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있음) 

 나이가 많아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착해진 걸까? 하는 느낌이 드는 영화가 <히어애프터>다. 전체적으로 영화가 왠지 말랑말랑한 느낌이 든다. 누구든지 삶을 축복하기를  원한다.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때마다 온기대신 죽음을 느꼈던 맷 데이먼이 마지막에선 천생연분을 만나서 손을 잡고 마침내 상대방의 온기를 느끼는 장면을 보면 누구라도 가슴이 훈훈해질 것이다. 그렇다. 누구라도 상대방이 필요하고 온기를 전하고 전해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냉소적인 무신론자(극중 인물처럼 죽음이 전기가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가 본다면 훗하고 콧방귀를 뀔지도 모르겠다. "어어 죽은 형이 동생을 구해주네~~, 일본 대지진 때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 중에선 도와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나봐~~" 하고 말이다. 물론 잘 만들고 좋은 영화지만 약간 걸렸던 점. 맷 데이먼은 직장에서 짤리고도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까? 답: 아직 젊고 가족이 없기 때문? , 또하나 걸린점 . 저렇게 천생연분 만나는 것도 맷데이먼이니까 가능한 거 아닐까?(좋겠다. 능력있으면서 예쁘기까지 한 여자라니). 해피엔딩으로 끝난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마치 얇은 비닐장갑을 끼고 영화를 만진 것 같은 이물감이 들었다. 그리고 애꿎게도 그 다음날 마이크 리 감독의 <세상의 모든 계절>을 보고 말았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한 가지 모습이지만 모든 불행한 가정의 모습은 여러가지이다" 이런 뉘앙스의 문장이 나오는게 <안나 카레리라>였던가? (하루키도 인용했던 거 같은데.) 이 문장을 영화로 옮겨놓은 것 같은 게 <세상의 모든 계절>이다. 이제는 나이들어버린, 한 때는 펍에서 정치를 외쳐대고 비틀스나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가는 곳마다 젊은애들이야하고 투덜대고, 친구의 젊은 아들에게 반해버리는 사람들. 구차함과 안쓰러움이 극치를 보고 싶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면 된다.(그렇다고 이 영화가 꿀꿀한 분위기는 절대 아니다. 오히려 코믹하다.그래서 난처한 웃음이 터진다) 영화를 보다 보면 마음에 닿는 대사들을 무심하게 등장인물들이 내뱉는다. "누구든지 대화상대가 필요해". "우리 전부 노인이 되잖아요, 운만 좋으면"(맞다.노인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그냥 매일매일 즐겁게 살려구요","그게 최고죠 뭐" <히어애프터>의 해피엔딩 만남에 비하면 이 영화의 메리와 톰의 형의 만남은 그 가혹한 패러디처럼 느껴졌다. 그들이 왜 그렇게 불행해진 걸까? 알 수 없지 뭐. 일부러 그랬겠어.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앉을 의자는 없어졌더라구.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쥐처럼. 영화는 끝까지 행복과 불행을 무심히 바라 볼 뿐이다. 거기엔 화해도 없고 의미도 없는 거 같다. 삶이란 게 쓰나미 같은 거 아니겠어. 네가 2011년 3월 11일 오후에 미야기현 해변에 있었다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닥쳐오는 파도를 그냥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 뿐이었을 거야.  그들의 삶과 불행도 그런 것이겠지. 코엑스에서 영화를 봤는데 끝나고 나니 배가 고팠다. 난 전형적인 혼자 노는 스노우캣 타입인데 이 때만큼은 북적거리는 푸드코트에서 혼자 밥을 먹기가 싫었다. 다 괜찮아. 지금 네 앞에 있는 매끈한 다리를 드러내고 한껏 멋을 낸 예쁜 아가씨도 결국 저런 차림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거야. 싫든 좋든 저게 저 아가씨의 운명이고 삶일 테니까.   

사족: 메리역의 레슬리 맨빌, 이 영화로 두 개의 상을 받았네. 대단하세요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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