 건 많죠" (원문과는 약간 차이날 것임) 후에 감독과의 대화에서 관객이 이 부분에 있어서 질문을 했습니다. 감독은 이 애기를 친구인 탈북자에게서 직접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무산일기>와 묘하게 통하는 부분이 있군요. 그 때 그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은 좀 안타깝겠어요. 소재 발굴은 이미 자신이 오래전에 했는데 장편은 딴 사람이 완성했으니까요.  

 

p.s. 미카엘 하네커의 <히든> - 결국 자미드는 여전히 겁먹은 아이였을 것이다. 주인공은 끝까지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아마 미스틱 리버처럼 자미드는 여전히 겁먹은 아이인채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자미드를 끝까지  쫓아온 폭력이란.주연은 분명 다니엘 오테이유와 줄리엣 비노쉬인데 정작 '히든'히어로는 자미드같다. 알제리 애기도 나오는데 혹시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씨지비 압구정에서 화양연화란 이름으로 상연중이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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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집에 물을 붓는다고 쳐 보자. 어떤 개미는 죽고, 어떤 개미는 살 것이다. 그 때 나한테 죽은 개미와 산 개미가 달리 보일까. 죽은 개미나 산 개미나 나에겐 다같이 개미로 보일 것이다. 쓰나미가 육지를 훑는 광경을 보면서 별안간 이 개미가 떠올랐다.거기엔 나라는 개별성은 전혀 존중 될 것 같지 않았다.  자연 입장에서는 인간이라는 종만 살아 있다면 내가 죽건 살건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마치 죽은 개미나 산 개미가 나에겐 어떤 개별성도 같지 않고 하나의 개미로 인식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필경 저런 광경을 보면 어떤 인간이라도 신, 법칙, 의미에 대해 주시하리라. 그래서, 조용기목사 같은 사람이 미리 쉴드(?)치듯이 거기에 인과의 의미 만들기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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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비가 내린다. 수치가 미미하니까 건강에는 지장이 없을 거란다. 마치 옛날 시골에서 쓰레기 태우면 검은 연기가 치솟아 가다가 끝내 흐려지는 것처럼, 바다에 뿌려진 방사능은 바다로 널리 퍼질테니 안전할 테고 공기중의 방사능은 편서풍을 타고 흐려질 테다. 하지만,그렇다고 안전하다고 느끼기엔 왠지 궁색하다. 첨단기술의 결과인 원자력에 대한 대안치곤 너무 일차원적인 거 아닌가? 지금 내리는 비 속의 방사능이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쓴다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일까. 아마도 땅 속으로 쓰며든 비는 결국 지구를 돌고 돌아 우리가 먹는 음식물 속에 숨쉬는 공기속으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바닷물의 방사능은 물길을 돌고 돌아 결국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번 여름에 해수욕장 경기는 어떨까?) 생수의 물은 어디 우주에서 퍼온 물인가? 상수도의 물은 우주에서 퍼온 물인가? 결국 바다 건너편의 땅에서 흘러나온 방사능은 어떠한 경로를 거치든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것이다. 하루키 아저씨 지론대로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마치 좀비처럼 잊어버리지 않는 사채업자처럼 이번의 일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것이다.이토 준지의 <토미에> 그 첫 번째 에피소드 마지막 장면 "또 다른 토미에가 돌아올 것이다."  

삽질하는 일본 정부: 자세한 사정은 알 수없다. 하지만, 딱 하는 품새가 삽질이다. 이건 순전히 직관이지만 일본정부가 무능력하고 헛질만 하는 느낌이다. 원전사태는 계속 지지부진이다. 그래도 지금 저 상황을 핸들하는 사람들은 저쪽의 엘리트들일텐데 혹시 위기 때 그 본질이 드러나는 거 아닐까. 더불어 혹시 우리나라는 어떨까. 무슨 번역 오류를 냈다고 하는데 왠지 불안하다. 그들이 엘리트라고 해서, 우리에게 안전과 생활을 보전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들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것 아닌가. 혹시 애네들이 바닥이 훤히 드러나 보이면서 우리 앞에서 폼만 잡고 있는 거 아닐까. 심히 불안하다. 아무도 나의 안정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안하다. 

