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과 2017년에 씨랜드 참사에 대한 글을 썼다. 내가 투철한 정의로운 정신이 있어서 쓴 건 아닌데, 그때 티브이 뉴스에 참사가 난 그 자리에 무허가 캠핑장이 들어섰다는 소식이 나와서 너무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그때가 이미 사고가 난 지 17, 8년이 지난 후였다.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불기둥이 방을 덮치는 가운데 살려달라고 창문에 매달려 선생님들에게 외치다가 모두 불에 타 죽고 말았다. 가장 예쁘고 반짝일 때 모두 별이 되었다.

아이를 잃은 엄마는 그 시간에 멈추어 있었다. 그때 쌍둥이를 잃은 엄마도 있었다.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건물에 관계된 공무원과 정부 사람들은 짧은 형을 살거나 그것마저 보석으로 풀려나고 말았다. 사죄하는 말 없이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참사가 난 그 자리에 무허가 캠핑장이 들어섰고, 또 다른 아이들과 학생들이 주말이나 여름의 한적한 시간에 그곳을 이용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같은 잘못을 되풀이라고 있었다. 시간이 더 흘러 사람들이 다 잊었을 그 자리에는 지금 야자수마을카페가 들어서 성수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인에 대한 이야기도 안 좋은 이야기도 떠돌고 있다.

사람들은 청소년 범죄에 대해서 말세라며 법을 더 강하게 적용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른이 저지르는 범죄에 비해 청소년은 미비한 수준이다.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어른들의 죄질을 보라. 그리고 그 죗값도 제대로 받지 않는다.

비록 취소가 되었지만.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음에도 지역축제 안전관리 우수 사례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는 용산구청장의 사례를 보면 이 어른들이라는 존재, 특히 누가 봐도 존경받아야 하는 어른들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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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현실적인 이야기가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펼쳐진다. 이 죽일 놈의 감정, 어째서 감정이라는 건 생각과는 다르게, 어제와 다르게 변하는지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감정이 소거되었다면 어쩌면 인생이 수월했을지 모른다. 감정은 정말 이상하다. 그렇게 미쳐 좋아 죽을 것 같아서 결혼을 했는데,

좋아했던 그 이유가 이혼을 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어제까지 미친놈처럼 꼴 보기 싫었는데 오늘 보니 불쌍하고 딱해서 이혼을 포기하기도 한다.

감정이 격해지는 건 이상하게도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 내가 팔로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분출되니 이게 참 미칠 노릇이다.

이 영화는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를 관광하는 한국인 세 팀에서 시작된다. 자동차 부품 영업을 하는 대식(이희준)은 제멋대로 인생의 상사와 업무차 왔다가 상사가 머물다 가자며 관광에 끼게 된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 남편 때문에 이혼을 했지만 재결합 문제로 여행을 온 정화, 그리고 한창 브이로그에 빠진 엄마와 두 딸의 한 가족. 이 세 팀이 관광을 하면서 겪게 되는 감정의 소용돌이 이야기다.

대식은 힐끗힐끗 정화를 보고, 정화 역시 대식을 의식한다. 두 사람은 예전에 사귀던 사이였는데 애매하게 여기서 만나게 된 것. 정화는 알코올 중독을 끊기 위해 여행을 온 남편이 첫날부터 술에 절어있는 모습에 혐오를 느낀다.

그리고 점점 정화의 감정에 파고드는 무뚝뚝한 대식. 대식은 오래전 정화를 만날 때 왜 가족의 짐을 짊어진 대식이 자신이 정화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젖은 모습이 보기 싫어 매몰차게 대했던 정화를 떠올리지만, 정화는 애써 기억을 하지 못한다. 아니 안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따로 만나서 대식에게 용서를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싸우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인연은 거기까지라는 걸 깨닫는다.

감정이라는 건 노력을 억지로 해서 어떻게 되겠지만 결국 새로운 사이가 되는 건 어렵다는 사실 앞에 대식은 이 알 수 없는 감정을 삭이기 위해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오른다.

정화는 열기구 타는 게 소원이었지만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면서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면 그 찰나의 감정은 다시 불붙는 불꽃같지만, 볼꽃은 언젠가 꺼지고 그을음만 남는다.

