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보라 해리를 한국에서 가장 잘 설명하려면 김아중의 마리아를 부른 원곡 가수라고 하는 게 빠르다. 데보라 해리는 블론디의 보컬이었고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인물이었다. 일단 하트 오브 글라스를 들어 볼까. 들어보면 아 이 노래! 하게 된다. https://youtu.be/WGU_4-5RaxU


블론디의 데보라 해리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싶으면 전문 음악인들의 영상을 보는 게 좋습니다.


데보라 해리가 노래를 부르면 섹시했다. 그녀의 섹시함은 입술에서 나오는 것 같았고, 그녀의 입술은 세계에서 가장 강렬한 섹시함을 뿜어냈다. 지난번 나탈리 임부를리아의 이야기를 할 때에도 말했지만 데보라 해리의 섹시한 입술은 후에 여러 후배들이 오마주를 한 것 같았다. 현존 가장 섹시하다는 노 다웃의 그웬 스테파니가 그렇고, 커트 코베인의 아내였고 홀의 리더 보컬이었던 코트니 콕스가 그랬다.


데보라 해리가 있던 블론디가 어떤 그룹인가. 7, 80년대 지구를 그야말로 들었다 놨다 했던 그룹이었다. 블론디의 노래는 강렬해서 그런지 샤넬 광고에도 많이 사용이 되었다. 샤넬 역시 강렬한 붉은 진홍색을 표현하는데 블론디의 노래가 딱이었다. 2015년 여름에 샤넬 광고가 생각이 나서 검색을 해봐도 찾지를 못하겠다. 수영장에서 붉은 입술의 모델이 풀사이드에 나오면서 블론디의 아토믹이 나온다.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샤넬. 2017년까지도 티브이에 샤넬 오리지널 광고가 시즌 별로 나왔다. 광고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사실 샤넬의 창시자 가브리엘 샤넬은 일 중독자였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오직 디자인을 구상하고 일만 했다.


그녀는 몹시 미스터리한 인물이었다. 괴팍한 궤변가이자 오만함의 상징이고 집에서 무의도식하는 프랑스 여성들을 경멸했다. 가브리엘 샤넬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크리스마스였고 빈둥거린다는 이유로 프랑스 귀족 여자들을 몹시 싫어했다.


샤넬은 도도하고 부잣집 외동딸처럼 자랐을 것 같지만 그녀는 어린 시절 수녀원에서 자랐다. 샤넬은 어린 시절의 애정결핍과 아픔,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 디자인에 집착을 했고, 남자에게도 집착이 강했다.


샤넬의 옷 중에 검은색과 흰색의 조화가 많았는데 그것은 샤넬이 수녀원에서 보고 자란 수녀 복의 색채가 그녀의 디자인에 강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수녀들을 자신의 고모들이라 생각했고 스스로는 공주라 여겼다. 그녀의 디자인에는 사랑에 대한 갈구와 애착에 대한 심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런 샤넬에 반하는 디자인이 크리스찬 디올이다.


샤넬은 자기애가 무척 강했다. 그렇기에 결국 자기애가 그 힘을 발휘해서 샤넬이라는 명품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제품의 이름은 단순하게 지었다. 팔백만 원이 넘어가는 샤넬 2. 55백은 단순히 55년도 2월에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 한다. 그렇지만 가로의 길이가 또 25. 5 센티미터이기도 하다. 샤넬의 2.55백은 180가지의 공정을 거치며 6명의 전문가가 가내수공업으로 10시간 이상 투자를 하여 하나의 백을 만들어낸다.


샤넬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한 것은 이런 샤넬의 광고에 기가 막히게 데비 해리 - 데보라 해리, 블론디의 노래가 어울리기 때문이다.  https://youtu.be/O_WLw_0DFQQ Blondie - Atomic


https://youtu.be/HFcO3UD4-fM 드디어 찾은 샤넬 광고와 블론디의 아토믹


블론디의 실험적인 음악이 신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열광의 중심에는 데비 해리라는 보컬이 있었기 때문이다. 블론디의 노래는 음반을 구입해서 들어보지 않았어도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안다. 왜냐하면 어딘가에서 늘 나왔기 때문이다. 머나먼 이국의 조그만 도시의 어느 술집이나 옷가게, 지금은 사라진 레코드 가게의 스피커에서 블론디의 노래는 언제나 흘러나왔다.


블론디의 노래는 영화 속에도 꽤 나왔는다. 영화 ‘졸업’이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으로 대표된다면, 블론디의 노래는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를 장식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이 상류층의 여성을 유혹해서 돈을 가져가는 그런 내용의 영화다. 단순한 것 같지만 아주 재미있다. 주인공으로 아주 젊은 시절의 리처드 기어가 나온다.


