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젤 좋아 청색종이 동시선 5
하인혜 지음 / 청색종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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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불 같은 동시

지금이 젤 좋아/ 하인혜 / 청색종이/ 2021

 

겨울 한가운데서 가슴 따뜻한 동시집을 읽었다. 하인혜 작가는 할머니가 엄마에게, 엄마가 작가에게 가르쳐 주었던 말을 글자로 받아적었다고는 하지만 작가의 따스한 마음이 독자에게도 그래도 전달되기에 이리 마음이 따듯해지는 게 아닐까.

하인혜 작가는 아동문예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동시로 대전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며 심상에서는 시로 신인상 수상하였고, 에세이문학에서 수필이 추천완료 되었다. 대산창작기금을 받았으며 시집으로 분꽃과 어머니, 동시집으로는 엄마의 엽서, 지금이 젤 좋아를 출간했다.

 

마음이 가는 시들이 많았지만 그중 몇 편을 소개해 본다.

 

꽁하니 담아/ 단단하게 묶어두었던 것/ 펼쳐 보니/ 고작/ 콩알만 한 거잖아// 마음보를/ 확 펼쳐보렴// 마음보는/ 하늘도 담기는/ 커다란 보자기란다// -마음 보자기전문 (17)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린 시가 많았다. 이 시도 그중 한 편으로 마음 보자기는 둘둘 말아서 꿍쳐 놓을 게 아니라 늘 활짝 펼쳐놓아야 자신도, 주변 사람도 편하다. 하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민감한 나 역시 마음보가 콩알만 할 것 생각하니 시를 읽다가 급하게 반성 모드로 돌변하게 된다.

 

형아야/ 우리 반에/ 민수가 두 명 있거든/ 김민수/ 이민수라고// 그러니까/ 감귤/ 금귤도/ 이름은 같은데/ 성이 다른 거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내 동생/ 혼자 알았다//

-민수와 귤전문 (24)

 

이런 걸 혼자서 깨달았다니. 동생은 천재가 아닐까? 귤 철이다. 상자 가득 담긴 귤을 까먹으면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천혜향, 레드향, 한라봉은 어떻게 되는 건지 동생한테 물어보고 싶긴 한데, 대답해 주려나.

 

살아서는 입지 못할/ 그 한 벌 옷/ 세상 떠나는 날/ 깨끗한 옷차림으로 하느님을 맞이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햇살 편지 일부분 (34)

 

작가의 작품에는 할머니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하느님도. 예전에 할머니도 삼베옷 장만해 옷장 깊숙한 곳에 넣어뒀었는데 추억을 소환하는 시다. 그 옷 입고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까지 하느님 곁에서 잘 살고 계실까?

 

반찬 가게 영철이 엄마는/ 종종 생각하곤 했어요/ 아들이 딱 한 뼘만 더 자란 키로/ 똑바로 걸으며/ 엄마를 제대로 부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그 바람을 접고/ 오직 한 가지/ 소원만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영철이보다/ 딱 하루만 더 사는 것이에요// 주방 문턱을 덜어선/ 저녁빛이 개수대 물기를 닦아내는/ 오후 네 시쯤이면/ 간이의자에 돌아 앉아/ 전화를 합니다// -,처얼,! 집에 온 거지?/ 케토톱 붙인 무릎을 쓰다듬으며/ 몇 번씩 되묻곤 합니다/ -오늘은 재미있었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올해 나이 마흔둘, 영철이가/ 복지관에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오후 네 시쯤이면전문 (60~61)

 

장애를 가진 사람이 있는 집은 그렇지 않은 집보다 훨씬 하루가 바쁘다. 일반인이 그만큼 챙겨야 할 게 많으니까 그렇다. 물론 경증이라 스스로 하는 사람도 있지만 온전하게 자신을 다 맡겨야 일상이 가능한 사람도 있다 보니 누구보다 하루하루가 고되고 힘들 것이다. 영철이 엄마의 소원도 이루어지고 마흔둘 영철이도 기적처럼 똑바로 걸을 수 있기를 하는 마음이 시를 읽으면서 든다.

