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색종이도 필요해 브로콜리숲 동시집 26
전자윤 지음, 이원오 그림 / 브로콜리숲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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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까만 색종이에 응원을!

책 읽기 좋은 가을에 잔잔하지만 몽글몽글한 동시집 한 권을 마주했다. 재밌지만 가슴이 따스하고 짧은 시지만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 결코 가볍지 않은 동시집이다. 4부 50편의 동시가 아직은 완전히 물러가지 않고 남아 있는 뜨거운 기운을 차분하게 다독거려 준다.

전자윤 선생님은 22018년 《부산아동문학》 동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해 2020년 샘터상과 한국안데르센상 동시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2021년 부산문화예술지원사업 우수예술지원에 선정되었고 출간한 책으로는 동화책 『그림자 어둠 사용법』, 『비밀은 아이스크림 맛이야』가 있으며 동시집으로 『까만 색종이도 필요해』가 첫 동시집이다.

동물원 얼룩말

희 붕대 감은

이집트 미라 닮았다

놀리지 마!

붕대가 아니고 길이야

내 고향 아프리카

잊지 말고 찾아가려고

가는 길 그려둔 거야

언제쯤 내 고향 갈 수 있을까

눈물 얼룩 지우고 그린

그리운 고향길이야

14쪽 <얼굴말> 전문

사바나 푸른 초원을 상상할 때 얼굴말 한두 마리는 항상 끼워서 상상하곤 했다. 동물원에 가지 않고는 굳이 얼룩말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는데 동시집 속 얼룩말 작품을 읽고는 얼룩말의 얼룩이 고향 떠나온 얼룩말의 그리운 고향길이라는 말에 짠하다. 넓은 초워너에서 마음껏 뛰어 다녀야 하는데 좁은 공간에 갇혀서 남은 생을 살아야 하는 처지가 동물복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어디 얼룩말만 그런가.

왜 못 봤을까?

풀숲에서 삼각자를 찾고

바위에서 장화를 찾고

구름에서 아이스크림을 찾았으면서

지붕에서 우산을 찾고

학교에서 상어를 찾고

버스에서 바람개비를 찾았으면서

그 아이

옷소매에 숨은 그늘은

왜 못 봤을까?

37쪽 <숨은 그늘 찾기> 전문

공익광고에도 비슷한 것을 본 것 같다. 말 못할 고민 혼자만 안고 있지 말라는, 주변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져준다면 한결 나아지겠지만 요즘 살아가는 모습이 제각각 살기 바쁜 모습이라 쉽지가 않다. 옷소매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 몸에 난 멍이나 상처 등 두루두루 조금씩만 관심 갖고 지켜봐주면서 사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

나중에 후회기 싫으면

틈틈이 게임도 해

참, 잊지 마!

놀이공원 마치면 놀이터 가야 해

또 학원 가서 공부하느라 늦지 말고

알았지?

오늘도 친구들이랑 실컷 놀다 와

47쪽 <듣고 싶은 말> 일부

아이 키우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부분인데 처음에는 '건강하게 자라다오'하던 마음이 점점 다른 쪽으로 방향을 돌려 "이것도 잘해야지, 저것도 잘해야지" 하고 주문을 하게 된다. 많은 부모가 오류임을 알면서도 일등주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음박질을 친다. 슬픈 현실이다.

가을은

온통 빨간 날

놀면 된다

80쪽 <단풍나무 달력> 전문

직장인과 학생이 참 좋아할 달력이다. 곧 울긋불긋 단풍이 내려앉을 텐데. 단풍나무 달력 중에 한 날을 잡아 단풍 구경이라도 가야 겠다.

나는 검정색을 좋아한다. 검정색 옷에 검정색 가방 등을 들고 외출하곤 하는데 가끔은 거울을 보면서 많이 칙칙한 생각이 들어 요즘은 색이 있는 것들도 가끔 사곤 한다. 하지만 여전히 검정색이 좋다. 뭐든 각각의 쓰임이 따로 있는 걸 보면 까만 색종이도 이제 위축되지 않아도 되겠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까만색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빛나니까.

이 세상 모든 까만 색종이뿐만 아니라 검정색에게 응원을 보낸다. 물론 이 시집 속 거인의 바늘, 접시꽃, 개개비 교장 선생님, 달과 옥수수 등 모든 것들에게도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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