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스트들아 오늘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하루키의 ‘잡문집’이야. 요 며칠 고개를 꺾어 올려다본 하늘은 가스층이 걷혀 새파랗게 질릴 대로 일린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더라

가을이 오면 모든 것이 변하고 바뀌잖아. 뭔가 호르몬도, 눈으로 보이는 색감도, 옷도 다 바뀌고 말이야. 하루키의 잡문집에도 하루키가 가을을 하루키식으로 표현을 했어

잡문집을 보면, 1921년 10월 주가 대폭락, F. 스콧 피츠제럴드는 대서양 너머 저 멀리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뉴스를 접했다. 그 소리는 사막 끝까지 메아리쳤다,라고 그는 훗날 회고했다. 하루키 식으로 시월, 가을의 급변함을 말하고 있어. 가을이란 그렇지. 여름의 끝자락을 아무리 잡고 있어도 급변하듯 가을은 오고야 만다고

저녁에 조깅을 하고 있으면 고추잠자리들이 하늘을 장식하더라. 가을이 오고, 잠자리가 눈에 보이면 어김없이 다자이 오사무의 수필 ‘아, 가을’이 떠올라

다자이 오사무는 가을을 말할 때 ‘잠자리, 투명하다’라고 했어. 가을이 되면 잠자리고 쇠약하여 너홀 너홀 날아다니는 것만 같은 모습을 오사무는 말하고 있어. 잠자리의 모습이 가을 햇살에 투명하게 보인다고 말이야. 그리고 그 멋진 말 ‘가을은 여름의 타고 남은 것’이라고 했지

다자이 오사무 – 오, 가을

본직이 시인이라면 언제 어떤 주문이 있을는지 모르므로 항상 시제를 준비해 놓아야 한다. [가을에 대하여]라는 주문을 받으면, 그래 좋아, 하면서 [가]의 서랍을 열고, 가 줄의 여러 개 노트 중에서 가을 부분 노트를 꺼내놓고는 침착하게 그 노트를 살핀다. 잠자리, 투명하다,라고 쓰여 있다. 가을이 되면 잠자리도 나약해져서 육체는 죽은 채 정신만으로 비틀비틀 날고 있는 모습을 가리켜 한 말 같다. 잠자리의 몸이 가을 햇빛에 투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가을은 여름이 타고 남은 것, 이라 쓰여 있다. 초토다.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 이라고도 쓰여 있다. 코스모스, 무참하다,라고도 쓰여 있다.

그리고 밑으로 오사무의 코스모스에 관한 글이 이어져. 다자이 오사무의 글에는 공허가 있고 그 공허 속에는 허무가 가득해. 그리고 황량함이 마지막으로 허무의 자리에 차고 올라. 이번 여름에도 폭염이었잖아. 폭염 속에 모든 것이 다 타고 남은 것이 가을로 이어지는 것 같아

폭염에 활활 타오르는 저 하늘,

붉은색으로 세상을 다 태운 여름이 울고,

우는 틈을 타서 가을은 몰래 숨어 들어와 치장을 하고 교활한 악마처럼 잠자리를 투명하게 비춘다.

가을은 저 여름이 온전히 타고 남은 것.

타고 남은 재를 뚫고 그을음에 붙여 코스모스가 피고 나면 가을은 무섭도록 나를 노랗게 물들인다. - 오사무

우리 최승자 시인의 가을은 개 같은 가을이었지.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라고 했어.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고 했고

김남조 시인의 가을은, 모든 가을에 앞질러 그리움이 오곤 했었지 병이 깊어지듯 가을도 무겁고 힘든 수레라고 했어

가을은 그렇게 짧지만 강하게, 곁을 스치듯 팔에, 얼굴에 금을 긋고 지나가는 것 같아. 그 어느 계절보다 아름다워서 따갑고 슬픈 이름이 가을이야 ㅋㅋ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려. 야금야금 맛있는 것을 갉아먹듯, 애틋하지만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려. 그 소리 중신에 우리가 서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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