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춥고 꽁치 통조림이 있다면 꽁치찌개를 끓여 먹자. 김치가 없어서 처음에는 초조했으나 2분 정도 고민하다가 꽁치만으로 찌개를 끓이기로 했다. 끓이다 보니 기시감이 드는 게 예전에도 추운 날 이렇게 꽁치만으로 찌개를 끓여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가 2017년쯤이었다. 몹시 추웠다.
2017년 12월 17일 기록을 보면 그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뉴스에서는 모스크바보다, 삿포르보다 훨씬 추운 날이라고 보도를 했다. 조깅을 하는데 단 한 명도 없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이번 혹독한 한파에도 조깅 코스에 몇몇은 나와서 조깅을 했으니 액면으로 2017년의 한파가 이번 한파보다 더 추웠다. 나는 그때 레깅스를 두 장이나 입었고 모자도 두 개나 쓰고 달렸었다.
그날 미친놈처럼 홀로 조깅 코스를 달리고 있는데 저기 반대편에서 자전거를 탄 사람이 오고 있었다. 저런 미친놈을 봤나, 이런 날씨에,라고 생각을 했다. 자전거가 스쳐갈 때 헬멧과 마스크로 꽁꽁 가린 얼굴이 힐긋 나를 향했다. 저런 미친놈을 봤나, 얼굴을 다 드러내놓고 바람을 맞으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아팠다. 아니 살갗이 아프다고 느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의 밑바닥 같은 공기가 얼굴을 아프게 할퀴었다. 정말 얼굴이 10세 아이에게 여러 번 뺨을 후려 맞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눈이 시리고 아팠다.
반환점을 돌아오는데 네온의 불빛도 다르고 사람들은 등을 한껏 구부리고 바닥을 보며 어딘가로 빠르게 걸었고 술집이나 치킨 집에도 사람들이 없었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세 명의 남자들이 이런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찍부터 마신 술 탓에 전부 횡설수설이었다. 한 명은 거리에 그대로 토하고 두 명은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세계의 겨울은 변함없이 반복을 하고 있었다. 변함없는 것들은 늘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엄청나게 추운 날 조깅을 하고 집에 와서 꽁치통조림만으로 찌개를 끓여 먹었다. 대충 물 넣고 통조림 따서 꽁치도 넣고 고춧가루 넣고 간 마늘 넣고 폴폴 끓이고 마지막에 파를 좀 썰어서 올리면 꽁치 통조림 끝이다. 무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3초 정도 했다. 나의 장점이라면 가진 것에서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이다. 꽁치만 넣고 끓인 꽁치찌개는 말 그대로 꽁치의 맛만 나는 진정 꽁치찌개다. 뜨거울 때 후후 불어서 국밥처럼 빨리 먹어치워야 한다. 남기면 안 된다. 식으면 꽁치 본연의 비린 맛이 확 나기 때문이다.