 

고장난 목각 인형처럼/ 무릎 관절이 삐거덕거리지만/ 발 씻을 따슨 물과/ 잠자리가 기다리고 있는/ 문턱 낮은 필통 같은 월세방을 들어서며/ 오늘 하루도 잘 살아냈다고/ 혼잣말로 안도합니다//

-하루를 살다일부분 (75)

 

우리 주변에는 아직 이렇게 사는 분들이 많다. 한 끼라도 먹어야 사니 그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삐거덕거리는 관절로 지팡이를 짚고 무료급식소까지 다녀와야 하니 녹록한 삶이 아니다. 가끔 무료급식소를 지나게 되는 일이 있는데 그 긴 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중에는 급식소를 이용하지 않아도 될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공원에서 나눠주니 공원에 놀러나온 사람도 먹을 것이고 며칠 전에도 지나다 보고 좀 더 필요한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양보 좀 해주지 하면서 지나쳤다.

 

하인혜 작가의 시에는 이렇게 주변을 돌아보는 따뜻한 마음이 글의 행간에 묻어난다. 많은 사람이 지나쳤을 순간도 잘 포착해 작가의 마음을 얹어 시로 썼다. 많은 독자에게 그 마음이 오롯이 전달되면 참 좋을 텐데. 이 겨울에 동시집 한 권을 읽고 나니 군불을 땐 시골집 아랫목이 생각난다. 마음이 따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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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대상 수상작 밝은미래 그림책 52
린롄언 지음, 이선경 그림 / 밝은미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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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린롄언 글, 그림/ 이선경 옮김/ 밝은미래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곳,

 

아침이면 참 분주하다. 온 가족이 일어나 등하교 준비며, 출근 준비를 하고 워킹맘은 그 와중에 식사까지 챙겨서 온 가족은 내보내니 말이다. 한바탕 수선을 떨고 나면 집은 텅 빈 채 누군가 집으로 올 때까지 그렇게 있다. 저녁이면 온 가족이 다 모여 다시 따스한 온기로 데워진다. 크고 작고를 떠나 집은 늘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곳이다. 가장 편하게 자신의 몸이 누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좋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때면 꼭 하는 말이 있다. “내 집이 최고다.”


조금 누추해도 두 다리를 쭈욱 뻗고 잘 수 있고 그 공간에서만큼은 자기 맘대로 할 수 있어 집이 편한 것도 있다.



린롄언이 직접 쓰고 그린 그림책 에도 글은 몇 자 되지 않지만, 트럭 짐칸에 튼 빨간 새 한 마리가 트럭이 가는 곳 어디든 쫓아다닌다. 꼬불한 길을 길도 지나고 쭉쭉 뻗고 아스팔트도 지나고, 바닷가도 지나고, 시골길도 지나서 아침에 나섰던 그 집으로 돌아온다. 아빠가 알을 낳아둔 새 둥지를 나무에 올려주면서 빨간 새도 고정된 새집을 갖게 되고 아빠가 돌아온 집 현관에는 신발이 여러 켤레 현관에 있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집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꼭 회귀본능 같다. 지구 반대편에 있더라도 결국은 집으로 돌아오고, 아무리 떠돌이 생활을 하던 사람도 마지막은 집을 그리워하며 돌아오고 싶어한다. 물론 집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도 하지만, 맘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집이기 때문에 집을 나섰다가도 항상 돌아오는 곳이다.

KC 마크가 붙어 있으면서 둥근 모서리 때문에 어린아이가 더 안전한 책, 꼭 집이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2021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대상을 받은 상답다.

