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으로 치면 알려진 음악가들이, 그러니까 잘 나가는 작곡가, 편곡가, 연주가들이 붙어서 만든 앨범이 이화규의 앨범이 아닌가 싶다. 이 앨범에 참여한 음악가들이 화려하다. 예민, 김성호, 김명곤, 함춘호 등이 뛰어들었다. 그래서 이화규 1집의 노래들을 들어보면 절절한 사랑의 감성이 충만한 곡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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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은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로 잘 알려졌다. 예민은 1980년 대학가요제를 통해 나타나서 후에는 주로 가수들의 음반작업을 했다. 프로듀서를 하고 작사와 작곡을 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앨범도 내고 잘 활동하다가 미국으로 휙 유학을 가더니 뜸해진 가수가 되었다. 나는 예민의 노래 중에는 ‘꽃이 바람에게 전하는 말’을 좋아한다. 슬프다. 그런 감정이 가득한 노래다. 어떻게 이런 가사를 지어낼까, 늘 궁금한 부분이다. 이 노래는 예민의 버전도 좋고 박강수가 부르는 버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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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은 음악감독으로 첫 시작은 ‘사랑과 평화’의 키보드였다. 2집까지 활동한 것으로 안다. 사랑과 평화는 이장희에 의해서 발탁이 되어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장희의 곡 ‘한동안 뜸했었지’를 사랑과 평화의 곡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라고 해도 무슨 노래인지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김명곤은 엄청난 곡들을 작곡했다. 영화 음악을 많이 했는데 얼마 전 1주기를 맞이한 강수연이 나온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의 영화 음악을 했다.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는 말 그대로 청춘인 대학생 미미와 철수의, 공부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하지 않는 대학생활의 이야기다. 정말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공부를 안 하는 걸 부각한다. 80년대에 대학에 가면 그저 방탕하게 놀아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요즘 보면 뭐지? 할지도 모른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나 몰라라 해도 대학교에 가면 공부가 좀 재미있어서 그래도 좀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 속 철수는 좀 뭐랄까 술을 마셔도 사회의 비판이나 미래의 불안 같은 건 없이 그저 미미를 꼬시기 위한 술 마시기만 할 뿐이다.


철수는 법학과에 다니는 천재 보물섬과 친구를 먹게 되는데 수석 먹고 학과에 들어와 독서실에서 먹고 자고 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하는 보물섬은 철수와 친하게 되면서 맨날 술자리와 미미를 꼬시는 데만 같이 다닌다. 이쯤 되면 어른들이 친구를 잘 만나아야 어쩌고 저쩌고 할지도 모르겠다.


미미도 철수 못지않게 레미제라블이 장발장이 쓴 줄 알 정도로 상식과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 거기에 배우가 꿈인 최 아랑 드롱, 최양락도 나온다. 최양락은 정말 뭘 어떻게 해도 살은 안 찔 스타일로 보인다. 마를 대로 마른 최양락은 철수의 고등학교 친구다. 단역으로라도 배우가 되려고 하지만 잘 안된다. 철수에게 나 내일, 내일 촬영이 있는데,라며 부끄러워한다. 철수가 그, 그래? 잘 됐구나,라고 하니. 나 내일, 내일,,, 엑스레이 촬영이 있어. 요즘의 그 최양락 톤으로 그렇게 말한다.


미미의 강수연은 참 예쁘고, 철수의 박중훈과 보물섬의 김세준과 최 아랑 드롱의 최양락은 얼굴이 정말 어리다. 이들은 맨날 놀 궁리만 찾고 술만 마시다가 보물섬이 쓰러진다. 그러면서 보물섬의 병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보물섬은 공부도 일등이며 권투를 배워서 깡패들과도 맞서며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공부도 가르치는데 곧 죽게 된다. 이들의 좌충우돌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영화를 만든 감독은 80년대 봉준호라 불렸던 이규형 감독으로 이규형 감독은 2020년 암으로 별세했다. 글도 잘 썼던 이규형 감독은 자신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이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였다. 그리고 김명곤은 영화 음악을 맡았다. 이규형은 여러 영화를 만들었지만 청춘 스케치만큼 관객을 동원하지 못했다.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도 했던 감독은 다시 돌아와 DMZ 비무장지대라는 영화를 만들었지만 역시 실패했다. 영화제작 투자금을 모집해서 제작은 않고 투자만 받다가 사기죄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들어오기 직전의 한국의 모습이라 재미있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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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에는 김성호도 참여했다. 김성호는 ‘김성호의 회상’의 김성호다. 김성호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한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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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춘호는 요즘도 아주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기타리스트다. 2019년에 함춘호와 워너원의 김재환이 같이 공연을 했는데 너무 좋았다. 그때 써 놓은 글인데 고작 3년 정도 된 글인데 30년 정도 된 글처럼 느껴진다.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들에게


정말 궁금한 것은, 누가 당신을 이렇게 겁쟁이로 만들었나요? 마치 몸은 없고 머리만 있는 인간들처럼, 해보지도 않고 미리 결과를 예측해서 포기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을 그토록 두려워하고, 젊디 젊은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나 고민하고.... 대체 왜 이렇게 됐습니까. 화가도 꿈꾸고 로커도 꿈꾸었다면 그걸 실천하지 못하게 누가 막았습니까? 누가 ‘직업적으로 성공할 자신 없으면 시작도 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까? - 김형태의 너, 외롭구나.


