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누가 백세주를 한 병 주기에 백만 년 만에 마셨는데 오 백세주가 이렇게 맛있었다니. 백세주 맛이 좋다는 건 뭔지 알지. 나 예전에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할 때였다. 나는 야간알바라 밤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일을 했다. 대학교 근처라 방학이면 사람이 없어서 밤새기에는 편했다. 대학교 근처애서 집까지는 극과 극이라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야 했다. 그래서 오전에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올 때 버스를 타면 어김없이 졸았다.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내려서 집으로 와서 씻고 누우면 바로 잠이 오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백화점이다. 하루는 버스에서 내렸는데 소주 판촉을 백화점 앞 광장에서 하고 있었다. 햇빛 때문에 밀사의 눈초리로 뜨고 그 앞을 지나가니 내레이터 모델 사이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나는 더욱 밀사의 눈초리를 해서 보니 친구였다. 소주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친구는 어린 시절 나의 응응 친구로 어릴 때는 무척이나 붙어 다녔다. 그러다가 중학교가 갈리고 고등학교도 다른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주말에나 보거나 친구가 이성에 눈을 떠버린 이후로는 그 마저도 어려워졌다.


서로서로 휘뚜루마뚜루 지내다가 그렇게 만나게 되었다. 친구는 소주회사에서 일을 하는 만큼 술을 잘 마셨다. 꼭 소주회사에서 일을 해서 술을 잘 마시는 건 아니겠지만 친구는 말술이었다. 같이 술을 마셔서 친구가 술에 취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항상 내가 먼저 뻗었다. 밤을 새우고 버스에서 졸다가 대역죄인 같은 몰골로 버스에서 내려서 집으로 오다가 친구와 마주쳤다. 친구는 이제 곧 점심시간이니까 같이 밥이나 먹자고 했다. 밥 먹고 집으로 들어가서 푹 자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며 점심시간이 오기까지 그 옆에 앉아서 기다렸다. 햇빛을 받아서 노곤해진 몸과 눈꺼풀에는 성냥개비 삼만 개를 올려놓은 듯 자꾸 내려왔다. 옆에서 내레이션 모델들이 마구 판촉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지만 땅밑으로 꺼져내려가는 듯 몸은 축축 늘어졌다. 그때 친구는 점심시간이 되어서 나를 데리고 근처 삼겹살 집으로 갔다. 우리는 삼겹살을 구웠다.


친구는 술 한잔 할래?라고 하더니 소주는 너무 해비 하니까 백세주를 먹자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그래서 백세주를 주문해서 마신 게 15병을 마셨다. 아무튼 내가 친구에 비해 3분의 1 정도 마셨다. 나중에는 고기 맛이 뭔지도 몰랐다. 백세주는 달달하니 맛있어서 이게 술인지 음료인지 모르게 넘어가는데 어느 기점을 넘어서면, 여느 술과 마찬가지로 뇌를 잠식하고 몸을 문어화 시킨다. 나는 집으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고 도대체 우리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기억이 없었다.


친구는 그렇게 마시고도 벌떡 일어나서 또다시 일을 하러 갔다. 삼겹살 집 사장님이 신나서 백세주를 막 갖다 주던 게 생각이 난다. 이제 소주도 술집에서 육천 원의 시대가 올 거라는데 백세주는 술집에서 얼마에 팔까. 어제 마신 백세주를 보니 병도 예전에 비해서 작아진 것 같고, 한 병을 마셨지만 뭐랄까 전혀 술이 오르지 않았다. 이제 시대는 알코올 도수는 점점 줄어들고 병은 작아지고 가격은 올라간다. 그 말은 예전에 비해 비싸진 소주나 술을 한두병 마셔서는 전혀 술기운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  이것마저 없다면라고 한 안도현 시인의 퇴근길에서처럼 삼겹살에 소주 한잔은 이제 없어질지도 모른다. 건강을 위해서 도수를 줄인 소주가 쏙쏙 나오지만 도수가 약해서 사람들은 몇 병을 마신다. 도수가 강한 술을 파는 외국 같은 경우를 보면 술이 독하니 한두 잔에 술기운이 올라서 좋은 면도 있다. 사람들은 전부 제각각이라 약한 도수에 비싸진 술을 반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욕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병을 마시고 전혀 술기운이 오르지 않는다면 한창때인 대학생들은 술을 얼마나 마셔야 할까. 어찌 되었던 너무나 오랜만에 마신 백세주는 맛이 좋았다.


친구는 타이어 회사로 이직했는데 소주회사를 다니니 술을 너무 마시게 된다는 이유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