 

*이 책은 허니에듀 카페와 밝은미래에서 제공 받아 개인적으로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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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바다의 라라니 미래주니어노블 9
에린 엔트라다 켈리 지음, 김난령 옮김 / 밝은미래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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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바다의 라라니/ 에린 엔트라다 켈리/ 밝은미래/ 2021

 

자신에 대한 믿음

 

모처럼 판타지 소설에 빠져들었다. 아름답고 환상적인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다양한 숲의 정령들이 등장하고 이름들이 생소한 정령이 많이 등장한다. 하나씩 등장하는 그런 정령들과 함께 책 속 여행을 하다 보니 400여 페이지의 책이 금방 읽힌다. 판타지가 주는 매력이 이렇게나 크다.

 

저자 에린 엔트라다 켈리는 두 번의 뉴베리상을 수상한 작가다. 안녕, 우주로 뉴베리 대상을 수상하였고 우리는 우주를 꿈꾼다로 두 번째 뉴베리상을 수상했다. 이번 먼바다의 라라니는 필리핀 신화와 전설에서 영감을 받아 평범한 한 소녀의 모험 판타지 세게를 펼쳐냈다. 작품으로 검은 새의 비행, 잊혀진 소녀들의 땅, 너부터 먼저 해, 어쩌면 아마도 마리솔 레이니등이 있다.

로 유지네 슬레이트 지붕 위로 푸르스름한 달빛이 드리워져 있고, 방 구석구석 빛벌레들을 잡아넣은 유리병들이 별처럼 빛났어. 로 유지는 흔들의자를 앞으로 기울여 청중들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그들의 표정을 살폈어. 청중이래야 라라니와 라라니의 단짝 베이다. 그리고 베이다의 남동생 헤츠비, 이렇게 달랑 셋뿐이었지만 말이야.” (15~16)

 

세 아이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판타지 소설은 결국 세 아이가 이야기를 끌어간다. 어른이 아닌 아이의 힘이 얼마나 대단할까 싶지만, 아이이기에 할 수 있고 가능한 일도 있다는 걸 이 아이들이 보여주는 셈이다. 욕심과 사리사욕에 눈 먼 어른은 절대 할 수도 나설 수도 없는 일을 열두 살 소녀의 이야기가 이렇게 시작된다.

 

때로는 삶이 고통스러울 때가 있지. 그 때문에 지치고 힘들 때면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 보렴. 난 괜찮을 거야. 난 살아남을 거야. 그러면 진짜 그렇게 돼. 지금은 믿어지지 않겠지만 결국 그렇게 될 거야.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믿는 건 거짓말하는 게 아니거든. 너희들은 괜찮을 거야. 우리 모두 살아 남을 거야.

지금 라라니가 하려는 것도 바로 그거였어. 자기 자신을 믿는 것.” (105)

 

뭔가를 하기 위해서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을 일도 도움을 줄 일도 많다. 그런 과정에서 외부 사람을 만나 어떤 거래를 하게 될 경우, 자신 외에 믿을만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물며 부부나 형제자매간에도 등 돌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자기 자신을 믿는 거. 이게 최선이라는 것을 늘 기억해 둬야 한다.

 

어째서 내 이웃은 나보다 더 멋진 걸 갖고 있지? 나보다 나은 게 쥐뿔도 없으면서? 딸기 한 바구니를 따느라 하루 반나절을 허비할 이유가 뭐야? 이미 딸기가 가득 든 바구니들이 있는데 물론 그게 남의 딸기라는 걸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딸기가 그렇게나 소중하다면, 남에게 뺏기지 않게 잘 지켰어야지.