인공의 생태계: <불행의 놀라운 치유력>이란 책에서 이 단어를 처음 접하고 내 머릿속에 계속 남아있는 것 같다. 돈을 돈이게 하는 것은 단지 우리들의 약속일 뿐이다. 고병권 선생은 돈은 신앙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진이 나는 그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인공의 생태계는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프로야구도 개막하는 것이겠지. 사람들은 지금껏 인공의 생태계를 쌓아올려 왔다. 한번 김치 사발면을 사서 구성성분을 보라. 소맥분은 호주산,미국산이고 팜유는 말레이시아산이다. 전분은 독일산인 유엔 선발 로테이션이다. 이쯤되면 음식도 조리가  아니라 조립되는 것 같다.(이 표현은 패스트푸드에 처음 쓰이던 표현이다) 아주 단순한 생각인데 아마 우리가 사는 이 인공의 생태계는 <자연>을 연료로 가는 자동차 같은거 아닐까? 만약 연료가 떨어진다면 자동차는 바로 서 버릴 것이다. 나는 이 <자동차>를 생각할 때 마다 왠지 미묘한 느낌이 든다. 절벽을 향해 달려가는 파국뿐인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파국은 예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이 바닥나면 이 자동차는 대책없이 서 버릴 테니까. 이 세상에 영구기관 같은 건 없다.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것이 사실은 아주 예외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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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중장년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가 얼짱,몸짱을 갈망한다. 기준은 물론 섹시미다. "섹시하다"는 건 "난 너한테 성욕을 느껴!"."난 너랑 자고 싶어" 이런 표현이 아닌가. 대놓고 이렇게 말하면 성희롱이 될 수 있는 말이다. 한데, 모든 매체에서 이 괴상한 낱말을 시도 때도없이 밥 먹듯이 써대고 있다. 게다가 듣는 이들도 수치심은 커녕 오히려 최고의 찬사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연예인은 물론이거니와 보통 사람들까지 온통 섹시미를 드러내지 못해 안달이다.....이러다 전 국민이 다 섹시해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러면 남보다 더 섹시해지기 위해 또 다시 뜯어고칠테지.섹시미의 무한질주? 그럼,서로가 서로에게 성욕만을 느끼는 시대가 도래할 것인가? 흡!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고미숙,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 중) 

어어,저 아가씨, 미니스커트에 시원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있네.잘 하면 엉덩이 밑부분까지 보이겠는걸. 요샌 광택나는 스타킹이 유행인가 보지? 내가 아는 어떤 녀석은 저런 차림을 한 아가씰 보면서 한마디 하더군  "스타킹을 확 찢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녀석 애기임.내 애기 아님.절대 아님) <왕립우주군>을 보면 이런 장면이 있다.남자주인공이 방바닥에 엎드려서 여자주인공의 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러다가 갑자기 여자 주인공을 겁탈하려고 하다 실패한다(물론 성폭력책임이 여자한테 있다는 애기 아님,절대아님)  여자들은 과연 자신들의 노출을 어떻게 생각할까? 어쩌면 아무 생각없이 남 따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동모일보에 이런 기사도 났었지. "그녀의 히든카드, 다리"- 내용인즉슨  얼굴이 딸리면 다리로라도(섹스로라도) 승부할 수 있다, 이런거?(혹시 다리 성형외과에서 밀어 준 기사인지도 모르겠다.아님 말고) 

"80년대 신디로퍼와 마돈나중에서 마돈나가 뜬 이유는 2000년대 이효리가 뜬 이유와 같다고 생각합니다.나도 저렇게 거침없이 하고 싶다 이런거요" (배캠에서 임모씨가 한말,원문과 약간 차이남) 

으음,언니들이 원하는게 거침없이 뭘 어떻게 하는 거였군. 뭘 어떻게 거침없이 하는지는 모르겠다만 저기 저 언니가 나한테 거침없이 아무것도 안 해주리라는 건 방금 깎은 내 발톱을 걸고라도 자신할 수 있다. 이럴때 지미코리건(36살의 연애경험 전무의 대머리 아저씨)의 아빠가 한 말을 들어보자 

"됐어 자기.줄듯 말듯 빼기만 하는 년하고 시간낭비하느니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보람있을 테니까."  (원문과 약간 차이남) 

교훈: 어른들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ps: 강남역 사거리를 걷다보면 여자들이 여기,여기하고 아우성을 치는 것 같이 느껴진다.거기에는 우월감과 자신감,안도감과 불안함이 섞여 있는 것 같다. "섹시피로"라는 말도 존재할 수 있을까.성에는 폭력적인면도 공격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보면 나는 사방에서 공격을 받는 셈이다.김연아에 이어 나온 손연재를 보며 좀 피곤하지 않으신지.얼마 전 본 스포츠찌라시에는 손연재의 <명품11자다리> 사진이 실려 있더라.("최강"의 섹시걸그룹도 떳다고 하니 관심있으시면 한번 찾아보시길)김연아와 에어콘 경쟁도 한다고 한 것 같은데, 아직 어린 손연재의 아름다움이 돈으로 이어지는 루트,약간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으신지. 예쁘면 돈을 벌 수 있고 돈이 있으면 예뻐질 수 있다. 지하철에서 성형전후를 비교하는 광고를 본 적이 있다.생각없이 몇 번 봤었는데 언젠가 성형전도 자연스럽고 못 생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전철에서 심심하면 한번 찾아보시라) 요즘 나오는 걸그룹도 결국 장사수단 아닌가. 그걸 진보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결국 팔게 없으니까 더 어린애들을 파는 건 아닐까. 예전에 "빨간 마후라"가 나왔을 때 사회는 분개했다. <키노>에서 "어른들의 영역을 침해한 아이는 벌을 받는다"라는 의미의 문장이 있었는데 하루키소설 주인공마냥 신문지위에서 첫섹스하는 학생들을 용인한다손 치더라도 저건 그냥 장사속 아닐까. 더 이상 사회는 아이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키스방에서 여대생 선전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예쁜걸 싫어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전부 예쁜 사회는 좀 피곤할 것 같다. 왠지 천박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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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음) 

