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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먹던 컵라면 맛이 있다. 설명은 불가능하지만 만약 그 맛을 본다면 대번에 알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그 맛이 나는 컵라면을 이때까지 못 봤다. 어릴 때 우리 집은 마당이 있고 마루에 앉아서 엄마와 같이 컵라면을 호로록 먹었다. 후레이크와 함께 국물의 맛, 면발의 맛 역시 아는데 막상 적으려고 하거나 말하려고 하면 이상해진다. 전혀 설명을 할 수 없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가버린다. 사실 맛을 설명하는 건 나에게는 무리다. 바다 같은 맛, 봄날의 햇살 같은 맛이라고 표현을 가능하나 진정한 맛에 대한 설명은 못한다.
5학년 때 점심 도시락을 컵라면과 함께 먹었는데 담임선생님이 꼭 라면을 뺐어 먹었다. 깐깐하고 마른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컵라면에 물을 붓고 다 익어갈 무렵이면 와서 한 젓가락만 먹자고 하고선 반이나 먹는, 미워죽겠는 담임이었다. 학생의 컵라면을 그렇게도 먹고 싶을까 하는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담임은 아랑곳하지 않고 컵라면을 먹을 때면 뺏어 먹었다. 그 담임 선생님은 내가 가지고 있는 장난감도 자기 아이 준다며 몇 개나 들고 갔다. 또 교실의 커튼교체도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일요일에 학교에서 그 작업을 해주었다. 아니 자기 남편을 시키면 되는데 왜 우리 아빠야? 담임 이름도 생상하게 기억이 나서 구글링을 해봤는데 나오지 않았다.
담임이 내 장난감을 달라고 하면 엄마는 또 그냥 줘 버렸다. 나의 허락도 받지 않고 말이다. 그때는 엄마도 담임도 미워 죽을 것만 같았다. 5학년 담임을 생각하면 으 하게 된다. 또 공부를 못하는 나를 방과 후 나머지 공부까지 시켰다. 다른 아이들은 전부 집으로 가는데 나만 남아서 나머지 공부를 했다. 몹시 창피했다. 공부 못하는 아이가 당시에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담임은 교실에 남아서 일 대 일로 공부를 시켰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 6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학급위원이 되었다. 학급위원은 성적순으로 되는 계급 같은 건데, 와 내가 학급위원이 되다니. 그렇게 공부 못하던 내가 공부 잘하는 아이들 틈에 끼어 뭔가를 하고 있다니. 이름표 밑에 학급위원 이름표가 하나 더 붙음으로 해서 아이들의 선망이 대상이 되었다.
준우에게 장난감 주는 거 싫지? 근데 네가 이해해라. 준우가 아빠가 없어. 6학년이 되었어도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에게도 잘하고, 인사도 잘하고.
인간의 삶이라는 게 겉으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알기 쉽게 설명하거나 1 이거나 2라고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감정을 숨기거나 에둘러 말하거나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을 하는 게 나쁜 거라고 배웠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람들이 전부 올바르고 진실만을 말하면 지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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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다니던 교회 앞에 작은 분식집이 있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라면을 주로 사 먹었다. 라면이 아주 맛있었다. 맵지 않고 반찬이 단무지라 마음에 들었다. 그릇은 요즘 다시 유행하는 레트로 녹색 멜라딘 그릇이었다. 맛도 맛이지만 무엇보다 또래들과 앉아서 라면을 먹는 맛이 좋았다. 초등학생 저학년이라 같이 어울려 식당에 가는 것이 어려웠다. 라면도 고들고들하니 좋았고 하하 호호 이야기를 하면서 먹었다. 그러나 분식집에는 오후가 되면 늘 아저씨들이 앉아서 막걸리를 마셨다. 그래서 잘 갈 수 없었다.
교회 지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서관처럼 만들어 놨다. 책도 읽고 그럴 수 있다. 나는 책 읽은 기억은 없는데 지하 도서관에는 늘 있었던 기억은 있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선생님은 대학생이었다. 나는 막 중학생이 되었고 학교에서 먼지처럼 지내는데 교회에서는 어릴 때부터 다녀서 그런지 조금은 편했다. 완전히 편하지는 않았는데 내가 기도할 차례가 오면 그날은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아이들과 비교되는 게 싫었다. 이 기도라는 게 나는 왜 자연스럽게 술술 안 되는 것일까. 이유는 나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라는 게 사실 없었다. 그게 이유다. 그냥 어릴 때부터 다니다 보니 때가 되면 교회에 나갔지 밑음이라든가 기도라든가 이건 나와 먼 이야기였다. 중학생이 되어서 보니 누나형들은 전부 교회에서 연애하느라 바빴다. 도서관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공부를 핑계로 연애를 했다. 집에는 교회 도서관에 간다고 하면 방학에도 의심 없이 부모님은 보내주었다.