하지만 딸기 한 바구니로 만족할 도둑은 없어.” (125)

 

살아가는 동안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 있는 삶을 택할 기회가 아주 많아. 누구나 처음은 어렵지. 하지만 한번 기회를 잡고 나면 두 번째부터는 좀 더 쉬워지지.” 테이팅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어. “하지만, 헤츠비, 넌 겁쟁이가 아니야. 이건 확실해.” (372~373)

 

자신의 것을 잘 지키는 것도 큰일이다. 투자에 비유하면 투자를 해서 많이 벌어들이는 일도 중요만 잘못 투자해 큰 손실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가진 것을 잘 지켜내고 유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살아가면서 많은 실수도 하고, 선택의 상황에서 잘못 선택하는 우를 범해 처음으로 되돌아가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두 번째는 좀 더 신중을 기하게 된다. 본문에 헤비츠의 선택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두려움 때문이었는데 이 선택이 자신에게 후회와 아픔으로 다가온다. 때문에 테이팅의 말 한마디로 간단하게 다음 기회를 잡게 된다. 용기 있는 도전.

 

페이 디와타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지.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고결한 마음에게 상을 내려. 페이 디와타가 네 마음을 들여다봤을 때 그런 고결함이 보이지 않으면, 너는 죽게 될 거야. 너 죽고 싶으냐? (422)

“‘새소리는…… 삶의 만복을 가져다준단다.’ 페이 디와타가 말했어” (425)

결국 12살 소녀가 해냈다. 새와 오사바나를 가득 싣고 산라기타로 돌아왔다. 페이 디와타에게서 무사히 살아 돌아온 라라니, 세 아이, 라라니와 베이다, 헤비츠는 다시 만났고, 사경을 헤매던 라라니의 엄마도 병을 털고 일어났다. 아이의 힘과 용기, 희망을 이 소설 장면장면에서 만나게 된다.

 

 

이 책은 허니에듀카페와 밝은미래에서 제공받은 책으로 주관으로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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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지우개 단비어린이 문학
박정미 지음, 황여진 그림 / 단비어린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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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지우개/ 박정미 글, 황여진 그림/ 단비어린이/ 2021

 

 

희노애락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늘 기쁘고 즐겁게 살면 좋겠지만 사실은 그렇게 사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화나고 슬픈 일만 이어지는 것도 아니니 그나마 살 만한 게 아닐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옛말, 그런 말이 아니니까.

기억 지우개를 쓴 박정미 작가는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해 2014년 아동문학평론에 꽃도둑으로 동화 부문 신인상과 2015년 샘터상에 무지개 비빔밥으로 동화 부문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꽃도둑》 《문학상수상 작가들의 단편동화 읽기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 고통스럽거나 치욕적이거나 할 때 그와 관련된 기억은 잊고 싶어한다. 주인공 기웅이는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다. 그런데 기웅이는 축구를 하다 그만 공을 찬 게 아니라 신발이 날아갔다. 그 때문에 아이들은 기웅이를 놀림감으로 삼았다.

 

연습은 좀 했냐? 오늘은 헛발짓 말고 제대로 차야지.”

무슨 오늘도 계속 헛발질만 할 거면서.”

 

특히 하준이가 기웅이를 놀려 기웅이는 화가 치민 상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지우개똥을 뭉쳐 버렸더니 점점 커져 깜장 몰랑이를 마주한다. 나쁜 기억을 지워주겠다고 하면서.

 

짜증 많이 났지? 오늘 말이야. 이제부터 내가 다 없애 줄게! . . . .”

난 네가 화났던 기억, 나빴던 기억을 모두 다 지워 줄 수 있다고 아주 감쪽같이 말이야.”

 

기분 나빴던 기억을 잊고 싶은 기웅이, 종이에 나쁜 기억을 쓴 다음 지우개로 지우면 깜장 몰랑이가 먹어치우면서 대신 깜장 몰랑이는 크기가 커진다. 그런데 나쁜 기억이라고 다 지우고 나면 어떻게 될까? 기웅이는 가장 친한 친구 성민이와의 약속도 잊고 자신의 비상금 잃어버린 것도 잊게 화안하게 웃을 수 있게 됐지만 그게 편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기억은 연결되어 있는데 나쁜 순간을 지운다고 기억이 끊어지기 마련이다. 오히려 그 때문에 오해를 불러오고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는데 당장 눈앞에 고통을 외면한 결과를 기웅이는 늦게 깨닫는다. 뜀틀을 시도할 때 힘들었던 기억을 열심히 노력한 뒤에 성공했을 때를 떠올리며 힘들었던 기억도 웃음 지으며 떠올릴 수 있다는 걸 떠올린 때문이다. 기억 지우개를 지웠다면 없어졌을 소중한 기억이다.