 나이가 많아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착해진 걸까? 하는 느낌이 드는 영화가 <히어애프터>다. 전체적으로 영화가 왠지 말랑말랑한 느낌이 든다. 누구든지 삶을 축복하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때마다 온기대신 죽음을 느꼈던 맷 데이먼이 마지막에선 천생연분을 만나서 손을 잡고 마침내 상대방의 온기를 느끼는 장면을 보면 누구라도 가슴이 훈훈해질 것이다. 그렇다. 누구라도 상대방이 필요하고 온기를 전하고 전해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냉소적인 무신론자(극중 인물처럼 죽음이 전기가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가 본다면 훗하고 콧방귀를 뀔지도 모르겠다. "어어 죽은 형이 동생을 구해주네~~, 일본 대지진 때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 중에선 도와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나봐~~" 하고 말이다. 물론 잘 만들고 좋은 영화지만 약간 걸렸던 점. 맷 데이먼은 직장에서 짤리고도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까? 답: 아직 젊고 가족이 없기 때문? , 또하나 걸린점 . 저렇게 천생연분 만나는 것도 맷데이먼이니까 가능한 거 아닐까?(좋겠다. 능력있으면서 예쁘기까지 한 여자라니). 해피엔딩으로 끝난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마치 얇은 비닐장갑을 끼고 영화를 만진 것 같은 이물감이 들었다. 그리고 애꿎게도 그 다음날 마이크 리 감독의 <세상의 모든 계절>을 보고 말았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한 가지 모습이지만 모든 불행한 가정의 모습은 여러가지이다" 이런 뉘앙스의 문장이 나오는게 <안나 카레리라>였던가? (하루키도 인용했던 거 같은데.) 이 문장을 영화로 옮겨놓은 것 같은 게 <세상의 모든 계절>이다. 이제는 나이들어버린, 한 때는 펍에서 정치를 외쳐대고 비틀스나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가는 곳마다 젊은애들이야하고 투덜대고, 친구의 젊은 아들에게 반해버리는 사람들. 구차함과 안쓰러움이 극치를 보고 싶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면 된다.(그렇다고 이 영화가 꿀꿀한 분위기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코믹하다.그래서 난처한 웃음이 터진다) 영화를 보다 보면 마음에 닿는 대사들을 무심하게 등장인물들이 내뱉는다. "누구든지 대화상대가 필요해". "우리 전부 노인이 되잖아요, 운만 좋으면"(맞다.노인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그냥 매일매일 즐겁게 살려구요","그게 최고죠 뭐" <히어애프터>의 해피엔딩 만남에 비하면 이 영화의 메리와 톰의 형의 만남은 그 가혹한 패러디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왜 그렇게 불행해진 걸까? 알 수 없지 뭐. 일부러 그랬겠어.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앉을 의자는 없어졌더라구.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쥐처럼. 영화는 끝까지 행복과 불행을 무심히 바라 볼 뿐이다. 거기엔 화해도 없고 의미도 없는 거 같다. 삶이란 게 쓰나미 같은 거 아니겠어. 네가 2011년 3월 11일 오후에 미야기현 해변에 있었다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닥쳐오는 파도를 그냥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뿐이었을 거야.  그들의 삶과 불행도 그런 것이겠지. 코엑스에서 영화를 봤는데 끝나고 나니 배가 고팠다. 난 전형적인 혼자 노는 스노우캣 타입인데 이 때만큼은 북적거리는 푸드코트에서 혼자 밥을 먹기가 싫었다. 다 괜찮아. 지금 네 앞에 있는 매끈한 다리를 드러내고 한껏 멋을 낸 예쁜 아가씨도 결국 저런 차림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거야. 싫든 좋든 저게 저 아가씨의 운명이고 삶일 테니까.   

사족: 메리역의 레슬리 맨빌, 이 영화로 두 개의 상을 받았네. 대단하세요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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