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가을 운동회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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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시절 시월은 가을 운동회의 달이었다. 운동회 날이면 학교 앞에 병아리 아저씨, 잉어 아저씨, 솜사탕 아저씨가 진을 치고 아이들을 유혹했고, 운동장 하늘에는 만국기가 걸렸다. 지금 생각하면 왜 만국기를 걸었는지 모르겠다. 어느 나라를 기념하는 것도 아니었고, 우리가 특별히 국제적인 행사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형형색색의 만국기를 보면 알았다. 아, 오늘 운동회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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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집을 나서면 가을 햇살이 체육복 위에 내려앉았다. 하얀 체육복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이상하게도 그 시절 가을 운동회 날에는 늘 날씨가 좋았다. 요즘처럼 덥지도 않고, 비가 올 것처럼 흐리지도 않았다. 딱 운동회 하기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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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다리기, 박 터뜨리기, 장애물 달리기, 기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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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의 꽃은 역시 계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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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되면 엄마가 김밥이나 찬합에 도시락을 싸서 운동장으로 왔다. 돗자리를 깔고 가족끼리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가족이 많은 집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전부 나왔다. 운동회는 학교만의 행사가 아니었다. 학교가 있는 동네 전체가 하루 동안 들썩이는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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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 끝나면 매스게임이 시작됐다. 매스게임을 하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새까맸다. 여름 내내 남아서 연습했기 때문이다. 한여름 운동장에서 매일 연습한 아이들의 얼굴에는 가을이 와도 여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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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하게도 육 년 전부 청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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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은 백군이 되고 싶었다. 체육복도 하얗고 운동화도 하얀데 모자까지 하얀색이면 얼마나 예쁠까.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육 학년이 되어서도 나는 청군이었다. 내게 백군은 끝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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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에는 별일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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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 한 모래주머니를 힘껏 던졌다가 엉뚱하게 날아가 얼굴에 맞고 우는 아이도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달리는 순서에서는 자식 체면을 살려주겠다고 마음만 앞선 엄마 아빠들이 넘어졌다. 나이를 잊은 사람들처럼 달리다가 운동장에 그대로 나뒹굴었다. 아이들은 웃었고, 부모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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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던 아이가 청군과 백군으로 갈리면 그것도 일이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사이인데 그날만큼은 묘하게 경쟁심이 생겼다. 청군이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아이가 백군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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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회가 끝나면 먼지가 잔뜩 묻은 체육복을 벗고, 씻은 다음 방바닥에 엎드렸다. 엄마가 싸준 김밥이 남아 있으면 그걸 마저 먹으면서 만화를 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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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운동회가 그렇게 시끄러운 행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운동장은 원래 시끄러운 곳이었고, 아이들은 원래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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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시끄러워서 민원이 들어와 축소되거나 운동회를 하지 않는 초등학교가 많다고 하니 예전 가을 운동회가 그립기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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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에 가을 운동회가 다시 돌아온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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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바쁜 부모들 대신 휴머노이드가 운동장에 나와 아이를 응원할지도 모른다. 다른 집 휴머노이드가 우리 집 것보다 더 다정하고, 더 재미있고, 더 좋은 말을 해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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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주인공 아이가 자기 부모보다 다른 집 휴먼로이드를 더 좋아하게 되고, 그걸 본 다른 아이가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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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누르지 말아야 할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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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말살 프로젝트가 실행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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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러시아에서 만든 공포 액션 영화다. 등장인물이라고 해봐야 네 명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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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있는 젊은 부자 막스가 애인 리나를 별장으로 데려간다. 둘이 한창 즐기고 있는데 사냥을 하러 온 막스의 동생과 또 다른 남자가 합류한다. 그러면서 리나를 바라보는 남자들의 눈빛이 조금씩 달라진다. 결국 여자를 건드리기 시작하고, 일이 꼬이면서 리나를 죽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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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리나는 죽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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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리나는 자신을 죽이려던 남자들을 하나씩 상대한다. 결국 남자 셋은 차례로 저세상으로 간다. 이야기는 이게 전부라고 해도 될 만큼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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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간단한 이야기를 한 시간이 훨씬 넘도록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시작부터 리나와 막스의 정사 장면을 꽤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재미있는 건 이 두 배우가 영화 [서큐버스]에도 함께 나온다는 점이다. 