이 영화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당시 영화 의상을 누가 할래? 했을 때 아직 사회 초년병 시절의 한 디자이너가 손을 번쩍 들고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해서 그가 리처드 기어의 영화 의상을 도맡아서 하게 된다. 그 디자이너가 바로 남자들이 환장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였다. 이 영화는 당시 일대 파란을 일으키는데, 이 영화 이전에 섹시한 남자는 웃통을 벗은 근육질의 몸이었는데, 아르마니를 걸친 젊디 젊은 리처드 기어는 너무나 섹시했던 것이다. 근엄의 상징인 양복에서 섹시함의 대표가 되는 수트로의 해체가 이루어졌다. 수트를 입고 있는데 섹시함이 흘러넘쳤다. 집 안에서 빵만 구워대던 미국의 여성들이 극장으로 달려들었다.


전 세계 많은 나라에 리처드 기어와 아르마니의 섹시함을 퍼트렸지만 수위 때문에 한국은 수입이 불가능했다. 영화 속에서 리처드 기어가 옷장을 열면 아르마니가 옷장에 죽 걸려 있다. 아르마니를 보는 재미도 좋다.

영화 속, 아르마니를 걸친 리처드 기어의 움직임, 손짓, 눈빛 그 나하나하가 전부 섹시했다. 영화 속에는 아르마니 이외에 명품이 잔뜩 나온다. 음향기기, 스피커, 가구 그리고 페리에의 병도 지금과 똑같다. 리처드 기어가 미소를 지으면 그 미소가 마치 상영관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요즘으로 친다면 여친남친 여행 브이로그를 담은 유튜브 영상과 같을 것이다. 이 영화를 장식했던 음악이 블론디, 데보라 해리의 ‘콜 미’였다. https://youtu.be/i4DI71X6PeM Blondie - Call Me (Original Long Version) (American Gigolo) (1980)


데보라 해리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그녀의 섹시함 이면에는 귀여운 면모가 잔뜩 존재한다. 귀여우면서 섹시하기가 상당히 어려운데 그 어려운 길을 아무렇지 않게 걸어간다. 얼굴은 퇴폐미가 흐르는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동작이나 액션은 또 뭐야 그냥 인형이잖아! 하게 된다.


데보라 해리의 헤어, 의상, 화장 이 모든 것이 모두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데보라 해리는 마네킨보다 더 인형 같은 모습으로 그녀를 닮은 인형이 미국에서는 많이 팔렸다는 이야기를 학창 시절에 음감에서 디제이가 말한 것 같은데 뇌피셜이다.


데보라 해리는 74년에 5명의 남성과 함께 그룹을 결성하고 76년에 블론디라는 앨범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비교적 늦은 나이 서른 정도에 노래를 부른 데보라 해리는 블론디를 정상으로 끌어올린다. 그들의 음악을 뉴 웨이브, 컨템퍼러리 펑크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런 말들이 무슨 말인지 나는 모른다. 자세한 것을 알고 싶으면 음악 전문 리뷰어의 영상을 보기바람.


데보라 해리는 강렬하게 보이는 섹시한 인상과는 달리 순애보였다. 같은 멤버 중 기타의 크리스 스타인과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얼마나 행복했나. 투어를 다니며 사랑을 속삭이고 크리스는 데보라 해리의 깊은 눈동자를 쳐다보며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사랑의 속삭임은 음악의 영감이 되었고 같은 무대에서 같인 곳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했다.


가는 무대마다 전 세계 사람들은 열광했고 환호했다. 멋진 일이었다. 그런데 스타인이 난치병에 걸리고 만다. 공연은 물론이고 음악을 더 이상 하는 것에 제동이 걸리고 만다. 한창때였다. 최고를 달리고 있었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의 사람들에게도 블론디라는 그룹을 알릴 수 있었다. 기타리스트만 교체해서 다시 무대에 오르면 된다.


그러나 데보라 해리는 그 길로 부와 명성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병간호에 들어간다. 그 기간이 무려 15년이었다. 그렇게 80년대 최고를 달리던 블론디가 해체하고 만다. 15년 동안 데보라 해리의 극진한 병간호 덕분인지 크리스의 난치병이 완치가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헤어지고 만다. 그러나 두 사람은 친구가 되기로 한다.


시간이 훌쩍 지나 세기말에 다시 무대에 등장한 데보라 해리는 예전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났다. 많이 늙고 힘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렸던 팬들은 그런 것쯤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저 돌아와서 무대에 오른 데보라 해리에게 열광했다. 99년 그렇게 마리아를 부른다.


 https://youtu.be/OF-EIqerj8o Maria 1999 "NYC" Live Video


사람들은 데보라 해리를 외쳤다. 팬들은 그녀를 아무런 불만 없이 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티스트와 팬, 이 알 수 없는 관계는 마치 산모와 뱃속의 아기처럼 설명이 안 된다. 데보라 해리는 이후 지금까지 꾸준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금은 70이 넘은 할머니의 모습이지만 여전히 멋있다. 여전사 같은 모습으로 무대에 오르지만 그 속의 부드러운 면모를 잔뜩 가진 채 노래를 부른다.


미국에서는 데보라 해리의 전기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소식도 벌써 몇 해 전에 들은 것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만약 영화가 된다면 데비 해리의 역할을 누가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