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문학
조영일 지음 / 비(도서출판b)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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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읽지 않는다, 라는 문장은 왠지 문학적인 느낌이 든다. 실제로 나는 소설을 읽지 않는다. 소설 내지는 문학이라고 하면 하루키의 10억 선인세설이나 신경숙의 표절논란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이건 손흥민의 FA이적이나 정유미,공유 열애설 같은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이런 게 문학의 위기일까? 

  <직업으로서의 문학>은 평론가 조영일이 쓴 문단에세이. 문예지, 도서정가제, 문학진흥법, 문단 내 성폭력 등의 이슈를 통해 현재 한국문단의 여러 가지 표정이 묘사되어 있다. 지금 한국문학은 위기인가? 저자는 근대문학에 기대감은 없다고 하면서도 현재 한국문학은 일본문학의 식민지라고 서술하며 위기감을 표현한다. 여기서 먼저 저자가 집중하는 것은 문학을 한다는 것과 생계를 한다는 것의 성찰이다. 예술은 배고픈 직업이라는 이미지가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지만, 대부분의 문학인은 전업으로서 생계를 유지하지 못한다. 때문에 이들이 예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문학진흥법이 도입되었다. 그럴듯한 전개인데 저자는 여기에 의문을 던진다. 박정희시대의 문예진흥법이 우리 문학에 도움을 주었나? 경제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면 한국문학이 살아날까? 오히려 회복해야 하는 것은 문학에 대한 신앙아닐까? 저자가 일별하는 문학사는 특이하다. 문학은 원래 직업이 아니었으며, 8,90년대 이문열, 황석영 등이 등장하면서 전업이 이루어졌다. 문학성=상품성의 등식이 이루어지며 베스트셀러가 예술성이 있다는 환상은 이 때 퍼진 것이다. 동시에 대학교육이 대중화되고, 대학에 국문과, 문창과가 늘어나면서 문학에 관한 출판시장과 교육시장이 분화되었다. 역설적으로 출판시장이 아닌 교육시장에서 문학을 전업으로 하는 문학인이 늘어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문학으로 먹고 산 적이 없었다고 저자는 애기한다. 그리고 교육제도를 통해 재생산된 이런 문학에 대한 환상은 결국 전업작가는 되기 힘든데, 신춘문예에 지원하는 문청들은 갈수록 늘어나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은 보나마나 신경숙 표절사태에서 드러났던 문학권력만 공고히 할 것이다. 교육시장과 출판시장의 분화는 비평이라는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육시장에서 자신의 지분을 확보한 비평가는 문단 내에서 상대적으로 더 나은 입지를 확보하고 문학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선생님노릇을 한다. 반면 출판시장에서 활동하는 비평가는 한국문학의 위기에 따라 조용히 사라진다.

저자는 문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학인의 자존감과 독립성이며 이들에게 가난은 숙명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런 독립성을 훼손하는 한 정부의 지원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예전 청빈과 안빈낙도를 애기하는 선비정신 같은 것이 오히려 필요할 것이다. 저자는 근대 일본문학의 선구자들이 대부분 단명했는데 이런 태도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암시한다.

 

  어찌 보면 저자가 애기하는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라라는 식의 고리타분한 애기인지도 모르겠다. 이 무신론의 시대에서 이런 태도는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것을 감수할 생각이 없으면 아예 문학인이 되지 말라는 것일까? 좀 다른 애기인데 예전에 도서대여점이 늘어날 때 만화가들이 생계애기를 하며 이에 반발한 적이 있다. 한 만화가는 흙 파먹는 만화가를 그리며 예술은 배고픈 것이라는 말풍선을 달았다. “배고플 각오 없으면 소설 쓰지마라는 애기는 어째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직접 바둑 두는 것보다 옆에서 훈수하는 것이 편하지만, 바둑 두는 사람에게는 그게 얄밉게 보이는 것이다. 그럼 저자가 한국문학의 위기에 대하여 내놓는 대안이 있나? 저자가 건드리는 이슈 중에 도서정가제나 문예지 권력 같은 것이 있는데 이것을 건드리는 것이 저자는 대안일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다,라고 한 것은 이 책이 전반적으로 소설을 읽지 않는 나에게 애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게 저자의 태도 때문인지 내 견문이 짧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후자쪽이겠지 아마) 여러 지면에 발표한 글을 책으로 묶은 것이라 논지가 일정하지 않고 논리의 비약도 가끔 있는 것 같다.(물론 내가 무식한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저자가 논지를 전개하는 가장 근본적인 전제인 문학이란 무엇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없다. 저자는 맨 마지막 꼭지에서 톨스토이의 예술론을 소개하며 의문을 던지는 것으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문청이거나 문단 관계자들일까? 아니면 아직 문학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일반 시민들일까? 예전에 프로 축구에서 승부조작이 일어났을 때 기사에서 요새 누가 축구 보냐, 이참에 K 리그 없애버려라라고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떠올린 건 이 댓글이었다. 그렇다. 한국문학은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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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 : 운명을 조율하다 - 심화편 명리 시리즈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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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읽어도 절대 사주 못봄(노력하면 볼 수 있을지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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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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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책을 다 읽었다. 도서관에 반납하기 전에 뭐라도 쓰고 싶다. 왜냐하면 나에게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추천사와 내가 읽은 것 사이에 부조화가 느껴졌기 때문일까. 이 책을 이해할 수 없어서 간만에 알라딘에서 다른 사람의 서평을 읽어 봤다. 호평일색의 서문과 읽고 난 다음의 인지부조화가 나만의 경험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조금 안심했다.