그 영화에서도 비슷하게 거의 벗다시피 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공포보다 다른 쪽에 신경을 쓰게 만들더니, 여기서도 시작부터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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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가 별장에 들어오고 리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야릇해진다. 그리고 결국 강제로 겁탈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이후부터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다. 산속에서 살아남은 리나가 남자 셋을 하나씩 상대하고, 영화는 그 과정에서 고어한 장면들을 꽤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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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예산 영화에다 내용도 어디선가 한 번쯤 본 것 같은 이야기다. 그런데 이상하게 리나를 응원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냥 또 이런 영화인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남자들이 빨리 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끝까지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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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나 공포 액션 영화가 저예산으로 만들어졌다면 아무래도 재미의 한계가 생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극한의 공포를 느끼는 인물의 심리 변화를 오래 붙잡고 가거나, 수중 촬영처럼 배우들이 몸을 아끼지 않은 장면을 집어넣었다. 제한된 공간과 네 명의 배우만으로 영화를 끌고 가려는 감독의 고생도 어느 정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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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첫 장편영화라고 한다. 별장과 산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인간의 폭력성을 ‘사냥’이라는 방식으로 풀어내려 한 영화다. 거창하게 말하면 그렇고, 그냥 보고 있으면 한 여자가 자신을 죽이려던 남자들을 차례로 잡아 죽이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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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여자는 자나 깨나 남자를 조심해야 한다. 남자도 남자를 조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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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정말 좋은 사람 하나 만나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악독한 인간들도 처음부터 얼굴에 ‘나는 나쁜 사람입니다’라고 쓰고 다니지는 않는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의 감정이 죽을 때까지 그대로 간다는 보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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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사이에서도, 친구 사이에서도,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믿기 어려운 사건들이 벌어진다. 결국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아주 뻔한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게 제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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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얼굴로 살아가는 나의 고통을 의사인 네가 알 수 없다. 그러니 위험하게 보이든 말든 성형해 달라는 말입니다. 이런 얼굴로 사람들 앞에 나설 바엔 죽어버리는 게 더 나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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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는 지금의 사회를 꽤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까지 얼굴에 손을 대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성형은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저기 또 손을 대게 되고, 그러다 위험한 수술을 감수하는 사람도 생긴다. 법정 싸움으로 번지기도 하고 실제로 환자가 죽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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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는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의사가 어떤 일에 휘말려 유명 성형외과로 옮기면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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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나 가슴을 수술하는 장면이 꽤 여과 없이 나온다. 수술 전과 수술 후의 얼굴도 그대로 보여준다. 처음에는 이런 장면을 어떻게 촬영했을까 싶었다. 그런데 보다 보면 수술 자체보다 그 수술을 받기 전과 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배우들이 더 대단해 보인다. 실제 주인공인 마츠오카 마유나 나카 리아사보다 매회 등장하는 성형 환자 역할의 배우들에게 자꾸 눈이 간다. 이 시리즈는 수술 후 수술 전보다 훨씬 예뻐진 얼굴이 나오지만 교묘하게 수술한 얼굴이 대체로 전부 엇비슷하게 보인다. 할리우드 성형한 배우들이 비슷한 얼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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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한때 천재 응급 외과 의사였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을 겪고 유명 성형외과로 옮긴 뒤에는 그 천재적인 외과 의사라는 설정이 별로 쓸모가 없다. 환자는 수술을 받을 수 없는 상태인데 계속 성형을 해달라고 한다. 의사 입장에서는 무리하게 수술해서 환자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환자가 느끼는 고통을 단순히 허영이라고 치부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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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수술로 고통받는 것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로 살아가는 고통이 더 큰 환자를 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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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에서 인기 인플루언서가 몸이 아파 쓰러져 응급환자로 실려 온다. 가슴의 실리콘 보형물을 빼야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수술을 앞두고 절대로 가슴 보형물을 빼지 말아 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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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보형물을 빼고 수술해서 목숨은 건진다. 그런데 몸이 회복된 뒤 환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다. 납작해진 가슴으로 팬들 앞에 설 수 없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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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를 보다 보면 성형이라는 게 단순히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본인이 보는 자기 얼굴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얼굴 사이에는 꽤 큰 간격이 있을 수도 있고, 그 간격 때문에 실제로 삶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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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8화인데 나는 5화까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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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손’이라고 불리는 성형외과 원장으로 나카 리이사가 나온다. 돈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람이고, 상상하기 어려운 수술을 요구하는 환자들이 계속 찾아온다. 