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는 1집을 들고 나오면서 대한민국의 온갖 유행을 전부 갈아엎었다. 가장 눈에 띄는 유행은 옷에 상표를 떼지 않고 달고 다녔다는 것이다. 거기에 벙거지 모자가 유행이었다. 유튜브로 옛날 티브이 서태지에 관한 영상을 보면 정말 대단했다.
누군가 자신이 녹화해 놓은 영상을 올려놓은 것이 있는데 초딩들이 우르르 나와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전부 1 문하고 1 답을 얻어내는 영상도 있다. 이 영상에 사회를 보는 남녀 중에 여자 엠씨는 영화 '이장과 군수'에서 차승원의 첫사랑이었던 이현경이다. 남자는 개그맨 김은우.
뜬금없지만 그 시절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양현석과 이주노는 살도 찌도 얼굴도 커지면서 많이 변했는데 서태지는 거의 변함이 없는 게 신기하네. 얼마 전에 이치현도 봤는데, 이치현도 70살이 다 되었는데 외모의 변함이 별로 없어서 놀랐다.
영상을 보니 1집 활동을 하면서 일본에서도 공연을 하며 방송 활동을 했는데 일본의 어린 사람들? 거의 초등학교 정도 되는 아이들에게 많은 사인을 해주는 모습도 있었다. 좀 묘하네. 아무튼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전부 서태지와 아이들의 회오리춤을 따라 하곤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이렇게 국민적 인기를 끈 것에 대해서는 아마도 사람들의 갈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요는 많았지만 가요가 아직 팝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던 시절이었다. 팝이 표현해 내는 풍부한 음악적 서사를 가요는 무리였다. 지금도 좋아하는 아티스트 공연에 몰려가지만 – 얼마 전 조용필의 공연에 5만 명이 모였다. 정말 엄청나다 – 예전에도 가수들이 공연을 하면 전국에서 몰려들었다.
세계적으로 미국의 팝이 판을 치고 있었고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한국에 세계적인 보이 그룹 ‘뉴키즈 온 더 블록’이 공연을 오게 되었다. 1992년 2월 17일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초유의 공연이 개최되었다.
당시 서라벌레코드 초정으로 이 어마어마한 공연이 성사되었다. 그러나 대참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뉴키즈가 공연을 해야 할 시간에도 나타나지 않자 사람들은 지치기 시작했고 불만을 터트렸다. 그러다가 뉴키즈가 등장했는데 팬들이 미친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몰리면서 앞자리의 사람들이 쓰러지고 밟히는 사고가 일어났다. 거기에서 여고생 한 명이 숨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공연은 수습 후 계속되어서 새벽에 끝났다. 당시에 사고 소식이 티브이 뉴스를 통해 전국으로 보도되자 놀란 팬들의 부모들이 공연장으로 갔지만 뭐 제대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었다. 뉴스로 보도된 장면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충격이었던 것이다.
뉴키즈를 보러 온 한국 팬 천 명이 소리를 지르며 몰려들었고 사람이 깔리는 모습이나 시설 집기가 파손되는 모습까지 방송이 되었다. 이로 인해 서라벌 레코드 대표는 구속이 되었다. 후에 서라벌레코드 회사는 그해 9월에 부도가 나고 만다. 그리고 2004년까지 버티다가 결국 폐업을 하고 만다.
그렇게 팝에 대한 갈망과 갈증으로 인해 대참사를 겪은 대한민국에 그해 4월, 신예 한국 보이 그룹이 티브이를 통해 사람들 앞에 나타나게 된다.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뉴키즈 온 더 블록에 쏟아져 있던 관심을 가져오는데 무리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팝의 흐름은 힙합이었다. 크리스 크로스가 세계적으로 나타났고, 지금은 엄청난 아티스트가 되어 버린 티엘씨부터 힙합이 강력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시기였다. 그에 맞게 서태지와 아이들이 힙합에 댄스를 섞고 배경에는 록이 사운드를 받쳤다.
그렇게 해서 1집의 인기를 뒤로 하고 서태지와 아이들 2집이 나왔는데 우려와는 다르게 1집만큼 인기를 끌게 되었다. 2집은 본격적인 힙합에 한국적인 정서를 섞어버린 하여가를 선보였다. 그야말로 한반도를 강타했다. 티피코시에서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계약을 맺고 광고를 했고 서태지의 패션은 거리를 물들였다.
처음으로 엑스세대가 등장했고 그 명맥이 이어져 지금은 엠지세대까지 불리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정해놓고 부르는 게 별로다. 대부분 본인들도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엠지야, 민지야,라고 말로 하는 사람들은 전부 꼰대들처럼 보인다. 엠지세대는 그 누구도 자신을 가리켜 우리 엠지세대야, 우리 제트세대야, 하고 하지 않는다.
티피코시는 서태지와 당시 김남주 등 협연으로 인기를 끌다가 세대가 변해감에 따라 거의 사라졌다가 요즘 다시 론칭을 하고 있다고 한다. 유행이란 그렇게 돌고 도는 거란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몰랐다가 후에 1집의 난 알아요가 밀리 바닐리의 ‘걸 유 노우 잇’를 따라 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표절시비와 무관하게 좀 웃긴 건 밀리 바닐리는 공연에서 대부분 노래를 직접 부르지 않고 립싱크를 했다고 한다. 아마 한 번도 실제로 불러 본 적이 없다고 했지. 서태지와 아이들 2집에서는 ‘우리들만의 추억’의 음이 꼭 오락실에 있는 보글보글의 음악과 비슷하게 들린다.
나는 2집에서 ‘죽음의 늪’이 너무 좋다. 그 노래를 들었을 때 시작할 때 두구두구당 하며 시작되는 음악이며 죽음의 늪이라는 게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은, 내가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주 나쁘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 그 사람이 어느 날 밤 저기에 보이는데 조심 다가가서 보니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는 그런 느낌이 드는 노래다. 혼자 이 가사가 말하는 이야기는 철학적이야,라며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한 곡을 고르면 ‘죽음의 늪’이다.
제로 콘서트에서의 죽음의 늪. 몸을 때리는 굉장한 사운드가 너무나 좋다. https://youtu.be/Z-CIagrd29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