 

   어찌보면 전형적인 이 스토리가 왜 사람들의 호평을 이끌어 내는 걸까. 네 능력탓이라면 할 말 없지만 난 이 책을 읽고 나서 왠지 모르게 모호한 안개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기분의 정체를 아직 모르겠다. 이 글도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작성하는 것이다. 보통은 종이에 초고를 쓴 다음에 퇴고를 하는데 말이다. 어쩌면 주인공의 정치적인 태도가 모호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쉽게 말해서 남 탓하지 말고 노력하라는 애기인데 이미 대한민국에서 "노오력"은 이미 충분한 조롱을 받고 있지 않은가. 이 부분에서 공화당 느낌인 주인공은 예일대 진학 후에는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마도 이런 사회적 자본에서 힐빌리들이 소외되어 있다는 애기일 것이다. 이런 접근은 민주당적인 접근 아닌가?  이야기만 놓고 보면 우리가 익히 듣던 흑인 하류층(흑인을 폄하하는 의도 아니다. 이미 나에게 그런 이미지가 장착된게 나의 현실이다.) 애기 같은데 다른 점은 주인공이 백인이라는 것. 그런데, 이 이야기가 그토록 호평을 받았다는 것은  미국사회에서 이들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부족했었나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다.(여기서 잠시 삐딱한 생각이 든다. 추천사를 쓴 빌게이츠가 왠지 잘난척하는 것 같다). 그리고, 왜 할보와 할모가 파탄난 결혼생활을 했는지, 그게 왜 자식에게 유전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도 불분명하다. 어느날 할보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마약을 하고 남자를 바꾸기 시작했다. 물론 러스트벨트가 배경으로 깔리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이들의 행동의 이유가 와닿지 않는다.

 

 오히려 내게 인상적인 것은 예일대 로스쿨 커뮤니티에 대한 묘사였다. 제1세계 주류 사회를 살짝 엿본 2등 국민의 위화감이랄까. 아마 주인공이 느꼈을 그런 감정을 나도 느꼈다.(결국 중요한 것은 인맥이야 하는 보수적이고 전근대적인 느낌도 함께. 공부해서 서울대 가라고~ㅍㅎ) 하지만, 주인공에게도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주인공은 학창시절 그렇게 분탕질을 치고, 4년이나 해병대로 이라크까지 갔다왔는데도 대학과 로스쿨을 졸업하고 주류사회에 안착했다. 분위기로 보아 주인공이 엄청 똑똑한 것 같지는 않는데 이건 미국사회가 그만큼 아직 열려있다는 애기 아닐까?  본인의 의지가 있다면 그래도 아직 길이 있는 것이다. 수능 하루에 원샷으로 인생의 대부분이 결정되는 우리와 비교하면 그런 점에서는 주인공이 오히려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계속 삐딱한 생각을 해 본다. 그가 지금 가진 주류적 가치에도 헛점이 있을 지도 모른다. 한 여자와 평생 바른생활 가정을 유지하는 것이 반드시 미덕이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아이에게는 지옥이겠지만 서로 쌍욕하며 싸워대는 커플이 되길 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부럽다. 만족스러운 일터, 사랑스런 아내, 귀여운 반려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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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얻은 것 중 하나는 커피 맛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 나는 정신의 예민함을 위해 될

수 있으면 정신을 자극하는 커피나 담배, 알콜 등은 피하려고 노력했었다. 게다가 그런 것에 중독된다는 것은 이 미로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또 하나의 연을 쌓는 것이고, 그것은 내가 지향하는 심플 라이프에 반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나는 될수록 커피를 멀리 했었다. 하지만, 여행 중에는 어쩔 수 없이 커피를 마셔야 했는데 그 곳에서는 커피가 너무 일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바에서 물을 달라고 하면 앤 뭐니? 하는 뚱한 시선을 마주쳐야 했다)

결국 귀국 후에는 한동안 보카디요스와 커피콘레체의 조합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셔야 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여전히 커피는 인간을 미혹시키는 해로운 물질이라는 관념이 있었기에 나는 내 행동을 결정하기 위해 커피에 관한 자료를 접하기로 결정했다.