기웅이가 스스로 깨닫고 기억 지우개의 꾀임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이 대견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동화는 성장동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쩌면 나쁜 기억은 자신이 한 단계 더 성장하는데 필요한 디딤돌인지도 모르겠다.

 

 

* 이 책을 허니에듀 카페와 단비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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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연장 가방
문수 지음 / 키위북스(어린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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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연장 가방"이라는 그림책을 만났다. 한 사람의 한 생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가방이다. 어쩌면 함께 산 가족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가방이 아닐까 싶어 짠해지기도 하는 가방이다. 물론 거기에는 내 어릴 적 할아버지 연장통이 오버랩되어 더 그럴 것이다. 그 연장통은 집을 허물면서 이젠 기억 속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더 애틋하다.

이 책은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라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가르쳤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드는 일을 하는 문수 작가 직접 글을 쓰고 그린 첫 번째 그림책이다. 창고 구석에서 발견한 낡은 연장 가방에서 망치와 톱 같은 아버지의 연장을 보며 느꼈던 감정을 작가의 연장을 통해 종이 위에 옮겼다.

이 책의 첫 시작은 아버지 혼자 거실 쇼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채널만 돌리고 계시는 걸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작가는 말한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버지에 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 말에서 필자 또한 충격을 받았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지만 아버지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항상 엄했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못 냈다. 말 수가 없고 농담도 할 줄 모르고 몸은 약했던 그런 아버지였다. 그게 다 자란 뒤에도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살아계신다면 지금이라도 살가운 딸 역할을 하고 싶기도 하다.

책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으로 공사판을 따라다며 일을 조금씩 배우고 익혀서 기술자로 되어가는 모습과 그러는 중에 결혼하고 일에 관련된 연장을 하나씩 사 모으는 모습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가방에 연장이 하나씩 채워지는데 연장은 다양한다. 망치도 다 같은 망치가 아니다. 못 하나를 박더라도 다른 망치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이 필자가 어렸을 때 우리 집 사랑채 앞에도 연장통이 하나 있었다. 그 안에는 갖가지 못과 망치, 대패, 실톱 같은 것이 들어 있었고 좀 더 큰 연장은 호미 같은 것과 함께 헛간에 보관하고 있었다. 가끔 할아버지 톱을 가지고 나무토막 자른다고 낑낑 댄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혼도 더러 났다.

"아버지 사우디 다녀와서는 어떠셨어요?"

"말도 마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일은 억수로 마이했는데 집 지어주고 못 받은 돈도 많다. 그래도 그 시절이 느그 아버지 전성기였지. 하는 일도 많고, 오라는 데도 많고."

예전에 건축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사우디로 많이 가서 돈을 벌어오곤 했다. 작가의 아버지도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더 많은 연장을 들였기 때문에 창고를 따로 지어야 할 만큼 연장이 많았다고 적고 있다.

"온 가족이 소박한 아침을 먹고 나가서 해질 질 무렵 하루 일과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지은 그 집에서 평범하지만 이제 다시 올 수 없는 시간들이 그렇게 지나갔다."

많은 이들에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제일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도 싶다. 평범해서 잘 모르고 지나치는 인 순간이 말이다.

걸음도 말하는 것도 느려진 아버지에게 찾아온 파킨슨병, 그 병으로 아버지의 연장 가방에 있던 연장은 새 삶을 찾아 떠났다. 빈 가방만 남겨둔 채로. 엄마,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그 분들이 많이 생각나는 책이다. 살아계실 때 많은 추억 좀 쌓아둘 걸.

* 이 서평은 허니에듀 카페와 키위북스에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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