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 문턱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에도 조안나골드는 주로 겨울에 먹었다. 하드는 여름에 먹었는데 아이스크림은 겨울에, 아주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밤에 따뜻한 방에서 두툼한 내복을 입고 동생과 함께 퍼 먹었다. 아버지가 겨울이면 가끔씩 아이스크림을 퇴근할 때 사 오셨는데 그게 뭐든 간에 그렇게 맛있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요즘 고르고 고른 아이스크림은 이상하게 생각만큼 맛이 안 난다. 방대한 자유가 주어져도 불안해서 제대로 놀지 못하는 꼴과 비슷할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실험에서 골라주는 음식을 먹는 군과 자유롭게 사 먹게 했던 군의 만족도에서 전자가 더 높게 나왔다. 인간은 늘 자유를 갈망하지만 그 자유라는 게 권력 안에서 안전하게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말 그대로의 완전한 자유가 주어진다면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할지도 모른다. 정말 전두광이 노태우를 향해 한 말이 맞는 말일까.


오늘, 날이 추워졌다. 본격적인 겨울 여정의 시작이다. 그런데 일기예보에서 떠드는 것처럼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조깅을 하는데도 등에는 땀이 났으니까. 이렇게 추운 날, 오전에 집에서 밀어내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일하는 건물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있다. 일하는 건물의 화장실은 비번이 달려있고 비데가 있고 매일 두 번 청소를 하기 때문에 깨끗하다. 모든 층의 화장실이 비데가 있고 다 그런 건 아니다. 비데가 설치되어 있어서 밀어내기를 하고 세척을 누르면 따뜻한 물이 나온다. 기분 좋다. 엉덩이가 닿는 부분도 따뜻하다. 겨울에는 정말 일어나기 싫다. 하지만 여름에도 엉덩이는 따뜻하고, 물이 더워서 힘을 주면 땀도 함께 난다는 문제가 있지만 지금은 겨울이니까.


얼마 전에 나의 트위터 라인에 이런 트윗이 떴다. 젊은 여성인데 치과 건물에서 화장실을 사용하고 세척을 눌렀는데 너무 뜨거운 물이 나와서 놀라서 그냥 일어나는 바람에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찝찝한 마음을 정리하고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그때부터 문제가 생겼다고. 거기가 계속 쓰라리고 따가워서 창피함을 무릅쓰고 병원에 갔더니 그 안이, 그 주름진 부분에 1도 화상을 입었다고. 1도 화상 별거 아닐지 몰라도 주름진 그 부분은 또 말이 다르다. 그 여성은 트위터로 자신의 깊은 빡침과 함께 고뇌를 쏟아냈다.


그 야들야들하고 속된 곳이 화상이라니. 살면서 그곳에 화상을 입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정말 신경이 쓰일 것 같다. 그러다가 오랜만에 만난 5세 조카가 반갑다며 히히히하며 응침을 놓는다면, 오 마이 갓. 생각만으로 너무 끔찍하면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모습이 촤르르 필름이 되어 흐른다. 주식이 폭망하고 집이 사기에 넘어가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과 무관하게 이런 일상의 문제와 고민과 불행이 우리 인간의 삶에 따라온다. 응응의 그곳에 1도 화상이라니. 고소할 거라고 하던데 어떻게 되었을까.


누군가 밀리의 서재에 있는 나의 단편 소설을 리뷰해 주었다. 이렇게 정성 가득한 리뷰를 보게 되다니. 기분이 좋다. 특히 위로가 되었다니, 그리고 받은 위로를 연료 삼아 열심히 파이팅 하겠다고도 했다. 아마 그분의 리뷰를 보니 아주 힘들 때 나의 단편 소설을 읽게 된 모양이다. 그리고 그 안의 이야기에, 주인공들에게 위로를 받은 모양이다. 이 소설은 사실 내가 힘들 때 나를 위로하기 위해 썼던 소설이다. 처음에는 아주 긴 소설이었고 주인공들이 다 죽는 결말이었는데 행복하게 끝나도 괜찮잖아, 하면서 대거 줄이고 줄여 읽기 쉬운 짤막한 이야기가 되었고 주인공들은 행복하게 될 거라는 결말로 끝난다. 내가 쓰면서도 주인공들에게 힘을 내,라고 하면서 동시에 나도 힘을 받게 되었다.

나락으로 떨어지고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을 때 좌절을 하게 되는데 그때 쓰러져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또 쓰러지고 자꾸 쓰러져도 괜찮다. 털썩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어제 라디오를 듣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말이 나왔다.


서두를 필요 없어요

반짝일 필요 없어요

자기 자신 말고는 다른 사람이 될 필요는 없어요

-버지니아 울프


누군가들이 부러워 허둥지둥되던 마음을 살짝 가라앉혀보자면서 디제이는 말했다. 매일 조깅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가끔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경우도 있다. 그때 나보다 잘 달리는 사람을 이기기 위해 그들의 속도에 맞출 필요는 없다. 달리기라는 건 나만의 보폭과 호흡이 있어서 그걸 꾸준하게 유지하면서 달리면 오랫동안 달릴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목적지까지 달려가게 된다. 자칫 누군가를 따라서 달리다 보면 근육에 문제가 생기거나 다리가 꼬여 넘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한 번 넘어지면 일어나서 달리는데 노력과 폼이 든다.


그리고 리뷰를 해 준 분은 나에게 감사하고 인사까지 남겼다. 나야말로 감사한 일이다. 나는 매일 글을 적고 있지만 주위에서 가끔씩 듣는 말이 너의 글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그런 힘이 있는 글을 써라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누구를 위해서 글을 써본 적이 없다. 좀 이기적일지는 몰라도 나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글을 쓸 뿐이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글은 서점에 엄청 많이 있다. 굳이 나까지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서 글을 쓸 필요는 없고 그럴 자신도 없다. 리뷰를 해 준 분이 나의 글에게 위로를 받았다면 아마 나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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