어른이면 꿈도 못 꾸는가, 결혼한 여자는 꿈꿀 수도 없을까. 누가 우리에게 꿈꾸는 것조차 못하게 바리케이드를 쳐놨을까. 초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교 4학년까지 16년 정도 배운 것으로 한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그렇게 배운 것보다 인생을 살면서 경험하는 게 더 많고 더 많이 배운다. 오래전, 4, 50년대의 교육방식의 배움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서 그것으로 지금의, 접는 폰이 나오는 이 시대에도 적용을 해버린다. 도대체 누가 그렇게 그러는 것일까. 인간이 100살까지 산다면 80년 정도를 평균적으로 산다고 봤을 때 40세에는 대학을 한 번 더 가는 사회적 구조가 되어서 인생 2장이 시작하는 배움의 길을 국민 전부가 가져야 하는 게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다시 배움의 길에서 꿈을 꿀 수 있게.


임경선과 요조의 책 ‘여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를 보면, 하나 확실한 것은 어쩐지 나이가 많아 보이는 마흔 살이 되었다고 당장 ‘불혹’이 되진 않아. 하긴 40대가 불혹이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 그건 역으로 40대가 미친 듯이 흔들릴 때라서 흔들리지 말라고 괜히 만들어 놓은 말 같아. 내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 단 한 명도 없었어. 아무튼 마치 저열한 젊음을 은퇴한 것처럼 초연해하거나 고민이 다 해결되거나 그러지 않아. 그리고 몇 살이 되어도 고민하는 것은 좋은 거야. 고민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니까. 고민을 하니까 우리는 스스로를 찾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는 거야. 40대가 되었다고 다 산 노인네처럼 굴지 말고 몸과 마음 둘 다 움직여야지. 에너지는 사용한 만큼 고스란히 순환되어 내게 돌아오니까.


기타리스트 함춘호는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에 도전을 하고 실패를 맛보고 다시 일어선다. 그의 기타 연주를 잘 들을 수 없는 사람들도 드라마의 곡을 듣고 이 곡이 함춘호의 곡이야,라고 하면 아! 정말? 할지도 모른다. 그는 오래전 겨울연가부터 최근의 도깨비, 태양의 후예까지 많은 곡을 만들었다. 아마 해외에서 더 열광이다. 이 나이 꽤 많은 아저씨의 기타에 말이다. 그 이면에는 함춘호의 어떤 인성? 같은 것들이 함춘호를 끝없이 도전하게 만든다. 워너원의 김재환과 함께 봄여름가을겨울의 전태관 추모 공연에 협연을 할 정도로 젊은 가수들과 연주자들에게 마음을 열고 있다.


내 행동과 생각이 ‘오케이, 부머’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막혀 있다면 이러쿵저러쿵 할 필요도 없다. 그래봐야 유치하고 어리광 부린다는 소리밖에 듣지 못한다. 만약 꿈꾸고 있는 게 있다면 고민이전에 한 번 해보아야 한다. 노래를 부르고 싶다면 녹음실에서 노래를 불러 앨범을 만들고, 연주를 하고 싶으면 피아노 학원에 등록을 하고, 글을 쓰고 싶다면 모두가 잠든 밤에 티브이보다는 책상 앞에 노트북을 열자.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 생활이 망가지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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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김광일, 박인호(두 사람은 잘 몰라서 검색을 했는데도 찾을 수 없었다) 등 음악가들이 앨범작업에 참여를 했다. 이화규는 2집까지 내고 활동을 그만둔 것으로 안다. MBC 합창단원 출신이라고 한다. 거기에 박남정도 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이화규의 언니가 이삼규로 동시에 활동을 했다고 한다. 언니는 당시 홍학표가 나왔던 우리들의 천국 1기에 나왔다고 한다. 홍학표는 울덜의 천국으로 등장해서 인지 홍학표 하면 90년대 청춘스타로 불렸다. 그러다가 제5 공화국에서 장세동으로 연기 끝내줬다. 이화규도 당시 예능 같은 프로그램에 많이 나왔는데 타이틀 곡인 ‘사랑할 때와 이별할 때’보다 발랄한 ‘왜’를 많이 불렀다고 한다.


그래도 오늘은 타이틀 곡을 들어보자. https://youtu.be/KEbTgdl3y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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