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현실적인 이야기가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펼쳐진다. 이 죽일 놈의 감정, 어째서 감정이라는 건 생각과는 다르게, 어제와 다르게 변하는지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감정이 소거되었다면 어쩌면 인생이 수월했을지 모른다. 감정은 정말 이상하다. 그렇게 미쳐 좋아 죽을 것 같아서 결혼을 했는데,

좋아했던 그 이유가 이혼을 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어제까지 미친놈처럼 꼴 보기 싫었는데 오늘 보니 불쌍하고 딱해서 이혼을 포기하기도 한다.

감정이 격해지는 건 이상하게도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 내가 팔로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분출되니 이게 참 미칠 노릇이다.

이 영화는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를 관광하는 한국인 세 팀에서 시작된다. 자동차 부품 영업을 하는 대식(이희준)은 제멋대로 인생의 상사와 업무차 왔다가 상사가 머물다 가자며 관광에 끼게 된다.

그리고 알코올 중독 남편 때문에 이혼을 했지만 재결합 문제로 여행을 온 정화, 그리고 한창 브이로그에 빠진 엄마와 두 딸의 한 가족. 이 세 팀이 관광을 하면서 겪게 되는 감정의 소용돌이 이야기다.

대식은 힐끗힐끗 정화를 보고, 정화 역시 대식을 의식한다. 두 사람은 예전에 사귀던 사이였는데 애매하게 여기서 만나게 된 것. 정화는 알코올 중독을 끊기 위해 여행을 온 남편이 첫날부터 술에 절어있는 모습에 혐오를 느낀다.

그리고 점점 정화의 감정에 파고드는 무뚝뚝한 대식. 대식은 오래전 정화를 만날 때 왜 가족의 짐을 짊어진 대식이 자신이 정화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젖은 모습이 보기 싫어 매몰차게 대했던 정화를 떠올리지만, 정화는 애써 기억을 하지 못한다. 아니 안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따로 만나서 대식에게 용서를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싸우게 되는 모습을 보면서 인연은 거기까지라는 걸 깨닫는다.

감정이라는 건 노력을 억지로 해서 어떻게 되겠지만 결국 새로운 사이가 되는 건 어렵다는 사실 앞에 대식은 이 알 수 없는 감정을 삭이기 위해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오른다.

정화는 열기구 타는 게 소원이었지만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면서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면 그 찰나의 감정은 다시 불붙는 불꽃같지만, 볼꽃은 언젠가 꺼지고 그을음만 남는다.

그리고 말미에 허회경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브금으로 깔리면서 영화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대식은 열기구를 타고 하늘로 올라 큰 소리로 [귤레 귤레]라며 감정을 누른다. 귤레 귤레는 터키어로 뭘까.

이 영화는 두 주인공 외에 제멋대로인 상사, 그리고 알코올 중독의 남편, 눈치 없는 브이로그의 엄마가 영화를 꽉 채워주고 있다. [습도 다소 높음]의 고봉수 감독이 그때의 인연으로 이희준과 다시 함께 한 영화 [귤레귤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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