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기억 지우개 ㅣ 단비어린이 문학
박정미 지음, 황여진 그림 / 단비어린이 / 2021년 11월
평점 :
《기억 지우개》/ 박정미 글, 황여진 그림/ 단비어린이/ 2021

희노애락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늘 기쁘고 즐겁게 살면 좋겠지만 사실은 그렇게 사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화나고 슬픈 일만 이어지는 것도 아니니 그나마 살 만한 게 아닐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옛말, 그런 말이 아니니까.
《기억 지우개》를 쓴 박정미 작가는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해 2014년 아동문학평론에 〈꽃도둑〉으로 동화 부문 신인상과 2015년 샘터상에 〈무지개 비빔밥〉으로 동화 부문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꽃도둑》 《문학상수상 작가들의 단편동화 읽기》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 고통스럽거나 치욕적이거나 할 때 그와 관련된 기억은 잊고 싶어한다. 주인공 기웅이는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다. 그런데 기웅이는 축구를 하다 그만 공을 찬 게 아니라 신발이 날아갔다. 그 때문에 아이들은 기웅이를 놀림감으로 삼았다.

“연습은 좀 했냐? 오늘은 헛발짓 말고 제대로 차야지.”
“무슨 오늘도 계속 헛발질만 할 거면서.”
특히 하준이가 기웅이를 놀려 기웅이는 화가 치민 상태다. 집으로 가는 길에 지우개똥을 뭉쳐 버렸더니 점점 커져 깜장 몰랑이를 마주한다. 나쁜 기억을 지워주겠다고 하면서.

“짜증 많이 났지? 오늘 말이야. 이제부터 내가 다 없애 줄게! 확. 실. 하. 게.”
“난 네가 화났던 기억, 나빴던 기억을 모두 다 지워 줄 수 있다고 아주 감쪽같이 말이야.”
기분 나빴던 기억을 잊고 싶은 기웅이, 종이에 나쁜 기억을 쓴 다음 지우개로 지우면 깜장 몰랑이가 먹어치우면서 대신 깜장 몰랑이는 크기가 커진다. 그런데 나쁜 기억이라고 다 지우고 나면 어떻게 될까? 기웅이는 가장 친한 친구 성민이와의 약속도 잊고 자신의 비상금 잃어버린 것도 잊게 화안하게 웃을 수 있게 됐지만 그게 편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기억은 연결되어 있는데 나쁜 순간을 지운다고 기억이 끊어지기 마련이다. 오히려 그 때문에 오해를 불러오고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는데 당장 눈앞에 고통을 외면한 결과를 기웅이는 늦게 깨닫는다. 뜀틀을 시도할 때 힘들었던 기억을 열심히 노력한 뒤에 성공했을 때를 떠올리며 힘들었던 기억도 웃음 지으며 떠올릴 수 있다는 걸 떠올린 때문이다. 기억 지우개를 지웠다면 없어졌을 소중한 기억이다.
기웅이가 스스로 깨닫고 기억 지우개의 꾀임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이 대견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동화는 성장동화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쩌면 나쁜 기억은 자신이 한 단계 더 성장하는데 필요한 디딤돌인지도 모르겠다.
* 이 책을 허니에듀 카페와 단비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