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앨범과 맞먹을 정도로 팔린 책이다. 어째서 사람들은 이 소설을 이만큼이나 읽을까.
아직 마음속에 홀든 녀석 같은 반항기가 남아서일까. 그래서 홀든 녀석의 욕설을 듣고 있으면 그 녀석의 행동에 이입이 되는 것일까.
사실 나는 홀든의 이야기보다 작가인 샐린저에게 더 흥미 있었다. 샐린저는 이 소설을 적을 때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쓴 것으로 유명했다.
군인으로 2차 대전에도 참전했는데, 막사가 폭격을 맞아서 허물어지는데도 책상 밑에서 타자기를 두드려 홀든 녀석의 이야기를 적고 있었다.
샐린저의 일대기는 니콜라스 홀트(는 연기를 너무 잘해서 그런지, 톨킨에서 톨킨을 연기하기도 했다, 이번 슈퍼맨에서 슈퍼맨보다 더 주목을 받았으니)가 샐린저로 분한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를 보면 잘 나온다. 나는 너무 재미있게 봤다.
왜 홀든 콜필드 녀석의 이야기에 작가인 샐린저가 빠져 들다가 잡혀 먹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런 모습은 탐정 홈즈를 탄생시킨 아서 코난 도일과 비슷하다. 아서 코난 도일은 홈즈에게 잡혀 먹혀 작가는 사라지고 캐릭터만 남았다. 나중에 홈즈를 죽이지만 사람들의 분노로 인해 죽음의 위험까지 갔던, 불쌍하고 딱한 아서 코난 도일.
샐린저도 그 고독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니콜라스 홀트가 너무 연기를 잘했다. 영화는 실제 이야기에서 각색이 좀 되었다.
교수는 제리(샐린저)에게 기절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걸 쓰고 또 거절을 당하고
그다음 또 다른 거, 거절, 또 다른 거,
안타깝게도,라는 거절의 편지.
샐린저는 출판을 하고 싶지만 출판사에 끊임없이 거절을 당하고 교수는 왜 글이 쓰고 싶냐고 묻는다. 제리는 화가 나는 일이 많은데 글을 쓰면 그것이 풀린다고 한다. 교수는 제리에게 그걸 글에 녹여내라고 한다. 그리고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을 이야기한다.
평생 출판을 못 할 수도 있다.
영원히 출판을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할지라도 평생 글 쓰는 데에 바칠 수 있느냐,
아니다 싶으면 밖으로 나가서
먹고 살 딴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왜냐면 진정한 작가가 아니니까.
샐린저는 전쟁에 나가게 되어서도 홀든을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홀든 덕분에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있다. 글 쓸 때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가 그거다, 마음은 계속 이야기를 써 나간다는 점이다.
샐린저는 장편을 쓰기 위해 막사에서도 훈련을 받으면서도 홀든을 썼다. 샐린저는 전투에 참전하게 되고 거기서 포탄으로 전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다.
추위에 양말을 챙겨주던 전우는 동사하고 샐린저는 점점 홀든과 자신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샐린저에게 홀든은 소설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이미 현실의 한 사람처럼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 소설은 존 레논을 죽인 마크의 손에도 들려 있었고, 멜 깁슨과 줄리아 로버트의 [컨스피러시]에서 멜 깁슨의 집 책장에 이 책만 가득 꽂혀 있었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것에 샐린저의 이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여러 나라에서 제목이 다르다.
이탈리아: 한 남자의 인생
일본: 인생의 위험한 순간들
노르웨이: 모두를 자신을 위해 그리고 악마는 최후 순간을 취한다
스웨덴: 기억의 순간에 나타나는 구원자
덴마크: 추방당한 젊은이
독일:호밀밭의 남자
네덜란드: 사춘기
일본에서는 하루키가 이 소설을 번역했는데, 출판하면서 [꽤나 이상한 소설이에요. 잊을 수가 없었어요]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