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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 수목원
한요 지음 / 필무렵 / 2021년 8월
평점 :
『어떤 날, 수목원』/ 한요/ 키위북스/ 2021

최근, 3개월 동안 주 1회 그림 배우러 다녔다. 그림을 배우러 다니는 동안 재미는 있었는데 많이 낙담도 했다. 그림을 배워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에 그림 그리러 나오는 사람들 보니 너무나 기가 죽어서 스스로 비교가 되었다. 꽤 큰 관공서에 자신의 그림이 걸려 있는 사람도 나와서 그림을 그렸기에 형편없는 그림 실력이 바로 드러났다. 그래서 그냥 감상하는 것으로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디자인과 일스트레이션을 공부하고 독립출판을 작업을 하는 한요가 쓰고 그린 『어떤 날, 수목원』은 편안하면서도 마치 수목원 구석구석을 함께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곳에서 쉬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가 나일 것 같고, 친구와 이야기 나누고 있는 사람이 나일 것 같다.

“토요일에 나랑 숲에 갈래?
다음 주에 날 맑은 날 산책할래?
그냥 같이 걸을래?
김밥 두 줄 사서. 조금 오래 걸려도, 버스 몇 번 갈아타도 괜찮다면.”
내게 하는 말이라면 나는 언제든지 오케이다.^^
이 책은 글보다는 그림이 많은데 짧게 들어간 글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글보다는 그림에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았기에 그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때론 전화 한번 걸기가 이렇게 힘든 일인 게 참 싫지만, 나무들 사이를 걷다 보면 쪼그라든 자신을 챙길 여유와 용기가 조금 생기는 것 같다.”
나도 그렇다. 어떤 때는 전화를 해야 하는데도 하기 싫어 미루고 미루다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푸릇푸릇한 초록이들을 보면 조금 낫다. 심호흡 한 번 하고 전화를 하기도 한다. 대구의 수목원도 잘 가꿔놓았지만 나의 경우는 제주도 숲을 거니는 것을 좋아한다. 환상숲, 동백동산, 거문오름, 비자림, 사려니숲길, 절물자연휴양림 등. 이런 곳은 숲의 생태를 그대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마냥 신비롭다.

“걷다가 마주치는 나비 한 마리, 듬성듬성 핀 꽃들.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 그 사이로 새 몇 마리 날아가고,
햇빛과 나무 그림자가 뒤엉켜 드리운다.
물 냄새가 나다가, 흙냄새가 난다.
생동하는 것들로 넘쳐흐르는 이런 순간에 문득,
내 안의 어딘가로 걸어 들어온 것만 같다.”
사려니숲길을 걸을 때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꽤 긴 길이었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 길, 새소리, 바람 소리,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 옆에 핀 꽃들. 모든 게 친구 같고 다정하게 느껴졌다. 물론 물 냄새, 흙냄새도 함께 했었다.
이 서평은 허니에듀 카페와 필 무렵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