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연장 가방
문수 지음 / 키위북스(어린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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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연장 가방"이라는 그림책을 만났다. 한 사람의 한 생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가방이다. 어쩌면 함께 산 가족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는 가방이 아닐까 싶어 짠해지기도 하는 가방이다. 물론 거기에는 내 어릴 적 할아버지 연장통이 오버랩되어 더 그럴 것이다. 그 연장통은 집을 허물면서 이젠 기억 속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더 애틋하다.

이 책은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라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가르쳤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드는 일을 하는 문수 작가 직접 글을 쓰고 그린 첫 번째 그림책이다. 창고 구석에서 발견한 낡은 연장 가방에서 망치와 톱 같은 아버지의 연장을 보며 느꼈던 감정을 작가의 연장을 통해 종이 위에 옮겼다.

이 책의 첫 시작은 아버지 혼자 거실 쇼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채널만 돌리고 계시는 걸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작가는 말한다.


"그러다 문득 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버지에 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 말에서 필자 또한 충격을 받았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지만 아버지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항상 엄했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못 냈다. 말 수가 없고 농담도 할 줄 모르고 몸은 약했던 그런 아버지였다. 그게 다 자란 뒤에도 일정한 거리를 두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살아계신다면 지금이라도 살가운 딸 역할을 하고 싶기도 하다.

책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으로 공사판을 따라다며 일을 조금씩 배우고 익혀서 기술자로 되어가는 모습과 그러는 중에 결혼하고 일에 관련된 연장을 하나씩 사 모으는 모습이 등장한다.


아버지의 가방에 연장이 하나씩 채워지는데 연장은 다양한다. 망치도 다 같은 망치가 아니다. 못 하나를 박더라도 다른 망치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이 필자가 어렸을 때 우리 집 사랑채 앞에도 연장통이 하나 있었다. 그 안에는 갖가지 못과 망치, 대패, 실톱 같은 것이 들어 있었고 좀 더 큰 연장은 호미 같은 것과 함께 헛간에 보관하고 있었다. 가끔 할아버지 톱을 가지고 나무토막 자른다고 낑낑 댄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혼도 더러 났다.

"아버지 사우디 다녀와서는 어떠셨어요?"

"말도 마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일은 억수로 마이했는데 집 지어주고 못 받은 돈도 많다. 그래도 그 시절이 느그 아버지 전성기였지. 하는 일도 많고, 오라는 데도 많고."

예전에 건축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사우디로 많이 가서 돈을 벌어오곤 했다. 작가의 아버지도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더 많은 연장을 들였기 때문에 창고를 따로 지어야 할 만큼 연장이 많았다고 적고 있다.

"온 가족이 소박한 아침을 먹고 나가서 해질 질 무렵 하루 일과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지은 그 집에서 평범하지만 이제 다시 올 수 없는 시간들이 그렇게 지나갔다."

많은 이들에게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이 제일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도 싶다. 평범해서 잘 모르고 지나치는 인 순간이 말이다.

걸음도 말하는 것도 느려진 아버지에게 찾아온 파킨슨병, 그 병으로 아버지의 연장 가방에 있던 연장은 새 삶을 찾아 떠났다. 빈 가방만 남겨둔 채로. 엄마,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은 그 분들이 많이 생각나는 책이다. 살아계실 때 많은 추억 좀 쌓아둘 걸.

* 이 서평은 허니에듀 카페와 키위북스에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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