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정도로 현실적이며 비현실적으로 잘 만들 수 있다니. 이희준 배우가 감독인 영화. 중편 영화라고 해야 할 장도의 러닝타임에 한정된 공간에서 관계, 이 세상의 모든 고민을 잔뜩 끌어안고 있는 가족의 관계에 대해서 밀도 있는 유머로 만들었다.
공간과 동선이 제한되었기에 자칫 연극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가족의 거리는 먼발치다. 코 앞의 발치에 있는 것 같은데 멀리 있는 사이다. 가장 친밀한데, 가장 친밀해서 원수 같은 사이. 가족은 가족끼리 가족을 이루지 못한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가족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의 골이 깊어져 싸우게 되면 남들보다 더 치열하게 싸운다. 부부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건 누군가 참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꾹꾹 누르고 눌러 감정을 참지만 한 번 터지면 말릴지도 못한다.
이 영화는 그저 배우들의 꽉 찬 연기가 서로 주고받으며 모든 걸 채운다. 현실적인 가족 갈등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큰 서사가 있을 법한 아버지 전 처의 제사를 지내주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대사 한 줄로 나오지만 파장은 크다. 이 영화는 그런 숨은 이야기부터 대 놓고 갈등이 고조되는 모습까지 다양하다.
갈등이 끓어 올라 터지기 일보직전에 서사가 멈춘다. 이 영화는 짧은 러닝타임 탓에 서사의 완결보다는 그 순간순간 터지는 감정에 대해서 보여준다. 결혼한 세 딸과 남편들이 한데 모여 술을 마시다가 터져 나오는 감정의 폭발은 끔찍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밑바닥에 깔려 있던 내 가족에 대한 분노가 술의 힘을 빌려 화산처럼 터진다. 그러다가도 웃음을 유발하는 소동극이었다가 또 서로를 챙겨준다. 가족인 것이다. 끊을 수 없는 이 비참하고 아름다운 관계.
진선규는 정말 대배우라고 해도 될 만큼 연기가 좋다. 초반 모든 말에도 웃음으로 가족을 받아주던 진선규가 마지막엔 억누르고 있던 화를 참지 못하는데. 감독은 로만 폴란스키의 대학살의 신으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네 쌍의 부부가 한 공간에 갇혀 갈등이 심화되어 터지는 구조가 비슷하다. 완벽한 타인처럼 말이다. 그러고 보면 가족은 완벽한 타인일지도 모른다. 타인은 지옥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