그런데 이 원장은 환자에게 “할 수 없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병원에 있는 의사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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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회장인 아버지와 조금씩 균열이 생기면서 원장의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마츠오카 마유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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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까지는 정말 휘몰아친다. 환자가 계속 나오고, 수술이 이어지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서 다음 화를 바로 누르게 된다. 그런데 5화부터는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수술 장면에서 오는 시각적인 재미는 조금 줄어든다. 지금까지는 성형외과라는 공간 자체가 굉장히 자극적이었는데, 이제는 인물들 사이의 이야기가 앞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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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시리즈에서도 주인공은 일본에 있는 한국 술집에서 술을 마신다. 파전이나 잡채 같은 걸 파는 곳이다. 일본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국 술집이 나오는 걸 보면 괜히 눈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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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술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꽤 자주 나온다. 일본은 아직 이런 식으로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곳이 있나 보다. 술 마시면서 담배 피우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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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타쿠의 딸도 갑질하는 환자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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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적어도 이 시리즈는 성형이라는 소재 하나만 가지고도 꽤 세게 밀어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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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 보든 이야기는 처음부터 사람을 꽤 당황하게 만든다. 앞서 봤던 [괴물 에드 게인 이야기]처럼 잔인한데, 이번에는 그 잔인함이 조금 더 노골적이고 시원하다. 말 그대로 사람을 자르고, 도끼로 찍는다. 1화 시작부터 허걱 하게 만드는 장면이 나오니 심장 단단히 붙잡고 보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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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 보든을 다룬 이야기는 이 괴물 시리즈에서 [다머 이야기], [메넨데스 이야기]를 지나 에드 게인으로 이어지는 계보 안에 놓여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출연한 [리지]가 있다. 여기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리지 보든이 아니라 브리짓이라는 인물로 나온다. 리지의 곁에서 정신적으로 버팀목이 되어주고, 결국 리지가 도끼를 들 수 있게 만드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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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리즈 속에는 세 가지 이야기가 있다. 중심에는 당연히 리지 보든이 있고, 브리짓이 들려주는 마녀 이야기가 하나 끼어든다. 그리고 100년 뒤 리지 보든을 우상처럼 떠받드는 여성 살인마 에일린의 이야기가 또 하나 들어간다. 에일린을 연기한 사라 폴슨은 정말 신들린 것처럼 연기한다. 등장하는 순간부터 인물 자체가 좀 불안하다. 눈빛이며 표정이며, 저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는 느낌을 제대로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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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의 집안은 처음부터 정상적인 가족과는 거리가 멀다. 새엄마는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있고 삼촌 역시 마찬가지다. 새엄마는 리지를 두 살 때부터 키웠지만, 끊임없이 무시하고 업신여긴다. 아버지라고 다르지도 않다. 리지에게는 집 안에 자기 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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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리지가 숨을 돌릴 수 있는 곳은 마당 한쪽의 비둘기 사육장이다. 꽃과 자연을 좋아하는 리지에게 비둘기는 거의 유일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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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하녀들의 몸을 탐하기 바쁘고, 새엄마는 남편에게서 돈을 받아내 이혼하고 떠날 생각만 한다. 하녀가 만든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얼굴에 뜨거운 음식을 끼얹어버리는 장면에서는 이 집안 사람들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 단번에 드러난다. 그런 집에 새로운 가정부 브리짓이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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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리지와 브리짓이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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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결정적인 장면이 비둘기다. 시끄럽게 구구거린다는 이유로 새엄마가 비둘기의 목을 따버리는 장면을 리지가 보게 된다. 리지에게 비둘기는 그냥 새가 아니다. 아무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집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붙일 수 있었던 존재다. 그걸 눈앞에서 잃는 순간, 안에 눌러놓았던 무언가가 터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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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작품의 살인은 단순히 누군가를 죽이는 장면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계속 참고, 무시당하고, 짓밟히던 사람이 어느 순간 선을 넘어버리는 과정이 꽤 노골적으로 펼쳐진다. 물론 그렇다고 살인이 정당화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리지가 왜 그렇게까지 가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은 상당히 직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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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지 보든을 연기한 엘라 비티도 재미있다. 처음에는 어딘가 어수룩하고 못나 보이는 얼굴인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얼굴이 달라진다. 순진한 사람처럼 보이다가 어느 순간 섬뜩한 표정이 나오고,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얼굴로 돌아온다. 배우가 얼굴 하나로 리지의 변화를 꽤 잘 보여준다. 부모의 외모를 보면 도대체 외모 유전자가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인데, 리지 보든이라는 역할에는 그 얼굴이 오히려 딱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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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에드 게인 이야기]에서 에드 게인을 연기했던 찰리 해냄은 여기서는 리지의 아버지로 나온다. 이 인간도 만만치 않다. 딸에게는 아버지답지 않고, 하녀들에게는 인간으로서의 선을 넘나들며 행동한다. 그러다 결국 딸에게 도끼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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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있으면 이 장면을 기다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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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시리즈는 살인을 질질 끌지 않는다. 도끼가 나오면 찍고, 잘라야 하면 자른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직선적이다. 