그리고 말미에 허회경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브금으로 깔리면서 영화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대식은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 큰 소리로 [귤레 귤레]라며 감정을 누른다. 귤레 귤레는 터키어로 뭘까.

이 영화는 두 주인공 외에 제멋대로인 상사, 그리고 알코올 중독의 남편, 눈치 없는 브이로그의 엄마가 영화를 꽉 채워주고 있다. [습도 다소 높음]의 고봉수 감독이 그때의 인연으로 이희준과 다시 함께 한 영화 [귤레귤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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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 중건은 친구들과 같이 놀고 싶지만, 친구들은 중건을 따돌린다. 아빠도 없고, 가난해서 돈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중건은 아이들과 싸우고 때린다.

집으로 와도 엄마는 일 때문에 집을 자주 비우고, 반찬도 변변찮다. 그런데 어느 날 외할머니가 집으로 와서 중건과 같이 살게 된다.

중건은 외할머니에게 짜증을 부리고 항상 씩씩 거린다. 엄마가 없고 외할머니와 둘이 있으면 자꾸 심부름을 시킨다.

할머니가 아프기 때문에 책상 위에 약과 물 좀 갖다 달라고 하면 중건은 약을 버리고 다른 약을 할머니에게 줘 버린다.

그렇게 할머니와 불편한 동거를 하면서 중건은 할머니와 사이가 전혀 좁히지 않는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다시 중건을 따돌리면서 중건의 사정을 놀린다.

화가 난 중건은 또 아이들과 싸운다. 집으로 오는데 쑥을 캐던 할머니에게 욕을 하고 쑥 소쿠리를 발로 밟고 폭발하고 만다.

왜 나한테만 전부 그러는데, 내가 뭘 그렇게 잘 못 했는데. 답답하고 갑갑하고 출구 없는 이 암울한 생활이 전부인 11살 중건은 펑펑 운다.

할머니는 중건을 안아주며 같이 쑥을 캐고 그 쑥으로 떡을 만들어 먹는다. 그때 중건에게 맞은 아이의 엄마에게 전화가 오고,

아이의 엄마와 만난 자리에서 할머니는 같이 싸웠는데 왜 내 손자에게만 잘못만 지적하냐며 아이의 엄마에게 소리를 지른다.

할머니는 중건은 나가 있으라면서 할머니가 다 해결한다고 한다. 중건이 나가고 밖에서 들어보니 할머니가 아이의 엄마에게 싹싹 빌고 있다.

이 단편 영화는 서울국제노인영화제 출품작이다. 중건은 11살에 이미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해야만 했던 중건은 자신에게 더 화가 났을 것이다.

그렇게 밉고 싫었던 할머니가 나를 위해 무릎을 꿇고 싹싹 빌고 있다. 그랬던 할머니가 응급실에 실려갔다. 상상과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하는 단편 영화 ‘쑥떡’이었다. 역시 예고편을 찾을 수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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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은 사장의 사랑을 듬뿍 독차지하는 지영이 미워 죽는다. 같이 일하는 남자들도 지영만 좋아한다. 저 불여시 같은 냔은 사장님하고 장님 놀이하면서 끌어안고 난리 난다. 아주 난리다 난리.

사모님에게 아침 샐러드를 갖다주려다 지영이 발에 걸려 넘어지고 만다. 화가 난 하윤은 지영과 한 판 붙다가 사장과 사모에게 한 소리 듣는다. 사장은 예전에 하던 사냥 놀이를 하자고 하며, 사장과 하윤이 사냥을 하고, 지영과 남자 직원이 사냥감이 되어 사냥 놀이가 시작된다.

쫓고 쫓기는 사이 사장은 하윤에게서 떨어져 지영과 둘이 있게 되고, 두 사람은 서서히 붙으려고 할 때 하윤은 쌍욕을 하며 총구를 겨누고 달려가는데, 그 자리에 지영에게 맞은 사장이 자빠져 있다. 마지막에는 반전이 아! 하게 만든다.

하윤이 2층에서 사장과 지영이가 장님 놀이할 때 쳐다보는 그 시선이 그제야 이해가 된다. 이 영화도 25분 정도의 단편 영화로, 봄날의 최수연이었던 하윤경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 지영 역은 방효린으로 넷플릭스 ‘애마‘에서 이하늬와 한 판 뜨는 당찬 주인공 역이다. 연기 잘 하는 배우들이 이렇게 단편 영화에 나오니 재미가 좋다.