커피와 연관되는 단어를 쭉 적어보자 각성, 원기회복, 향정신성물질, 강화물질, 수면장애, 경기력 향샹...” 커피의 유해성 논란은 카페인으로 압축된다. 커피의 중추는 카페인이기 때문이다. “ 카페인 권하는 사회”(머리 카펜터,중앙북스)는 우리 주변 카페인의 여러 모습을 추적한 책이다. 저자가 포커스하는 카테고리는 커피보다 에너지음료, 탄산음료, 카페인제제,껌 등인데 커피는 카페인 섭취의 첨병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양반처럼 그려진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섭취하는 카페인 음료가 훨씬 많은 것이다. (콜라에 카페인이 들어있는지는 알고 있었는데 선키스트에도 카페인이 들어가는지는 처음 알았다.) 그럼 커피는 과연 유해한 것인가? 이 책에서 어떤 과학적 사실을 확정적으로 주장하지는 않는다. 아마 “10년 전에 암을 유발하는 것이 지금은 암을 치료하는 것으로 바뀐다든가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오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 자주 듣기 때문”(“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스콧.F파커,따비) 일 것이다. 하지만, 두 책에서 은근히 확신하는 과학적 팩트는 커피음용이 안정적이고 규칙적인 형태의 약물 자가 투여 행동”(카페 인권하는 사회)이라는 것이다. “커피는 약물인가? 그렇다.”(커피,만인을 위한 철학)

동시에 두 책 다 모든 문화권에서 고유의 카페인 음용이 있었으며 어떤 문화권에서도 이를 약물남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마약과 카페인의 차이점은 뭘까? 카페인은 4~5시간 후에 분해되며 체내에서 배출되고, 마약 같은 반사회적 행동을 일으키지 않는 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경기력향상을 위해 선수들은 카페인을 복용한다. 그럼 경기 전의 커피한잔은 도핑인가? “커피, 만인을 위한 철학에 따르면 답은 그렇다이다. 그럼 이 두 책의 저자들은 커피를 마실까? 아주 행복하게 마신다고 한다. 커피가 진한, 지독하게 쓴 흙탕물인지 신을 믿는 사람들의 음료인지의 논쟁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약을 올리면서 말이다.

커피옹호론을 노골적으로 펼치는 책에는 커피가 죄가 되지 않는 101가지 이유”( 로잔느 산토스, 다르시 리마, 가갸날) 가 있다. 어디어디 박사라는 두 분이 쓴 책인데 일단 이런 책은 업계의 사주가 없는지부터 봐야한다. 색안경은 쓰지 않고 이 책을 읽을 때 드는 생각. 커피의 어느 성분이 그렇게 좋다면 왜 그걸 꼭 커피를 통해서 얻어야 할까?. 왜 에너지음료와 커피를 비교해서 커피옹호론을 펼칠까? (당연히 합성 카페인이 들어간 에너지음료보다 커피가 더 좋겠지) 어느부분에서는 에너지 음료보다 카페인이 적다고(카페인이 나쁘다는 소리다) 하면서도 어느 부분에서는 카페인의 어디가 좋다고 설명한다. (그럼 카페인 많은 에너지음료를 마시지) 옹호론을 펼칠 거면 두려움이나 죄책감은 확 날려버리도록 제대로 펼칠 것이지 이래저래 실망이다.

 

그럼 난 커피를 마셔도 되는 걸까? 의외로 나는 그 대답 비슷한 것을 커피와 담배”(짐 자무시) 라는 영화에서 찾았다. 흑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디테일한 연기 때문인지 지루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11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영화인데 어찌 보면 허무개그 같고 어찌 보면 넌센스 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물론 커피와 담배가 놓인 식탁 앞에서다. 사람들은 커피와 담배를 나누면서 진료를 두려워하는 상대방 대신 치과에 가기도 하고 만담 같은 대화를 주고받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그 와중에 상대방에게 형식적으로라도 악의를 감추고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애기를 나누면서 서로 움찔, 짜증을 주고 받으면서도 끝까지 악수를 나누고 포옹을 한다. 딱 한번 홍차가 등장하는데 그 때는 서로 얄짤없다. (“제가 너무 속보였나요?”,“” ) 솔직하다면 솔직하지만 어째 좀 야박하다는 느낌도 든다. 영화에서 커피와 담배는 그렇게 이미 삶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성질 나쁜 오래된 친구처럼 나쁜 걸 알지만 내치기에는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끊을 수는 없지만 모르는데 굳이 알 필요 까지는 없는 친구. 영화에는 로베르토 베니니부터 빌 머레이,케이트 블란쳇 등등, 팔색조의 배우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이기라고 하는데 알고 보니 이기 팝이었다!) 영화에서처럼

커피와 담배는 소품처럼 내 인생 주변에 존재하지 않을까. 난 거기에 관심을 주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할 것이다. 다만 그걸 접할 때는 신을 믿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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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7-12-27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스페인에 오셨었나보군요! ㅎㅎ 커피는 향이 더 좋죠. 전 심장이 두근거려서 자주는 못마시지만 스페인 커피 맛있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커피 맛보시면 그 때부턴 스페인 커피 눈에도 안차실듯.. 암튼 언급하신 영화에서처럼 이 사람들에게는 커피나 담배가 ‘필요’에 의한거라기 보단 그냥 일상, 기호, 소품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ㅎㅎ
한국에서 그란데 혹은 밴티 사이즈로 커피 들이붓는 건 거의 약에 가까운 것 같구요.
 
무엇이 탁월한 삶인가
리처드 테일러 지음, 홍선영 옮김 / 마디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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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겐지의 철학교수 버전 선동적인 어투에 별로 재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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