[선생님 하느님이 옆에 온 걸 어떻게 아나요?]
나의 질문에 선생님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아니 답을 해주었는데 내가 듣기에는 그렇게 와닿지는 않았다.
[선생님 저 장 보러 갔다 와야 해요.]
그래서 선생님은 나와 같이 시장에 갔다. 나는 시장에서 부식물을 몇 가지 샀다. 그리고 정육점에 들러 돼지고기를 이런이런 부위를 달라고 해서 구입했다. 선생님은 나에게 돼지고기 부위를 어떻게 그렇게 설명을 잘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질문을 처음 들어봐서 나는 적절한 대답을 속으로 찾았다. 돼지고기는 구이용, 찌개용, 조림용 뭐 다르니까 식육점 주인에게 달라고 하면 알아서 주는데 내가 부위를 아는 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설명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시장에서 장 보는 게 재미있었던 모양이었다. 나에게 여기저기 구경을 하자고 했다. 그래봐야 그저 전통시장이다. 요즘처럼 먹거리가 다양한 것도 아니었지만 시장은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러나 중학생에게는 빨리 장 봐서 가고 싶은 곳이었다. 그날 교회에 돌아와서 선생님하고 컵라면을 먹었다. 육개장사발면을 먹었는데 맛있었다. 그날이 생각나는 게 오후의 어스름 햇살이 교회의 두꺼운 유리에 부딪혀 아스라이 들어오는 장면. 그 빛을 보면서 컵라면을 들고 앉아서 먹었던 기억. 선생님이 교회에 자주 나오는 것도 나는 안다. 좋아하는 오빠가 청년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오빠는 선생님보다는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을 간직한 채 오빠를 보기 위해서 교회에 자주 나오는 것이다. 누구도 교회에 오는 것을 나무라지 않는다. 교회는 그런 곳이니까.
선생님 하느님도 컵라면 맛을 알까요?라고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 위대한 하느님이니까 컵라면 따위는 먹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이 아니니까 컵라면에 행복해하며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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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둘이서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었다. 특히 토요일에는 늘 컵라면을 먹고 집으로 갔다. 토요일에 수업이 일찍 끝나면 매점에 달려가서 컵라면과 도넛을 먹었다. 매점표 도넛인데, 그냥 도넛만 먹으면 맛이 별론데 컵라면과 같이 먹으면 이상하게 꿀맛이었다. 매점 옆에 레슬링부가 있었다. 아이들이 별로 없을 때 매점에 가다가 레슬링부에게 걸리면 돈을 빼앗기기도 했다. 우리도 몇 번 걸렸는데 같은 1학년이라 그런지 라면을 먹고 있을 때에는 기다리다가 레슬링부 선배들이 부르면 돈을 결국 빼앗지 못하고 가버렸다. 그때야 레슬링부가 무시무시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생인 것이다.
중학교 때 음악 선생님이 생각난다. 무슨 여자 기숙사 사감 같은 모습으로 늘 검은 원피스 같은 옷만 입었다. 한 반의 담임을 맡고 있었는데 치맛바람이 심한 때여서 물욕에 먹혀 버린 음악 선생님이었다. 뭔가를 받아먹은 아이에게는 아주 잘 대해주고 그렇지 않은 아이에게는 가차 없었다. 차별이 심해서 오히려 상대하기 쉬운 음악 선생님. 음악 선생님이 아주 싫어하는 아이 중에 내가 껴있었다. 음악시간에 노래 부르는 시간이 있는데 나는 노래도 시키지 않았다. 그렇게 앉아있다가 음악시간이 지나가 버린 경우가 꽤 있었다.
미술 선생님은 갓 부임해 온 신입이라 그런지 아무것도 받지 않아도 차별 없이 아이들을 대했다. 미술 선생님은 나를 좋아해 주었다. 나는 어쩌다가 미술은 성적이 늘 좋았다. 그림도 곧잘 그렸다. 다른 아이들이 집의 방을 네모로 그렸을 때 나는 타원형으로 그렸다. 그것도 약간 투시도 형식으로 그렸다. 나는 상상력이 그렇게 없는데 미술 선생님은 나의 상상력을 칭찬했다. 신나는 일이었지. 학교 가는 게 좋았다. 그럴 수 없는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런데 미술숙제로 한 번은 도형을 그리는 걸 내주었는데 친구 누나가 와서 내가 그려줄게 하더니, 설마 했는데 친구 누나의 도형은 수준이 달랐다. 나는 그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친구 누나는 미대생이었다. 나는 너무 고민을 했다. 친구 누나가 그려준 도형을 내고 싶지만 너무 수준차이가 날 것이다. 미술선생님이 눈치챌 것이다. 내가 새로 그리려고 했지만 시간이 너무 없었다. 결국 유혹에 넘어가서 누나가 그려준 그림을 숙제로 냈는데 그 뒤로 미묘하지만 미술선생님은 나를 대하는 게 달라진 것 같았다.
