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미국은 오리엔탈의 중심은 일본이라는 생각은 여전하구나 하고 느꼈다. 이 시리즈만 왜색이 짙은 건 아니다. 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퍼시픽 림도 왜색이 강했다.
3화에서는 지 아버지 하고 똑같이 생긴 와이엇 러셀과 케이코가 마을 사람들에게 둘러싸였을 때에도 케이코의 똥고집으로 와이엇이 칼레 찔리지만 칼 하나 들고 거길 빠져나간다는 게 뭐야? 하게 된다.
칼에 찔려 고통스러운데도 또 케이코와 붕가붕가는 못 참는다. 이 시리즈는 일본이 탄생시킨 고질라가 최초의 엄마 같은 존재이기에 인물이나 캐릭터, 배경이나 관점 같은 것들이 왜색이 상당하다.
무엇보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와이 안나는 여기서 하는 게 없다. 전혀 불필요한 인물이다. 메이처럼 약간의 전투력도 없다. 그저 소리 지르고 화내고 우는 것 밖에 하지 않는다.
쇼군이나 파친코에서는 꽤 연기가 좋았지만. 사와이 안나는 오래전에 비가 주연했던 닌자 어세신에서 어린 비의 친구로 나왔었다. 이 시리즈에서 사와이 안나는 케이트 랜다의 시선으로, 현재의 일본 시선으로 바라보는 느낌이다.
히로시는 두 집 살림을 자랑스러워한다. 두 아내 모두를 사랑한다는 것으로 내가 선택한 방법이 잘한 것은 아니지만 올바르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태도다. 3화에서 본격적으로 그 지점을 드러낸다.
이렇게 할리우드가 일본의 오리엔탈을 찬양하는 건 예전에 톰 크루저가 나왔던 라스트 사무라이에서였다. 그 감독이 유명한 영화를 많이 연출했다. 당장 떠오르는 영화가 가을의 전설이었다.
영화 속 천황은 신식군대를 만들고 싶었다. 일본의 천왕은 개항정책으로 신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거기에 구식군대인 사무라이 군대가 들고일어난다.
남북전쟁으로 미국에 몸을 받친 군인에게 냉대하게 대하는 것에 모멸을 느낀 네이든 알그렌 대위를 불러 사무라이 군대를 무찌르게 하지만 패배하여 포로로 잡히고 거기서 네이든 대위는 사무라이에 빠져들어 간다.
그 영화에서 미국은 일본의 오리엔탈을 굉장히 강조했다. 당시 일본은 할리우드 영화는 1년 뒤에 늘 개봉했지만 라스트 사무라이는 세계최초로 개봉을 했다.
할리우드가 한국을 좋아해서 한국 배우를 출연시키고, 주인공으로 만들고, 한국 배경에 한국 음식을 먹는 건 자본을 끌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경외심은 항상 일본을 향해 있다.
존윅 4에서, 킬빌에서 알 수 있듯 할리우드는 일본에 대한 동경이 끊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