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덮밥이라고 하지만 좀 더 정확하게는 고등어구이 덮밥이 맞겠다. 고등어덮밥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 고등어를 구워 밥 위에 올려서 먹으면 그것이 고등어덮밥인 것이다. 나는 어릴 때에도 고등어를 밥 위에 올려서 먹곤 했다. 덮밥의 장점이라면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김밥을 아주 좋아한다. 김밥을 들고 다니며, 뭔가를 하면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참 게으른 놈이라 귀찮은 음식을 싫어한다. 그러니까 탁자 위에서 다시 해 먹어야 하는 음식들, 찌개나 전골, 삼겹살이나 목살처럼 구워서 먹어야 하는 고기나, 대게처럼 발라먹어야 하는 것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맛있고 맛없고를 떠나 귀찮은 음식은 별로다.
그저 탁자 앞에 탁 나왔을 때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좋다. 국밥, 치킨, 족발, 햄버거 등 많잖아. 하지만 귀찮은 음식이라도 막상 먹으러 가면 투덜거리지 않고 그저 잘 먹는다.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귀찮은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하지는 않는다.
고등어구이는 어릴 때에는 가시까지 있어서 발라먹는 재미와 귀찮음이 공존했는데 언젠가부터 고등어구이용 고등어는 가시가 제거되어 있다. 그대로 먹으면 된다. 그래서 고등어구이를 밥 위에 이렇게 올려서 먹으면 덮밥이 된다. 고등어구이는 와사비가 어울린다. 기름이 좔좔 흐르는 고등어구이 겉에 와사비를 젓가락으로 발라서 먹으면 쿵 함이 들어옴과 동시에 고등어구이의 그 맛있음이 입안에 내내 맴돈다. 밥그릇을 들고 이동을 해서 고등어에 와사비를 발라서 조금씩 먹으며 건방진 자세로 앉아서 오래된 영화를 한 편 봤다.
제목은 크로노스. 93년에 나온 기예르모 델토로의 첫 작품이다. 기괴하고 괴랄하고 징그러운 기예르모 세계관의 첫 시작인 것이다. 기예르모 델토로와 나이트 샤말란이 영화를 만들면 재미있던 없건 간에 다 보게 된다. 크로노스는 기예르모 델토로가 29살에 만든 영화다. 그 영화에 아주 젊디 젊은 론 펄먼이 나온다.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난 후에 기예르모는 론 펄먼을 데리고 헬보이를 만들었다. 기예르모는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까. 천재들은 일반 사람들과 달라도 뭔가 다르다. 콧구멍이 달라도 다를 것이다.
내가 어릴 때 버스정류장 근처의 사진관에는 인어사진이 디피되어있었다. 그런데 인어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런 인어가 아니라 고등어머리에 여자의 다리가 붙어 있는 인어의 사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합성사진임에 틀림없지만 어린 시절에 본 그 사진은 정말 인어라고 생각을 했다. 내내 우리가 알고 있는 인어가 진짜 인어가 아닐 거라는 나의 생각에 확신을 주는 사진이었다. 파도에 밀려와서 바닷가에 누워있는 사진이었는데 몸통은 고등어이고 다리가 아주 예쁜 여자의 다리였다.
마그리트의 그림 속 인어를 닮았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그 인어가 정말 인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인어공주의 에리얼보다 훨씬 아름다워 보였다. 그래, 이게 진짜 인어지. 나는 그 사진관 유리벽에 붙어서 한참을 고등어인어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어릴 때에는 나도 기예르모 같은 미친 상상력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고등어인어가 인간의 바닷가로 쫓겨나게 된 이유가 다른 인어와 다르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그 고등어인어가 다른 세계와 연결된 존재이고 고등어인어를 발견한 늙은 어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점점 젊어진다. 어느 날 고등어인어를 넣어둔 욕조에 같이 들어간 어부는 두둥.
웹툰 중에 ‘닭강정’이 있는데 자신의 딸이 닭강정이 되어 버려서 고군분투하는 아빠의 코믹 미스터리추적 이야기가 드라마로 나올 예정이다. 멜로가 체질의 이병헌이 감독이다. 허, 닭강정이 된 딸이라니. 하지만 이거 드라마로 나오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딸이 어떤 기계를 통해서 닭강정이 되어버리다니. 이 발상부터 너무 기상천외하다. 나도 고추장만 먹으면 몸이 변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적고 있는데 닭강정으로 변해버린 이야기에는 두 손 다 들었다. 그래도 나는 고추장소녀를 사랑한다. 고추장만 먹으면 이상하게 변해, 막 변해. 이상하게 변하는 건 계절이다. 지금 계절은 막 변하고 있다.
요즘은 조깅을 하고 억지로 돌아서 오는 골목이 있다. 그 골목에 가면 목련이 피는 집이 있다. 담벼락 밖으로 목련이 이렇게 나와서 이 시기만 되면 꽃을 피운다. 딱 이맘때만 맡을 수 있는 냄새다.
마치 방향제 냄새 같기도 한 목련의 냄새는 봄의 기운을 한껏 가져다준다. 매년 이 잠깐의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조깅을 하면 힘들어도 애써 먼 길을 돌아서 온다. 10년 전만 해도 골목이 많고, 작은 동네가 많아서 목련이 여기저기에서 피어나서 봄의 문턱만 되면 봄냄새가 화악 온 세상에 퍼졌다.
지금은 도시개발 때문에 대부분의 오래된 동네와 골목이 사라졌다. 이제 내가 걷거나 달려서 갈 수 있는 골목길은 한 군데 정도 남았고 이 정도 거리까지 와야 봄냄새를 맡을 수 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맡을 수 있는 냄새라서 여운이 길다.
이 짧은 봄날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옛 생각이 물씬 나는 방향제 냄새를 뿌리고 사라진다. 이제 곧 모든 세상에 봄이 도래하면 풍경이 옷을 갈아입을 것이다. 그 속에는 나는 여름과 겨울만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 짧은 봄날에 이렇게 목련에서 나는 이 미칠 것만 같은 싸구려 방향제 냄새가 좋다. 뇌를 마구 헤집어 놓는다.
땀을 듬뿍 흘리고 집으로 들어가서 고등어덮밥을 먹자. 쩝쩝거리며 소리 내서 맛있게 먹자. 오래된 일들을 생각나게 하는 방향제 냄새 같은 목련 냄새는 아이묭의 노래와 비슷하다. 아이묭의 노래는 봄날의 수많은 추억을 한꺼번에 가져다준다. 기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