중학교 때는 먼지 같아서 있으나 마나 한 존재였다. 그래서 친구 한 명과 주로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거나 혼자서 컵라면을 먹었다. 이름도 기억나는 그 녀석은 나와는 다르게 공부를 아주 잘했다. 학교에서 같이 놀기는 했지만 나에게 미미하게 낙오와 실패가 붙어 있어서 그 녀석과 깊게 같이 놀지는 못했다. 중학생의 나는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늘 라디오나 듣고 컵라면이나 먹는 먼지 같은 애였다. 어서 빨리 중학교를 벗어나자 그런 생각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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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시립도서관에 가끔 갔는데 시립도서관의 매점을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시립도서관까지 가서 공부하기 싫었는데 중학교 3학년에 두 명과 친해지게 되었는데 얘네들은 꼭 시립도서관에 가기를 바랐다. 공부를 하다가 매점에 가서 컵라면을 먹었다. 학교 매점과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사람들이 많았다. 다른 학교 학생들, 여고생들, 대학생, 직장인들이 있었다. 다들 컵라면을 먹었다. 컵라면은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의 소울푸드였다. 국수도 팔고, 우동도 말아서 팔았는데 컵라면을 압도적으로 많이 사 먹었다.
시립도서관은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주말에 가곤 했다. 걸어서 가면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가는 길이 재미있었다. 가는 길목에 초등학교가 세 군데나 있어서 문방구가 많았다. 문방구는 앞에 이것저것 유혹하는 것들이 많아서 구경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불량식품도 많았지만 닭발도 팔았다. 애들이 전부 닭발을 입에 물고 다녔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먹기에는 매웠다. 그러나 아이들이 전부 입에 닭발을 물고 문방구에서 놀았다.
가는 도중에 문방구에 가는 기억을 하다 보면 그날 잠에 잠이 들면 꿈에 그런 꿈을 꿨다. 꿈속에서도 그 거리와 문방구들이 나오는 게 신기했다. 고등학교 때 어느 주말에 시립도서관에서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이름은 상희. 살이 쪄서 나는 그 애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상희가 나를 아는 체했다. 초등학교 때와는 너무나 달리진 모습이었다. 외모도 외모지만 성격이나 말투가 그 어릴 때보다 뭔가 조급하고 전투적으로 바뀌었다. 누군가 시비를 걸면 바로 달려 나갈 그런 모습이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상희는 꽃처럼 조용하고 예쁜 옷을 입는 그런 아이로 기억이 났는데. 사람에 대한 기억이 깨진다는 건 그렇게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상희는 중학교를 거치면서 공부보다는 그 외의 것에 관심을 더 많이 가졌다고 했다. 요컨대 일진이라든가 노는 언니라든가. 그렇게 보였다. 도서관에는 올 것 같지 않았는데 친구를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냥 들어왔다고 했다. 도서관 매점 앞 야외 벤치가 운치가 있고 쉬기에 괜찮았다. 나는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도서관에 왔으니 상희나 나나 거기서 거기였다. 우리는 앉아서 추억에 젖어 초등학교 때 이야기를 했다. 추억을 나누는 건 왜 그런지 재미있다.
너 예전에 그랬잖아, 하하 호호.
추억은 웃음을 짓게 한다. 우리는 두 시간이나 이야기를 하다가 허기가 져 매점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하하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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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후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밤새도록 했는데 크게 바쁘지는 않았다. 잠이 오면 작은 방에서 잠도 잘 수 있고 새벽에 문 열 때 목욕탕에 제일 처음으로 깨끗한 탕에 몸도 담글 수 있었다. 대학교 앞이라 대학생들이 많이 왔는데 디자인과 학생들이 어쩌다가 꽤 왔다. 그때 친하게 지내던 녀석이 늘 술을 마시고 밤에 정액권으로 게임을 했는데 새벽 한 시 정도 넘으면 주로 앉아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 녀석은 술이 취해서 오면 컵라면을 먹는데 두 번이나 찬 물을 부어서 앉아서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녀석이었다. 다시 뜨거운 물을 받아서 주고 찬물을 부은 컵라면은 들고 와서 버리려다 아까워서 젓가락으로만 들고 한 입 깨물어 먹었다. 근데 이게 맛이 없어야 할 텐데 또 아작아작 먹다 보니 나름 맛있는 거다. 그래서 찬물에 불은 컵라면을 두 번이나 먹었다. 그 뒤로는 아직 찬물에 컵라면을 부어서 먹을 일은 없지만 컵라면이라는 게 아무튼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