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게를 요즘 하루 건너 하루 먹고 있다. 멍게를 먹을 때는 초장도 간장도 그 무엇도 곁들이지 않고 오로지 멍게의 맛으로만 먹는다.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멍게를 먹을 수 있을 때 실컷 먹어두자. 요즘 멍게가 뉴스에 자꾸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제 내가 어릴 때 내 아버지가 나에게 멍게를 까 주던 것처럼 요즘 아이들은 멍게를 먹지 못할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어린이들은 멍게라는 걸 유튜브나 책에서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걸 생각하면 아이들이 딱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지금 서 있는 세계가 재미있고 호기심 가득한 곳이며, 지금 먹는 음식이 제일 맛있는 먹거리 일 테니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것대로 괜찮지 않을까 싶다.


멍게의 뭉근함? 멍게의 간간함? 멍게의 물컹함은 어떤 음식도 가져보지 못한 맛을 입안으로 퍼지게 만든다. 멍게가 노란색인 것도 마음에 든다. 만약 멍게가 녹색이나 연두색 또는 자주색이라면 이렇게까지 먹게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카레가 노란색이 아니라 자주색이면 먹겠냐고?라고 대답하겠다.


멍게를 좋아하지만 한 번 먹을 때 너무 많은 양은 별로다. 사진에 보이는 정도의 양만 한 번 먹을 때 먹는다. 야금야금, 꼭꼭 씹어서 멍게의 맛을 최대한 느낀다. 그런 일종의 과정이 좋다.


횟집에 가면 멍게를 한 접시 꼭 시켜 먹는다. 멍게는 인기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은 멍게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메인 회에 젓가락을 질을 할 뿐이다. 그러나 나는 멍게를 먹는다. 오물오물. 멍게가 가장 맛있을 때는 아무래도 바닷가에 앉아서 멍게를 먹는 맛이 좋다. 간이 횟집 같은 곳. 밑에 바다가 와서 철썩철썩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만취라도 하게 되면 곧 떨어져 버릴 것 같은 포구에 붙어 있는 간이횟집의 목욕탕 의자에 앉아서 멍게를 먹는 맛이 있다.


그런 간이 횟집이 양옆으로 일렬로 죽 이어져서 한 번 지나가면 주인 할머니들의 고객유치의 찬란한 거짓말을 들을 수 있다. 만약 내가 못생겼다면 여기를 한 번 지나가기를 바란다. 모든 간이 횟집 할머니들이 예쁘다고 말해준다. 이렇게 예쁜데 여기 와서 회 한 사라 하고 가,라고 한다.


보통 몸에 좋은 음식들은 대부분 맛이 없다. 나열하자면 당신이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음식 중에 멍게만큼은 몸에 나쁘지도 않은데 아주 맛있는 음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내가 멍게를 좋아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고 오로지 멍게의 맛으로만 먹는데 맛있는 건 멍게만 한 것도 없다.


맛있는 건 이상하지만 몸에 좋지 않다. 탕수육, 찌개, 오징어튀김 등등등. 예로 전 세계인의 음료, 지구인이 가장 좋아하는 콜라. 이 청량함, 컵에 따랐을 때 들리는 그 소리, 한 입 마셨을 때 그 맛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콜라가 몸에 매우 나쁜 음료라는 건 다 안다. 라벨을 보면 콜라에 들어가는 물 빼고는 전부 나쁜 식품첨가물뿐이다. 그 식품첨가물을 물에 녹여서 마른 용액이 콜라다. 그 안에서 제일 좋지 않은 첨가물이 캐러멜 색소라고 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 여기저기에 이 안 좋은 캐러멜 색소가 많이도 들어간다. 족발에도 흑설탕에도.


캐러멜 색소에는 이미다졸이 있다. 이미다졸은 발암물질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미다졸이 체내에 들어오면 면역력을 약화시키는 일을 열심히 한다. 암세포는 인슐린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인슐린이 조금씩 천천히 분비가 되어야 하는데 많이 분비가 되면 암세포가 야호 하면서 달려든다. 하지만 우리는 콜라를 포기할 수 없다. 아니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의 작고 쪼글쪼글한 이 뇌가 이 청량감을 강력하게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바닷가 근처라서 문 열고 나가면(라는 말은 좀 거짓말이지만) 바다가 있다. 여기에 멍게를 한 접시 사 와서 먹으면 맛이 좋다.


어제는 오전에 바닷가를 찾았다. 바다에 나오면 바닷바람 때문에 그렇게 따뜻하지만은 않다. 서퍼들이 시즌을 준비하느라 바다에 나왔다. 바다가 고요했다. 바다는 이맘때는 늘 고요하다. 하지만 그 속은 알 수가 없다. 마치 여자의 마음 같다.


서핑보드의 색깔도 알록달록하지만 멍게 색감이 눈에 띈다. 이렇게 죽 산책을 하며 30분 정도 걸어가면 포구가 나온다. 그동안은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바닷가에 인접한 도로에 야자수가 심어져 있었다. 손에 든 것이 많아서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는데 예전부터 있었는지 아니면 얼마 전에 심었는지 모를 야자수가 거리를 따라 행렬로 죽 있었다.


바닷가에 나오면 일단 바다를 보게 된다. 바다를 보면 멍하게 된다. 그런 시간을 바닷가에 나오면 갖게 된다. 나를 비롯해서 인간은 너무 많은 생각과 정보와 선택 속에서 힘들어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 같다. 힘들지 않은 하루가 없을 정도다. 그 속에서 시를 읽는다. 시를 읽을 수밖에 없다. 시를 읽지 않으면 그저 하루를 버티다 다음 날을 맞이하게 된다. 뜬금없지만 이런 날은 멍게를 먹자.


멍게, 미나리, 달래의 조합은

초고로운 봄날의 연주다.


달래의 초봄 산 내음이 입 안에 번지고

미나리가 내천의 봄 맑음을 전해주고

멍게의 봄바다가

산과 내천을 두르고

내 입 안으로 들어온다.


지금의 세계가 소멸한다면

봄 내음을 두르고 사라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멍게는 관능이며 변하지 않는

자연의 추억을 꽉 쥐고 있어서

봄날의 멍게를 입에 넣으면

현실을 잊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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