이 영화는 블랙 코미디 요소가 강하지만 로맨스다. 흔한 로맨스가 아니다. 요즘 돈 처바른 장편 상업 한국 영화는 재미가 없는데, 단편 영화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단편 영화에 예고편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트레일러가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제목의 ㄴ이 년인지 놈인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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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앨범과 맞먹을 정도로 팔린 책이다. 어째서 사람들은 이 소설을 이만큼이나 읽을까.

아직 마음속에 홀든 녀석 같은 반항기가 남아서일까. 그래서 홀든 녀석의 욕설을 듣고 있으면 그 녀석의 행동에 이입이 되는 것일까.

사실 나는 홀든의 이야기보다 작가인 샐린저에게 더 흥미 있었다. 샐린저는 이 소설을 적을 때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쓴 것으로 유명했다.

군인으로 2차 대전에도 참전했는데, 막사가 폭격을 맞아서 허물어지는데도 책상 밑에서 타자기를 두드려 홀든 녀석의 이야기를 적고 있었다.

샐린저의 일대기는 니콜라스 홀트(는 연기를 너무 잘해서 그런지, 톨킨에서 톨킨을 연기하기도 했다, 이번 슈퍼맨에서 슈퍼맨보다 더 주목을 받았으니)가 샐린저로 분한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를 보면 잘 나온다. 나는 너무 재미있게 봤다.

왜 홀든 콜필드 녀석의 이야기에 작가인 샐린저가 빠져 들다가 잡혀 먹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런 모습은 탐정 홈즈를 탄생시킨 아서 코난 도일과 비슷하다. 아서 코난 도일은 홈즈에게 잡혀 먹혀 작가는 사라지고 캐릭터만 남았다. 나중에 홈즈를 죽이지만 사람들의 분노로 인해 죽음의 위험까지 갔던, 불쌍하고 딱한 아서 코난 도일.

샐린저도 그 고독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니콜라스 홀트가 너무 연기를 잘했다. 영화는 실제 이야기에서 각색이 좀 되었다.

교수는 제리(샐린저)에게 기절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걸 쓰고 또 거절을 당하고

그다음 또 다른 거, 거절, 또 다른 거,

안타깝게도,라는 거절의 편지.

샐린저는 출판을 하고 싶지만 출판사에 끊임없이 거절을 당하고 교수는 왜 글이 쓰고 싶냐고 묻는다. 제리는 화가 나는 일이 많은데 글을 쓰면 그것이 풀린다고 한다. 교수는 제리에게 그걸 글에 녹여내라고 한다. 그리고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을 이야기한다.

평생 출판을 못 할 수도 있다.

영원히 출판을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할지라도 평생 글 쓰는 데에 바칠 수 있느냐,

아니다 싶으면 밖으로 나가서

먹고 살 딴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왜냐면 진정한 작가가 아니니까.

샐린저는 전쟁에 나가게 되어서도 홀든을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홀든 덕분에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있다. 글 쓸 때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가 그거다, 마음은 계속 이야기를 써 나간다는 점이다.

샐린저는 장편을 쓰기 위해 막사에서도 훈련을 받으면서도 홀든을 썼다. 샐린저는 전투에 참전하게 되고 거기서 포탄으로 전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다.

추위에 양말을 챙겨주던 전우는 동사하고 샐린저는 점점 홀든과 자신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샐린저에게 홀든은 소설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이미 현실의 한 사람처럼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 소설은 존 레논을 죽인 마크의 손에도 들려 있었고, 멜 깁슨과 줄리아 로버트의 [컨스피러시]에서 멜 깁슨의 집 책장에 이 책만 가득 꽂혀 있었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것에 샐린저의 이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여러 나라에서 제목이 다르다.

이탈리아: 한 남자의 인생

일본: 인생의 위험한 순간들

노르웨이: 모두를 자신을 위해 그리고 악마는 최후 순간을 취한다

스웨덴: 기억의 순간에 나타나는 구원자

덴마크: 추방당한 젊은이

독일:호밀밭의 남자

네덜란드: 사춘기

일본에서는 하루키가 이 소설을 번역했는데, 출판하면서 [꽤나 이상한 소설이에요. 잊을 수가 없었어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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