마지막에 법정에서 리지가 무죄를 받는 모습까지 보여주니, 실제 사건을 알고 보는 사람에게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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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유명한 리지 보든 사건을 가져와 세 편의 이야기를 엮어놓은 방식도 괜찮고, 배우들의 연기도 전체적으로 좋다. 특히 리지의 변화와 에일린의 광기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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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본 [괴물 에드 게인 이야기]가 기괴함 쪽에 가까웠다면, 이번 리지 보든 이야기는 억눌린 사람이 끝내 도끼를 드는 순간까지 끌고 가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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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1화 시작하자마자 한 방 나오니 심장 딱 부여잡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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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사랑’에서 조여정이 해고 노동자, 해직 부부를 인터뷰하려든다. 금수저가 가난한 부부를 인터뷰하려고 한다. 진정성을 가지고 가난한 자에게 공감하며, 그들의 곁에 바짝 붙어 인터뷰를 하고 싶다. 그건 그저 메소드 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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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차가 나는 사람은 이미 날 때부터 각자 그렇게 태어난다. 그 격차는 생각보다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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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희 평론가가 이 영화를 이창동 감독의 전작 ‘버닝’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나는 ‘버닝’을 정말 좋아해서 서른 번쯤 봤다. 머리가 나빠서 지금은 대사 하나하나가 떠오르지는 않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영화의 구석진 화면 하나까지 머릿속에 남아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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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은 불평등에 관한 영화다. 유전자라는 건 대를 타고 내려온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있고, 종수는 그걸 온몸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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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사랑’에서 조여정 부부는 부자다. 조여정은 방송 일을 하지만 남편인 조인성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른다. 부자의 특징이라고 해야 하나. 늘 어디선가 전화가 오고 뭔가를 확인한다. 그런데 정작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돈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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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버닝’의 벤도 그렇다. 딱히 뭘 하는지는 모르는데 세계 여행을 다니고, 헬스장에 가고, 포르셰를 몰고 다닌다. 벤에게는 그런 유전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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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격차가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면서도 때로는 그들 곁에 간다. 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내가 얼마나 가진 사람인지, 얼마나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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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의 원작자 하루키의 소설도 그렇다. 하루키의 대부분 소설에도 유전자에 대해서 많이 나온다.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미 정해진 것은 어떤 노력을 한들 정해진 대로 흘러간다. 결과가 그렇다는 건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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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에 관한 영화를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부자인 연예인이 가난한 사람을 연기하면 그게 정말 와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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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니까 배역의 옷을 입고 가난한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연구하지 않은 연기는 금방 표가 난다. 가난이라는 건 옷 한 벌 갈아입는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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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많은 연예인들도 일반인들과 섞이는 게 싫을지 모른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연예인들과 어울리고 싶을 것이다. 예능이나 뉴스, 기사에 보면 유난히 서로 친한 톱클래스 연예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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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라는 걸 제대로 들여다보게 만드는 매개는 결국 소설이나 영화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감독들은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몇 년씩 준비한다. 칠순이 다 되어가는 이창동 감독도 이번 ‘가능한 사랑’을 위해 10년을 준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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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연예인보다 더 불편한 부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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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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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억, 몇백억씩 가진 사람들이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안다는 듯 정치를 한다. 그걸 보면 가끔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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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과 가장 섞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선거철만 되면 일반인들 틈으로 들어온다. 그러고는 자기 권력과 자산을 이야기한다. 자기 자랑을 하다가 나중에는 자식 자랑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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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이상한 일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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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한 마디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아는 사람이 자신을 욕하는 일반인들에 대해서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정말 잘못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같은 잣대를 들이대고 남이 하면 잘못, 자신이 하면 올바른 것으로 말하고 있다. 정말 불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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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이라는 게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다른 세상에 사는 것인지, 그런 모순을 제대로 들춰내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에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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